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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역사 누가 세종대왕의 막힌 항문을 뚫었는가.

2006.10.10 05:46

Nadoo 조회 수:490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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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이 이야기는 모두 픽션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과 실제 인물의 이름이 일치할수 있으나 그것은 우연 입니다.







 


그 날도, 충령대군은 책상 머리에 붙어 앉아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때 충령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이 충령대군이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에게 말했다.


' 충령대군은 , 오늘도 열심히 학문(學文)을 닦는구나. 후 에 내가 너를 태자로 책봉하리라. '


그렇게 충령대군은 아버지가 자신에 눈에서 사라지도록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라지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어디론가 급히 뛰어갔다.


충령대군이 급히 뛰어간 곳은 " 측간 " 이였다. 세종은 심한 변비를 앓고 있었다. 힘을 주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충령은 다시 공부를 하기위해 측간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밤의 궁궐길을 걸었다.


그 때가 충령대군의 나이 20 세였다.


충령대군-. 그는  절대 왕이 될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즉, 태자로 책봉 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제 4대 왕이 되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으며 지금의 한글의 기초가 되었다.


어떻게 셋째 왕자인 충령대군이 조선의 4대왕의 되어 대왕(王) 이라는 칭호까지 얻었으며


"백성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는 그 자신은 불행한 인생을 얻게 되었을까, 충령대군의 그 불행한


일생은 이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양령대군은 자신의 형제를 죽이고 왕이된 아비를 용서할수


없었기에 스스로 파탄의 생활에 빠지고 소위 망나니로 불리우는 짓을 하였다. 그리하여 양령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멀어지고 둘째 왕자인 효령대군 마저 세상의 모든 것 ( 속세 ) 를 잊기 위하여 탁발을


하고 스스로 사찰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이 때 충령은 세자로 책봉되기 위하여 아버지눈에 공부만 하는아이


로 보이기 하였다. 이에 똥이 마려워 측간에 가려고 해도 아버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것을 알고]


그냥 참았다, 그 어린나이에 충령대군은 그렇게 마음을 독하게 먹고 그냥, 그냥 아버지에게 " 공부만 하는 아


이" 로 보이기 위하여 배고파도 먹지않고 마려워도 싸지 않으며 외로워도 하지 않고 참았었다.


그렇게 충령대군은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시작되었고 세자로 책봉되어서 조선 1418년 에 재위해서


세종이 된다. 그렇게 왕이 된 세종이였지만 어렸을때부터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참았던 똥이


변비가 되고, 그렇게 변비가 치질이 되어 세종을 괴롭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