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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역사 갈대가 바람에 뉘이고 뉘이고.

2005.07.29 22:25

웰빙미숫가루 조회 수:478 추천:1

extra_vars1 불행한 죄. 
extra_vars2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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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반네 머슴중에 바우라는 남자가 있었다.
바우는 성격이 억세지만 마음만은 온순한 사람이었다.
모내기를 하면 가끔씩 품앗이가 적어서 홧김에 벼를 쑥 잡아 뜯어버릴 때가 있었지만,
김양반은 허드렛 일을 도맡아하는 그를 중히 여기기에 항상 용서했었다.
마음이 여린 그는 읍네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다.
없는 살림에도 마을 밖의 종두병 환자들을 위해 제몫으로 돌아온
쇠약한 숫닭을 잡아 주거나, 손이 문드러져서 힘든 일들을 짬짬이 도와주었다.

그런 바우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안내사람이 피를 토하고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자, 제핏줄은 하나뿐이라고
(원래도 고슴도치 아비라 불렸지만) 아들만큼은 굳은일을 내리 피하게 했다.

행여나 아들이 추워서 아궁이에 짚섬이라도 넣는걸 보게되면

"네 할일은 항문(학문을 잘못 발음한것 같다)에 있응께, 어여 엉덩이 깔고
책상이나 갈아라."

하곤 장작을 패다가 안방을 데워주는 식이었다.

그렇게 금쪽같이 키워온 아들이 하필이면 안개낀 날 아침에
자기 안내사람처럼 없어지니 바우도 깨나 울먹였을것이라.

동네사람들이라곤 하지만 말도 못거는 처자가 절반이었으니 물어도
아들의 머리털조차 찾기 힘들고, 행여나 물어본 사람이 머리라도
끙 싸매면 초조해가지고 혼자서 발을 동동 굴리면서 냅다 뛰어갈 폼을 잡는다.

그 때 동네 서쪽어귀에 사는 장사치가 멧돼지같은 바우를 붙잡고는 말했다.

"동리 밖에 사는 힘센 문둥이가 업고 가드만?"

평소의 침착한 바우였다면 아무리 무식하고 어리석은 그라도 그말을 믿지
않았겠지만, 이전처럼 지붕에 이엉이라도 갈아야 할까싶어 평소 입발린 장사치의
장난같은 말 한마디만 믿고 부랴부랴 동리 밖으로 뛰어가버린다.



온힘을 다해 뛰느라 숨도 벅찰텐데 그간 문둥이 소문을 잘도 기억해 낸다.




문둥이는 마를 캐다가 애들을 홀린다지

문둥이는 종두를 없앨라고 애들 간을 빼먹는다지

문둥이는 호미로 얼른 간을 빼먹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게 엎어놓는다지

손이 문드러진 문둥이는 호미를 쥐지 못해서 이빨로 살점을 찢어다 그대로
얼굴을 파묻고 간을 씹어 먹는다지

문둥이, 문둥이, 문둥이, 문둥이, 문둥이....................................




바우는 동리밖의 그 힘세다는 문둥이가, 손이 문드러진 문둥이였다는걸
그 어리석은 석두로 기억해내고는 더 세차게 땅을 발길질한다.

"문둥이들 다 어디 가뿐나!!!"

바우가 헐떡이며 쉬- 쉬- 세는 발음으로 가쁘게 소리쳤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기에 문둥이,문둥이 해도 악의가 없어서 온순하게만 들리던
그 말이, 이제는 바우의 가슴속 어딘가의 검은 핏기가 묻어서는 매몰차게
튀어나왔다.

이윽코 문둥이들이 하나, 둘 설설 기어나온다. 그나마 천조각에 덜가려진 면상들도
핏기가 없어서 그모습이 마치 송장과 흡사하다.

"힘세다카는 문둥이 어디가뿐노!!"

"문조이는 아까 갈대밭에 갈대 꺽으러 간다고 했으요."

"손모가지가 썩어 문드러진놈아가 갈대는 무신.. 니기미!"

씹던 지푸라기를 뱉듯 퉤하고 욕지꺼리하곤 바우는 숨도 안고른채 갈대밭으로
뛰어간다. 그 뒤에는 바가지에 물 받아들고 멍하니 서있는 문둥이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진다.



니기미 내아들 털끝만 갈라져봐라
니기미 내아들 손끝만 찢어져봐라
니기미 내아들 속여서 델꼬갔능가
니기미 내아들 내있다고 업혀갔는가
니기미 문둥이 내눈에 비치기만해라
니기미 문둥이 온몸을 썩혀다뿌릴라



바우의 눈앞에 갈대밭이 먼저 들어온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갈대밭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문둥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문둥이는 등에 지게를 지고, 양팔에는 무언가 끼고 있었다.
바우의 머릿속에는 그가 힘이 세다는 말만이 맴돌았다. 오른팔에 사람 비슷한것을 끼고 있는것이 분명했다.

바우는 냅다 또 달음박질쳤다. 약간의 환희와 대부분의 분노로 추진력을 가해
붕 - 날아 오르더니 이고 있던 지게를 팍 하고 차버렸다.
문둥이는 힘이세다는 말이 허무할정도로 폭삭 무너져 갈대밭으로 잠겨들었다.
문둥이가 끼고 있던 갈대들은 그 더러운 팔뚝을 벗어나 문둥이의 몸에 깔리었다.

"내아들은 왜 끼고가노!! 내 아들은 왜 끼고 가냔 말이다!!"

"..........!!"

흥분을 넘어서서 악의와 어두운 기운에, 일생의 모든 부당함과 죗값과 전에의
안내사람에 대한 원망감까지, 서당에서 졸다가 매맞고 돌아온 아들의 다릿짝에
대한 분노까지, 품삯이 적어서 보릿쌀 얻어먹고 이듬해 몇배의 이자를 물려줬던
기억까지, 아들의 공부에 닳아찢어진 옷깃을 고쳐주지 못한 바늘삯에 대한 집념까지
바우는 이제껏 제 자신이 불행했던 모든 것을 담아 문둥이의 뒷통수를 후려갈긴다.

어제저녁에 문둥이 할미를 위해 짚갓을 이어줬던 그 온화한 모습은 사라지고,
상처를 가리던 천조각이 벗겨져 고름과 핏덩이가 흐르고 찢어진 살점이 바우의
얼굴에 묻어 지옥마를 연상케 했다.

이윽코 바우는 힘이 다 빠져서인지 문둥이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려서는 그 더러운 낯짝을 대면했다.

"내 아들!!.... 송장덩이라도 구경해보자! 어딨노!!!"

그러나 문둥이는 너무 맞느라 진이 빠져 눈알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엇다가 엎어놨노!!!!"

이때 바우의 얼굴은 고름과 핏덩이와 눈물이 뒤엉켜 더럽기 짝이 없었다.

".......아저씨예... 지가 무신... 애를 델꼬 갔어야..."

바우보다 더 엉망진창인 문둥이가 대답했다.

"니가 업고 가는거 다 봤다 카는데!!! 어딨노!!! 어딨노!!!"

"...아저씨예...진짜 너무 합니더..."

"내 송아지 같은 아를 뺐아갔으면서도 뭐가 너무한긴데!!! 내 남은거 다 - 갖고
갔으면서 뭐가 너무한긴데!!!! 니가 뭔데 나를 이렇게 불행하게 만드는긴데!!!
니가............"
"아저씨예... 들어보이소..제발...내 말좀... 들어보이소....."

문둥이의 얼굴도 눈물과 핏물로 범벅이 되었다.

"아저씨가.... 무슨 개소문을 듣고......
내를 이리 때리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내가 스무해가 넘도록 살면서......
아비 문드러진 얼굴을 보면서......
엄니 문드러진 젖을 빨면서......
이쁘다 카는건 만지지도 몬하고......
조밥을 먹어도 고름에 비벼먹고......
동네 어귀에 돼지라도 팔러가면.....
돌에 찍히고 팔매질 당하고.....

누런 천쪼가리에 몸싸갔고 가쁘게 살다가......
애들 간이 행여나 내 고름 덜 나오게 한다 케도......
죽는거보다 모한 이 목숨덩어리를 겪어 봤으면서.....
그 아-에 아비,어미 심정도 모르고 그걸 삼키겠어예......?
애가 엎어져 있는걸 보고 웃음이라도 지을것 같았어예.....?
그걸 씹으면서 내 주둥이 끄트머리가 귓밥으로 다가갔겠어예.....?

행여나 그런사람 봤다 카면은.....
내를 돌로 찍어 죽이도 할말 없어예.....
내를 나무에 걸쳐다가 찢어죽이도 할말 없어예.....
내는, 내는, 내는예.........
빙시같이, 양반들 말마따나 부..불.불.불행하게 태어난 죗값밖에 없어예......."

".........................."

바우의 손에는 더이상 농삿일 하던 그 힘이 들어가지 못했다.
문둥이의 멱살을 세게 쥐고 있던 손이 서서히 풀렸다.
문둥이는 피고름이 흐르는 뒷통수를 찢어진 천조각으로 어떻게든 막아보려 애썼다.

바람이 불어 갈대들이 드러누웠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아까전까지 있었던 일들이 거짓말이라는듯이,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깊게,
때로는 강렬하면서도 침묵을 유지하는, 아직은 문둥이의 숭고한 독백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듯이 갈대를 꺽고 꺽어 그 청조한 음색을
계속 들려주었다.

바우는 문둥이를 넘어뜨린 그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의 아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여린 다리에 생채기라도 났는지 갈대를 힘껏 묶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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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에, 처음으로 문학동에 글 올립니다 -_-);;
그림동의 도트게시판에서 활동하고 있는 웰빙미숫가루입니다;
이글은 4개월전 시험기간에 3시간정도 재미삼아 적어본 글입니다 -_-);
퇴고도 거치지않은 글이라 까칠까칠[...]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주십사하는 바램이;;

사실, 글쓰고 도트도 찍지만 본직은 일러스트입니다 ;ㅅ;
....그림은 올린적 없지만요;;; <-

현재는 고등학교 아마추어 게임팀 "이터니티" 메인도터&일러스트담당으로 활동중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부족한점 많이 지적해주시기 바래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