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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역사 살수에 뜨는 별 , 요하(療河)의 대치

2006.06.04 22:21

Kelf. 조회 수:316

extra_vars1 살수의 뜨는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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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의아니게 ` 바람의나라 ` 배경 일러를 썼습니다.
                                 유일한 삼국초기의 배경이기 때문이지요.

                  
                                -     살수에 뜨는 별 , 요하(療河)의 대치    -




     부형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천자의 위(位)에 오른 미치광이 황제 양광은 수백만 인원을 동원해 요동 정벌을 나서 자기가 부형을 죽인 것에 대한 잘못을 씻으려 했다.

또한 부친 문제가 이루지 못한 요동정벌을 자신이 해 이룬다는 자신감 또한 없지 않았다.

고구려 본국 은 양광이 요동을 수백만 인원을 동원해 정벌을 한다는 소분이 평양 장안에 파다하게 퍼졌다.

고구려의 왕 대원(大元 : 영양왕)은 사색이 되어 대신들을 황급이 불러모았다.

" 양제(煬帝)가 드디어 군사를 내었다. 그것도 무기를 든 병졸 숫자만 백만이 넘고, 군량을 운반하고 잡일을 거드는 역부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무릇 얼마인지 모르나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모두 합친 우리나라 백성 수 보다 많다고 한다. 여기 비하면 우리에게는 기껏 삼십만 군사가 있을 뿐이다. 이 난리를 대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경들은 궁리와 지략을 짜내고 묘책을 말해보라! "

옥음은 이미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심하게 떨렸지만, 북화남벌(北化南伐)을 주장해왔던 대부분의 중신들 역시 당황하기는 왕과 매일반이었다.
어전은 한동안 찬물을 끼얹은 듯 숙연하고 잠잠했다.

비로소 간신과 적신의 의하여 옛부터 모든것을 예지했던 직예( 團 直禮 : 단 직예, 젊은 18살의 약관의 나이로서 태학의 박사가 되어 조정으로 온 후, 왕에게 그릇됀것을 내치게 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한 사람.
직예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대로(對盧) 사본(司本)의 패거리의 모함으로 인해 참수. )

비로소 왕과 조정중신들은 직예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옳고 한점 그릇됀것이 없는지 알게돼었으며,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것인지 깨닫고 그를 죽여 없앤 일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 참으로 안타깝도다, 지나고 보니 직예가 생전에 했던 말이 어느 하나도 그른것이 없다. 더 깊이 알아보지 않고 그를 죽인것이 실로 천추에 남을 한이다! 어찌하여 화가 목전에 이르도록 앞일을 제대로 헤아릴 줄 아는 신하가 없으며 , 더욱이 이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경들 중에는 이렇다 할 계책을 내놓는 사람조차 없단 말인가! "

왕이 손으로 가슴을 치며 탄식하자, 귀유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송구함을 무릅쓰고 신이 한 말씀 아뢰옵니다. "

" 말하라! "

" 이번에 양제가 군사를 낸 것은 지난 정묘에 직예가 계민에 막사에서 받아온 교지 ( 직예는 수나라의 침공에 대비해 간하여 돌궐족  계민의 막사에서 죽을고비를 넘기며 받아온 교지를 왕이 무시하여 받아들이지 않음 ) 를 대왕께서 무시하고 따르지 아니한 까닭이올습니다. 그때 양제는 이듬해인 무진년(戊辰年)에 탁군으로 갈 것을 미리 말하고 입조할 것을 명하면서 만일 이를 거역하면 기필코 군사를 내겠다고 공언한 바 있사옵니다. "

" 하면, 너는 과인이 목숨을 내놓고 탁군으로 가야 했더란 말이냐? "
왕은 용안을 찡그리며 따지듯 물었다.

" 그런뜻이 아니오라, 신이 아뢰는 것은 일의 사단을 가려 방비와 대책을 세우자는 데에 있습니다. "

"그래서? "

왕이 여전히 머뜩찮은 낯으로 다그쳤다.

"대왕께서도 방금 말씀하셨듯이 지금 양제가 동원한 군의 우리 백성들을 합한수보다 많고, 이전 문제(文帝)가 일으켰던 30만 대병에 비할 바가 아닌듯 싶사옵니다. 신은 고금의 어떤 전쟁에서도 이와같은 대병이 움직였다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어느장수가 감히 이들과 교전할것이며, 어느 책사가 이들을 계책으로 물리치오리까.
그런데 옜 병서에 이르길, 싸우지 않고 적을 물리치는것은 싸움에 임해 만가지 지략, 책략을 쓰는것 보다 상책이라 하였으니, 지금이라도 대왕께선 항서를 내비쳐 조회할뜻을 밝히시는것이 좋다 생각하옵니다 "

사본의 말을 들은 대원은 크게 노했다. 당장 두눈에 핏발이 서서,

" 그것을 계책이라 주둥이를 놀리는가! "

버럭 고함을 지르더니 이내 좌우를 둘러보며,

" 여보아라! 저놈을 당장 끌어내 목을 내쳐라! "

하고 길길이 날뛰었다.

태대형에 좌장군을 맡고있던 상장군 건무 (高建武)가 황급히 부복하여 아룄다.

" 고정하옵소서, 마마! 방금 사본의 언행은 죽어 마땅하나 진정으로 대왕께 입조를 권하는것이 아니라 임기응변으로 군사를 되돌리도록 하는 계책을 아뢰었습니다. 군사가 많으면 마땅히 나가 싸우고, 군사가 적으며 안으로 지키며 꾀로 회유하는것은 병가의 상식이니 너무 고깝게 생각 마소서. "

그 뒤를 이어 내평 금태(錦台)와 외평 시명개(時明介)도 ,

" 사본은 지모와 책략이 있는 사람입니다. 결코 불충한 뜻으로 아뢴 말씀이 아닐것이니 다시 헤아려 줍소서. "

" 사정이 이와 같은 때에 나라의 중신을 참하는 것은 국익에 아무 익도 돼지 않습니다. 통촉하소서 "

하고 간청해 가까스로 왕의 노여움을 달랜 끝에 건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수군이 탁군을 이제 출발하였으므로 이들이 요하에 이르자면 내달 중순은 되어야 할것이니, 아직 약간의 여유가 있사오니 북평양(北平壤)의 각 성을 방비시키라고 보낸 을지문덕(乙支文德)을 불러 대책을 물어보시는게 좋겠습니다. 그가 요동으로 떠난지 수삼년이 지났으니, 그쪽 사정을 그만큼 아는사람도 드물것이요,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무슨 복안이 없겠나이까? "

이는 왕이 새파란 을지문덕에게 막중대임을 맡긴데 대한 남진파의 은근한 강샘이기도 했고, 양제의 교지를 받고도 줄곧 입조를 미룬 왕의 소심함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수나라와 어떻게든 화친하여 지내는것을 만사의 으뜸으로 여기던 남진파였다.
불충의 대죄를 받을까 두려워 차마 왕에게 대놓고 수나라로 가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도, 더러 기미상합하던 자들끼리 술상 앞에 앉아서는 나라의 안위보다 자신의 목숨을 더 염려하는듯한 대원왕의 태도를 성토하기 일쑤였다.

특히 건무는 만일 자신이 왕이라면 몇번이라도 수나라에 조회하러 갔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내막이야 어쨌든 왕은 을지문덕을 불러 물으라는 건무의 말은 옳다 여겨, 요동성으로 사람을 보냈다.

연락을 받은 을지문덕은 반나절에 천리를 간다는 천리마 쌍창워라에 올라 압록수 북방의 산길 천수백리와 다시 압록수 이남의 천여리 길을 닷새만에 주파에 장안성에 입궐했다.

쌍창워라는 본래 압록수 이남의 토종마인 과하마의 일종이었다.
과하마는 몸집이 작으나 평지뿐아니라 산지에서도 비호처럼 달리는 명마중의 일순위로써 중국에서 천리마라고 부르는것이 바로 고구려 마 과하마였다.,
고구려에선 거의 모든 군마가 과하마였는데, 이를 지극히 소중히 여겨 만일 군마를 돌보다 말굽을 상하게 한 사람이 있으면 죄를 물어 노비를 만드는 일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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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창작소설은 삼한지 작가 김정산(金井山)씨의 글의 기록을 참고하여 쓴 글이니 비슷한 부분이 있을수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