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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역사 붉고 하얀 깃발

2007.02.26 12:14

MAR!N3 조회 수:191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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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8월 말.


 곧 가을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동요하고 있었다. 독일과의 전쟁은 이미 피할수 없는 길이 되어버린것만 같았다. 바르샤바 전역에서는 군사훈련과 등화관제가 실시되고 있었고, 폴란드 정부는 결코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지 못하며, 또한 설령 침공하더라도 패배할 것이 뻔하다며 우리들은 안심시키고 있었다.


 정부의 선전은 독일의 전차는 캔버스 천으로 되어있으며, 그들은 모두 낡아빠진 누더기를 입고 싸운다고 말하고 있었다. 독일이 그렇게나 자랑하는 공군력은 사실 모두 거짓말이며, 독일의 비행기의 성능은 잘해봤자 열기구 정도라는 것이었다. 독일군은 폴란드군에 비하면 갓난아기 수준이며, 또 폴란드 뒤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뒤에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전쟁의 위협따위는 없으며 지금 실시하는 군사 훈련은 "정말 어쩌다 터질 분쟁에 대비한" 방비책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선전의 효과는 금새 나타나 바르샤바 시민들은 잠깐동안의 불안감에서 벗어나 다시 안심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물론 그것도 몇 일뿐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모두들 그 사실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들 자신감에 차있었고, 승리한다는 확신에 젖어 방심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몰려오는 전차부대에 말을 타고 창을 든 기병대를 내보낼 생각을 했겠는가?


 비록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도시는 정상적으로 돌아갔고, 모든게 잘 되어가는것처럼 보였다. 내 절친한 친구인 안드르제이는 「설령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더라도, 영국과 프랑스가 곧 독일을 박살낼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전쟁이 언젠간 터질거라는 나를 설득시키곤 했다. 막상 그의 이야기를 들을때면 독일이 결코 폴란드를 침공하지 않는것 처럼 생각이 되었으나, 막상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할때쯤이면 다시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솟구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드르제이가 말해주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환각제였던 것 같다.


 9월 1일, 아침 7시 5분.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서 집을 나서고 있었다. 우리집은 나중에 게토로 편입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집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어쨌든 길을 나서, 공과대학으로 가려는 전차를 탈려는 찰나,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극심한 어지러움, 멍한 느낌, 수많은 파편들과 불빛이 보였다. 벽돌과 석회가 거리로 떨어지고 있었으며,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때쯤, 다시 휘파람 부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까와 같은 엄청난 소음과 충격이 몰려왔다. 나는 그저 어안벙벙한 채로 사람들이 소리지르며 뛰어가고 피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마침내 정신을 차려 집으로 뛰어 들어가자 여동생은 나에게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왔어, 블라디노프 오빠. 빨리, 빨리 여기로 와서 라디오 좀 들어봐.」


 여동생에게 손이 붙잡힌채로 끌려간 곳은 거실이었다. 거실에는 이미 형과 어머니, 아버지가 라디오 주위에 모여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독일이 폴란드에게 선전포고를 하였으며, 독일군이 현재 폴란드를 향해 진격중이라는 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나운서가 말을 끝낸 직후에, 폴란드 국가가 흘러나왔으며, 또 국가가 끝난 뒤에는 전황을 알려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마요렉은 깊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창 밖을 응시하고 있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창백해진 얼굴로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를 듣고만 있었다. 여동생 마리아는 계속 나를 보고만 있었는데 아마 나의 반응을 궁금해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전쟁이 막상 터졌지만 일상생활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직도 독일군은 폴란드 회랑에서 고군분투중이었고, 바르샤바에는 가끔 폭탄이 몇 발씩 떨어지는걸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방에 지원병으로 보이는, 군가를 부르며 행진하는 젊은 폴란드군이 보이고 라디오 프로그램이 바뀌었다는걸 제외하고는 정말로 달라진건 없어 보였다. 전쟁 초기에 잠깐동안 혼란이 있긴 하였지만 지금은 나름대로 잘 정비된 상태였다.


 


 안드르제이는 포크로 큼지막한 고기조각을 찍더니 자기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는 나에게 말을했다.


 「어딜가나 전쟁, 전쟁, 전쟁 이야기 뿐이군.」


 잠깐동안의 점심시간동안 우리는 학교에서 나와 식당으로 왔다. 식당의 몇몇 음식들은 전쟁으로 인해서 판매가 중단되었으며,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이번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당연하지, 우리의 생사가 달린 문제인데.」


 크시스토프가 답했다. 크시스토프는 큰 키에 인상적인 눈을 가진 친구였다. 유쾌하고 쾌할하며 언제나 낙천적인 성격의 그는 언제나 부정적이고 우울한 나와는 정 반대였다. 그래서 언제나 맞부딪치고 싸우고 다투었지만 그래도 좋은 친구이다. 같은 학교를 나왔지만 그는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취업하는 길을 택하였다. 만약 전쟁만 없었다면 그는 꽤 행복한 삶을 살수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태인이었다. 나중에 크시스토프는 기적적으로 폴란드에서의 탈출에 성공하지만 독일군만큼이나 유태인에 대한 관용이 없는 러시아인들에게 끌려가 결국 전쟁이 끝나기 3개월전에 죽고 말았다.


 「우리의 생사가 걸린 문제인 만큼 좀 제대로 처리를 해주면 좋겠는데.」


 「이봐 오늘이 몇 일인지 알아?」


 안드르제이가 내게 물었다.


 「9월 3일.」


 「전쟁이 터진지 벌써 이틀이나 지났군. 그런데 뉴스에서 나오는 소식은 온통 우리 군대가 "전략상" 후퇴를 감행한다는 소식 뿐이야. 그 망할 정부 선전에 의하면 독일군은 캔버스천으로 된 탱크와 골판지로 된 비행기, 그리고 침대보로 칭칭 두른 병사들이라는데 말이야. 안그래? 사실 그런 헛소리를 믿은 우리가 바보였지.」


 식당의 라디오에서는 계속해서 전황 소식만 나오고 있었는데 대부분 폴란드군이 열심히 싸우긴 하지만 숫자에 밀려 후퇴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크시스토프가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곧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줄거야. 1주일후면 베를린이 초토화될걸?」


 안드르제이는 이런 그의 주장에 동의할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드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하였다.


 「그 망할 조약에 의하면 독일이 폴란드에 한 발짝이라도 들여놓는 즉시, 바로 독일을 공격하겠다는군. 그런데 지금 왜 이렇지? 바르샤바에는 계속해서 폭탄이 떨어지고, 우리군대는 사방에서 패배하고 있고.」


 크시스토프가 그 말에 대해서 반박하려고 씹고있던 감자를 삼키려는 순간, 갑자기 식당 주인이 크게 외쳤다.


 「이봐요! 모두들 잠깐 조용히좀 해봐요! 라디오 좀 들읍시다! 좀 조용히좀 해요! 거기 아가씨들, 잠깐 라디오 좀 들어요!」


 「젠장, 이번엔 또 뭐지? 라디오에서 뭔 헛소리를 틀어주길래 이렇게 소란스러운거야?」


 안드르제이가 빈정대듯이 말했다. 그 순간, 라디오 아나운서는 중요한 발표를 한다고 말하였다. 식당 안의 사람들은 모두 침묵에 빠져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짜증을 내던 안드르제이조차도 그 방송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 중요한 발표는 뜸을 들이는지 한동안 쓸데없는 군가와 선전문만 나올 뿐이었다. 그리고 몇 십초후, 다시 아나운서는 중요한 발표를 하겠다고 말한 뒤, 숨을 들이마쉬고 격양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나운서의 말이 끝난 뒤, 마침내 영국의 선전포고문이 방송되었고 곧이어 프랑스의 그것도 방송되었다. 그러고나서, 기다렸다는듯이 두 나라의 국가가 흘러나왔다.


 경쾌한 라 마르세예즈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식당 안의 사람들은 모두들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기까지도 하였다. 안드르제이는 한 방 먹은듯 멍한 표정이었고, 크시스토프는 그런 안드르제이를 재미있다는듯이 바라보며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내 말이 맞았지? 이제 우리가 기다릴것은 그저 독일놈들이 어떻게 박살나는지 보는것 뿐이야.」


 사실 포고문은 몇시간전에 발표되었지만 방송국에서는 다시 한번 재탕해준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소식을 듣지 못하였고,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을때, 무능한 방송국 직원을 탓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탓해봤자 별로 달라지는건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하던, 어찌되었건 독일군은 바르샤바로 다가오고 있었고 날이 갈수록 폭격의 강도는 심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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