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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패러디 부탁해, 피코마신

2008.01.23 05:00

misfect 조회 수:838 추천:2

extra_vars1 유서작성 편 
extra_vars2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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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도 글을 씁니다.


 오랜만에 나와서 우연히 보게 된 글입니다.


 속쓰리게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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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코식 유서작성 가이드


본 죠르노!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저런 불행이 찾아옵니다! 물론 No Welcome. 하지만 당신이 원하지 않아도 불행은 찾아오죠. 그래서 세상살이에 지친 당신, 세상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당신, 그 중에서도 우연히 이 글을 Get한 Lucky한 당신에게, 오늘은 유서 쓰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럼, 여태까지는 일종의 패러디 같은 것이니, 지금부터 진지하게, 아주 진중하게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일단 종이를 구해야죠? 종이, 종이라. 대체적으로 집 안에 A4용지 한두 장 정도는 있으리라 봅니다만, 아무리 Simple is Best라고 해도 세상 떠날 마당에 밋밋하게 A4용지에 써내려갈 수는 없죠! 그런 고로 특별한 편지지로 하나 구해 봅시다! 아, 그리고 대충 아무거나 가져오려는 당신, 유서를 써놓고 막상 발견이 안 되면 난처하지 않아요? 그런 고로 편지지는 되도록이면 눈에 확 띄고 화사한 걸로, 보는 사람이 다 충격 받을 정도로 골라 봅시다.
골랐나요? 거기! 아무거나 대충 가져다 쓰면 안돼요. 취향에 좀 안 맞으면 어때요? 누군가 읽을 때쯤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걸. 그러니까 한번 미친 셈 치고 골라 봐요. 아, 직접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네. 초등학교 이후로 그리지 않은 유치한 그림들, 중학교 때 이미 잊어버렸던 재미있는 그림들을 마구마구 그려 줘요.(피코도 직접 그렸답니다. 꽃이에요. 예쁘죠? 아닌가요?)
편지지를 다 골랐으면 편지를 써야죠. 아니, 유서였던가요? 뭐 어때요? 일단 읽을 사람을 적어야겠죠? 누구 쓸 사람 있나? 부모님, 우리 가족, 친구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많은 사람들. 뭐, 이정도? 그럼 써야지요! 하지만 이렇게 쓰면 확 하고 오는 게 없잖아요? 이랬다간 이부분만 보고 편지지를 덮어버릴지도 몰라요. 그럼 어떻게 쓸까? 되도록이면 수식어 많이 붙여 주고, 약간 과장해도 되니까, 너무너무 사랑하는 부모님께, 이제껏 도움을 많이 준 고마운 형제자매, 그리고 언제나 소중한 내 친구들, 아직 만나지 못한 많은 고마우신 분들께. 하는 식으로 적어 봐요!
다음으로는 서론 쓰기. 기억나나요? 학교에서 통지서 나누어줄 때, 저는 ‘실록이 푸르른…’하는 부분만 봐도 종이를 덮어버리곤 했어요. 유서도 마찬가지! 유서라고 해서 늘 ‘살기 싫은 세상…’하고 시작하면 식상하단 말이죠! 그런 어떻게 쓸까? 약간 반전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서, 이렇게 시작해 봅시다. ‘지금, 창밖으로는 시원하게 비가 오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마저 마음이 후련해질 듯 내리붓습니다.’ 여기서 한번 끊어 주죠. ‘그런데 제 마음은 어둡습니다. 지금 이런 글을 남기는 것 역시, 누군가 읽고 슬퍼할 것이란 사실도 제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는 거예요. 이렇게 되서 미안하다는 걸 제대로 표현하는 거죠.
그런다고 계속 서론만 줄줄 써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제 좀 제대로 적어 주죠. ‘일단 왜 제가 이런 글을 남기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죠.’ 아, 문장의 길이는 길게 하죠. 문장의 길이는 곧 그것을 읽는 사람의 호흡이니까, 짧게 끊어 긴박한 것 보다 조금 긴 편이 좋겠죠! 그리고 나선 왜 쓰는지를 써야 하는데, 여기서 약간의 반전을 줍시다. 그냥 요즘 얘기를 쓰는 것 보다 옛날에는 좋았다고 써서 서로 대비되게 합시다.
한줄 내려준 다음, ‘예전에는 4시쯤에 끝나서 집에 돌아가면 한권의 책을 볼 여유가 있었고, 저녁을 먹을 때에도 가족끼리 나누는 대화에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정말이지 옛날이 좋았네요. 그때는 꽤나 재미있게 지냈겠죠? ‘그런데 요즘은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학교가 끝나면 다시 학원에 가고. 어느새 가족간에 대화도 하지 못한 체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만 합니다.’ 불평불만을 늘어놔 주세요. 타인에게 알리지 못했던 슬픈 일, 괴로운 일을 모두 털어놓는 거예요.(물론 피코에게는 없답니다.) ‘쓸쓸합니다. 서로 얘기하면서도 마음이 통하지 않아요. 그저 서로의 비위만 맞추어 주고, 그날그날 만나서 그날그날 해어지는 그런 느낌입니다.’
다시 한줄 내려서 단숨에 써 버리죠. ‘지금은 그저 옛날의 온기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다른 생활에는 별로 불만이 없다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질걸요? ‘서로 친하게 지내 스스럼없이 장난치는 친구들도 많고, 선생님께서도 잘 대해 주시지만 지금의 생활에는 지쳐버렸어요.’ 클라이맥스! 클라이맥스!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겁니다. 더 이상 있어도 괴로울 뿐이고, 견뎌내기에는 너무나 힘들어요.’ 마무리는 인사와 함께, 그동안 맺힌 원한이 있다면 모두 용서해주죠.(마지막이잖아요.) ‘그 동안 서로 불편했던 적도 있었고, 서로 다투기도 했지만, 모두 아침, 점심, 저녁 매일매일 안녕히 계세요.’
추신. 이라고 짧게 적어줍시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한번 남겨보고 싶은 명대사 없나요? ‘옛날에는 믿었습니다. 이 세상은, 이렇게도 추하지만, 나는 이 세상을 좋아하고 있다고.’ 한 세 번 정도 써서 강조하죠. ‘나는 이 세상을 사랑한다고,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행복했다고.’ 같은 구조의 문장을 세 번 써서 강조한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From. 물론 써야겠죠.(쓰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쓴 건지 모르지는 않겠지만.) 앞에 To.쓸 때처럼 써 봅시다. 앞뒤가 비슷비슷하면 글이 안정감이 있다고 하나요? ‘부모님의 예쁜 아들, 친구들의 소중한 동지. 그리고 아직 만나보지 못한 숫한 사람들의 귀중한 누군가가.’
다 썼나요? 그럼 완성됐나요? 어디 한번 오, 탈자 없나 세 번 정도 꼼꼼히 읽어 보고(세 번은 그냥 제 취향이에요.) 마지막으로 학교의 모습도, 등굣길의 풍경도, 주위의 경치도 쭉 둘러 본 다음에 말이죠, 그럼 마음을 가다듬고 돌아와요. 유서를 들고(여기서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살포시 들어 주는 게 포인트!) 방을 나서요. 어차피 유서란 이렇게 하려고 만든 거니까요. 긴장하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그럼 다시 한번 유서를 쳐다본 다음, 마음먹고.


찢어버려요. 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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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사운드 호라이즌의 앨범에서 따온 발상이라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