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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4 감자 고개 괴물의 부활전조! (上)


 


 




“흠...”


“뭐해?”


 


기술이라면 기술일터, 이것은 수업 시간에 몰래... 게다가 전교에서... 아니 그녀 자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최악의 선생이 자리잡은 영어 시간에 보는 이 잡지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은 물론, 선생의 트집잡기가 발동되는 순간엔 정학의 위기에 이를 수 있는 무시무시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되다보니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던 지유는 자꾸 수업은 안 받고 이상한걸 보길래 걱정 반의 호기심이 발동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하거라, 지금 요 금발 미남이 날 보고 있잖니. 더 감상해야 돼.”


“또, 헛소리. 잡지 모델이 그렇게 좋냐?”


 


그렇게 시작된 두근두근거리는 이 둘의 잡담은 청소년들의 귀에만 들린다는 벨소리 뺨치는 음량의 초저음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몰라, 오늘 처음 가져온건데 나름 흥미가 있어. 흐흐흐.”


“글쎄... 난 별로지만... 조금 조심하는게 좋지 않을까나?”


 


누가 보면 젊은 남자들만 보면 정신 못차리는 중년 아줌마 같은 말투로 말을 이은 그녀에게 지유의 당부는 통할리 없었다. 오히려 더 심취한 듯 싶었다.


 


“...이 문장에서 it이 뜻하는 부분은 문제 6번의 일곱번째 줄에 있는....”


“아차, 저 부분 빼먹을뻔 했네.”


 


하지만 이 놀라운 멀티 플레이는 신기했다. 무릎엔 남성 모델이 즐비한 잡지로, 보지 않을땐 교복 안쪽 치마로 넣어두는 두뇌 플레이를 발휘하며, 신기하게도 설명은 다 듣는건지, 중요한 부분은 교과서에 체크해두는 치밀함도 보였다.


그렇지만 결국은 잡지를 보는데 온 신경이 집중될 터....


 


“....해서 오늘 푼 문제 4,5,6은 내가 다음 시간에 다시 한번 검사한다. 대충대충 되어 있으면 곤란한 일을 많이 겪게 될꺼야. 그럼 이정도로 마친다. 반장!”


 


히지만 최종적으론 신주희의 판정승이랄까? 다행히 들키지 않고 마지막까지...


 


툭!


“윽.”


 


버틸 수 있었을텐데... 잡지가 떨어졌다.


마치 이건 후반 인저리 타임에 상대편이 얻은 패널티 킥과 같은 격이었다. 이대로 들킨다면, 교무실 동행은 불가피요. 저 구석구석 캐묻고 따지고 토달고 일러바치는 환상의 화술이 발동된다면 최소한 주번 교체는 감당 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차렷!”


 


하지만 이걸 알아차렸는지 아닌지는 몰랐으나, 지유는 차렷을 평소보다 큰 소리로 하는 바람에 잡지가 떨어지는 소리와 겹쳐, 선생이 잡지를 떨어뜨리는 것을 모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잽싸게 그녀는 발로 잡지를 안쪽으로 끌어당겨 감췄다.


그렇게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안 수업이 끝나고, 선생이 완전히 돌아가고 난 후 지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주희는 지유의 어깨를 잡으며 외쳤다.


 


“나이스 타이밍! 역시나 5년지기 친구는 뭔가 다르다니깐!”


“하여튼, 이걸로 이자는 2.5% 증가.”


“엑, 뭔 소리야!”


 


그 말에 지유는 눈을 내리깔고 하늘로 검지 손가락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글쎄... 지난주에 기억나지 않는 이상한 핑계로 누.군.가가 빌려간 8천원의 행방을 넌 잘 알텐데?”


“윽. 그건...”


 


주희는 단지 입을 우물우물거리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녀의 성격은 요 근처의 불량배와 견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여자가 어찌나 성격이 거친지, 그야말로 말보다 주먹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성격이 불같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런 친구간의 문제, 특히 돈 문제만은 그의 성격이 누그러지는 때다.


그건 왠지 지유도 모른다. 대충 생각해봐도 남성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자존심이라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어렴풋한 예측 뿐이었으므로... 뭐 이런 성격이 나쁜건 아니니 평상시에는 그리 신경써본 일이 없었던 지유였다.


 


“미안! 요번주 주말에 월급 나오거든? 그때까지만 좀 참아라.”


“흠...”


 


지유는 그 말에 간단히 넘어갔다.


 


“만원이면 되겠네. 주말이면.”


“만원? 알았어! 그날은 꼭 줄테니깐!”


“오케이, 오케이. 니가 그렇게 말하는걸 보니 알겠어.”


 


지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시간이잖아? 매점이나 가자.”


“오오, 먼저 말을 꺼낸걸 보니 네가 쏘는게냐?”


 


하지만 현실은 틀렸다.


 


“헤에, 아직 빚이 있는 녀석이 누구한테 사달라는건지 모르겠네.”


“윽...”


 


주희는 살포시 돌아서 주머니의 돈을 확인한다. 물론 자금 상황은 나빴다. 스쿠터가 기름 냄새만 맡아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비가 낮은 탓에 기름값은 가까스로 남길 수 있었지만, 그것을 매꾸고 나면 남은 돈으로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요즘은 지갑이 비어있는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돼, 안돼.”


“뭐가 안돼?”


“돈이 안남아. 이걸 보라고”


 


지유가 본 지갑엔 만원 7장과 몇 개의 잔돈 뿐이었다.


아니... 뿐인게 아니다. 이정도면 평소에 주희가 가지고 있는 돈의 2배는 되는 것인데...


 


“뭐야, 돈 많네! 매점 사주고 지금 빚 갚아도 남을 정도로 있는데.”


“안돼, 만원짜리들은 다 스쿠터 유지비라구. 잔돈은 배달할 때 쓰는 잔돈이고.”


“엥? 스쿠터야 기름만 채우면 됬잖아?”


 


그 말에 주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기름값 빼곤 다 튜닝비야.”


“튜닝? 니 스쿠터 그런거 안해도 충분히 빠르잖아?”


“아니, 요새 엔진도 많이 뻑뻑해진 것 같고, 타이어도 새로 갈아야 되서, 그런거 빼고도 여러 가지 하다보니, 돈이 나가게 됐지 뭐야? 하하하...”


 


지유는 그 말에 별다른 반응 없이 듣고만 있었다. 역시나 스쿠터나 바이크의 정비나 유지에 대해선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그렇게 되다보니 그 말이 이해가 될 법도 했다. 정비를 안한지 꽤 됬으니, 그런걸 할만도 했지. 하는 생각으로 무심코 받아들였다.


 


“아, 뭐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럼 학생 식당으로 갈까?”


 


주희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내가 돈 없다니깐, 식당 가자는 소리하네? 니 돈은 안쓰냐?”


“아니, 새로 입고된 만화책이 좋은게 많아서... 하하하.”


 


그 말에 주희는 발로 땅바닥을 툭툭 차며 말했다.


 


“아, 그러셔? 좀 나처럼 실용적이고 건설적인 부분에 돈을 쓰란 말야.”


“나도 그러고 싶지만, 이번 신간은 놓치면 안돼는거라서, 헤헤.”


 


주희는 그 말에 한숨을 크게 푹 쉬며 말했다.


 


“그나저나... 벌써 줄이 한참은 섰겠는걸? 식권은 있어?”


“2장 남았지. 이럴때를 대비해서 몇장 남겨둔건데. 헤헤.”


 


별수 없었다. 주희는 본래 학생 식당에서 먹지 않고, 매점을 이용하는 터라, 식권을 가지고 있을리 없었고, 그나마 지유가 2장을 가지고 있으니 그걸로 떼울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자금 상황이 좋지 않으니...


주희는 그렇게 ‘주말만 지나봐라...’ 하는 심정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 9시.




적막이 감도는 고개의 입구엔 여전히 영감의 집이 있다. 저택이라고 하기엔 좀 많이 작아서 그냥 별장 정도로 보면 되는 정도의 집이었다. 특징이라면 왼쪽에 다른 집에선 볼 수 없는 큼직한 차고가 갖춰져 있었는데, 차고 주제에 안에는 자동차도 없고, 그렇게 되다보니 잘 쓰지도 않아서, 언제나 닫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왠일로 차고가 활짝, 게다가 차고 안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진 상태로 남아있었다.


 


“흠, 이렇게 차고까지 열어젖히고, 안그래도 험한 고개를 장비까지 챙겨오게 한 이유가 뭐야? 영감.”


 


영감의 옆에는 주황색 작업복을 걸친 정비공이 서있었는데, 영감의 뜬금없는 호출에 고개까지 올라오다보니 그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 하고 있는 바이크 수리, 튜닝 작업도 몇 개씩이나 밀려있는 상황에 이런 식으로 불려 나오는 건 그에게 있어선 매우 곤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바쁜건 알겠지만, 딱 한시간만 투자해줄 일이 필요해.”


“뭐 영감이 나에게 해준게 워낙 많아서, 내가 거절할 이유가 없지만...”


 


영감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에 물었다.


 


“알지? 내 보물 1호.”


“아아, 물론이지. 그런 레이싱과는 절대로 거리가 먼 바이크를... 영감은 보물 1호로 삼고 있잖아?”


 


영감의 CT100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완벽한 코너링을 목표로 하면서, 직선로에서 또한 어떤 스쿠터나 바이크에 견줄만큼의 속력을 가지는... 아니, 그 이상의 속도. 마치 고갯길의 유령과도 같이....


형편없어 보이는 껍질 안에 온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의 괴물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잠깐 다듬어줬으면 해. 아마 자주 몰게 될꺼야.”


“...무슨 소리야? 영감은 이제 바이크 안 몰잖아? 게다가 이런 머신은 보통 사람들에게 넘겨줄 정도로 쉬운 물건이 아니라구?”


 


폐가 가득 찰 정도로 한껏 담배를 빨아 쭉 내뱉은 영감은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담뱃재를 털었다.


 


“물론이지, 바람 맛을 보기엔 나도 너무 늙었지.”


“그럼, 누가 대신 몰기라도 하는거야?”


 


영감은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내가 못 몰면 다른 사람이라도 몰게 해야지.”


“다른 사람이라니... 설마...?”


“너도 잘 알잖아? 최근에 만난건... 3년 전 그날 뿐이지만.”


우우웅!


 


정비공은 예사롭지 않지만 나름 익숙한 그 엔진음에 시선을 고갯길 위로 올렸다. 소리로 보아 이 근방에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였고, 그 소리를 따라 눈을 굴린지 얼마 안돼어, 유난히 빛나는 헤드라이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설마... 난 그냥... 아르바이트 용 스쿠터가 필요한 학생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말에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모양인지, 영감은 살짝 배를 잡고 실소를 흘렸다.


 


“헤헤헤, 그걸 빌미로 나름 훈련을 시켰지. 자기도 약간은 흥미 있어 하는 부분도 있었는지 열심히 하는 기색이 있었지만...”


 


그렇게 한참을 웃던 영감이 말꼬리를 흘리더니 금새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문제는 쫑알쫑알하는게 버릇이 없어. 쯧.”


 


헤드라이트는 금새 도로 건너편까지 다가왔고, 금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주희의 CT100이었다.


정비공의 눈에는 확실히 많은게 변했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 당시 넘겨줄 적에는 50cc에 불과했던 엔진의 배기량을 125cc로 특별 개조를 하고, 기어를 수동 변속으로 바꾼 것이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외형적으로도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도색과 헤드라이트. 차체의 하얀 도색을 내버려두고 프론트 카울(주1)부분의 빨간색을 검은색으로 도색해서 흑백을 조화 시켰고, 흐리멍텅해보이는 특유의 헤드라이트를 멋들어진 바이크 특유의 커다란 원형 헤드라이트로 바꾸었다. 그렇게 되다보니 배달용 오토바이로 취급되던 그 CT100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게 변모해있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바뀐 것은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언덕에서부터 들려온 엔진음은 고작 125cc가 낼법한 음이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어림잡아도 250cc는 가뿐히 넘을 법할 물건이었다.


 


“놀라운 걸 영감... 내가 안 보는 사이에 이정도로...”


 


그 때, 영감은 이미 한참을 뛰어가 주희에게 닦달을 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 누가 맘대로 헤드라이트를 바꾸랬어!”


“상관 없잖아! 게다가 그런 흐리멍텅한 것보단 낫잖아?”


“그런게 문제가 아니잖느냐! 내 허락도 없이 그런 짓을 했다가 바이크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하는거냐!”


 


정비공은 그 말싸움을 말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깐... 이걸... 잘못 했다간 자기도 휘말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나이가 낼 모레 서른이니 여고생 하나쯤은 훈계할 정도의 나이긴 했지만...


역시 이런 일에 휘말리면 오래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저 아이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하는 소리였다.


 


“엇?”


“음? 왜?”


“아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네?”


 


그 맥없는 대답에 정비공은 고개를 떨궜다.


 


“기억 안나? 나라구! 성진!”


“흠... 아! 그 친절한 아저씨구나?”


 


아저씨라는 표현에 그는 뜨금하며 다시 한번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아직은 28살이거든...? 그 표현은 나에겐 너무 가혹하구나...”


“헤에... 그래봤자, 아저씨.”


“어째서! 아직 30대는 아니라구!”


 


김성진은 눈꼽 하나 변하지 않은 저 성격에 기겁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나이에 한번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직 18살밖에 안된 녀석이 저런 바이크로 고갯길을 능숙하게 탄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진짜로 많이 변했구나? 처음 봤을땐 갓 중학생이었는데.”


 


그가 처음 그녀를 만난건 막 대학을 졸업한 뒤에 바이크 제조 회사에 취직한 뒤의 일이었다. 상경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녀를 영감의 집에서 우연히 만난 뒤로 그냥 착한 여동생처럼 데리고 놀곤 했다. 물론 그땐 중학생 치곤 체격도 작고, 어리광도 많아서 꽤 어린 부분이 많았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녀석이었는데, 금새 이렇게 크다니...


하지만 역시 변하지 않은 저 고집, 장난끼, 버럭대는 성격...


 


“그렇게 내가 많이 변했나? 아저씨?”


“아저씨가 아니라니깐! 난 아직 장가도...”


“나보다 10살 이상 차이나면 다 아저씨에요.”


“그런 기준은 무슨 근거로 나오는거냐!”


 


게다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론 이상한 기준도 박혀버렸나보다.


 


“그렇게 감격의 상봉을 할 시간이 아니다! 어서 일을 끝내고 자고 싶어!”


“영감은 주책 말아요! 여기가 아니더라도 바이크 수리 할 곳은 많았다구!”


“자, 다들 조용하고, 주희야! 바이크좀 여기다 대라!”


 


그렇게 예상보다 빨리 9:40분에 시작된 바이크 정비. 아니, 괴물을 각성시킬 업그레이드 작업... 그렇게 감자 고개 최속의 바이크의 부활은 이 고개와 함께... 그리고 소란스러운 세 사람의 목소리로 가득 메워지고 있었다.


 


 


[END]


 


 


 


(주1) 프론트 카울


 


카울은 바이크의 핵심적인 부품들을 감싸고 있는 장갑과도 같은 것이다.


기종마다 프론트 카울의 위치가 다르지만, 대체로 차체 앞쪽을 감싸고 있는 장갑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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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연재인가요?


 


아마 이런식으로 일주일 간격의 연재가 지속될 것 같습니다.


 


물론 따로 하는 일도 있고, 고3이라는 공부의 압박도 있어서 늦어지지만...


 


역시나 귀차니즘이라는 가장 큰 적이 있기에... (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