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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서른 여섯번째 계략

2005.05.24 17:18

책벌레공상가 조회 수:370 추천:3

extra_vars1 by 제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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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나부낀다.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나도 그 바람을 맞고 있다. 나는 점심을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괜히 병영쪽을 바라보았다. 분주하다. 병사들이 여러가지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자신의 창을 찾으러 여기저기 헤메는 병사, 사다리를 옮기는 병사 3명, 잠깐 벽에 기대어 졸고 있는 병사, 자신의 투구에 기름칠을 열심히 하는 병사...
이번엔 하늘을 쳐다보았다. 해는 벌써 중천이다. 이쯤되면 적진을 염탐하러 갔던 정찰병이 돌아올 시간이다.

"올 때가 됬는데..."

풀숲 너머로 한 그림자가 움직인다. 그러더니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온다. 적진을 염탐하러 갔던 정찰병이다. 급히 뛰어온다. 필히 무슨 소식을 가지고 오는 모양이다.

"이제 오느냐?"

정찰병은 가뿐 숨을 몰아쉬며 나에게 말했다.

"헉, 헉, 늦어서 죄송합니다, 장군."

나는 그 정찰병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그래, 적진의 병력 수효는 얼마나 되느냐?"

정찰병은 숨 한번 돌리고 말하였다.

"헉, 헉, 말도 마십시오. 전차의 수는 어림잡아서 약 5천기는 되어 보이고, 보병은 어림잡아 2십만 대군, 기병은 약 3만기, 궁병은 약 5만명이 됩니다."

...내가 생각했던것 보다 엄청난 대군이다. 지금 우리측의 병력은 고작 보병 5만명, 기병 7백기, 궁병 3천명에 불과하다. 전차는 하나도 없다. 지금 이상태로 적의 대군과 맞써 싸운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치기이다.
난 지금 사령관 천막에서 괜히 머리를 싸매고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계속 고민하고 있다.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자꾸만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해야돼지? 어떻게 해야되지? 어떻게 해야되지?..."

계속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계속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시간을 고민했을까? 문득 서재에 병법서들이 빼곡히 꽃혀 있음이 눈에 띄었다.

"맞다. 옛날에 손자나 제갈량 같은 유명한 책사들은 적은수의 병력으로도 적의 대군을 능히 물리쳤다고 하던데...... 어디 그 책사들의 지혜를 빌려볼까?"

나는 손이 닿는대로 아무 병법서 하나를 끄집어 내었다. [황진병법서]였다.
나는 그 병법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혹시 적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는 무슨 뾰족한 방법이라도 나올 까 기대를 하면서...다음 장을 넘겼다...

...정신을 차렸다.
내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평소에 글 한자라도 안 보던 내가 갑자기 이런 병법서를 보려고 하니 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휴...평소에 학문을 조금이라도 닦아놓는 것인데... 무인의 길을 걷겠다면서 학문을 게을리 한 나의 어린 시절이 왠지 후회가 된다.

"아무래도 이 병법서는 너무 어려워. 다른 병법서를 봐야겠다."

나는 [황진병법서]를 책장에 꽃아두고 다른 아무 손에 집히는 병법서를 꺼내 들었다. [병법 36편]이였다. 나는 그 책의 양에 일단 겁을 먹었다. 이 책을 다 읽을수나 있을까? 나는 문득 생각했다. 보통 책에서 중요한 내용은 맨 뒤에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뒤에서 부터 볼까...
나는 맨 뒤에장을 펼쳤다. 그리고 읽었다.


어느새 해가 중천에서 황혼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아까전부터 불던 바람이 이제는 약해졌다. 그토록 휘날리던 깃발도 이제는 잠잠해 졌다. 그리고... 적군은 이제 진군을 하여 우리 군 진영 앞에서 진을 치고 적장의 명령만 떨어지면 공격을 개시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우리쪽 군대도 공격준비를 취하고 적군과 대치하고 있다. 적병에 비해 적은수의 보병이지만 나름대로 창을 꼭 잡고있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약해진 바람 소리가 귀에 들린다. 그러나 이내...적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침묵을 깨트렸다.

"적장은 들어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순순히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그러나 만일 항복하지 않을 시에는...어떻게 될 지는 네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잘 생각해라!"

그렇게 적장이 떠들어 대는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서른 여섯번째 계략, 서른 여섯번째 계략, 서른 여섯번째 계략......"

내 옆의 기마부장이 나에게 말했다.

"장군, 정말 그러실 계획입니까? 후세의 목소리가 두렵지도 않습니까?"

나는 그 기마부장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난 그런건 이미 각오하고 있다. 이건 명령이니까 잠자코 따르라."

기마부장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정 그러시다면 할수없군요."

적장이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돌격 신호이다.

"돌격하라!"

"와아아!!!"

그 말과 동시에 적의 대군이 우리 진영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천지가 진동을 하고, 사방이 함성 소리로 가득 찬다. 나도 칼을 하늘로 휘둘렀다. 그리고 외쳤다.

"보병부대 전진!"

그 말과 동시에 보병부대가 적의 대군을 막기 위해 앞으로 전진했다. 이내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다. 차가운 금속들이 부딛치는 소리, 화살이 하늘을 가르는 소리, 칼에 맞고 쓰러지는 병사들의 비명소리 등으로 천지를 가득 메웠다.
나는 이쯤에서 혼잣말을 하였다.

"이제...됬다."

그리고 한숨 쉬고 다시 말하였다.

"서른 여섯번째 계략..."

곧,

"줄행량이다!"

나는 이내 말을 돌려 적진이 있는 반대 방향으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랴!"

나는 군대를 이탈하여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등 뒤로 적장의 외침이 들린다.

"거기서라! 비겁한 녀석! 등을 보이고도 네가 장수냐!"

나는 그 외침을 뒤로한 채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탄 말은 지금도 달리고 있다. 나는 말을 타고 전쟁터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다. 나는 나의 군대를 저버리고 도망쳤다. 적장과 그 적병들은 나를 아주 비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본국의 황제는 아주 대노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에서는 나를 겁쟁이에 아주 형편없는 장수로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후세에는 두고두고 날 비난할 것이다.
뭐 그런건 상관없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건...

...내가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