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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무한궤도(제1막)-(2)

2006.02.24 08:48

새벽을기다리는자 조회 수:187 추천:1

extra_vars1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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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2화 회상부분에서 내용 전개가 상당히 어색해서 처치 곤란입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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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령>

울창하다. 나이를 많이 먹은 전나무들을 비롯하여 각종 상록수들이 더럽게 새 하얀  눈에 덮여 조용히 침묵하고 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들은 모두 인공의 것들이다.
이전에도 비슷한 종류의 지프들이 지겹게 지나 다녔는지, 지프가 지나가고 있는 길에는 풀이 자라지 않았다. 눈도 녹아 있었다. 숲속의 오솔길 같다. 20여분 동안 한명의 아군 병사도 보지 못했다. 어떤 보급소이기에 이런 외진 곳에 있는 건지? 아참! 보급소라고 꼭 전장과 가까이 있으란 법은 없지 않은가?
잘 모르겠다.
  
보급소를 향해 미제 군용 지프차가 질주 하고 있다. 질주? 질주라는 말을 쓰기에는 지금의 속도가 너무 아깝다. 폭주? 광란에 쌓인 미친 소의 돌진? 아직도 아깝다. 거의 슈투카 전폭기 수준이다. 운전수가 본래 운전이 미숙해 보이지는 않는다. 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이런 광란의 질주를 하는 것 같다.
운전수의 왼쪽 가슴 명찰에 붙은 이름은 “제리 마샬“
상병이었다.
앞좌석 조수석에 앉은 노튼 패트릭 하사관은 “어이쿠” “이크” “오우” “제기랄” “아앗” 등 각종 감탄사를 토해내며 행여나 튕겨 나갈까봐 바를 꽉 잡고 있다.

“하사관님. 작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라고 오랜만에 다소곳하게 물었는데

“이런! 제기랄! 어우! 염병할! 제 시각에 꼭 도착할 필요는 없으니 좀 천천히 갈 수 없나?”
라고 제리 마샬이라는 운전수에게 대뜸 부탁한다.
씹혔다. 망할 것!

뒷좌석 오른쪽은 내가, 왼쪽은 모건이 타고 있었다. 뒤에 기관총 한정이 부착 되어 있었는데, 이 속도에 과연 폼으로라도 기관총을 잡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모건의 투덜거림은 절정에 달했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제리 마샬이라는 이 상병은 상관에게 엄청난 당부를 들었음에 틀림없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내 왼쪽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모건의 얼굴을 처다 보았다.
미남형은 아니지만 학식이 풍부해 보이는 저 얼굴. 푸른 눈동자에 하얀 피부
이안 모건 병장은 영국계 미국인이다.
그의 발음을 듣는다면, 바로 어느 누구든 바로 맞출 수 있다. 금발에 키가 큰, 하지만 체격이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 미남형도 아닌 잘 생기지도 못 생기지도 않은, 자존심이 아닌 정말 진짜 콧대가 높은 사람이다. 전형적 영국인의 생김새란 말인가? 이상하게도 다들 질리도록 봤다던 순수 영국인을 별루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미국 국적인 모건을 보고 영국인을 떠 올리는 것을 보니, 뭐 그런 거 같다
.
모건의 성격은 아직 잘 모른다. 그러나 오늘 20분 내내 지프 운전수를 상대로 시비를 걸고 있는 모건은 이때까지 보았던 모건과는 다르다.
마치 두려움을 잊기 위해 다른 곳으로 정신을 돌리려는 듯 발악하는 모습. 그렇게 떨리면서 패트릭 하사관의 명령에 비교적 순순히 응한 이유는 뭘까? 그도 나와 같은 이런 아픔이 있는 것인가? 모건이 이런 종류의 아픔을 간직한 사람이라고는 생각 되지 않는다.
내가 이 무모한, 무슨 조건 때문에 하필 나에게 하달되었는지 모를 이 임무를 한 치의 고민도 하지 않고 선택했던 이유 무엇인가?

제기랄! 마인드맵의 효과! 염병할!
또 다시 떠오르는 익숙한 고통에 지프 안에서 강력한 압박감을 느꼈다.
이런 망할 계기로 억지로 겨우 잠깐 잊어버렸던 기억을 되새겨 버렸다.
잠깐 잊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것인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한 동안은 전쟁의 잔혹함 속에 묻혀있던 나의 기억이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2년 전 그때 나는 무리하게 양주 4병을 비운 채 만취상태로 자가용을 끌고 뉴헤이번 시(市) 외곽을 달리고 있었다. 당시 나는 코네티컷 주 뉴 헤이번의 예일(YALE)대학에 재학 중 이었다. 명문 대학중 하나인 예일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에 자신이 있었고, 그때는 굉장히 낙천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낙천적 성격 때문에 아무 대책 없이 단짝 친구 몇 명을 따라 목표 없이, 단지 친구들이 모두 예일 대학교 에 지원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원했다.
단짝 친구들은 모두 부잣집 아이들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집안은 대대로 부유했다. 동내에서 사고란 사고는 모두 도 맡아 한 나였지만, 성적이 우수하였기에 부모님도 나를 터치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때의 난 철부지 어린애였다.  

그날 오후 늦은 오후. 나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절친한 친구 몇 명과 대학교 선배 몇 분과 함께 신나게 놀며 술을 퍼 마셨다. 만취 상태로, 난 집에 가기 위해 자가용을 끌고 시 외곽에서 학교 근처에 있는 내 자취방으로 가려고 했다.
시아가 몹시 흐리고 졸음이 쏟아졌던 터라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분명한 것은 시속55마일의 속도로 횡단보도를 지나가던 30대 중반의 여성을 친 것. 순간에 술기운이 달아났다. 그러고도 100야드는 족히 더 여성을 끌고 갔다. 55마일에서 제동을 걸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차에서 내려 보니 그녀의 몸은 이미 피 떡이 되어 숨져 있었다.

나는 상상할 수 없는 공포에 질렸다.

사람을 죽인 것 이다.

내 생에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나의 부주의로 인해…….

주변은 지나치게 한적한 시 외곽이었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뉴헤이번 시에 외곽. 그러나 근처에는 민가 수십 채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불이 꺼진 상태. 술기운에 급정차조차 하지 못해 제동소리가 크지 않았다. 누구도 나의 만행을 보지 못했다.

여자는 갈색머리의 백인 여성이었다. 반반한 얼굴에 이미 강아지 같은 남매 두 셋 정도는 두었을 법 한 여성. 죄책감은 나를 미치게 했다.

"이보세요! 살아 있는 거죠? 저기요?"

떨렸다.

흔들어 보았다.

"저기요? 장난치지 마시고, 좀 일어나 보세요."

100야드를 끌고 갔는데 살아 있으리. 만무했다.

두려웠다.

그 이상의 공포는 더 이상 없었다.

나는 검은색 나의 차를 뒤로 돌려 달아났다.
엄청난 속도로…….  아무도 쫓지 못하게……. 뺑소니를 하고 만 것이다.

그러고는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아무 죄가 없다는 듯 멀쩡히 거리를 활보 하고 다니는 것이다. 지금 선량한 여성을 죽인 가공할 살인자가 조국을 위해서라는 지랄 같은 명분으로 전쟁에 참가 한 것이다. 군은 이 살인자를 조국을 위해 몸 바치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여기며 제국주의의 망령에 맞설 당당한 장병으로 키워 내었다.

한동안은 잊었다. 아주 잠깐 동안, 내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잊었다. 전쟁의 참혹함이 나를 또 다른 죄책감으로 몰아넣어 그 최초의 살인을 잊게 한 것이다.    

노튼 패트릭 선임 하사관이, 아니 중대장 로널드 그린이, 아니 연대장 맥그레디 대령이 그 많은 특수 부대원들을 버리고, 수많은 육사 출신 엘리트 장교들을 버리고, 나와 이안 모건을 선택한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그날 이후 이때까지 나에게 죽임을 당한 그 여성 몫까지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극도로 뻔뻔한 다짐을 더 이상 지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또 더 이상 그 때 이후로 낙천적인 본래 성격에서 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쾌활한 척 하는 것이 지겨워서, 속으로 무모한 이 작전에 동의한 것인지 모른다.

덜컹 거리는 지프 안에서 나는 매번 하던 다짐을 해본다.

“만약 싸우다 죽게 되면! 그 여자가 내린 벌로 알고, 천년동안 그 여자에게 죄를 빌겠다고!”  
“만약 싸우다 죽지 않는다면! 그 여자가 용서 한 것으로 알고, 50년 동안 그 여자에게 죄를 빌겠다고!”

눈이 왕창 덮인 울창한 전나무 숲 사이를 뚫고 악마 같은 지프가 드디어! 드디어! 보급소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