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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무한궤도(제1막)-(1)

2006.02.24 08:45

새벽을기다리는자 조회 수:206 추천:2

extra_vars1 요동치는 강철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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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때까지 써 둔 것을 오늘 모조리 올려 버릴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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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 이탈(離脫 - Breakaway)]


<요동치는 강철엔진>

오늘도 몹시 추운 날씨다.
거의 14일이나 눈이 퍼붓는 찰나에 "오늘도" 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너무나 한심하다.
가지가 썩어 으스러 날아갈 때 까지 푸르를 지긋지긋한 전나무 침엽수림 안에서
제대로 된 방한복 한 벌 지급하지 않는 군부를 한탄하며 담배 한대를 더 태웠다.

포격소리를 듣지 못한지는 이틀째다. 한 시간에 두세 번 꼴로 때려 줘야 할 나치의 88밀리가 요즘 뜸하다. 크리스마스가 임박해서인가? 아직 이브까진 한참 더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88밀리의 장포신포는 우리를 향해 발포 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우리인데도 전혀 낯선 평화로움이 나를, 아니 우리 모두를 더욱 긴장하게 하고 있다.

전선의 형상으로 보자면 최전방으로 봐도 옳을 아르덴느 숲속에서 1.3미터? 정도 되는 대강
파낸 참호 안은 '날 좀 죽여주시오.' 하는 것과 다름없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와 모건은 담요 한 장 덮은 채 담배를 한 갑째 피고 있는 중이었다.

"크리스마스 전에 돌아 갈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염병할!"

30분째 말이 없던 모건이 기껏 내뱉은 것이라고는 욕 지꺼리였다.

"이런 망할, 기껏 한다는 말이 신세 한탄이냐? 소대장한테 가서, 이런 개자식들아! 날 빨리 내 고향 보스턴으로 보내달라고! 난 꼭 크리스마스 전에 집에 가서 상큼한 스파게티 한 접시를 내 식도로 넘겨야겠다! 라고 화끈하게 지껄이는 거야."

라고 드라마틱한 제스처를 취하며 한편의 콩트를 선보였더니 이젠 한 시간째 입을 닫고 있다.
괜스레 미안해 져서

"어이 친구. 쫌 전에 내뱉은 말은 신경 쓰지 말게나. 우린 이 작은 참호를 함께 나누어 쓰는
전우 아닌가!"

라고 말했더니 기분이 엿 같으니 한 번 더 지껄이면 머리통에 총알구멍을 정확히 세 개를 내주겠다나 뭐라나……. 그러곤 철모를 꾹 눌러 고쳐 쓰더니 팔짱을 끼곤 안주머니에서 여자친구 사진을 꺼내 뚫어져라 쳐다본다.

하긴 우울할 법도 하다. 모건은 나와 계급은 같은 병장이지만, 나는 D-DAY부터 쭉 우리 중대에서 짠 밥을 먹어왔고, 모건은 이런 저런 루트를 통해 채워진 보충병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보충병들은 계급이 낮은데 모건은 어떻게 연대본부에 연줄이 있는 것인지? 하여간 우리 중대로 옮겨왔다. 나도 일부러 밝고 낙천적인 척 하지만, 전쟁이란 것. 또 전투란 것. 살인이란 것이 나 같은 낙천주의자까지도 우울증에 시달리게 할 강력한, 아주 악한, 몹쓸 행위 이였음으로 모건의 이러한 혼란을 이해하는 바이다.
특히 살인이란 것에는……. 매번 방아쇠를 당길 때 마다 가슴 속이 찢어지는 느낌을 받으니……. 군인의 의무에 충실하게, 살인에 무감각 해진다는 것이야 말로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중대 내에 마이클중사가 평소에 하는 행동을 본다면 (사실 그는 살인을 즐기고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 마이클 중사 근처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개개인 마다 전쟁에 관한 다른 세계관을 가진 듯하다.
결론을 도출해 내자면 마이클중사는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존재다.

"어서~ 여자친구가 있는지는 몰랐는데?"

옆으로 슬금슬금 접근해서는 참호 밖으로 가래를 뱉고는 모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사진을 보려고 했다.

"보스턴에서 대학을 같이 다니다가 사귀게 됐지……. 군에 지원할 때 얼마나 말리던지……."

한다.

"금발이냐? 꽤 미인인데~?"

모건이 씩 웃는다. 모건의 여자친구에 대해 이런저런 사연을 듣고 있던 중에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를 들었다.

"누구야!"

M1게런드를 고쳐들고는 소리가 난 쪽으로 총을 겨누었다. 모건도 뒤따라 허겁지겁 총구를
겨누었는데……. 노리쇠를 당기지도 않은 상태로 겨누어 봤자, 방아쇠를 당겨도 총알이 튀어나가지 못하는데……. 모건의 정신세계가 정말 혼란한 모양이다. 두 시간 정도만 얼차려를 받아 준다면, 뭐 정신적 혼란을 극복 할 수 있을 듯…….

"마틴 병장! 경계가 느슨하구만~"

한 쪽팔 길이정도의 굵기를 가진 큰 전나무 사이로 패트릭 선임하사관이 나타났다.
그가 평소 애지중지 하는 톰슨을 어깨에 맨체 철모도 쓰지 않고 뒷짐을 진체 나타났다. 완전히 긴장이 풀린 상태였다.

"패트릭 하사관님!"

패트릭 하사관은 우리 소대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꽤나 멋진 남자였다.
고등학교 때는 권투선수로 활약했는데 이상하게도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으로 하여 공립 중등학교 교사로 교편을 잡다가……. 일상이 따분하다고 군에 지원한 정말 멋진? 남자다.
모건과 이야기 하던 중에 이미 눈은 그쳤고 서서히 태양이 창공을 꿰뚫었다.
패트릭 하사관은 군화가 살짝 빠질 정도로 쌓인 눈길을 사뿐히 달려서 우리 참호 속으로 아름답게 슬라이딩!
우리가 덮고 있는 담요 안으로 들어왔다.

"나의 사랑스런 대원들이여!"

패트릭 하사관이 느끼한 목소리로 나를 쳐다보며 내뱉은 첫마디였다.

"하사관님 순찰 중이십니까?"

패트릭과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얻어맞는 횟수가 늘어남으로……. 일상적이고도
자연스럽게 빨리 끝낼 수 있는 대화로 이끌어 가기로 생각했다.
모건은 M1게런드를 참호 벽에 세워 놓고는 주저앉았다.

"응, 경계가 느슨 하구만……. 긴장이 풀리면 풀릴수록 천당길이 빨라진다는 것을 명심하게. 병장 둘이 같은 참호에서 폭사했다고 해 보게나……. 분대 원들이 과연 슬퍼 할 것 같나?!?"

하사관은 서비스셔츠 오른쪽 가슴의 포켓 속에서 뭔가를 꺼내면서 말했다.

"경계가 느슨해지는 것과 폭사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염병할……. 실수로 반발성 말을 내뱉어 버렸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하사관은 내 뒤통수를 살짝 가격했다.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았다.
권투선수를 상대로 저항을 했다간 야전 병원으로 실려 가야 할지 모른다.
이상한 건 타격의 강도였다. 오늘따라 하사관의 행동이 몹시 어색했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모건이 물었다. 하사관은 찾고 있는 물건이 그 포켓 속에 없었던지 다른 포켓들을 뒤집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어디 간 거지.' 라는 혼잣말을 내뱉고는, 제법 진지하게 물건을 찾고 있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진지함이……. 뭔가 상당히 중요한 물건 같았다.

"아……. 찾았군. 자내들한테 전해 주라고 로널드 중위가 나에게 직접 하달했다네."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뒷주머니에 넣어 뒀었군. 뒷주머니에서 편지 한통과 열쇠 하나가
꺼내졌다. 찝찝한 마음으로 그것들을 받아 들었다.
먼저 꼬깃꼬깃 여러 번 접혀져 있던 편지를 폈다. 성의 없게 접혀진 편지는 분명 하사관이
뒷주머니에 넣기 편하게 마음대로 접었던 게 분명했다.
편지를 펴자 편지와 함께 접혀 있던 이 지역 전체의 작전지도가 나타났다.
예사롭지 않았다. 거기다가 꼼꼼하고 세심한 글씨체. 인탤리, 로날드 중위의 글씨이다. 첫 문장 부터 무게감이 느껴졌다. 모건이 내 옆으로 바짝 붙어서는 옆에서 주르륵 읽어 내려갔다.

/- 이안 모건 병장과 마틴 그레이 병장에게 이와 같은 임무를 하달하게 되어 자랑스럽기도,
또 유감스럽기도 하다.
두 병장에게 막대한 폭파 임무를 부여하게 되었다.

패트릭 선임하사관이 동행하여 노련한 두 병장과 하사관 한명은 50마일 정도 떨어진 독일군 야전 본부를 폭파하고 3개 소대의 엄호를 받으며 아군 진영으로 퇴각 하도록 한다.
자세한 정보는 패트릭 선임하사관과 작전지도 뒷면의 글귀를 참조 하도록 한다.
임무 완수 시에는 소정의 상금과 하사관으로의 일 계급 특진이 주어진다.
귀관들에게 위와 같은 위험한 임무를 부여한 이유는 두 병장의 예리한 사격술과 강인한 체력
또 무엇보다도 아이비리그의 대학을 졸업한 인탤리 라는 점이다.
대대 전체의 생사가 자내들에게 달렸다고 생각하라. 카터 소령과 맥그레디 대령이 귀관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잘 해내리라 믿고, 건투를 빈다.
Baker 중대장 로널드 그린-/

순간 멍해졌다. 갑작스런 시한부 선고를 받은 듯하다. 한마디로 엿 같은 느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종종 느끼는 익숙한 느낌.

"제기랄!......"

모건이 먼 곳을 주시하며 언성을 높였다. 나는 패트릭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금 당장 출발하라는 명령이네. 자네들의 작전은 카터소령 휘하에서 진행된다네.
이 열쇠는 5마일 정도 떨어진 대대 보급소의 무기고 열쇠라네. 필요한 물품은 뭐든 꺼내
가라더군.……. 징얼거릴 시간도 없네. 일어나게."

패트릭 하사관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모건을 일으켜 세웠다.

"경계근무가 느슨했다고 벌주는 겁니까? 망할! 유서는 쓰고 가야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의외로 모건은 심하게 반발하지 않았다. 한마디 한 후로는 침묵을 지켰다.

2~3분 정도 지나자 지프 한대가 도착했다. 지프에 올라타려 하자 좌측의 전나무 한그루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다. 제기랄, 작별인사인가?

내가 이 임무에 전혀 반발하지 않았던 이유는 하사관으로의 계급 상승 때문도 있었지만,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그냥] 이었다. D + 50일 때 이후로는 이미 체념을 넘어 전쟁 자체를
나의 일상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헛된 애국심 때문인지? 일종의 유희일지도 모르겠다. 뜬금없는 임무 하달에 정신이 멍해서 아직 사태 파악이 덜 된 것일지도 모르고…….

지프가 움직일 때마다 무감각했던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동안 긴장한 적이 없었던 나의 강철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생명의 위협감을 본능적으로 알아 챈 것인가? 보급소와 가까워질수록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는 가슴 때문에 지프 밖으로 튀어나갈 뻔 했다. 창공으로 빨려 들것 같은 지프의 속도에 가슴이 요동쳤다.


젠장맞을, 빌어먹을 운전수는 보급소까지 미친 듯이 운전을 했고 때문에 모건은 20분 동안 투덜거렸다. 운전솜씨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