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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단편]전투 피로증

2006.01.05 06:38

문학소년 쉐르몽 조회 수:235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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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대는 전방으로 배치되었다. 전쟁의 포화가 본토를 휩쓴 지 1년째. 남아나는 인프라가 없었다. 공습과 탈환 작전이 되풀이되고, 아군과 적군의 시체가 빠른 속도로 쌓여 불태워졌다. 그런 상태에서 모두들 불안에 떨었다. 다들 죽음의 공포를 깊게 받고 있었다. 군인들의 표정과 행동은 더욱 무표정하고 무책임하게 바뀌어갔다. 군인들은 전선에서 눈을 부릅뜨고는 있었으나, 전방 1000야드(약 800m)밖의 물체는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군인들은 고통을 받고 있었다. 전차병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차병들은 조금 나았다. 전차병들은 그나마 2000야드(약 1600m)까지는 보았다. 우린 그 상태를 2000야드 응시라고 불렀다. 이 상황에서 그나마 나은 상태를 유지하는 건 공군이었다. 그리고 후방 임무에 종사하는 군인들. 화가 났다. 그냥 무작정 후방 임무에만 종사하는 군인들에게, 비 전투인원에게 화가 났다. 누구는 참호에서 좆같은 음식을 먹어가면서, 포탄 소리에 벌벌 떨고, 오줌을 지리며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데, 누군가는 후방에서 질 좋은 음식을 먹고, 술에 취해 흥청망청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니.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고, 전방의 오물이 내뿜는 냄새, 바로 옆의 동료가 포탄 소리에 지린 오줌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단지 무감각하게 더 잘 보려, 눈을 찌푸린 채로 전방만을 주시했다. 그래도 가끔 움직이는 아군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감각하게 그런 식으로 하루하루를 되풀이했다. 그리고 어제가 모두들 손꼽아 기다리는 병력 교체일이었지만, 교체병력들이 오다가 매복에 걸려서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벌써 삼 개월 째 최전방을 지키고 있다. 죽겠다. 집에 가고 싶다. 그렇게 싫었던 감자떡도 먹고 싶다. 울고 싶다. 엄마의 품안에 안겨서 엉엉 울고 싶다. 이 탄약 냄새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루도 멈추지 않는 피비린내에서 벗어나고 싶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변을 누고 싶지 않다.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고 싶어. 집에 가고 싶다구…….

“엄마아…….”

나는 구석에 박혀서 훌쩍훌쩍 울었다. 아무도 이 꼴사나운 광경을 보지 못하게. 엄마가 생각났다. 구세대라고 구박했던 엄마가 보고 싶다. 계집아이처럼 군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탓할 사람이 없다. 이걸 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투 인원이 아닌 것이다. 나는 그저 멋지게 차려입고 찍은 가족사진을 보면서 훌쩍훌쩍 울었다. 내 누이는 뭘 하고 있을까. 집에 남자가 없어서 곤란한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누이는 무술을 조금 했고, 동네에서는 소문난 왈패라 보호해 줄 남자들도 많으니까. 나의 형제는 어제 전사했다고 한다. 어제 지휘본부로 들어가는데 소대장이 내 어깨를 잡아채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나의 형이 전사했다고 했다. 시체는 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둘 다 살아갈 가능성은 없었다. 불가능했다. 그저 포기하고, 사진속의 형만을 바라보았다. 전우들의 시체처럼 창백하게 질린 얼굴도 아니고, 그저 홍조가 약간 띈 흥분된 얼굴이었다. 언제까지고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어제는 시가전을 치렀다. 적들은 끔찍하게도 저항했다. 무서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가전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의 후면부의 건물의 위층에서부터 화염방사기와 다수의 수류탄을 가지고 화력으로 제압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전투를 불가능했다. 적은 조직적으로 기관총과 로켓포를 설치했고, 우리는 순식간에 이리저리 몰렸었다. 그 때, 대대본부에서 때려준 105mm포 사격이 없었으면 우리는 꼼짝없이 거기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 뒤로부터 전투 피로증 환자가 나왔다. 그들은 그저 무기력하게 ‘적이다!‘라고 들리는 방향으로 대고 총을 쏴댔다.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모두들 훈련소에서 배운 대로 허리를 숙이고 다니지는 앉아도 머리만은 숙였지만, 이 전투 피로증(전투 스트레스)환자들은 그저 터벅터벅 걷기만 했다. 어제의 시가전에서 전투 피로증에 걸렸던 친구 두 명 중에 한명이 죽었다. 슬프다는 느낌이 들기보다는 그저 무력해지는 기분이었다. 시가전을 끝내고, 마을 북쪽 10km에 위치한 302고지로 행군하는 중에는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터덜터덜 걸으면서 잤던 것 같다.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잠을 잘 시간이 몹시도 부족해서, 행군시간에는 다들 잠을 잤다. 포탄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모두들 잠이 깨어 주위로 혼비백산하는 것이 일과였다. 포탄이 떨어지는 참호로 옮겨온 날에는 정말 최악이었다. 주위에 포탄이 날아들어서 수프를 받아, 덜덜 떨면서 먹어야만 했다. 덕분에 수프의 반은 옷에 쏟았다. 그것에 화가 나기보다는, 포탄이 언제 내 주위로 떨어질지 몰라 그게 더 불안했다. 탄약 분배를 받았는데, 나는 몰래 탄약을 천에 싸서 반합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가서 탄약을 받았다. 얼마 전에 탄약이 없어서, 적군을 겨누고도 총알이 나가지를 않아, 오히려 총에 맞아죽은 전우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이 일주일이 지났고, 최전방에서의 생활은 이미 삼 개월 째에 이르렀다. 우리는 교체되지 않았고, 극심한 피로감이 모두를 감쌌다. 아직 소수기는 했지만, 어떤 이들은 전투 피로증이 없어 보였다. 포탄이 바로 앞에서 펑펑 터지는데도 잘만 잠을 잤다.

[자박-]

눈앞에서 발소리가 나서, 앞을 바라보았다. 눈물 때문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눈을 비볐으나, 더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더 잘 보려고, 눈을 찌푸렸다. 상대도 나를 보고 총을 겨누고 있었다. 나도 총을 겨누었다. 뭐라고 외치기는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다시 눈을 비비고, 뺨을 때리니, 제대로 보이고 들렸다. 그래서 나는 ‘나는 적군이 아니에요. A소대 소속 앨런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도 그때서야 씨익- 웃으면서 총을 내렸다. 같이 악수를 했다. 상대는 똥을 누러 왔는데, 누가 쭈그려 앉아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슬쩍 웃었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해 주고 참호로 돌아왔다. 춥고 음습했지만 참을 만했다. 중대 배식차가 와서 나는 수프 그릇을 들고 다가섰다. 겨우 한 국자 분량만 줬다. 배고팠지만, 그냥 돌아왔다. 딱딱한 빵 덩어리는 어금니로 잘근잘근 씹어도 잘 씹히지 않았다. 그래서 수프에 푸욱 담가두었다. 손이 얼어서 숟가락질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잘 떠먹었다. 따뜻한 수프가 목을 넘어가자, 몸이 따뜻해졌다. 갑자기 눈앞에서 커다란 흙기둥이 튀었다. 적의 포격이었다. 나는 무릎위에 올려둔 수프 그릇을 내팽개치고 총을 전방으로 겨누었다. 적이 습격해왔다. 보병인지 희끄무레한 것들이 꼬물거렸다. 나는 냅다 총을 쐈다. ‘아악!’하는 소리와 함께 한명이 꼬꾸라졌고, 나머지는 갑자기 이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겁이 나서 총을 마구 쏘았다. 한명이 다시 팔을 잡고 쓰러졌고, 나머지는 아직도 무섭게 이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겁에 질려서 계속 총을 쏘았다. 하지만 옆에 쏟아진 수프와 빵이 너무 아까워서 곁눈질로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적이 10여분 동안 열심히 뛰다가 후퇴했고, 나는 땅에 쏟아진 수프를 아까워하면서 흙투성이가 된 빵을 먹었다. 그리고 아직 중대 배식차가 가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모포를 둘러쓰고 다시 다가갔다. 취사병이 왜 그러나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수프를 조금 더 달라고 했다. 취사병은 흔쾌히 수프를 더 부어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는 참호로 돌아와서 수프를 홀짝홀짝 마셨다. 최대한 온기가 남도록 입에서 우물거리면서 먹었다. 수프는 굉장히 따뜻해서, 긴 밤을 지내기 전의 저녁식사로 최고였다. 거의 맹물에 가까웠지만, 그거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어떤 날은 배식차가 오던 도중에 포탄에 쓰러져서, 수프는 구경도 못하는 날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는 옆 참호로 가서, 스미스 병장에게 배식 요령을 들었다. 스미스 병장이 말하기를, 배식차가 왔을 때 줄의 처음부분에 가면 별로 영양가가 없다는 얘기였다. 순전히 국물만 받기 때문에, 배만 더 고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럼 어떻게 하면 맛있는 건더기를 받을 수 있죠?’라고 물었더니, 스미스 병장은 씨익 웃으면서 중간부분의 끝 줄, 즉 줄의 끝부분에서 조금 앞쪽이라고 했다. 중간 쪽의 끝부분부터 냄비를 긁기 시작하는데, 줄의 중간 끝부분은 국물도 적당하고, 건더기도 만족할 만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말을 마치고 스미스 병장은 초콜릿을 꺼내서 나눠주었다. 나는 이 사람이 정말 좋다. 있지는 않지만, 내 둘째형 같다. 스미스 병장은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어린이는 일찍 자라면서 나를 내 참호로 내쫒았다. 나는 날씨가 추워서 얼은 초콜릿을 한 조각 먹고, 입에서 굴렸다. 나머지는 종이에 잘 싸서 옷의 앞주머니에 넣었다. 내일 수프를 먹을 때 같이 먹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날이 밝고, 아침이 왔다. 오늘 아침은 아주 좋았다. 스미스 병장의 말대로 줄의 중간 끝부분에 섰더니, 과연 국물과 건더기가 많았다. 내가 싫어하는 당근도 있었지만, 이제 이런 건더기만큼 기대되는 것도 없었다. 나는 참호로 돌아와서 오늘따라 특별하게 나온 딱딱한 베이컨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침으로 녹였다. 그리고 수프에 빵과 함께 담갔다. 수프에서 그나마 고기 맛이 많이 났다. 그리고 잠깐 생각 난 김에 초콜릿을 입에 물고, 수프를 먹었다. 초콜릿이 사르르 녹아서 꽤 맛있었다. 초콜릿이 반밖에 남지 않아서, 다시 소중히 싸서 앞주머니에 넣었다. 빵도 남김없이 먹었다. 스미스 병장 덕에 맛있는 아침을 먹었다. 하지만 점심은 굉장히 형편없었다. 도중에 오다가 적과 교전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총알구멍이 숭숭 난 빵과 치즈를 먹었다. 속이 많이 비어있어서 양도 형편없었다. 망할 적군들. 덕분에 수프를 먹지 못했다. 추웠다. 참호에 들어가서 투덜거리고 있는데, 어떤 하사관의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불을 피우라고 했나! 이등병!’ 어떤 이등병이 뭣도 모르고, 너무 추워서 불을 피웠나보다. 신병의 빠릿빠릿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실실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 첫눈이 오고 있었다. 다들 왜 이런 날씨에 눈이냐는 둥, 내일이면 또 눈 치우느라 죽어나겠다는 둥 투덜거렸지만, 나는 그저 좋았다. 단지 오늘은 분위기에 취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눈이 떠지지 않았다. 졸음이 몰려왔다. 잠을 잤다. 그리고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 빠졌다. 아무래도 정말 피곤했지 싶었다.

-끝-




오늘의 주절주절 - 어쨌든 반응을 살펴보려고 올린 낚시글이랄까나요. 여하튼 이 글도 쓴지 참 오래되었구나. 원츄. 정말 나의 귀르차니즘에는 내가 탄복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