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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장군

2007.01.15 08:15

양-_-군 조회 수: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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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 그 하늘 아래 드넓은 평원에는 초록 물결들이 산들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평온함이 영원할 듯한 이 평원은 사람들의 붉은 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도망쳐!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어서!"


"대장님! 기병들이 너무 많습니다! 으악!"


누더기에 가까운 옷을 입고 한 손에는 소총을 들고 있던 혁명군은 깃털 모자를 쓰고,
흉갑을 입고, 창이나 기병도로 무장한 남부군 소속의 기병들에게 무참히 도륙당하고 있었다.
평원의 여기저기서 사지가 절단되고 말발굽에 짓밟혀,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시체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다.
혁명군의 지휘관은 기병도로 후퇴할 곳을 가리키며 후퇴하라는 말을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니 녀석들이 돌아갈 산 속의 오두막도 이젠 없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아직 남부군의 지휘관은 금빛 흉갑을 입고, 새하얀 백마를 타고 엄청난 대도(大刀)를 휘두르며
후퇴하는 적의 목을 치고 있었다.
자신이 들고 있는 소총에 총알이 남아있던 병사들은 최후의 저항을 해봤지만, 총알은 야속하게도
기병들의 흉갑에 튕겨나갈 뿐이었다.


"이제 숲에 다 왔다! 좀만 더 가면 살 수 있다!"


혁명군의 지휘관은 말을 끝마치자마자 머리에 총탄을 맞고 붕 떠서는 바닥에 처박혔다.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숲에 다다른 병사들의 앞에는 미리 매복하고 있었던 소총수들의 총탄에
무참히 쓰러져갔다.
총탄을 맞고 쓰러진 병사들은 저 멀리, 자신들의 '오두막'이 있던 산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허무함을 맛보면서 쓸쓸히 죽어갔다.
이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혁명군의 한 병사가 들고 있던 소총을 내던지고 양손을 위로 들고 울부짖었다.


"항복! 항복!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그는 왼쪽 어깨에 총탄을 맞고 고꾸라졌지만, 울부짖음을 멈추지 않았다.


"전 살고 싶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의 목을 찔러오던 기병의 창이 허공에서 멈추었고, 여기저기서 살고자 하는 자들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항복! 저희는 살고 싶습니다!"


"살려주세요!"


"사, 살려주세요! 피! 피가 나고 있어요! 살려주세요!"


숲 속에서 이들의 외침을 들은 어느 한 장교가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상관에게 말했다.


"장군님 명령을."


젊은 장군은 아무 감정이 없는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


"즉시 사격을 중지하라."


"네, 사격 중지! 중지하라!"


총성은 점점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평원에서의 학살극은 막을 내렸다.


"항복한 혁명군들에게서 모든 무기를 회수하라. 다친 사람이 있다면 응급처치를 해주도록."


"네, 알겠습니다."


장교든, 병사든,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이, 젊은 장군은 그런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서
이제는 조용하기만 한 평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은 어느새 붉은빛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젊은 장군이 보고 있던 평원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붉게 물들여져 있었다.
거무튀튀한 바위들처럼 평원 이곳저곳에 자리 잡은 시체들을 보며 젊은 장군은 생각에 잠겼다.


"카이스 형님?"


옆을 보니, 기병대를 이끌었던 지휘관이 서 있었다.


"난 타이너 중령에게 기병대의 지휘를 맡긴 걸로 기억하는데?"


"전 그냥 선봉으로 자원해서 나선 것뿐입니다.
지금 타이너 중령은 후속대로 도착하여, 전투의 뒷정리 중입니다."


"근데 뭐냐? 나한테 할말이라도 있냐?"


카이스는 귀찮다는 듯이 나무에 등을 기댔다.
피곤한 듯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는 그에게서 아까 같은 딱딱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루 여섯 시간을 꼬박꼬박 주무시면서도 피곤하신가요?"


"뭐 그렇지, 한 시간 자고 있으면 깨우고, 또 한 시간 자면 또 깨우고 뭐 그렇게 여섯 시간을 자서 너무 편하다."


"비꼬시는 건가요?"


동생의 물음에 카이스는 깍지 낀 양손을 뒤통수에 대고서, 불만을 쏟아냈다.


"내가 부하들을 잘못 둬서 그래. 시키는 대로 하고 있지, 왜 그렇게 자는 사람을 깨워 대는지 몰라.
특히 부관이란 사람이 말이야, 자기가 모시는 장군님한테 큰소리치고 일일이 걸고 넘어지고,
기본이 안 돼 있어, 기본이."


"자신이 어떤지, 반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군요."


"시린 소령?"


시린이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이쿠, 언제 오셨수? 부관 나으리?"


"지금 왔습니다."


시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카이스의 뺨을 꼬집었다.


"아아, 놔, 이거 놔! 부관이 이래도 되는 거야?!"


"닥쳐요. 카이트 대령님은 이런 장군님을 닮으면 안 됩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카이스의 뺨을 꼬집는 시린의 손에 더욱더 힘이 들어갔다.


"아아, 제발 놔줘. 아퍼."


"쓸데없이 또 혼자 돌아다니시고, 이제 원대 복귀 하시지요."


"알았으니까, 좀 놔줘, 아 좀, 놔라, 아아."


"카이트 대령님도 어서 가시죠."


"그러죠."


"이거 놔, 안 놓으면 즉결처분이야, 놔, 놓으라고, 아아, 놔."


.
.
.
.
.


"아프다고, 이제 좀 놔, 놓으라고...응?"


눈을 뜨니, 어제 보았던 자매 중 동생이 내 뺨을 꼬집고 있었다.


"눈 떴다."


"놔."


어젯밤엔 무척이나 아파하며 자신의 언니에게 기대던 아이가 오늘 아침엔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뭐야? 안 아프냐?"


"몰라요."


"모르기는, 뭐 얼굴을 보아하니 아직도 열이 있는 거 같네."


아이는 내가 덮어주었던 코트와 담요를 꼭 붙들고 있었다.


"니 언니는 어디 갔냐?"


"아래층에요."


"왜?"


"몰라요."


그제야 난 내 가방을 아래층에 놓고 왔다는 걸 기억했다.
계단을 쿵쾅쿵쾅 거리며 내려갔을 땐 이미 늦어 있었다.
가방은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고, 가방 안의 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범인은 미약하지만 불꽃이 살아있는 벽난로에서 육포를 굽고 있었다.
천으로 감싸놓았던 장총만이 입이 벌려진 가방 뒤에 있어서 화를 면한 듯했다.


"저, 저기요."


"어머, 일어났어요?"


녀석은 능청스럽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뭐하자는 거냐?"


"하룻밤 재워 줬잖아요?"


"남의 가방을 뒤졌으면, 뒷정리는 똑바로 해야지. 자기 꺼 아니라고 이렇게 어지럽히면 안 되지."


녀석은 내 말을 무시하더니, 구워진 육포를 종이 봉지에 넣고, 내 수통을 챙기더니 계단으로 향했다.
난 그 뒤를 따라가서는 녀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가씨, 아저씨한테 한번 혼나볼래요?"


"비켜요. 리쎄한테 아침식사 줘야 한단 말이에요."


"동생 이름이 리쎄인가 보네? 아침 식사는 내가 대신 전해주지. 넌 내 가방이나 정리해주세요."


"싫어요."


"남의 가방을 허락 없이 뒤졌으면 그 정도는 해줘야지."


"싫어요."


"아가씨, 말 안 들으면 나 화낼 거 에요. 그러니까 얼른 가방이나 정리해주세요."


난 녀석이 들고 있는 종이 봉지와 수통을 낚아 챘다.


"앗!"


한 손으로 종이 봉지와 수통을 높게 들고 녀석을 약 올렸다.


"줘, 줘요!"


"내가 전해줄 테니까 넌 가방이나 정리해, 근데 넌 이름이 뭐냐?"


"헬렌, 헬렌 플로네."


대답은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리쎄, 리쎄 플로네. 열 살, 언니는 열여섯 살."


리쎄는 자기 키에 맞지도 않는 내 코트를 입고, 콧물을 흘리고 질질 흘리면서 내 앞에 서 있었다.


"착한 어린이, 상으로 육포와 물을 주겠어요. 먼저 코 좀 닦고."


난 손수건을 꺼내 리쎄의 코를 닦아 주었다.


"리쎄, 킁."


"킁."


"리쎄, 어서 들어가. 왜 여기 나와 있는 거야?"


리쎄는 언니의 말을 무시하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야?"


"어제 말했잖아."


"못 들었어."


"릭, 릭 라인브링크. 릭 아저씨라고 불러."


"아저씨는 몇 살이야?"


"스물네 살."


"에? 말도 안돼."


헬렌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무슨 스물네 살이야, 서른 살은 되어 보이는데, 사기 치지 마."


"그래, 넌 얼굴이고 몸이고 죄다 어려보여서 좋겠다. 내려가서 내 가방이나 정리하세요.
리쎄, 우리는 육포나 먹자."


리쎄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응, 근데 나 언니랑 먹을래."


"언니는 가방 정리하고 곧 올라올 거니까, 우리 먼저 먹고 있자."


"왜 아저씨 가방을 언니가 정리 해야되?"


"응, 언니가 아저씨 가방을 막 뒤져서 안에 들어있던 거 여기저기 막 버렸거든."


"에, 그랬어? 그럼 언니, 정리하고 올라와. 언니 몫 남겨둘게."


"알았어."


헬렌은 동생의 말에 풀이 죽은 대답만 남긴 채,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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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굉장한 연재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