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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L.S. 특무강화중장갑보병중대 -

2008.07.23 12:23

Earthy 조회 수:968

extra_vars1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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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입대 후에는 면도기로 한 일이라고는 주변에 삐져나오는 잔 수염을 정리한 것 뿐. 하지만 오늘은 많이 달랐다. 면도 크림을 턱과 인중 부근에 잔뜩 바르고는 죽죽 밀어버렸다. 이제까지 기르고 있던 수염을 전부 밀어버리는 것.
 왠지 나약해 보이는 얼굴이라는 평가에 수염을 기르자고 결심한 게 1년 정도 전. 그 이후로는 계속 기르며 형태를 다듬으니 이얼이 보기에는 나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그것에 전면으로 반대를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 때문에 오늘은 무조건 깎아야 한다. 안 깎으면 절대 허가를 안 해줄 거라니까. 게다가 자신의 생활도 많이 바뀌고 해서 자신도 무언가를 바꿔보고 싶다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턱을 따라 죽 내려가자 꽤 길게 자라있던 수염이 그냥 삭 잘려나간다. 수염이 길면 자르는 데에도 어렵다고 하던데, 그런 수준까지 길지는 않았던 모양. 약간 남아있는 것도 조심스럽게 서너 번 더 밀자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다. 애초에 수염이나 털이 별로 없는 체질이기도 해서 개수가 적고 성기게 나 있던 것도 깨끗하게 잘리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인중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세수가지 마무리하고 거울을 보니, 조금 다부져지긴 했지만 여전히 고등학교 때의 앳된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군 생활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좀 어울리지 않는 얼굴. 이런 느낌이라는 걸 보여주면 다음에는 깎으라는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가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수염 깎기를 포함해서 아침 세면은 마무리. 그대로 식당으로 가다가 바구니를 든 채 세면장으로 향하는 지휘부의 오퍼레이터 두 명-모두 여성-을 만났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두 사람이 이얼을 붙잡았다.
 “설마 이얼 군?”
 “예, 그런데요?”
 “꺄아―!”
 비명이 아니라 환호성. 대체 왜 이러는가 싶어서 물어보지도 못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으니 갈색 단발에 아담한 체구의 오퍼레이터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왜 지금까지 수염을 기르고 다녔던 거야! 아깝잖아!”
 “아, 아까워요?”
 그 뒤를 이은 것은 붉은 색의 길고 구불구불 웨이브가 져있는 머리를 가지고 있는 키가 크고 어른스러운 오퍼레이터였다.
 “앞으로 곡 그러고 다녀. 진짜 이러고 있으니까 괜찮네. 헐리웃 영화에 나와도 될 것 같지 않아?”
 “응, 응. 동양적인 느낌에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액션 배우 같은 느낌이야. 진짜 괜찮다―”
 학교 다닐 때에도 꽤 잘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굉장한 반응은 아니었다. 얼굴이 변한 건 아닐 텐데, 대체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쑥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막 수염을 깎은 턱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미안, 일도 있을 텐데 우리가 잡고 있으면 안 되겠지?”라면서 먼저 브레이크를 걸어준 붉은 머리 오퍼레이터 덕분에 그 난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먼저 식사 중이던 리세와 지에가 동시에 난리. “거 봐, 내가 그랬잖아. 이 녀석 수염 깎으면 진짜 괜찮을 거라고.”라는 리세의 말에 “과연…….”하며 감탄하는 지에. 지나가던 같은 부대 사람들―특히 여성들―이 몇 번씩 돌아보면서 지나갔다. 대체 수염 하나 깎은 게 뭐가 대수라고 이러는 걸가, 싶은 찰나에 지에의 설명이 따라왔다.
 “입대 전에 찍은 사진보다도 훨씬 나은 거 같지 않아? 인상이 바뀌었다고 할까, 여하튼 단순히 매끈하기만 하던 얼굴보다 지금이 훨씬 나은 것 같아.”
 “그, 그래요? 별로 바뀐 건 없는 것 같은데요?”
 “흠, 뭐랄까……, 일단 눈빛이 바뀌었어. 예전에 사진을 보면 엄청 순한 눈빛이었는데 지금은 좀 다부져졌어. 거기에다가 턱에 예전에는 없던 각 같은 게 살짝 드러나니까 훨씬 남자다워 보이고. 게다가 어깨 골격이 사진보다는 훨씬 두드러지는 게, 얼굴이 작아보이게 만들기도 하네. 전반적으로 많이 업그레이드가 된 느낌인 걸?”
 듣고 있는 당사자로서는 창피할 정도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 흐름은 식사를 마치고서도 또 이어졌다. 내일 있을 첫 외박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호출이 와 인사과로 가보니, 거기에 있던 일병이 또 찬사를 덧붙였다.
 “이야, 한 하사님 수염 깎으시니까 사람이 완전히 달라 보이는데요? 원래 키도 크시고 태가 살아있어서 꽤 멋있어보였는데, 얼굴까지 깔끔해지니까 진짜 모델을 해도 될 것 같네요. 그냥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일류 패션쇼에만 서는 전문 모델 같은 느낌? 하여튼 간에, 진짜 멋있어요. 외박 나가서 돌아다니시다가 길거리 헌팅이라도 당하시는 거 아닌가, 몰라요.”
 “에이, 설마.”
 “아뇨, 진짜로요. 엄한 사람에게 안 붙잡히게 조심하세요. 그리고 다른 주의 사항도 말씀드리자면―”
 결국 이얼을 부른 이유는 그런 주의 사항을 알려주고 외박증을 미리 건네주기 위해서였다. 명색이 하사이니 간부라서 그런 게 의미가 없긴 하지만, 첫 외박이라는 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법이라 인사 담당관이 한번 불러서 주의 정도는 줘야 된다고 말한 탓이었다.
 그렇게 몇 가지에 대해 간단하게 듣고 나오니 오전 일과도 반 넘게 지나간 상태. 오늘은 장갑이 죄다 정비부에 입고되어 있어서 훈련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그런지 전투원들에게는 영내 휴식 명령이 내려와 있었다. 영내라는 건 각자의 방이 있는 막사까지 포함하는 범위였기 때문에 방에서 쉬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예 전투복도 벗고는 드러누워 자는 사람도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연구를 위한 부대라서, 긴급 출동 같은 거라고는 전혀 없다보니 아무래도 모두 여유가 넘쳤다.
 이얼은 오전을 적당히 보내고, 오후에는 지에와 같이 나와서 체력단련을 실시했다. 한참 역기를 들고 있는데, 함께 입구로 들어오는 엘런과 애니가 보였다. 그리고 순간, 역기를 놓쳐버릴 뻔 하다가 겨우 원래 자리에 걸어놓을 수 있었다.
 참으로 새삼스럽게도.
 전투복이 아니라 몸에 꽤 달라붙는 스타일의 운동복을 입고 있으니, 아니타의 그 말도 안 되는 몸매―특히 가슴―가 매우 확연하게 드러나 있는 것.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에서 힘이 빠져버렸다. 그런 자신에게 어이가 없어서 실없이 웃고 있자니 당장 지에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 똑바로 안 해?”
 얼른 역기를 잡고는 지정 횟수를 마무리. 그런 다음에야 지에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이런 말 하면 참 속물스러워 보일지는 모르겠는데― 솔직히 저건 반칙이잖아요, 안 그래요?”
 이얼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이 움직이다가, 애니에게서 멈춘 채 약 3초. 지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진짜 반칙이지. 무의미하게 큰 지방 덩어리라고 생각하는 데도, 괜히 부럽단 말야. 체형이라도 좀 굵으면 가슴이 단순히 큰 게 아니라 살이 쪄서 그런 거겠지만, 체형은 또 엄청 슬림하고. 진짜 반칙이야, 반칙.”
 “그렇죠?”
 그러거나 말거나 서로 필요한 운동으로 하고 마지막에 같이 트랙을 뛰는 걸로 마무리. 이후에는 저녁 시간까지 그냥 적당히 쉬면서 보냈다.
 “그건 그렇고, 수염 안 깎으면 외박 안 보내줄 거라 그랬더니 바로 깎아버리네? 그렇게나 나가고 싶었던 거야, 아니면 애초에 수염에 욕심이 없었던 거야?”
 수염을 깎으라고 압박을 준 것은 바로 지에. 엘런과 애니의 동의를 받아, 안 깎으면 외박을 잘라버리겠다고 협박을 했다. 이얼로서도 그것 때문에 자른 건지, 아니면 원래 자르고 싶었는데 그걸 핑계로 그냥 확 밀어버린 건지 잘 몰랐기 때문에 노코멘트. 적당히 웃어보이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 웃음에 대한 지에의 반응은.
 “어이, 그것도 반칙이라고.”
 아쉽게도, 이얼은 지에의 그 말을 듣지 못 했다.


 



 부대 정문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 정류장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노선이 있는 건 아니고 부대에서 외출하는 사람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있을 뿐이었다. 첫 운행 시간은 오전 7시 30분.
 하지만 현재 시간은 오전 8시 정각. 아직까지 버스는 오지 않았다. 게다가,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혼자 벤치에 앉아있던 이얼은 몇 번씩이나 부대 안을 흘끔거리며 버스가 오는지 확인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네, 여기 오는 거 아니었나?”
 틀림없이 인사과에서는 여기에서 버스를 타는 게 맞다고 했다. 그리고 부대 게시판에서 버스 운행 시간도 확인했다. 아침에 눈이 일찍 떠져서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바로 나가자고 생각하고는 곧장 나온 시간이 7시 40분. 오전 10시까지는 20분에 한대 씩 운행되니 벌써 지나가고도 남은 시간이었지만 아직 전혀 소식이 없었다. 게다가 부대에서 나와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무슨 일 있나?”
 “당연하니. 오늘은 8시 20분에 첫차 나간다고 게시판에 붙어있었잖아.”
 “예? 어?”
 처음의 “예?”는 버스가 늦게 온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다음의 “어?”는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얼른 뒤를 돌아보니 생글생글 웃고 있는 지에의 얼굴이 보였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청바지와, 블라우스에 가까운 형태인 라운드 넥 티셔츠 차림. 머리카락도 띠를 이용해 위로 올려 이마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여기엔 무슨 일이에요?”
 “나도 외박 나가. 큰아버지 댁에 가서 인도에서 붙인 우편물 확인해야지.”
 “아, 그러고 보니―”
 “그리고, 나가는 김에 너 안내도 해주고. 나름 상하이에 오래 살았으니 안내역으로도 괜찮을 거야.”
 지에는 이 근처 출신이긴 하지만 상하이가 아니라 시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문을 바로 입 밖에 내자 지에는 간단하게 답변했다.
 “그 때 이후로 친척집에서 지냈다고 했잖아. 그게 상하이 살던 큰아버지 댁이었어.”
 “아아.”
 그러는 동안 사람들이 슬슬 보인다 싶더니, 곧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얼른 가벼운 짐이 들어있는 가방을 둘러메고 차에 올라탄 이얼과 지에. 자리에 앉았지만 예정 시간보다 좀 빨리 나온 건지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다.
 “하는 김에, 오늘 잠도 큰아버지 댁에서 잘 거니까 같이 가자. 숙소 예약해두거나 하진 않았지?”
 “그렇긴 하지만……, 실례가 되진 않을까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네요. 다들 좋은 분이니까 안심해. 그건 그렇고, 어디 가고 싶은 데라도 있어?”
 “아뇨. 상하이는 전혀 모르는 곳이라……, 그냥 발길 가는 대로 가볼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그래? 그럼 내가 적당히 관광 명소로만 안내해줘도 충분하겠네. 어디부터 갈까나…….”
 정확히 8시 20분이 되자 버스는 출발했다. 그다지 많은 사람이 타지는 않아서 여기저기가 비어있는 채로, 왕복 2차선의 도로를 달려, 상하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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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1권 분량 끝입니다.
이거 정리 좀 많이 해야 되서, 당분간 연재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S.S. 편으로 두편 정도 생각하고 있는 게 있으니 그건 올리게 되겠네요.
하나는 보시다시피, 상하이에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가 더 있겠네요.
정리가 끝나면 일단 2권분량 쓰긴 할 텐데 올리게 될 지는 조금 불분명.
솔직히 말해 출판사에 투척해버릴 거니까요.
잘 되면 거기서 연재 끝. 잘 안 되면 일단 계속 쓰긴 할 테니 연재는 지속.
어떻게 될 지 진짜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이걸로 절대 끝은 아니니 잊지 말아주셔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