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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L.S. 특무강화중장갑보병중대 -

2008.07.23 12:22

Earthy 조회 수:1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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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를 잡는 동안 무려 세 번의 포격이 더 진행되었다. 자세를 잡는 게 오래 걸린 게 아니라, 적이 작정을 하고는 표격을 일제히 퍼부어댄 것. 덕분에 그들의 모습은 지금 완벽하게 드러나 있었다. 바로 지금이 기회.
 [저격 다시 가능해?!]
 지휘부도 급박한 지,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다급하게 말한 적이 없던 리세가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반대로 오히려 이얼은 스스로 몸이 차갑다고 느낄 만큼 완벽하게 식어있는 상태. 중얼거리는 거나 마찬가지일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로 갑니다.”
 그 순간, 조준을 마무리했다.
 지에는 적의 연속된 포격이 진행되는 동안 몸을 최대한 낮추고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어차피 적은 4대라서 포격에는 리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네 발이 떨어지고 잠시 공백, 다시 네 발이 떨어지고 공백이 생기길 반복하는 중. 그 공백 순간 움직이면서 튀어나가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었다. 순간 포격이 멈추더니 상황을 확인하려고 고개를 내민 순간, 이미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모두 거의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상대가 있던 방향을 향해 뛰어갔다.
 단, 2소대는 왼쪽으로 틀더니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의 뒤를 치겠다는 말만 남기고 서둘러 이동. 3소대는 바로 직진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는 동안, 이얼의 손가락은 방아쇠를 천천히 당기고 있었다.
 순간, 모든 정신을 마지막에 보았던 상대의 모습, 그 중 한 곳에 집중했다.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적어도 아주 약간 보이는 적의 그 위화감이 드는 무언가는 이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오직 그것만을 믿을 뿐. 이얼은 그 ‘움직이지 마라.’라는 말만을 계속 반복했다. 마치 예전에, 사막 가운데에서 서로 엎드려서 상대를 조준하고 있을 때 ‘움직여라, 움직여라, 움직여라…….’하고 중얼거리던 때의 그 기분. 물론 그 곳에서는 서로가 움직이는 걸 기다리는 동안 하루가 꼬박 지나갔지만 반대로 이 곳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방아쇠를 당겨야만 했다.
 하지만, 반동을 생각하면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사격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까지 조인 오른쪽 집게손가락을, 조금만 더 누르면 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전투원들은 모두 적이 있던 장소를 향해 급히 돌진. 도착까지 1분도 채 안 남은 상황. 적은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확인은 불가능. 그런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당겨야 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이얼의 손가락을 굳게 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크게 실패를 하면서, 반동에 대해 적응을 할 수 있을 지 없을 지 자신이 없어져버린 것. 하지만 쏘긴 해야 하는 상황. 대체 어떻게 해야 되지, 대체 어떻게 해야 되지.
 방아쇠를 당기면, 거기에서 전달되는 전자 신호가 백팩 쪽에 달려있는 진짜 방아쇠를 당기게 한다. 그러면 총신 끝에 있는 공이가 탄의 뒤를 때리고 그 충격으로 탄 뒤의 화약이 터지면서 탄두가 발사되는 게, 총이라면 당연한 것. 그 과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매우 간단한 동작인 방아쇠 당기기는 사실 별 생각 없이 그냥 손가락을 쿡 조이면 1초도 안 되어 탄이 나가고 끝. 그 상황에서 조준을 유지하기 위해 반동을 줄이는 등의 행동이 더 필요하기는 하지만 가장 간단하게 알고리즘으로 보자면 저걸로 끝. 그 간단한 동작이 안 되는 상황이니 이얼로서도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 때, 통신으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지에였다.
 [너 쏘는 대로 나 바로 토우 날릴 거야. 그러니까 빨리 쏴.]
 “저, 저라고 쏘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고요.”
 [에휴……,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아까 하나 놓쳤다고 그래? 조금만 더 있으면 전부 거기 도착하게 생겼다고. 일단 그냥 당겨. 안 되겠으면 조준 포기하고 눈 감고 그냥 당겨. 일단 쏴보면 그만이지 뭘 더 고민 하냐?]
 “……, 참 단순하게 말씀하시네요.”
 [그 이상 뭐 있냐? 내가 단순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황 자체가 그렇게나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것일 뿐이야. 얼른 쏴버려. 안 되면 또 쏘고 또 쏴. 그러면 되잖아.]
 생각해보니, 자신은 지금 탄을 11발이나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 6발은 탄창을 갈아야 되는, 상자에 들어있는 탄이지만 5발은 아니었다. 그냥 당장 당기면 저절로 재장전 되고 방아쇠를 당기면 또 나간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자신이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지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쏘고, 쏘고, 쏘고, 쏘고, 쏘면 되는 거지 뭐. 그래 그런 거야. 그냥 당겨버리자, 응, 그러자, 그래야지―!”
 지에의 말처럼 눈을 감거나 하지는 않았지만―오히려 눈은 있는 대로 뜨고 조준점에 자신의 몸을 정확하게 맞췄다. 조준점은 아까 상대의 모습이 나타났을 때 가장 선명하던 바로 그 곳. 거기에 맞춰서 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크읏…….”
 영화 같은 거 보면 쏘면서 소리도 버럭버럭 질러대지만, 실제로 정밀 사격을 할 때 그딴 짓을 했다가는 조준이고 뭐고 다 망가져서 탄만 소모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이를 악물거나 하는 식으로 힘을 주면, 몸이 경직돼서 정확한 조준이 불가능해진다. 방법은 단 하나, 호흡을 중간 정도에서 멈추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는 것 뿐. 그러기 위해서 오히려 손가락을 방아쇠에서 일단 떨어뜨린 다음 천천히 다시 쥐었다.
 원래 이얼의 특기는 철저하게 속사. 하지만 그 속사는 첫 사격이 이루어진 다음, 그걸 수정하는 과정이 빠른 거지 목표가 보인다고 무조건 당겨버리는 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첫 번째 사격은 다른 사람 이상으로 신중할 때가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 천천히, 천천히. 이미 호흡을 멈춘 상태에서 손가락을 의식조차 하지 못할 만큼 천천히 당겼다.
 그리고 끝에 다다랐다.
 방아쇠 끝의 전기신호는 찰나의 순간에 이미 총신의 공이를 움직였다. 36mm의 탄환 뒤를 공이가 정확하게 때리자 작약이 폭발. 탄을 탄피와 탄두로 분리했다. 탄두는 6번 회전하는 강선을 따라 움직여 회전을 얻으며 총신을 이탈. 그 충격으로 총신이 들리는 걸 이얼이 온 힘을 다해 막은 덕분에 조준선에서 흐트러짐 없이 바로 나왔다.
 그대로 허공을 가르는 동안 살짝 위로 떴다가 중력을 받아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횡방향 회전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기의 온도와 습도, 그리고 풍향을 무시하고 날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다. 지금처럼 날아가는 탄 주위로 빗방울들이 흩어지며 뚜렷한 궤적을 남길 정도라면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을 전자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장갑에는 설치되어있었다. 대기 중의 습도와 온도, 풍향을 실시간으로 전송 받아, 조준점을 자동으로 맞춰주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완벽하지는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조준점 정 가운데에 맞추고 사격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실 거기에 맞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단지, 그 근처에 맞을 확률은 매우 높아지기 때문에 편리한 기능임에는 틀림없었다.
 탄은 서서히 밑으로 떨어지는 완만한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목표 지점을 향해 날아갔다. 구경 36mm의 탄이 고속으로 횡방향 회전을 하며 주변에 작은 물안개를 만들면서, 5km의 거리를 초속 1200m의 속도로 날아가 5초 만에 틀어박힌다.
 탄은 탱크의 포신 쪽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정확하게 포구를 살짝 옆으로 터치. 그대로 긁으며 포신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처음에 포신 주둥이에 부딪힌 탓에 균형을 잃으며 궤도가 틀어지는 바람에 포신 속에서 마구 튀며 내부까지 돌입.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전 중이던 포탄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는 내부에서 몇 번이나 튀었다. 탄의 앞부분이 살짝 파이고 균형이 뒤로 잡혀있는 형태의 탄환은 이렇게 관통이나 피탄 이후에 방향성이 매우 불규칙적이 되는 것이다.
 탄이 유폭을 일으키진 않았지만 마구 튀어 다니는 탄에 영향을 받아 내부를 마구 어지럽히며 탱크의 전자 기기들을 박살냈다. 그로 인해 결국, 광학미채도 사라지고 동시에 다른 탱크와 연동해서 기동 중이던 다른 장치들도 모두 셧 오프 되었다.
 [나이스 샷!]
 억지로 어깨를 내리며 바로 2탄을 준비하는 이얼의 귀에, 지에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눈앞을 보니, 한대는 완전히 모습이 드러났고 다른 탱크들도 붉은색으로 모양 표시되고 있었다. 조기 경보기의 열감지 카메라에 갑자기 모습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피격당한 전차가 움직였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부가 엉망이 되었음에도 병력이 살아있는 건지 운행을 하고 있었던 것. 내부에서 36mm탄이 수차례 튕기며 엉망을 만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살아남다니. 물론 내부에서 탄이 마구 튀며 피해를 키웠다는 걸 알 수 없는 이얼로서는 단지 도망가기 전에 잡아야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래서, 다음 목표는 전차의 캐터필러.
 “그래, 어디 끝까지 해보자고.”
 그 때부터, 믿을 수 없는 저격 연사가 시작되었다. 엄청난 반동을 힘과 유연성으로 억누르며 2, 3초에 한 번씩 남은 네발을 각 탱크의 캐터필러에 박아버린 것. 첫 번째 탄이 이미 피격당해 모습이 완전히 드러난 전차의 캐터필러에 박히며 그것을 끊어 이동을 불가능하게 만들 때에는 이미 다른 탄 두 발이 허공을 날고 있을 정도의 속사였다.
 [이거나 받아라!]
 거기에 더해서, 지에의 토우 여섯 발이 일제히 발사관을 떠났다. 토우는 어디까지나 유선 유도 미사일. 그래서 하나를 발사한 다음에 목표에 맞춰 조작을 해주어야 했다. 원래 단발 사격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여섯 발을 동시에 발사해서 전부 목표물에 맞춰 조작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좋을 정도. 하지만 지에는 단순히 여섯 발을 발사해서 일제히 조작하는 정도가 아니라, 각각을 다른 위치에 맞춰 넣는 식의 조작을 순식간에 해냈다. 거기에는 당연히 전자 기기의 힘을 빌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순간적으로 손과 눈을 이용해 시야 범위 전체를 완전히 커버하고 있었다. 목표는 처음에 피탄 당한 탱크를 제외한 나머지 세 대의 정면 장갑 부분과 캐터필러. 하지만 참 황당하게도 토우가 날아간 직후, 캐터필러는 전부 한 쪽이 완전히 끊어져버렸다.
 [야, 너무 하잖아!]
 “어때요, 그냥 적당히 해요.”
 하지만, 아무래도 적당히는 안 되는 것 같았다. 캐터필러는 끊어졌지만 공격은 가능하다는 듯 포탑이 빙글 선회하기 시작한 것. 토우가 포탑을 옆에서 때렸지만 반응 장갑인지 폭발만 더 크게 일어나고 전혀 손상을 입지는 않았다. 차라리 저격으로 포탑 옆을 날리는 게 나았을 상황이었다. 반응 장갑은 운동에너지로 타격을 가하는 탄-탄두에 폭발물이 없이 순수하게 운동에너지를 통해 관통 등의 피해를 입히는 탄에는 취약하기 때문이었다. 36mm의 텅스텐 합금탄이라면 무조건 뚫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하지만 토우 같은 경우에는 폭발 피해를 입히기 전에, 반응 장갑이 폭발하면서 튕겨 나오는 전면 장갑에 의해 위력을 상실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젠장!]
 지에는 짧게 가벼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대로라면 적의 이동을 막아놓고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토우를 사용하기 위해 잠시 소대원 모두가 멈춰서는 바람에 위치가 애매해진 탓이었다. 전차탄에 맞을 확률은 높지만 그걸 막기 위해 직접 돌격하기에는 먼 거리. 차라리 포격 순간에 맞춰 몸을 날리는 게 더 좋을 지도 몰랐다.
 [타이밍 맞춰서 잘 피해! 미리 피했다가 읽히면 끝장이다!]
 [예!]
 엘런의 지시에 안 그래도 긴장하고 있던 몸을 한껏 더 수그리는 애니와 지에.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통신 모드는 외부회선.
 [너희는 포위되었다! 지금 즉시 모든 행동을 멈추고 항복하라!]
 2소대 조장의 목소리. 통신장비를 통해서 들리는 게 아니라 외부 회선을 통해서 직접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안 통하는 것 같았다. 상대가 한 행동이라고는 포탑 방향을 반대쪽으로 돌린 것 뿐. 이미 가까이 접근해있던 2소대는 적에게 항복 의사가 없는 걸 확인하자마자 튀어나갔다. 그리고는 탱크 위로 뛰어올라가 직접 입구를 열려고 했다. 탱크 위에도 철판이 두껍게 만들어져있긴 하지만, 측면에 설치된 반응 장갑이나 강화 장갑과는 다르게 아군이 사용하는 소총탄에도 뚫릴 정도였다. 물론 그 총탄이 구경 12.7mm를 자랑하는  .50BMG이긴 했지만.
 그걸로 입구의 뚜껑 연결부에 마구 갈겨 완전히 부숴버리고는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 그리고 안에 소총을 조준한 상태로 들여다보는데.
 [어? 뭐야 이게?]
 안에 있는 녀석들을 확실하게 박살내버리겠다고 작정을 하고 있던, 몇 차례나 습격을 당했던 하사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뿐만이 아니라, 탱크 내부를 살펴보던 다른 모두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멍하니 내부만 들여다볼 뿐. 잠시 후, 갑자기 그 안에서 연기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모두 황급히 몸을 피했다.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어떻게 된 거죠?]
 상황 파악이 안 된 지휘부에서 긴급하게 질문을 해왔다. 하지만 2소대 조장은 대답 대신 “복귀 후 보고 하겠음. 우선 상황 종료 되었으니 현 상황 해제 바람.”이라는 짧고 핵심만 있는 말만 했다. 하지만 그것만 듣고 상황을 종료 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좋아, 상황 종료!]
 라고, 중대장이 선언해버렸다. 이게 대체 뭔 짓이냐고 리세가 노려보자 “탱크에서 연기나면 끝난 거 아냐. 평가관들도 있는데 상황 길게 끌면 안 된다고.”라는 대답과 함께 얼른 텐트를 나가버렸다. 허겁지겁 우산을 들고 따라나서는 행정병만 불쌍할 따름.
 어쨌든 상황은 어이없게 끝났고, 일단 모두 지휘부가 있는 곳으로 복귀했다.


 



 “그러니까, 결국 얻어낼 만 한 건 없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5일 후. 원래는 오늘 훈련 병력의 철수가 마무리되는 날이어야 하지만, 이번에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오히려 상하이에 있던 연구원들마저 인도로 날아와 있었다. 부대는 원래의 숙영 장소로 돌아온 상태였지만, 텐트 수가 거의 두 배로 늘어난 건 그 때문이었다.
 그 중에 가장 큰 텐트 안에 있는 건, 이번에 수거한 탱크 중에 두 대. 다른 두 대는 이미 수송기를 통해 미국으로 날아갔고 남은 두 대를 한창 뜯어보는 중이었다.
 “대체 뭔 수를 쓴 거지? 그 재밍을 뚫고 조작한 건가? 아니면 비상 상황에는 저절로 싹 태워버리도록 되어있었던 건가?”
 “아무래도 전자는 가능성이 적으니, 후자가 맞겠죠.”
 “역시 그런가……. 무슨 인공지능을 사람 수준까지 끌어 올린 거지. 대단하네.”
 닥터 카인드의 말처럼, 탱크는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부에 조종석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조작하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전자 제품들뿐이었던 것. 게다가 그 전자 제품들은 2소대가 급습하여 뚜껑을 여는 순간 완전히 타버려서 어떤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남쪽의 물건을 획득하면 언제나 그 기술을 파헤쳐서 써먹는 패턴의 반복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포획하고도 전혀 사용할 게 없다는 게 괜히 짜증이 났다.
 무엇보다도 열기라던가, 다른 흔적들까지 숨길 수 있는 그 기술은 정말 얻고 싶었지만, 이미 수차례나 눈앞에서 놓쳤고 이번에도 또 놓쳤다. 그동안의 경험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있었지만 목표였던 기술 획득에는 또 실패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닥터 카인드보다도 연구소 본부에 있는 인원들이 훨씬 더 아까워하고 있을 것이다.
 “단순히 불을 붙인 게 아니라 무슨 화학 작용을 사용한 거겠지? 안 그러고서는 아예 흔적도 없이 타버릴 리가 없을 테니.”
 “아니면 엄청난 고온을 이용했을 수도 있겠죠. 물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가능성은 희박한 게 아니라 아예 없다고. 경보기에서 찍을 열 영상 봤잖아. 온도는 거의 올라가지도 않았어. 태웠다기보다는 녹였다, 라거나 변화시켰다, 라는 쪽이 옳겠지.”
 탱크는 외부장갑과 포탄 등 북쪽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부 타버렸다. 반응 장갑 같은 것도 이미 사용한 지 수십 년이 지났고, 장갑에 쓰인 금속은 아군 전투원이 사용하고 있는 장갑보다도 약한 일반 합금. 그야말로 단순히 폐기물을 주워온 것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다.
 “참, 그건 확보했어?”
 “어떤 거 말입니까?”
 “2소대 증언. 그 순간을 본 건 그 사람들뿐이잖아.”
 “확보는 했습니다만……, 실제로 쓸 만한 증언은 없습니다. 그냥 비어있는 걸 봤고, 갑자기 연기가 흘러나왔다는 게 전부이니까요. 다른 전투원들 역시 그다지 도움이 되는 증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갑자기 탱크 위로 기어 올라가는 닥터 카인드. 이미 들쑤실 때로 들쑤셔서 볼만한 건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내부를 확인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건 호기심이 지나치게 많은 성격 탓이었다.
 “진짜 아무 것도 없네. 이건 좀 너무하는데?”
 “검은 재는 있었지만 그건 전부 본부에서 분석한다면서 부분 별로 나누어 가져갔습니다. 여기 있는 건 그야말로 빈껍데기뿐이라 연구할 게 없다고 난리로군요.”
 “뭐, 어차피 우리는 이걸 보러 온 게 아니니까 말야.”
 훌쩍 뛰어내린 닥터 카인드가 갑자기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자, 우리도 본업을 하러 가야지.”하며 텐트를 나섰다.
 사실 닥터 카인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오직 하나였다. 지금 상황 때문에 전투원들이 상부에 묶여있었기 때문에, 전투 데이터를 받지 못한 상황. 그러니 “내가 직접 가서 싹 쓸어버리면 되지.”라는 단 한마디에 연구진 대부분을 이끌고 날아와 버린 것이었다.


 



 장갑에 보관되어있는 전투 자료들은 전부 연구원이 복사했다. 그리고 장갑 자체는 정비반이 역시 그 전투 자료를 보면서 수리 및 개조 방향을 수립 중. 막상 전투원들은 각자 연구원들과 인터뷰만 하고는 죽 방치 상태나 다름없었다. 얼마나 방치 정도가 심했냐고 하면.
 지금 1소대원들은 하이데라바드 중심가에 있는 서양식 카페 건물에 들어와 있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은 전부 전혀 못 알아들을 말들 뿐. 단순히 힌두어가 아니라 그 중에서도 방언일 테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눈앞에 있는 커피는 정통 영국식. 하필이면 잘못 들어온 건지 영국식으로 운영하는 카페였던 것이었다. 식사 메뉴까지 아침에는 잉글리시 브레이크퍼스트 라는 걸 알고는 엘런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식사를 포기한 상태였다.
 “아침부터 그런 게 넘어가?”
 “뭐, 너랑 만나기 전까지는 늘 먹어온 거니까. 굳이 안 넘어갈 것도 없지.”
 애니의 말에 너무나도 담담하게 대답하며 미묘하게 기름기가 많은 소시지를 베어 물었다. 아침에는 담백하게, 혹은 깔끔하게 식사를 해온 두 여성분이나, 군 입대 전까지는 거의 안 먹고 다녔고 입대 후에도 한식으로만 쭉 생활해온 이얼로서는, 밤새 벌레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자지도 못한 아침에 먹을 만한 메뉴들은 아니었다.
 “나랑 만나고부터는 시리얼 같은 걸로 잘만 때우더니, 이런 것도 꽤 잘 먹네. 거참.”
 “음, 그건 그렇고 다들 아침 안 먹을 건가? 어젯밤에 여기 음식 먹겠다면서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가 그렇게 고생하고서 말야.”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음식에는 전원 항복. 게다가 벌레에 시달리다가 늦게 일어난 덕분에 호텔 아침 시간마저 놓쳐버려, 아무 것도 못 먹고 있는 상태. 10시까지는 할 거라 생각했는데, 9시 30분에 끝내버린 것. 유럽식 카페에 간단한 식사도 된다고 하기에 들어왔더니 영국식 아침을 차려내는 걸로 인해 결국 점심까지는 아무 것도 안 먹고 버티기로 했다. 엘런만 제외하고.
 “점심은 무조건, 중심가에 있는 식당에서 하자. 안 되면 패스트푸드점이라도 찾아야지, 에휴.”
 처음에는, 다들 인도의 대도시는 첫 방문이라며 인도 전통 식사를 하자고 주장해서 밤에 동네의 일반 식당을 찾아갔다가 제대로 혼쭐이 났다. 갑자기 시간이 남아돌아 허가를 받고 관광을 하기 위해 훈련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로 오긴 했지만, 막상 계획도 안 잡고 전혀 알아본 것 없이 온 잘못을 제대로 겪고 있었다.
 인구가 400만에 육박하는 도시답게, 모두가 생각했던 인도의 도시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다. 인도식의 건물들로 가득하고 고층 건물이라고는 눈에 띄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호텔이라던가, 쇼핑센터 같은 건물들은 10층 정도에 다다르는 것도 있었다. 도시 자체도 엄청나게 크고 도로를 달리는 차량도 많았다. 물론 인도답게 도저히 그 도로를 달릴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
 “어차피 오늘 저녁에는 다시 출발해야 되니까 점심에 중심가나 좀 돌아다니는 게 전부다. 나야 따라갈 테니 알아서들 해.”
 “예입. 그럼 어디 갈까, 우리?”
 그 때부터 신나서 여행 계획을 짜는 지에와 애니. 아니, 계획이라기보다는 그저 수다였지만. 어차피 계획이라고 해 봐야 그냥 중심가를 둘러보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인도에서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어요. 계획이 엄청 빡빡했었는데, 참 상황이 재미있네요.”
 “실전이 벌어졌을 때는 훈련보다 더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끝나니 이런 보너스도 있고 괜찮군.”
 “그러게요.”
 엘런이 식사를 끝내자마자 모두가 바로 카페를 나왔다. 계산은 들고 다니는 카드로 해결. 갑작스런 휴가에 돈이 없다고 그러자 곧장 그 자리에서 국방비의 여유 예산 중 일부를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발급받아서 그걸로 모든 경비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 대신에 이걸 건네 준 상대인 국방성 사람이 내건 조건은, 해당 전투에 대한 완벽한 기밀 유지. 절대 발설하지 말 것을 지시 받다시피 했다. 무슨 이유에서 그걸 기밀로 하는 지는 잘 몰라도, 이 부대에 있다 보면 워낙 그런 식의 기밀 사항들을 많이 접하기 때문에 다들 ‘그러려니~’하는 심정으로 넘어갔다. 애초에 이 부대에 소속되어있다는 것 자체가 대외비였으니.
 택시를 이용해 중심가로 이동. 거기에서 한참 쇼핑을 즐기고―남자 두 명은 짐꾼을 즐기고― 있는데 지에의 휴대폰이 울렸다. 위성을 이용하는 거라서 세계 어디에 있든, 설령 남쪽에 있어도 연결이 가능할 수도 있는 제품이라 인도 한복판에서 걸린다고 해도 별로 특이할 건 없어서 놀라지도 않고 얼른 받았다. 상대는 리세였다.
 “응? 우리야 뭐 적당히 돌아보고 있지, 뭐. 나름 대도시라서 돌아볼 곳도 있고 괜찮네. 관광객도 꽤 있는 것 같고.”
 [그렇다면 다행이네. 솔직히 인도에서 델리 같은 곳도 아니고 해서 놀기에 적당할까 싶기도 했거든.]
 “괜찮아, 괜찮아. 놀기보다는 공돈 생겼으니 물건 사는데 더 열심이라서 오히려 미안할 정도니까. 하긴 언니 돈도 아니니 상관없지?”
 [마음대로 쓰세요. 그건 그렇고, 여기 시간으로 내일 정오까지 복귀라는 거 알고 있지? 오늘 밤에는 출발해야 될 텐데, 어떻게 여기서 차라도 보내줄까?]
 그냥 거절하려다가, 이건 자기가 어떻게 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잠깐 기다리라고 그런 다음 모두에게 간단히 설명을 해주고는 엘런에게 통화를 넘겼다.
 “음, 그 쪽에 여유 병력이 있는지 모르겠군.”
 [어차피 여기에도 다들 놀고 있는 걸요, 뭐. 전투원들만 바깥에 보내준다고 대놓고 툴툴 거리는 사람들도 있고요. 바깥바람이나 쐬라면서 그 카드 하나 들려서 보내주면 좋아할 사람 많을 걸요.]
 “거기서 여기까지 오려면 놀만한 시간도 없을 텐데, 누가 오려고 할까?”
 [하긴 그것도 그런 가요.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한명 보내는 건 쉬울 텐데, 너무 늦게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네요. 뭐, 그럼 갈 때처럼 현지 차량으로 이동하시겠어요? 거기에 야간에 이동하는 차량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음, 있더라고. 게다가 웃돈 좀 얹어주면 우리만 타고 갈수도 있고. 이 쪽 교통편에는 별로 장해가 될 건 없으니 부대 사정 안 좋으면 굳이 병력 보낼 필요는 없을 것 같네.”
 그렇게 리세의 제안을 거절. 그리고 다시 지에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자 약간의 통화 후에 끊고 다시 쇼핑에 집중했다. 그렇게 산 물품 몇 개―쇼핑이라고는 해도 애니나 지에나 그다지 물품을 많이 사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쇼핑백 두개에 구겨 넣는 걸로 끝이 날 정도의 소량―를 손에 든 채로 전자 제품 상가 쪽으로 이동. 엘런과 이얼이 물품 몇 개를 더 고른 다음 그걸 들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상당히 기울어있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에 우체국이 있을지 모르겠군.”
 “그거야 택시 타고 가면서 잠시 우체국에 들러달라고 하면 되잖아. 택시 기사가 기다리는 것까지 해서 돈이야 주면 되고.”
 엘런의 의문에 애니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간단히 정리했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도로에 기다리고 있는 택시에 접근. 돈을 좀 더 붙여주자 아예 우체국 업무까지 봐주겠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나름 관광객이 꽤 찾아오는 곳이라 그런지, 아니면 국가의 공용어 중에 하나가 영어라서 그런지, 짧은 영어 정도는 쉽게 구사하는 기사들이 많아 흥정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대로 택시를 잡아타고 가다가 중간에 꽤 큰 우체국에 들러 짐을 모두 상하이로 붙였다. 그런데 지에만 상하이는 상하이인데 조금 다른 주소로 붙이는 것을 본 이얼이 어디로 보내는 건지 물어보았다.
 “상하이에 친척이 있거든. 이번에 돌아가면 주말에 휴가 받아서 한번 가볼 생각이라서 아예 이것도 거기에 바로 붙이려고. 전화 해두면 받아주시겠지, 뭐.”
 그렇게 짐을 다 붙이고 나와서 다시 택시를 타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보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표를 끊으러 갔지만 시간대가 맞는 버스가 없어서 일단 포기. 대신에 직원에게 물어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엘런이 가서는 몇 마디를 나누더니 모두에게 오라면서 손짓.
 엘런과 대화한 기사가 말하길, 버스를 가진 차주에게 아예 차량 자체를 빌려오면 자신이 운전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터미널 한 쪽에 있는 사무실로 일행을 안내.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 한명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곧 손을 번쩍 들며 OK 사인을 보냈다.
 그로부터 30분 이후, 오직 일행 4명과 그들을 안내한 기사, 그리고 그 사람이 데려온 또 다른 기사 한 명만을 태운 버스가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20인승 정도의 작은 버스에, 기사가 있는 쪽 의자 위에는 무려 가솔린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통이 몇 개나 놓여 있고 그 뒤에 앉으라는 이야기에 엘런과 애니는 아예 제일 뒤에 앉았다 그리고는.
 “내가 그랬지? 저 두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이유 없이 피곤해진다고.”
 아주 떳떳하게, 엘런은 애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버렸다. 어젯밤에도, 당연히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질 거라는 이얼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주 자연스레 둘이서 한방에 들어가 결국 지에와 같은 방을 쓰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오늘도 바로 보이는 게 저런 모습. 왠지 사람을 따듯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은 애니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평소에는 냉정한 판단력을 가진, 그러면서도 사려 깊은 상관의 모습에 충실한 엘런까지 이럴 때는 망가진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질리기도 했다.
 “한번 저러면 꽤 오래 가니까, 그냥 우리끼리 이야기나 하면서 가자. 저기 신경 쓰면 결국 우리만 골치 아프다고.”
 “한두 번 당하신 게 아닌가 보네요.”
 “내가 저 사람들하고 몇 년을 같이 했는데. 그래도 미국에 있을 때는 아예 저 두 사람은 거기 있는 거주 지역에 따로 사니까 차라리 볼 일이 적었는데, 여기서는 같은 건물에 있거나 같이 지내니 더 심하긴 하네.”
 “조장님은 전혀 저런 이미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보면 볼수록 신기하네요.”
 “어울리지 않게 논다니까, 정말.” 도시를 빠져나와 조금 구불구불한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리는 동안 어느새 주변은 깜깜해졌다. 버스에 있는 조명 상태가 그리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관리를 하긴 하는지 뒤 쪽에 있는 조명들은 상태가 나았다. 운전석이야 어차피 밖이 안 보이니 조명을 안 켤 테니 아예 관리를 안 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잠시 버스가 서더니 연료를 채우려는 건지 앞에 있는 플라스틱 통을 들고 내리려고 기사가 불을 켰지만 몇 번 껌벅거리더니 그대로 나가버리는 걸 보지 않았다면 조명 상태가 안 좋다는 것도 몰랐으리라.
 “이게 첫 실전이었던 건 아니지?”
 “이 부대 오기 전까지 포함해서라면, 그렇죠.”
 “그 때 이야기가 한번 해봐. 심심하네.”
 “아니, 실전이라고 해도 별거 없어요. 그냥 중동에서 저격전을 좀 한 것뿐인 걸요.”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해보라는 거잖아. 하라면 잔말 말고 해.”
 “예에…….”
 직업 군인으로 전환하고 훈련을 받은 후 부대에 배치. 그리고 고작 2주일이 지난 후에 곧장 실전에 투입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부대에 타 부대 지원 명령이 내려온 것. 그것도 전혀 다른 지역인 중동에 있는 부대에 대한 지원이었다. 다른 군 사령부에서도 저격 부대를 운용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굳이 8군에 지시가 내려온 이유는 몰랐지만, 이미 수송 편까지 마련되어있던 상황이라 다들 군말 없이 이동했다.
 도착하고 한 일주일 정도는 별일 없이 그저 감시 임무만 수행했다. 부대에 있던 베테랑 중에 몇 명은 2, 3일에 걸쳐서 저격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곤 했지만 아직 본격적인 저격이 필요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유는 도착 1주일 후, 순식간에 사라졌다.
 “거기가 그렇게 치열한가? 저격수들이 소대 단위로 움직이면서 작전을 해야 할 만큼?”
 “대체 에너지원이 사용되고 있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석유가 정말 중요한 자원이니까 말이죠. 남쪽이 우리에 비해 가장 부족한 것 중에 하나가 석유라고도 그러잖아요. 남아메리카의 매장량은 중동이나 북아메리카, 북해 같은 곳에 비할 바가 아니니까.”
 “거기는 영토보다도 자원 때문에 싸우는 거구나.”
 “그런 거죠.”
 그렇지만 막상 전투가 진행되는 건 유전이 아니라 유전을 관리할 수 있는 위치에 군을 주둔시킬 수 있도록 만든 거점. 엄청난 수의 군대가 일제히 전투를 치르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거점을 위주로 한 소수 병력의 이동에 따른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에 저격병 운용은 매우 효율성 높은 전술이었다.
 해당 지역에 투입되는 저격병 부대는 각 지역에서 순차를 정해 돌아가며 맡는 형식으로 굳혀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것이 작전 계획에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전투 피로가 다른 병과에 비해 극심한 게 저격병이라는 보직이었기에 장기간 한 부대가 독자적으로 전투를 수행하기에는 힘에 부쳤던 것. 아울러 실전 경험이 적거나 없을 후방 지역의 특수 부대에게 경험을 쌓게 하는 효과도 있었기 때문에 국방성 차원에서 이렇게 지원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순환 체제를 이용하고 있기도 했다.
 이얼이 실전에 참가하게 된 건, 작전상의 움직임이 아니라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신입이다 보니 부대원들 중 일부와 함께 야간에 거점 순찰에 나섰다가 기습을 가하기 위해 움직이는 병력과 맞닥뜨리게 된 것. 갑자기 전투가 벌어졌고 후방에 있던 이얼은 다른 한명과 함께 급히 뒤에 있는 건물로 올라갔다.
 “갑자기 건물에는 왜 올라간 거야?”
 “명색이 저격병 부대인데 그냥 정면에서 총격전만 벌이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후방에 움직일 수 있는 병사들이 높은 지점을 점령하고 즉시 저격에 들어가야죠.”
 “헤에―”
 올라가서는 당장 저격 태세. 먼저 사격을 가한 건 당연히 이얼을 데리고 온 선임병이었지만, 상대의 머리 위에 탄을 하나 낭비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스코프도 없고 탄도 5.56×45mm NATO탄을 사용하는 M16A2만 들고 있던 이얼도 저격을 준비하긴 했다. 스코프가 없어서 그냥 가늠자 구멍 중앙에 형광으로 아주 약간 빛나는 가늠쇠 끝부분을 맞추고 다시 그 끝에 목표의 두부(頭部)를 맞추는 걸로 조준은 끝. 거리가 멀지는 않으니 이걸로 충분히 맞출 수는 있겠지만, 막상 선임병은 2배율의 스코프가 달린 M16A4를 이용해서도 빗맞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어려울 수도 있는 문제였다.
 “뭐, 자랑 삼아 말하자면― 그 상태로 2명 저격했어요. 기관총 들고 있던 하나랑 작전 지시하던 하나. 이렇게 둘 잡으니까 순식간에 정리가 되어버리더라고요.” 그 이후로 본격적으로 실전에 들어가면서 배정받은 총이 바로 SR-25, 그 중에서도 Mark.11 Model 0 -Mk.11 Mod.0-였다. 본격적인 저격 임무를 위한 총기였고, 실제로 그 총으로 저격임무를 수차례나 성공시켰다.
 “옆에 있던 사람이 가슴에 포탄 맞고 죽어버린 상황에서 이틀도 버텨봤고, 아득바득 기어가서 포격유도로 죄다 쓸어버린 적도 있고, 그 때 꽤 많은 경험을 했어요. 특히 제가 저격을 속사로 가능하다보니 분대 병력을 상대할 때, 한번에 3명을 사살한 적도 있고요. 보통은 한명 사살하는 걸로 나머지 분대 병력을 묶어두는 게 통상 전략이니, 제가 생각해도 좀 어이없는 짓이긴 했어요.”
 “그건 이미 어이없다, 같은 범위를 넘어선 이야기인데 말이지.”
 “그래봐야 그냥 전장에서 있었던 작은 전투일 뿐이에요. 어차피 보병 전투 같은 거, 현대전에서는 의미 없다고 그러잖아요.”
 “그 버튼 하나의 전쟁 같은 이야기 말이지? 나는 그런 거 별로 따지진 않지만, 결국 전쟁이라는 게 병사 하나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긴 하지.”
 “그런 거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벌써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자자.”라는 지에의 말에 문득 뒤를 돌아보니, 이미 한참 전에 잠이 든 것 같이 보이는 엘런과 애니가 보였다. 뒷자리 의자를 이리저리 조작해서는 둘이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니 무슨 비행기 1등석 좌석마냥 확 젖혀졌다. 앞좌석의 의자를 완전히 눕혀 다리 받침대 삼고 운전을 하지 않던 기사 옆에 놓인 낡았지만 세탁은 잘 된 모포를 가져와 덮으니 불편하진 않았다. 이얼이 그렇게 하는 걸 보고는 지에도 똑같이 따라했고, 곧 운전 중인 기사가 불을 꺼서 껌껌한 버스 안에서 나란히 눈을 붙였다.


 



 부대는 이동 준비를 시작했다. 이미 실전 데이터 같은 연구 자료는 수집을 완료했고, 남아있던 탱크 두 대고 연구소 측에서 회수해간 이상, 이미 일정을 넘긴 훈련을 더 이상 지속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훈련 평가는, 실전에 성공하면서 모두 합격. 점수도 우수했다는 이야기에 중대장이 싱글벙글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군인다운 자세에 멋있어 보였는데 지금 와서는 참 한심스러워 보인다는 사실에, 이얼은 혼자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자신은 사람 보는 눈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았다.
 장갑은 일단 트레일러에 실어서 가장 가까운 군 비행장으로 운반. 사람들은 두 차례에 나누어 현지에서 구한 버스로 이동. 짐들은 기본적으로는 따로 트럭이 배정되어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연구진이 여기로 건너온 탓― 장갑을 싣고 있는 트레일러의 빈 공간에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전투원들은 정비반 인원 일부와 함께 후발대로 남았다. 연구진 일부도 한 번에 옮길 수가 없었던 기기들과 함께 대기 중이었다. 남아있는 연구진의 책임자는 닥터 카인드의 조수였다.
 “여, 조수 양반.”
 할 일이라고는 트럭이나 트레일러가 오면 짐을 마저 싣는 것뿐인 전투원들. 알론조는 그렇게 남는 시간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모처럼 닥터 카인드 없이 혼자 있는 조수에게 이야기를 걸었다.
 “음, 무슨 일입니까?”
 “요즘 좀 어때요? 신혼이라 피곤할 텐데.”
 “결혼했다고 해서 특별히 더 피곤하거나 그렇진 않습니다만.”
 “아니, 평소에 안 하던 일을 밤에 더 하는데 안 피곤할 리가 없잖수.”
 결국 심심하니까 농담을 건다는 게 수준이 딱 뒷골목 술집. 혹은 남자만 잔뜩 있는 부대의 휴게실. 어느 쪽이던 마찬가지로 천박하다는 의미.
 “결혼하기 전부터 해온 일입니다. 새삼스럽게 피곤할 리가 없죠.”
 “……. 아, 그러세요.”
 “굳이 문제가 있다면 결혼을 하고서도 계속 피임을 해야 한다는 게 문제…….”
 “거, 거기까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듣고 있는 사람이 무섭잖아요!”
 “특별히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만.”
 여전히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걸 멀리서 지켜보던 애니가 한 마디.
 “나라면 저런 남자하고는 못 살 것 같아, 절대로. 안 그래, 엘런?”
 “그거야 개개인 취향이잖아. 닥터 카인드가 좋다 그러고, 조수 씨도 좋다 그러니 뭐 별 상관없겠지. 결혼하기 전부터 벌써 할 거 다 했다잖아.”
 “우리도 할 거 다 하잖아.”
 “……. 거기 짐이나 옮기자.”
 그러는 동안 이얼은 정비부에서 재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의 내용은 예의 ‘사격 시의 과도한 반동 때문에 자세를 잡는 게 힘든 상황’에 대해서였다. 사격 순간의 반동 과다로 빠른 조준 사격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막 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재현의 표정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음’이라는 문장을 그대로 형상화 시켜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저기 말이야, 동무. 애초에 저격에서 무슨 빠른 재조준 사격 운운하는 기야? 난 그게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러니까, 전장에서는 일단 뭐든지 빨라야 되잖습니까. 특히 그렇게 급박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조준과 사격이 빨라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격이라고 해도 느긋이 놀고 있을 수 없는 거고.”
 “아니아니, 애초에 저격이란 게, 신속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정확성을 얻는 사격 과정 아니갔어? 어떻게든 일격을 정확하게 해야지, 그렇게 빨리빨리 하려고만 하면 되갔나, 그기지. 무슨 저격을 소총 쏘듯이 하려고 그럼메?”
 “음, 뭐랄까……. 그게 제 특깁니다. 신속하게 조준하고 신속하게 쏘는 거 말입니다.”
 “그런 기 어디 있나? 애초에 저격이란 게―”
 이렇게 무한 반복. 재현이 보기에는 이얼은 저격한다면서 탄이나 마구 소비해대고 명중률은 떨어지는 한심한 녀석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격한다면서 정확성 같은 건 다 접어두고 무조건 빨리 쏴야 되니까 어떻게든 해결해 달라니…….
 물론 저격을 한다고 해서 조준이고 사격이고 무조건 천천히 해야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반동 때문에 힘들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가 사격 시 정확도가 낮아진다던가, 그런 거라면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단지 다음에 또 쏘는데 방해가 된다니, 이유가 매우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 거에 불만 있으면 내가 아니라 저기 흰 옷 입고 다니는 간나들한테나 하라!”
 “정비 같은 건 여기에서 하는 거 아닌…….”
 “시끄럽다! 일 없으니 날래 가라!”
 “……. 예에…….”
 아무래도 이얼은 재현에게 이 한 마디로 안 좋게 찍힌 것 같았다. 물론 실전에서 모습을 보여주면 되겠지만 당분간은 그럴 기회도 없으니 별 도리가 없다. 부대에서 유일하게 영어가 아닌 모국어로도 통하는 사람이었는데 참 아쉬운 일이었다.
 물론 공사 구별을 못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공적인 임무, 업무에 관한 이야기라면 할 수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쉽게 말을 붙이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어떻게 이 이야기 하나로 이렇게나 틀어질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재현이 그렇게나 짜증을 낸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연구진에서 이번 전투 결과에 의해 도출된 결론을 일방적으로 쏟아버리고 간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정비부랑 상의도 하고 그러더니 언젠가부터 결과를 그저 통보만 해주고는 알아서 고쳐놓으라는, 지시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어있었다. 그런 거에 열이 받아있던 참에, 이얼이 와서 불을 지펴줬으니 이러는 건 당연했다.
 그런 탓에, 이얼이 가는 뒷모습을 보고는 ‘내가 좀 너무 했나’라는 생각부터 먼저 하고 말았지만, 말이라는 게 한번 쏟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거라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뒷머리만 벅벅 긁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말았다.
 몇 시간 후, 트럭과 버스가 차례로 되돌아왔다. 남은 짐들을 전부 트럭에 옮겨 싣고 난 뒤, 남은 인원들이 버스에 올라타고 혹시 빠진 인원이 없는지 확인한 다음 출발했다.
 별 일이 다 있었던 인도를, 드디어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훈련에 실전에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쏟아졌다. 그래도 결국 무사히 실전을 마무리하고 다친 곳 없이 돌아가니 다행이었다.
 버스는 곧 언덕을 넘어,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을 완전히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