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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L.S. 특무강화중장갑기동중대 -

2008.04.18 20:42

Earthy 조회 수:1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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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평균 2.89m 무게는 기본형이 983kg. 2족 보행을 하며 연료는 유류와 전기 기동 방법을 동시에 채용. 일반적인 전투 기동 시 기동 가능 시간은 평균 5시간가량. 기동 중에 연료 보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원팀과 같이 움직이면 장시간 기동도 가능하다.


기본형의 경우에는 .50BMG탄을 쓰는 전용 라이플이나 20mm탄을 쓰는 중기관총을 기본총기로 사용한다. 그 외에 32cm의 전용 컴뱃나이프가 장착되고, 작전 내용에 따라 부가장비를 장착하게 된다.


그 외에는 사용자에 따라 커스텀 장비를 사용하게 된다. 가령 다연장 로켓포를 사용하거나 유탄발사기를 사용하는 것 같은 경우가 있다.


“저, 그런데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응? 뭐지?”


한참 이얼에게 강화중장갑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던 병기 개발부의 닥터 카인드가, 이얼의 질문에 어깨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그림처럼 뒤로 넘기며 말했다. 그 다분히 고의적인 행동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얼은 그녀를 향해 질문을 계속 했다.


“그런데, 그게 왜 로봇이 아니라는 거죠? 누가 봐도 로봇이잖아요.”


그 말에 닥터 카인드는 안경을 고쳐 쓰고, 그 너머로 이얼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로봇이라고 해도 틀린 건 아냐.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이 녀석을 로봇이라고 부르면 안 돼. 어디까지나 개발 목적은 기존의 강화장갑을 개량하는 거니까 말이지.”


“그러니까, 그 차이를 대체 왜 두어야 하는지를 묻고 싶은 건데요.”


“응, 그건 참 말하기 곤란한 문제인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예산의 문제야, 예산.”


뒷이야기는 어찌 보면 뻔한 것이었다. 인형 병기를 본격적으로 활용화 할 수 있는 이론적인 토대는 마련되었지만, 실제로 그것을 만드는데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병기 개발단까지는 올라왔지만 연구소나 국방성을 통과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던 것. 그 때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그거였다.


당시 막 시작하려던 강화장갑의 개량화 사업에 이걸 끼워 넣어버린 것이었다. 때마침 어떤 사건이 터져준 바람에 윗선에서도 그 정도의 타협안에 만족을 표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즉, 강화장갑의 개량화 사업이기에, 강화중장갑(强化重裝甲)이란 이름을 사용하며, 실제 운용도 그런 개념에서 한다는 게 결론이었다.


“결국에는, 로봇을 만들려고 한 건 맞다는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예에, 알겠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거.


어쨌든 그 설명은 다음으로 이어졌다.


지금 이얼이 운용하게 될 기체는 당연히 저격 특화 형태로 만들어졌고, 이는 개발팀에서도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얼이 많이 움직여 줘야겠다는 거였다.


아직까지는 병기 개발 측면에서 시험 운용을 위해 존재하는 부대이기 때문에 며칠 전과 같이 실전에 나설 일은 없고, 어디까지나 테스트를 하는 측면에서 기동을 할 거니까 양해를 구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실제 장갑을 착용하고 움직이는 문제는 내가 아니라 실제로 기동하고 있는 중대 소속원들이 직전 가르쳐 줄 거야. 자, 또 궁금한 점 있어?”


“예. 이 장갑은 뭐로 만들어진 거죠? 그 때보니까 12.7×107mm탄을 사용하는 저격총을 500미터 정도 거리에서 직격했는데 거의 손상이 없었어요. 웬만한 콘크리트 벽이나 강화유리도 뚫어버리는 대물저격총의 직격에 그렇게 멀쩡한 걸로 봐서는 단순한 강철이나 합금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닥터 카인드는 좋은 질문이라며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웃어보였다. 30대 중반은 넘었을 여성이 화장도 전혀 안 한 채 며칠은 쭉 입고 있었을 게 분명한 스웨터 위에 가운을 걸친 상태에서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서 뿔테 안경을 번뜩이며 할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그것도 편견이라 애써 넘기며 이얼은 대답을 기다렸다.


“먼저 하나 짚고 넘어가야할 건, 아무런 손상 없이 넘어간 건 아니었다는 거야.”


“역시, 뭔가 손상이 있기는 했군요.”


그런 걸 정면으로 맞고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었다. 아마 장갑 내부가 충격 때문에 손상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카메라에 정면으로 맞았거든. 전방 주시용인데, 장갑 밖에 장착된 거라서 부서졌더라고. 장갑 자체 손상은 없었던 게 맞아. 단순한 합금이 아니라, 신종 금속을 사용하고 있거든. 남쪽의 군대가 쓰던 걸 입수했는데 그걸 분석해서 재현해낸 거지.”


“남쪽이요?”


“응. 그 쪽은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발전된 곳이라 그런지 전투 중에 입수하는 것들 중에는 생각지도 못 했던 게 있단 말이지. 아직 우리도 대량생산은 못 해서 겨우겨우 이 프로젝트에만 투입하고 있는 형편이야.”


“그렇군요.”


만져봤을 때는 그냥 평범한 금속성의 물질로 밖에 안 느껴졌는데, 그게 그렇게나 대단한 물건이었다. 게다가 정체불명의 오버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남쪽의 물건이라고 하니 더욱 신기하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뭐, 또 다른 질문은 없어?”


“예, 없어― 아니, 하나 있어요.”


“뭔데?”


아까 머릿속에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진 질문이 있었다. 한참 닥터 카인드의 이야기를 듣는 중이라서 중간에 끊기는 어려워 삼켜뒀던 건데 잊고 넘어갈 뻔했다. 그건 바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무슨 사건이 있어서 더 쉽게 됐다면서요. 그건 뭐였어요?”


“아, 그거. 그건 말이지―”


말꼬리를 늘이며 긴장감을 더하는 닥터 카인드의 행동. 물론 별로 긴장감이 느껴질 만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이얼은 별 반응 없이 대답을 기다렸다.


“별 거 아냐. 그냥 기밀이라 못 말하는 정도?”


“기밀이요?”


“응. 기밀. 중대원들은 그냥 몰라도 되는 거니까 넘어가. 그런 거 궁금해 하면 큰일난다구.”


기밀이라면 별 수 없었다. 그냥 닥터 카인드에게 인사를 하고 방 정리를 시작했다. 그녀는 당연히 “끝났다―!”를 외치며 나가버렸고.


이얼이 있는 방은 시청각실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름에 비하면 많이 허름한 방이었는데, 한쪽 벽을 깨끗한 흰색으로 칠하고 그곳을 향해 모든 사람이 앉아서 보게 되는 형태로, 유일한 전자 기기가 프로젝터뿐인 곳이었다. 프로젝터에 연결할 데이터도 노트북을 직접 가져와야 할 정도.


“이런 곳이 진짜 최첨단 병기를 연구하는 곳이라니…….”


물론 나름대로의 사정은 있었다. 실제 부대가 있는 곳은 북아메리카의 서부 지역이고, 여기 상하이는 정글을 포함한 열대 지역의 기동 테스트를 위해 임시로 머물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의자를 정리하고 천장의 형광등 전원도 차례차례 끈 다음 방을 나왔다.



그 정글에서 빠져나온 후, 이얼은 며칠 동안 상하이 인근에 있는 병원에서 지냈다. 찰과상과 타박상 몇 개를 제외하고는 다친 부분은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입원을 해야 했던 이유는 바로 종합 검진 때문. 여기서 말하는 종합 검진은 단순한 건강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건강 검사는 1박 2일에 걸쳐서 전부 했다. MRI도 찍고, 위랑 대장 내시경에 정신 감정까지 받았다.


그 다음은 체력 검사. 단순한 체력 검사가 아니라 균형 감각을 검사하거나, 계속 흔들리며 진동하는 방에 넣어놓고 적응하는 것도 있었다. 그 결과에서 의외로 높은 점수가 나왔다면서 구경하던 지에가 놀라기도 했었다.


그런 식으로 며칠 동안 병원에 머물러 있다가 이 곳 기지로 온 게 바로 어제. 기본적으로는 2인 1실이었지만, 방이 남아돌다보니 다들 1인 1실로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얼로 자신만의 방을 받아서 짐을 풀었고.


“이제야 오냐. 엄청 늦었잖아.”


체육관 한편에 마련된 운동기구들 앞으로 이얼을 불러낸 것은 지에였다. 약속되어있던 시각은 오후 2시였지만, 이야기가 길어진 탓에 3시가 다 되서 겨우 끝났다며 이얼을 바로 사과했다.


“뭐, 됐어. 솔직히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나도 30분 넘어서 왔으니까.”


“하, 하하…….”


“우선 이걸로 갈아입고 와. 그런 군복 같은 거 입고는 이런 거 못 하니까.”


오자마자 치수를 잰 다음, 국방성 직속부대 제복을 맞춰놓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아 8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세탁은 해서 깨끗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 깨끗함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지에의 복장은 체육복 바지에, 상의는 착 달라붙은 검은색 언더셔츠였다. 즉, 당장이라도 운동을 하려고 하는 사람의 복장이랄까. 운동기구들이 가득한 장소에 불러냈다는 것만으로도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충분히 짐작이 갔기 때문에 이얼은 순순히 그녀가 건넨 체육복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온 이얼을 보면서 지에는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호오, 생각보다 몸은 좋은데? 체력 검사에서도 꽤 좋은 결과가 나왔다더니 충분히 그럴 만하네.”


어깨랑 등 쪽을 툭툭 두들겨보더니, 갑자기 등을 짝 소리 나게 제대로 때렸다.


“우악!”


“좋아, 합격. 이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겠어. 어디 보자…….”


이얼이 팔을 억지로 뒤로 틀어 맞은 부위를 문지르고 있는 동안, 레그 프레스에 한쪽 당 160kg씩 총 320kg을 걸었다. 그걸 보면서 기겁한 이얼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그, 그 정도는 못 해요!”


“그 다리로 이걸 못 할 리가 없잖아. 여자인 나도 400씩은 한다고. 장갑 다루려면 허벅지 힘이랑 어깨 힘이 강해야 되는데 이것도 못 하면 곤란하다고. 자, 어서 누워.”


“아, 진짜 안 될 텐데…….”


레그 프레스는 대퇴부를 단련시키는데, 비스듬히 누워 천장을 바라본 상태에서 발바닥으로 발판을 밀어 올리는 형태로 사용하는 기구. 그 발판 위에 봉이 있고 그 양쪽이 바벨을 걸어서 무게를 조절한다.


일단 드러누운 다음, 허리 즈음에 양쪽으로 달린 손잡이를 꽉 잡고 다리를 뻗어 발판에 발바닥을 어깨 넓이 정도로 맞춰서 댔다. 그런 다음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안전장치를 돌려 풀었다.


“흐읍!”


다리에 걸리는 하중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니 생각만큼 과중하지는 않은 듯해서 곧 숨을 들이쉬며 천천히 다리를 당겼다. 그리고 내쉬면서 힘차게 쭉 뻗으며 들어올리고, 다시 당기며 내리기를 15번 반복. 그렇게 한 세트가 끝나자마자 얼른 안전장치를 걸고, 탈출했다.


“봐, 되잖아.”


“하, 하하…… 되긴 되네요. 아하하…….”


나중에 잘 때쯤 되면 허벅지가 미칠 듯이 당길 건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 지에는 그러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바로 또 한 세트를 지시했다.


“한번만 하고 넘어갈 거야? 적어도 3세트는 해야지.”


“히, 히엑…….”


그 뒤로 이어지는 폭풍 같은 기구들과 벤치 프레스들. 저격 소대에 있을 때 하던 것과는 수준 차이가 매우 컸지만 어떻게든 해냈다. 그런데, 그 때 지에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참, 준비 운동도 안 했네. 미안―”


“아, 뭔가 이상하더라니―!”


이얼이 속에서 올라오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몸부림을 치는 동안, 지에는 턱에 손을 대고 잠깐 생각에 빠졌다. 10여초 정도 시간이 흐르고, 마치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좋아, 연병장 20바퀴.”


“예?”


“준비 운동은 못 했어도, 마무리는 해야지. 연병장 20바퀴만 돌고 끝내자. 200m밖에 안 되니까 4km 뛰려면 20바퀴 맞지?”


“에…….”


“자, 가자!”


너무 힘들어서 벤치에 주저 앉아있던 이얼은, 결국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지에를 다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마무리 러닝 4km를 겨우겨우 뛴 다음 결국 대자로 누워버렸다.


“겨우 20분 뛰었다고 뻗어버리면 어떡하냐.”


“아니, 헤엑, 그 전에, 헤엑, 엄청 많이, 헤엑, 했잖아요…….”


“내일도 이 정도는 해야 되는데? 우리 장갑을 사용하려면 충분한 근력이 있어야 되는데, 넌 아직 그게 많이 부족해. 그걸 단기간에 채우려면 몸에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잖아, 안 그래? 넌 1주일 뒤면 바로 그 녀석을 운용해야 된다고.”


“그래도, 헤엑, 내일 운동도, 헤엑, 못 하고, 헤엑, 드러누워 버리면, 헤엑, 어떻게 해요…….”


“그럴 일은 없어. 솔직히, 너 지금도 일어나라면 일어날 수 있잖아. 그 정도면 내일 문제없어. 얼른 일어나서 씻고 가자. 저녁 먹어야지.”


시간은 어느덧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저녁은 6시부터. 밥이라도 먹어야 살아남지 않겠냐는 생각에 이얼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터덜터덜 지에의 뒤를 따라 탈의실로 걸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후, 결국 침대 위에 드러눕고 말았다. 뭘 하려고 해도 도저히 기운이 없어서 못 할 지경이었다. 애초에 별로 할 일이 없었다는 것도 있고.


하지만 이얼이 그렇게 혼자서 쉴 시간이라고는 전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어느새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지에가 방으로 난입해 들어온 것. 손에는 파일과 펜이 들려있었다. 방 한편에 있는 테이블을 끌어와 침대 사이에 둔 다음,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자, 지금부터 중요한 걸 시작할 거다.”


“중요한 거요?”


“이거.”


파일 안에 꽂혀있는 종이의 가장 위에는 이런 제목이 적혀있었다.


[Consultation Example]. 상담 예제. 즉, 새로 편입한 병력에 대해서 상담할 때 필요한 사항을 정리해놓은 문서라는 것. 그 제목 밑으로 차례대로 숫자가 붙은 문장이 죽 나열되어있는 걸로 봐서는 일종의 질문 예제인 것 같았다.


하지만 왜 자신이 그 종이를 보고 있어야 할까. 이얼은 있는 힘껏 한숨을 내시며 말했다.


“애초에 이걸 피상담자에게 보여주면서 시작하면 어떻게 해요? 질문자가 미리 질문을 익혀서, 이런 거 없이 하는 게 제대로 된 상담 아니에요?”


“뭐, 어때. 원래 내가 해야 될 것도 아니라고. 적당히 끝내고 보고만 하면 되는 걸 귀찮게 이것저것 하고 싶지 않아.”


이야기인 즉, 실제로 이얼이 들어오게 된 전술조의 조장은 따로 있는데, 다른 한명의 조원과 함께 아직 미국에 남아있는 탓에 이걸 자신이 대신하게 되었다고 했다. 조원은 이얼까지 합쳐서 네 명인데, 그 중에 선임 두 명이 아직 미국에 있으니 귀찮아도 할 수밖에 없다며 투덜투덜 거렸다.


그러면서 거기에 있는 첫 번째 질문을 그대로 읽는 걸로 상담을 시작했다.


“당신의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에, 양친과 네 살 터울의 누나, 그리고 저까지 네 명입니다.”


“네 살? 네가 20살이니까, 누나랑 나랑 동갑이네.”


그제야 지에의 나이를 알게 된 이얼은 왠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이얼이 무슨 기분이던 간에 전혀 상관없을 지에는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가족 간에 특별한 문제는 있습니까?”


이건 절대 대놓고 물어봐서는 안 되는 질문이었다. 이얼이 슬쩍 살펴보니 실제로 설문지에도 [간접적인 방법으로 답변을 구할 것]이라고 따로 씌어져 있었다. 지에도 질문을 읽은 다음에 그 문장을 본 건지 어색하게 “하하하.”하고 웃어보였다.


“문제 있어?”


“에― 누나가 너무 무서워요, 같은 건 안 되나요?”


농담 삼아 던진 이야기에, 반응은 매서웠다. 손날을 세워서 그대로 정수리에 내리찍어 버린 것. 있는 힘껏 내리친 거라 순간 불빛이 번쩍하며 머리가 울릴 정도였다. 그 바로 뒤에 날아오는 차가운 목소리.


“장난치지 마, 임마. 내가 더 무서운 거 보여줄까?”


“……. 아닙니다.”


왠지 누나에게 맞을 때가 떠오른다. 이얼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계속 문지르며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가족 간에 문제는 없고, 그럼 다음 질문은―.”


A4 용지에 글자 크기는 12포인트 가량. 그걸로 2페이지 정도의 질문은 한 시간가량이 지나서야 겨우 끝이 났다.


어느덧 시간은 저녁 8시 5분 전. TV에서는 중국어 방송만 나온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그걸 알아듣지도 못 하는 그걸 굳이 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피곤하니 바로 자려고 해도 잠은 오지 않을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그러는 와중에 파일을 들고 나갔던 지에가 다시 손에 무언가를 들고 들어왔다. 들고 온 건 투명한 액체가 담긴 특이하게 생긴 유리병과 ‘PEANUT’이라는 글자가 얼핏 보이는 합성수지 재질의 물건이었다.


그걸 테이블 위에 ‘탕’ 소리가 나게 올려놓은 다음, 고갯짓으로 방 한쪽 구석에 있는 탁자를 가리켰다.


“컵이나 가져와.”


유리병에 한자로 뭐라고 쓰여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술을 가리키는 ‘酒’는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쓰여 있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중국술일 듯해서, 탁자 위에 있는 컵들 중에 양주를 마실 때 쓰는 잔 두개를 손에 들었다.


“한명 더 올 거니까 하나 더 가져와.”


지에가 벽걸이 TV 옆에 있는 책상에서 의자 두개를 가져다가 테이블 앞에 놓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탁자 위에 있는 양주잔은 단 2개. 잠시 생각하다가 소주잔 하나를 집어 들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건, 그 술 한 병과 포장지를 열어놓은 땅콩 한 봉지 뿐. 지에가 술병 뚜껑을 돌려 따서 열자 특이한 향과 함께 상당한 도수의 알코올 냄새가 방안에 퍼졌다.


“저기, 이거 꽤 도수 높은 거 아니에요?”


“한 40도 정도? 그렇게 높은 건 아닌데.”


“40도면 충분히 높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지에는 일단 술을 잔에 따랐다. 양주잔이 정확하게 1온스이고, 소주잔은 2온스 가량. 그렇다보니 실제로 한잔은 매우 적은 양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입대를 해서 1년 이상 죽 군인으로서 살아온 이얼에게는 부담스럽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보니 지금 당장 땅콩 하나와 같이 먹기에는 아무래도 겁이 나서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돌리기로 했다.


“한 사람 더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오늘 상하이 시내 갔다 온다고 해서 술하고 안주하고 좀 사오라고 해놨어.”


다행히도, 땅콩 하나로 알코올 함유량 40%짜리 술을 먹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빨리 마시자며 잔을 들고 있는 지에를 억지로 말리며, 안주를 들고 온다는 구원병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구원병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건, 티셔츠와 트레이닝복 바지 차림에 구불구불한 금발을 가진 날카로운 인상의 여성. 리세였다. 손에는 아예 큼지막한 종이봉투가 속이 꽉 찬 채 들려있었다. 인스턴트식품 몇 개가 삐죽이 튀어나와있는 게 보였다.


“실례합니다―!”


“……, 그런 건 들어오기 전에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 어때, 별로 상관없잖아. 자 빨리 펼쳐봐.”


리세의 뒤늦은 인사에 대한 이얼의 적절한 지적은 지에에 의해서 깨끗하게 무시당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시하지 말라며 뭐라고 그럴 것도 아니니, 그저 리세가 물품을 푸는 걸 도울 수밖에.


이미 리세와는 이 부대에 오고 인사를 나눈 사이. 특히 지에와 매우 친한 태도를 보여서 이얼의 머릿속에 단단히 박혀있는 인물이었다.


리세가 사온 것은 맥주캔 12개―6개들이 박스 2개―와 상당한 양의 안주거리들. 하지만 죄다 서양식 인스턴트뿐이라 이얼이 은근히 기대하던, 이 곳만의 특산 요리 같은 건 없었다. 그나마 냉동된 제품을 데워서 가져온 중화 만두 정도가 이얼의 기대에 부합하는 식품일까.


“술 있다고 했는데, 또 맥주를 사왔어?”


“나 그런 술 못 마시는 거 알잖아. 도수는 상관없는데 그 향기는 진짜 못 참겠더라.”


“그 향기가 중국술의 진짜 매력이라고 그랬잖아. 그냥 참고 한 병 정도만 마셔봐.”


“알코올 40% 짜리 한 병을 그냥 참고 마시라는 게 말이 돼? 나는 맥주 마실 테니까 알아서 해.”


그렇게 두 사람이 투닥투닥 거리는 걸 멍하니 보면서, 이얼은 슬쩍 맥주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얼은 리세와는 반대로 향기는 상관없는데 도수가 부담스러워서 도저히 못 마실 것 같은 상태. 하지만 그게 지에에게 딱 걸렸다.


“뭐야, 너도 못 마시겠다는 거야?”


“에, 그게……, 솔직히 좀 부담스럽긴 한데…….”


“남자가 겨우 이 정도가 부담스럽다고 그러면 어떡하냐? 그냥 마셔.”


“하지만…….”


소주를 마신 것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 되는,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지 겨우 1년여밖에 안 되는 청년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술을 마시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맥주 마시면 내일 멀쩡하겠네? 그렇지?”


“에, 에에, 아마도 그렇겠죠.”


아무리 술에 약하다고 해도 맥주 몇 캔에 다음 날이 힘들만큼 몸이 나빠지지는 않는다.


“그러면 내일은 오늘 한 거 딱 두 배로 해도 되겠네? 멀쩡하잖아.”


“……. 살려주십쇼.”


곧장 술이 찰랑찰랑 거리는 양주잔을 들었다. 얼굴 가까이로 가져가자 특유의 꽃향기 같은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강한 알코올의 향기도.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살짝 어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그런 상태 이상과는 상관없이, 이미 건배는 시작되었다.


“조금 늦긴 하지만, 축하할 건 확실하게 해야지. 오늘 이 자리는 한이얼 병장의 우리 중대와 린든조 전입 기념을 위한 거니까, 치어-Cheers-도 그걸 위해서 해야지. 전입을 축하하며 치어스―!”


“치어스―!”


“치어스…….”


이얼은 건배를 영어에서는 치어스라고 하는 걸 방금 처음으로 알았다. 게다가 건배라고 해도 한국처럼 일일이 잔을 부딪치지 않는다는 것도 같이 알았고. 나라들은 통합되었다고 해도 그 문화가 통합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이미 잔을 한 번에 비운 지에와, 그냥 맥주를 한모금만 살짝 마신 리세가 이얼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무슨 동물원의 동물을 관찰하듯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게 괜히 열 받아서, 이얼도 잔을 쭉 들이켰다.


“――크하핫―!”


미간에 힘을 주고 있는 힘껏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얼른 가장 가까이에 있던 감자튀김을 집어삼켰다. 소주랑은 비교도 안 되는 화끈함이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뭔가 굉장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어때, 괜찮지?”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으며 지에는 다시 잔 두개를 모두 채웠다. 단, 이번에는 아까와는 다르게 단서를 달았다.


“한 번에 못 마시겠으면 조금씩 입만 적셔도 상관없어. 이 술이 마시면 금세 취기가 올라버리니까 조심해야 되거든. 대신에 아침에 숙취 같은 건 거의 없다는 게 장점이고.”


“그럴 바엔 차라리 맥주를 마시고 안 취하는 게 낫지 않나?”


“언니는 꼭 쓸데없이 한마디씩 더 하더라? 뭐, 어쨌든 한잔은 쭉 들이켰으니 이제부터는 적당히 마셔. 이 술은 마시면서 만취하는 건 예의가 아닌 술이니까.”


마치 구세주의 말을 들은 것처럼, 이얼을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 때부터는 굳이 건배 같은 거 없이 자연스럽게 마시기 시작. 그렇게 마시면서, 리세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있다면서 종이 가방 안에 들어있던 서류철을 꺼냈다. 겉면에는 [인사자료 -한이얼-]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번에 연구소에서 온 이얼 인사 자료. 자격이 있는 사람만 볼 수 있는 제한자료이긴 한데, 그 자격이란 게 우리 부대원이기만 하면 누구나 포함되는 낮은 등급이라 이렇게 다들 둘러봐도 상관없다 싶어서 가져왔어. 어차피 진짜 중요한 정보는 여기에 안 들어있으니 그렇다지만.”


그리고는 곧장 펼쳐보였다. 가장 첫 장에 있는 건 기본적인 신상정보. 붙어 있는 사진을 포함해서 전부 이얼이 스스로 작성한 것이었기에 당연히 매우 잘 아는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보여주면 틀림없이 뭔가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얼른 사진을 가리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오오, 이건 진짜 괜찮은데?”


지에의 감탄사. 사진 속의 이얼은 적당히 긴 머리에 지금보다 각이 덜 진 느낌의 얼굴을 가진 미소년이었다. 지금도 나름 괜찮은 얼굴이지만, 직업군인으로 1년 이상 지내다보니 당시보다는 많이 인상이 달라져있었다.


좋게 말하면 남자다운 인상이고, 나쁘게 말하면 험악한 인상으로. 진짜 몇 년씩 군인으로서 생활을 한 사람들이 보면 애송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고등학교 시절과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이 이얼을 앞세워서 여자애들을 만나러 다닐 정도였는데, 지금은 도무지 그럴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미소년이 이렇게 되지? 역시 군인은 안 된다니까.”


리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진 속에 있는 미소년이 그 얼굴 그대로 전입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그대로 묻어나는 태도였다.


“수염이라도 깎으면 좀 나으려나? 턱에 얍삽하게 자란 수염이 있으니까 인상이 더 안 좋아 보이지 않아?”


“수, 수염은 상관없잖습니까!”


일부러 여기까지 기른 수염인데. 은근히 턱에 각이 생기면서 인상이 많이 남자다워지니까 수염도 길러보면 멋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모양을 가다듬어가며 만들어놓은 턱수염이었다.


하지만 지에는 가차 없었다.


“그냥 보고 있으면 확 밀어버리고 싶어지는 그런 수염인데 말야.”


“스무 살로 안 보이는 그런 얼굴이 되어버리잖아, 수염 때문에.”


두 여자의 그런 공격에 이얼은 침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수염을 깎아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드는 게, 참 중증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덧 종이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이야기도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전에 있던 부대에서는 에이스 대우를 받았다면서?”


“아니, 뭐……, 그냥 조금 실력이 괜찮았던 것뿐이에요. 옆에서 좀 치켜세워주니까 괜히 우쭐해 있다가 크게 당하기도 했고.”


“여기 기록으로는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걸로 되어있는데 말야. 그거 한번 잘 안 되었다고 신경 쓰다가는 진짜 큰일 날 거야, 안 그래?”


지에의 질문에 리세는 고개를 가로저어보였다. 지에로서는 당연히 긍정하면서 조금 어두워진 분위기를 바꿔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정반대인 리세의 태도에 슬쩍 고갯짓으로 ‘눈치 없이 뭐하는 거야?’라는 의미를 실어 보냈다. 하지만, 리세는 그 고갯짓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한 번의 실수가 때로는 크게 다가올 수도 있는 거야. 특히 이얼 군 같이 정규군 소속인데다가 직접 전투를 하는 부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전투 지원 위주로 운용을 하는 부대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물론 그거에만 매달려있을 수야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옆에서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면서 잊어버려, 잊어버려! 그럴 수는 없는 거라고.”


“흐음…….”


미묘하게 납득을 할 수가 없다는 표시로 고개를 약간 가로저어보이는 지에. 리세는 그걸 보며 싱긋 웃고는 드디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뭐, 그건 이 정도로 넘어가자고. 내가 진짜 궁금한 건 따로 있으니 그것부터 물어볼게.”


“예에…….”


리세가 지금 들여다보고 있는 건, 이얼의 전입 및 전출 기록이었다. 거기에서 좀 특이한 걸 발견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본 다음에 질문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직업 군인으로 간 게 아니라, 원래는 단기 사병으로 입대했었네?”


“에?”


지에가 서류를 얼른 가져가더니 그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꽤 놀란 눈으로 이얼을 쳐다보았다.


“진짜네……. 이런 게 가능하긴 한가?”


“원칙적으로는 안 되지만, 특례라는 게 있더라고요. 대체 어디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저격수로서 재능이 있다면서 테스트를 받아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받았더니, 바로 합격이 되서 직업 군인이 된 거야?”


“아뇨, 테스트 거절했어요.”


테스트를 거절하고 단기사병으로서 기초 군사훈련을 마쳤다. 하지만, 그 때 조금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전군 첨단 최적화 정책으로 인해 단기 사병의 필요량이 줄어든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단기사병 지원이 들어오자 병역 관련법 하나가 바뀌어버렸던 것.


“솔직히 단기 사병으로 간단하게 복무한 다음에 전역하면 군 복무 혜택 가지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단기 사병의 복무 인정을 없애버리더라고요. 대신에 단기 전문병이라면서 급료를 올려주고 처우 개선을 하는 쪽으로 대신한다고 했던가?”


“그런 일이 있었나?”


애초에 직업 군인이었고, 단기 사병을 볼 일이 거의 없는 전투 부대 소속으로서는 알 리가 없는 일이었다. 나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었지만, 애초에 단기 사병의 개념도 잘 모르는 지에로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일일 뿐이었다.


“우리 부대에는 그런 단기 사병은 없으니까 나도 별로 관심 없는 문제였는데, 누구에게는 진짜 인생에서도 중요한 일이었네.”


“뭐, 그렇죠. 마침 저격수 특례 이야기가 다시 나와서 얼른 받아들여버렸죠. 테스트도 쉽고 해서 금방 직업 군인이 되어버렸죠. 그렇다고 해도 평생 이걸 할 생각은 없지만요.”


“누구나 그렇지. 진짜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 생기면 군인은 금방 그만둬 버릴 생각하는 사람 엄청 많을 걸.”


“나는 이거 말고는 할 만한 일도 없는데―”


그러면서 침대에 드러누워 버리는 지에. 그리고는 팔을 머리 위로 뻗으며 길게 기지개를 폈다. 그걸 바라보고 있던 이얼이, 문득 궁금한 게 생각이 났는지 두 사람에게 질문했다.


“저야 그렇다 치고, 두 분은 여기 오기 전에 어떤 곳에 있었어요? 여긴 특무 부대라고 하니까, 다른 곳에서 필요한 인원을 충원해오는 식이었을 것 같은데.”


먼저 대답을 한 것은 리세.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미트볼 하나를 집어먹은 다음이었지만.


“나랑 지에는 여기에 오는 과정이 나름대로 특이해. 나부터 말하자면 원래는 프로그램 개발하는 곳에 있었는데 프로그램 개발이 아니라 사무 업무만 하는 직원이라서 할 일이 별로 없더라고. 주변에는 온통 밤새도록 일한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나하고 같이 사무 업무 보는 몇 명은 퇴근 시간을 정말 제대로 지키고 출근 시간도 여유 있게 오는 그런 식으로 해도 시간이 남아돌았으니까 말야.”


“그러면서 돈은 엄청 받았잖아. 일도 안 하면서 돈만 받아 챙겼어, 우와.”


“원래 그 회사가 평균 연봉이 높은 곳이었다니까. 여하튼 그렇게 있다 보니 심심하던 참에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걸 찾아냈지. 가상의 군 병력을 실시간으로 움직여서 적을 물리치는 그런 소재였는데 네트워크로 다른 사람이랑 경쟁이 가능하더라고. 너무 재미있어서 집에서도 하고 회사에서도 시간 날 때마다 하다보니까 어느새 승율 96%로 압도적인 1위가 되어버렸어. 그랬더니, 곧 여기서 시험부대 작전 담당 군무원으로 일 해볼 생각이 없냐는 이야기가 나와서, 실제 군 병력을 운용하고 싶다는 생각에 덜컥 들어와 버렸지 뭐야.”


“와아…….”


이런 식으로도 군인이 될 수가 있을 줄은, 이얼로서는 상상도 못 했다. ‘전략 게임을 잘 해서 작전을 담당하는 군인이 되다니. 아니, 정확하게는 군무원이구나. 작전 담당을 군무원이 해도 괜찮은가? 뭐, 어쨌든 굉장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지에가 몸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술을 한잔 쭉 들이켰다.


“……크하으앗―! 으, 죽겠다―!”


“그런 말 할 거면 그냥 먹질 말아요.”


“뭐,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다음은 내 차례이니, 이야기하기 전에 마신 거 가지고 너무 뭐라 그러지 말라고.”


굳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렇게 마셔댈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긴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냥 넘어갔다. 그 의문의 바로 뒤를 이은 게 자신은 항상 지에에게는 이런 식으로 물러서고 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넘어갔다.


지에는 안주로 생선포 같은 걸 질겅질겅 씹어 꿀꺽, 목으로 넘긴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꽤 특이하긴 한데, 리세 언니처럼 게임 하다가 들어온 그런 식으로 특이한 건 아니고 그냥 조금 다른 성향의 부대에 있었던 것뿐이야.”


“다른 성향이요? 지금은 이런 기체를 몰고, 그 로켓포 같은 걸 쏘지만 원래는 특공부대 같은 곳에 있으면서 침투 연습 같은 거 하고 그러기라도 했어요?”


“비슷한데 조금 다르네. 확실히 침투에 암살 훈련 같은 걸 하고 실전도 하고 했었지. 하지만, 특공 부대 같은 거는커녕 정규군도 아니었어. 동남아 쪽에서 성행하는 용병 부대 중에 하나였어. 거기서 평소에는 마피아처럼 인근 사람들 괴롭히면서 돈푼 뜯어내다가 정규군에서 대놓고 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생기면 전투도 하고 그런 일을 했었어.”


“에에…….”


할 말 없음. 요즘 같은 시대에도 그런 부대가 있으리라는 건 생각도 못 했었다. 용병이라고는 해도 정규군과 거의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일한다고 알고 있었기에 마치 정치깡패 마냥 그런 일을 하는 용병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얼은 아까 분명히 지에의 나이가 자기 친누나와 같이 자신보다 4살이 많은 24살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용병부대에 있을 수 있었던 건지 의문이 들어서 그걸 바로 물어보았다.


“그 용병 부대에는 대체 언제 들어간 거예요? 그런 곳에서 지내다가 정규부대가지 오려면 나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아, 15살. 용병 중에서는 그리 이른 나이는 아냐. 심하면 10살 전부터 잔심부름으로 용병 생활을 시작하는 녀석들도 있었으니까. 나야 나이도 있었고, 악에 받혀서 날뛴 덕분에 일찍 정식 전투원이 될 수 있었지.”


“악에 받혀서 날뛰었다고요? 전혀 상상이 안 되는데…….”


이얼이 생각하기에는, 지에라면 그렇게 막 날뛰는 것보다도 뭔가 시원시원하게 일을 처리하며 문제가 있어도 씩 웃어 보이고 말 것 같았다. 며칠 만에 지에에 대해 이미지가 확실하게 박혀있다는 게 자신으로서도 신기했다.


지에는 조금 씁쓸하다고 느껴지는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하긴, 지금과는 전혀 달랐었어. 그 때는 진짜 말 그대로 작정을 하고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뛰어다녔어. 정말로, 내가 죽어도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어, 어째서요?”


“흠, 설명을 하자면 좀 복잡한데……, 숨기거나 하는 일은 아니니까 이야기해주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만.”


그 때, 가만히 듣고 있던 리세가 끼어들었다.


“내가 조금 보조를 할까. 이 이야기에는 먼저 사전 지식이 조금 필요하거든. 이얼 군은 2차 전면전이 언제였는지 알아?”


전면전은 남과 북이 지금처럼 대치 상태에서 작은 전투를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마주하고 있는 대다수 지역에서 동시에 전투가 진행되었을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에 1차 전면전이 일어났고 그 4년 뒤에 2차 전면전이 발발했다. 즉 2차 전면전은.


“14, 5년 정도 전으로 알고 있어요.”


“응, 맞아. 그럼 그 때 전선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는 알고 있어? 다른 곳 말고 여기 중국에서.”


“남부 지역까지 전장이 되었다고는 알고 있지만,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뭐, 그 정도만 알아도 충분해. 지에는 남부 중에서도 후난성 남쪽 시골에 살았거든. 거기는 전쟁 중에 제일 치열한 백병전이 있었던 곳이야. 그리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인 폭격으로 인근을 아예 갈아엎어버렸고. 그 때는 민간인 마을이라거나 이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는 듯 해.”


“그건 설마…….”


지에가 “에휴―”하며 장난스럽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뭐, 흔해빠진 이야기야. 그 폭격 중에 나 말고는 전부 죽어버려서, 친척집에서 자라다가 반항기에 확 틀려서 집을 뛰쳐나갔고 무작정 남쪽으로 가다가 여차저차해서 용병단에 들어가 버린 거지. 그 이후로는 작전 하다가 우연히 지금 우리 조장인 린든 중사 님 눈에 들어서 여기로 스카우트된 것까지. 자, 내 이야기는 이걸로 끝. 자, 마지막으로 한잔하자 늦었네.”


이야기를 끝내면서 시계를 슬쩍 쳐다보더니, 술이 차있는 잔을 들며 곧장 마지막을 선언했다. 이얼도 시계를 쳐다보니, 벌써 밤 11시 30분이 다 되어가는 시간. 여기서는 기상 시간제한 없이 8시 40분에 있는 아침 점호에만 참가하면 그만이라 아침이 그리 바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너무 늦게 자는 건 불가. 일직 자고 일찍 일어나야 좋은 군인이라는, 뭐 그런 거였다.


이얼의 잔에는 반 조금 안 되는 정도만 술이 남아있었고, 리세의 캔에도 밑에 찰랑찰랑 하는 정도. 지에와 같이 쭉 들이켠 다음에 테이블 위를 정리하고 챙길 걸 전부 챙긴 다음 술자리를 마치기로 했다.


“우리 갈게, 잘 자라.”


“이얼 군, 내일 봐―”


두 사람이 나가자, 방은 이내 조용해졌다. 시계도 알람 기능만 있는 디지털시계가 초침 돌아가는 소리 같은 것도 없어서, 작게 ‘지이―’하는 소리를 내고 있는 형광등을 끄자 정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서 몸을 뒤척이자 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아, 술 때문인가? 눕자마자 잠이 쏟아지네…….”


진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얼은 바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