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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L.S. 특무강화중장갑보병중대 -

2008.04.16 07:42

Earthy 조회 수: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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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어찌되었든 전쟁 중이었다.


 


그의 고등학교 마지막 시간은 세계사 수업이었다. 말 그대로 마지막이라 실제로는 수업보다는 교사의 잡담시간에 가까웠지만. 그 내용도 당연히 교과서에는 실려 있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세계 모습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거다, 이거지. 그 전에는 세계가 온통 저마다의 의견에 따라 마음대로 움직였거든. 정부가 200개가 넘었다고 생각을 해봐라. 지역 정부 같은 게 아니라, 아예 서로 독립되어있었단 말야. 이게 정리가 됐겠냐?”


전형적인 통합 정부 신봉자였다. 이 이야기의 바로 전에는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에 대해 비판을-가장한 비난을-하기도 했다. 민족-Nation-의 개념 자체도 허구라고 주장하면서 꽤 열변을 토하고 있었지만, 막상 학생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으니 흘려들을 따름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놈들이야 진짜 나쁜 놈들이잖아. 초기에는 인구가 천만 단위로 죽어 나갔으니까, 진짜 치열했다고. 그래도 그 덕분에 세계가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어쩌면 이 전쟁은 필연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거지.”


그가 주위를 둘러보니, 몇몇은 엎드려 자고 있었다. 뒷자리에서 보일 정도로 침을 튀겨가며 열변 중인 교사를 마치 배경인양 취급하는 듯 했다. 그 열변이 오히려 수면 유도를 해버렸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교사의 이야기는 계속 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그 전쟁을 일으킨 놈들 말야, 대체 뭐하는 놈들인지 도통 모르겠다고 하잖아. 어디에서는 무슨 외계인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말도 안 되고……, 내 생각에는 이제까지 숨어있던 조직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이거지. 왜 그런 것도 있잖아. 프리메이슨인가 하는 거. 그런 조직이 실제로 존재했던 게 아닐까, 이거지.”


이제는 슬슬 헛소리로 접어들고 있다. 흘끗 시계를 보니 다행히도 마칠 시간. 자, 종이나 쳐라, 종이나 쳐라.


따라라라~ 라라~ 라~


수업이 마치는 신호와 함께 엎드려있던 녀석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모두가 종례하고 집에 가는 것만 기대하는 눈치. 하지만 교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뭐 사회 전체가 그 전쟁 때문에 이상하게 돌아가는 건 사실이지. 국가 개념이 무너지고 진정한 통합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 방향이 파괴적인 곳을 지향해서는 안 되는 법이야. 그런 의미에서.”


잠깐 책을 정리하며 말을 끊었다. 그래도 수업이라고 꿋꿋이 교과서 마지막 페이지를 펴놓은 상태였던 것. 교탁 위를 깨끗이 정리한 다음, 그 뒤를 이었다.


“난 너희들이 가능하면 대학교에서 학문을 익히길 바라고 있다. 이 중에는 군 입대를 작정하고 있는 녀석들도 있겠지만, 웬만하면 미래를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는 거지. 뭐, 이 정도까지만 할까. 반장.”


차렷,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끝나자마자 곧장 담임이 들어오더니 크게 별말 안 하고 2분 만에 종례를 끝내버렸다. 어차피 졸업식 같은 것도 없고, 그냥 증서만 나눠주고 끝이니까 알려줄 그런 말들도 없었다. 증서는 홈페이지에서 찾아가도록, 정도.


“야, 한이얼. 오늘도 혼자 빠지냐?”


그를 향해서 원성이 들려와 뒤를 돌아보니, 1학년 때부터 계속 같은 반이던 친구 녀석이 일련의 무리와 함께 씩 웃고 있었다.


“미안, 미안. 오늘도 일이 좀 있거든.”


“이번 달 들어서는 계속 혼자 휙휙 가버리는 통에 애들이 얼마나 날 원망하는 지 아냐?”


친구가 말하는 ‘애들’은 얼마 전부터 같이 어울리던 다른 학교 여학생들. 나름 인물이 되는 이얼 덕분에 꽤 길게 친목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며칠 동안 계속 혼자 사라져버리는 이얼에 대한 원성을 친구가 전부 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안하다니깐. 오늘이면 끝나니까 언제 연락하면 나갈게. 됐지?”


“내일부터는 학교도 안 나오니까, 연락하면 제깍제깍 나와야 된다, 응?”


“오냐, 그러마. 그럼 먼저 간다.”


이얼은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얼른 가방을 들고 자리를 떴다.


교문을 나와 곧장 버스에 탔다. 목적지는 병무관리국 지방 사무청. 며칠 전부터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모아둔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사회 보장 증서, 주민 거주 등록증, 잔고 증명서하고 또…….”


필요한 서류만 열 가지 가량. 예전에 국가 체계가 남아있을 때에는 모든 개인 정보가 전산 처리 되어있어서 이럴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곧 도착. 이얼 이외에도 교복을 입은 채 꽤 길게 줄을 서 있는 걸로 봐서는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듯 했다.


군 복무 기록이 있으면 참정권을 포함한 여러 가지 권리를 얻을 수 있고, 취직 활동에도 보이지 않게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얼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장 단기인 3년 복무를 할 생각이었다.


3년 복무의 경우에는 가장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선발 기준이 엄격해서 솔직히 될 지 어떨 지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준비는 했고, 선발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신체 단련도 부지런히 해두었기 때문에 일단 부딪혀볼 작정이었다.


줄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줄어 곧 이얼의 차례가 되었다. 접수처에 있는 여성이 이얼이 내민 봉투를 받아들고 안에 있는 걸 전부 꺼냈다.


“있고, 있고, 있고……, 다 있네요.”


“그걸로 접수 끝인가요?”


“예, 끝이에요. 이거 받으시고, 가시면 돼요.”


그녀가 건넨 건 작은 메모장 크기의 종이에 관인과 함께 접수 번호가 기록된 접수증이었다. 접수증의 가장 하단에는 3주일 후 홈페이지에서 해당 번호로 확인하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고개를 숙여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바로 빠져나왔다. 자신의 뒤로 줄이 길게 늘어서있는 걸 보며 출구로 나온 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5시 가량. 어디 갈만한 곳이 있나 잠깐 생각해보다가 없다는 걸 알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이얼은 훈련소 앞에서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들어가도 휴가 같은 거 금방 나온다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은 무슨. 어차피 3년 단기는 전투에 나가지도 않는다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아버지의 표정은 그야말로 시큰둥했다. 반면, 그래도 고생하는 건 마찬가지라면서 어머니는 계속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나는 지루하다는 듯이 빨리 들어가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럼 들어가 볼게요. 6주만 있으면 그 때부터는 자주 나간다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흠. 알았으니까 얼른 들어가 봐라.”


“몸조심해야 된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


누나의 발이 휙 올라오더니 이얼의 엉덩이를 냅다 차버렸다. 평소에 늘 당하는 거라 별로 기분 나쁘지는 않았지만, 주위에서 펴다보는 바람에 부끄럽긴 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얼른 뛰어 들어갔다.


3년 단기는 어디까지나 후방 사병이기 때문에 실제 전투를 하는 것도 아니고, 행정 업무를 주로 하는 편이다. 그래도 군사 훈련은 모두 받기 때문에 처음에 들어가면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체력 검사까지 전부 통과한 만큼 그런 게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3년 간, 어느 부대가 되던 열심히 참고 버티면 나중에 밝은 미래가 온다. 그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고 훈련소 정문을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