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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브릿트만 하슈 - The Person Key

2007.02.27 06:09

MrGeek 조회 수:227 추천:1

extra_vars1 The Person 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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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대학 브릿트만 CT팀 지하 실험실

오래된 라디오에서나 들릴 법한 딱딱한 전자음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너무나도 익숙한 노래, 입술의 꿈틀거림이 점점 격해진다 싶더니 결국엔 그 익숙한 음에 입모양을 맞추게 된다. 저 쪽에서 들려오던 깨끗한 여성의 목소리에 묵직하고 어딘가 맛이 간듯한 내 목소리가 섞였다. 어쩐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개의 목소리가 예상 밖으로 듣기 좋다 못해 감미로운 화음이 되어 내 고막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그래그래!! 바로 이거야!!!"

사 하라 대학의 숨은 인재 하슈 브릿트만의 거작이 완성되는 순간 이었다. 저 멀리서 울려퍼지는 '듣기좋은' 노랫소리는 마치 인간의 것과 같이 은은히 실험실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자슈 크리스탄 브릿트만 CT23 - 메를린'. 우리가 짧게 '메를린'이란 애칭으로 부르는 이 실험체가 "노래를 불러라"란 이름의 첫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브릿트만 박사는 어린 시절 테도의 영상 유적으로부터 '쵸빗츠'란 새로운  메카닉의 개념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일생을 쵸빗츠의 완성을 위해 바치겠다는 각오로 만 58년이란 일생의 대부분을 투자해 결국은 오늘의 CT(ChobiTs)23을 완성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미개한 일반인들은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기위해 애쓰는 허접한 인간 모조품" 정도로 비웃기도 하지만서도 그 분의 쵸빗츠에 대한 피와 땀을 바로 곁에서 지켜본 우리들은 그의 학자로써의 열정에 감히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박사님, 축하드립니다!!"
"정말 결국엔 해내실줄 알았다니깐요!!"
"그래도 조금 전의 전자 쇼크땐 정말 가슴이 덜컹 했다니까..
이대로 영원히 이 세상과의 연을 끊는줄 알았지 뭐. 하하하하하"

수많은 감탄들이 나를 포함한 제자일동으로부터 쉴새없이 터져나온다. 분명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위하여 마음 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뒀을 값진 말들일 것이다. 

"고맙네.."

힘 없는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답을 하시는 박사님이다. 함께 고생을 하긴 했지만서도, 박사님은 연세가 지긋하시기에 아마 우리보다 배는 더 힘드셨을 것이다. 안 그래도 왜소한 몸집과 흰 백발 등으로 이유없이 약해보이시던 박사님이 오늘은 더욱 위태위태하고 불안해보인다.

"헤에.. 정말 인간의 노랫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이 곳에 계셨는지 모를 메슈씨가 한 마디 꺼낸다. 메슈씨는 사하라의 유명한 과학잡지 '티탄'의 수석 기자로써 여러 과학자들의 연구성과에 대해 현실적이고 냉철한 기사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몇몇 과학자들로부터는 쓸데없는 디스토피아적 기사로 민중을 선동한다며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뭐.. 실제로 그럴만한 기사를 자주 쓰시기도하고 솔직하게 말해서 나 역시도 그렇게 반기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박사님이 원하시던 '인간 이상'의 성과까지는 도달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군데 군데에서 부족한 감이 적잖아 드는군요."

역시, 또 이런류의 악답이 이어지는군.. 아니 어차피 기대도 안했고.. 이 이후의 상황 역시도 뻔할 뻔자일 것이다.

"쳇, 여전히 건방진 말만 내뱉는구만"

나 의 동료이자 브릿트만 CT팀의 메카닉 엔지니어인 디토의 묵직한 한마디가 터져나온다. 제 딴에는 흘러가는 말이라고 했을지 모르나 워낙에 굵고 큰 목소리다보니, 타인에겐 그렇게 들릴 수가 없을 것이다. 거기다 이 녀석은 담당에 걸맡게 적절하게 과격한 성향이 있어, 이렇듯 잠깐을 못 참고 일을 일으키는데 선수다.

"글쎄요. 이건 건방지다기보단 지극히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말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뭐.. 건방지고 주제넘는 말을 하는건 제 쪽이 아닌 그 쪽의 특기가 아닐까.. 하는데요?"

아 무렇지도 않다는듯이 이런 날카로운 한 마디를 던진 메슈씨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제스쳐를 양 손으로 취한다. 그리곤 검지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안경을 고정시키는데, 평소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디토가 이런 특별난 무시행동에 열이 뻗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곧, 흥분한 디토의 무서운 돌진이 이어진다.

"이- 자식이!!"

곧 메슈씨를 덮친 디토의 주먹세례가 이어진다. 당황한 메슈씨는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얻어 맞기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지도 못한 돌발상황에 날라오는 주먹도 보통의 주먹 이상으로 강할 것이기에 반항을 할래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말릴 생각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다른 녀석들은 메슈씨의 얼굴이 붓기 시작한걸 확인한 후에야 두 사람을 저지하기 시작한다. 꽤나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내 가 그들을 저지하기위해 막 달려나가려던 순간. "바, 박사님!!" 하는 이상한 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곧바로 돌아보니 브릿트만 박사님이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고 계셨고 방금전 비명소리의 주인인듯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 한 분이 박사님을 안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디토와 메슈씨, 그리고 그들을 저지하러간 모든 멤버들이 당황하여 소리친다.

"박사님!!!!"

사하라 국립 종합 병원

이 곳에 박사님이 누워계신다. 우주에서 내려다 본 계곡의 생김새마냥 박사님의 이마엔 깊은 주름이 자잘하게 잡혀있다. 보기에도 안쓰러운 몰골에 눈물이 핑돈다. 이건 박사님에 대한 동정의 눈물이 아닌 자신의 몸을 버려가면서도 자신의 창작물에 모든 집념을 쏟아 붓는 한 명의 학자에 대한 존경의 눈물이다.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라면 브릿트만 박사님은 가사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황당하게도 원인은 불명. 단순 과로라고 생각했던 우리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꼴이 되었다. 브릿트만 CT팀의 해체는 물론 박사님의 생명마저 위태위태한 심각한 사태가 도래한 것이다. 정말 참담하군..

그의 침대 옆 하얀 테이블에 수북히 쌓여있는 화려한 꽃과 과일들이 나에게 이상야릇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이 것은 '괴로움'이라는 감정에 가까울 것이다.

그 나저나, 그 때 박사님을 안고 있던 여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당황한 상태에서 급히 병원으로 모시느라 여유있게 이름 정도를 물어볼 겨를은 없었던 것 같다. 뭐, 박사님의 수많은 지인 중 한 사람일 것이라고 대충 마음속에서 얼버무려본다..

브릿트만 박사의 저택 앞

괴 로운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마시기 시작한 한 잔 한 잔의 술이 결국엔 과음으로 까지 이어졌다. 자신의 숙취에 이기지 못하고 결국 이 곳까지 와버렸다. 대체 난, 여기서 뭘 하고 싶은 걸까? 애초에 독신이셨다가 10년전쯤 입양하여 키우던 양자마저도 결국 교통사고로 잃으시고는 재작년부터 다시 혼자가 되신 박사님이다. 이 딱하신 분은, 가끔 자신의 집에서 쉬어갈 나를 기대하며 이렇게 키를 맡겨주셨다. 나를 아들과 같이 여겨주시는 것이다.

".. 오늘은 아무래도 이 집에서 신세좀 져야겠습니다. 박사님.."

누구도 들을리 없는 무음과같은 한 마디를 남기고 집으로 들어섰다. 그 이후 곧 바로 알콜을 이기지 못한 몸은 침실에 채 도달하지 못한 체 쓰러지고 만다.

다음 날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

시 끄럽게 울리는 자명종의 전자음에 무거운 눈꺼풀이 들어올려졌다. '조금 있으면 알아서 꺼지겠지'란 생각으로 버텨보려했으나 도저히 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결국 울리는 머리는 뒷전으로 한 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 엄청난 소리의 근원지인 침실로 들어간다.

브릿트만 박사의 침실

우 선 시끄럽게 울리는 시계부터 끈다. 이 녀석 내가 직접 끄지 않았으면 전지가 다할 때 까지 울릴 기세였나보다. 시계의 위쪽에 위치한 Loop란 라벨의 스위치가 On을 가르키고 있었다. 끊임없이 울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5시라.. 보통 밤 12시가 되어서야 실험실에서 퇴근하시는 박사님을 떠올려본다면, 박사님의 부지런함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암-

내 게 있어 새벽 5시라는 시간은 아직 한 참 코나 골고 있을 시간이다.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머리가 아프다면서도 잘도 자신만의 변명거리를 생각해내더니 잠시간 더 눈을 붙이자라는 허무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곤 슬며시 근처에 있던 박사님의 침대에 몸을 눕힌다.

"음? 이건 뭐지.."

등 쪽에서 뭔가 딱딱한 것이 느껴졌다. 하드커버의 굵직한 노트였다. 'The Person Key'라는 제목과 '브릿트만 하슈'라는 저자의 이름인듯한 문자가 적혀있었다. 박사님의 노트라고 추정된다.

"박사님의 노트!?"

박사님의 CT에 대한 연구노트일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두꺼운 하드커버를 넘겨보았다. 그러자 '브릿트만 하슈의 비밀 일기'라는 예상치 못한 부제가 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