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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어둠을 먹다

2008.02.14 04:21

과자 조회 수:764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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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실 위층에 위치한 훈련실. 이곳에서는 훈련생 및 현역 에스퍼들을 위한 훈련이 이루어진다. 집중실, 컨트롤 훈련실, 기술 훈련실, 실전 무투실 등으로 구성된 이 곳은 에스퍼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마련된 곳이었다. 에스퍼들은 평소에 ESP를 쓸 일이 없었을 뿐더러 특별법 상으로도 허가 없는 ESP의 사용은 불법이었지만 비상시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항상 이 곳에서 최고의 감각을 유지하고 있어야 했다.


 태하는 빠르게 걸어가는 리아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훈련실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짧은 시간 동안 리아는 태하로부터 고개를 돌린 채 계속해서 휘파람을 불었다. 태하는 리아를 곁눈질로 쳐다보았지만 리아는 못 본 채하고 층수를 표시하는 숫자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 안가 훈련실에 도착하자 리아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걸어갔다. 태하는 그런 리아의 모습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리아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훈련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집중실이었다. 도어의 문을 열고 리아와 함께 집중실에 들어가자 측정실에서 보았던 의자와 비슷한 기계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조작법도 같았다. 태하는 리아의 시선을 의식하고 의자에 앉아 스스로 케이블을 머리에 연결하고 편안히 앉았다. 그리고 리아는 한 쪽 벽에 위치한 제어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리아는 곧바로 기계를 작동시키지 않았다. 제어실 한쪽에 위치한 또 다른 기계에 손을 대고 있었다.


 “불법인건 알지만, 어쩔 수 없잖아?”


 혼잣말을 중얼거린 리아는 기계를 작동시켰다. 기계의 위쪽에는 ‘증폭기’라고 쓰여 있었다. 태하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사이 리아도 증폭기에 연결되어 있는 케이블을 자신의 머리에 연결했다. 그리고 집중실 본 기계 앞에 앉아 훈련을 시작했다. 리아가 제어판을 조작함과 동시에 집중실 전체에 낮은 소음이 깔렸다. 태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여긴…어디?


 쓰레기로 가득 한 길, 곧 무너질 듯 겨우 버티고 있는 판잣집과 천막들. 이곳은…게토? 아아, 게토다 게토야. 내가 거두어진 곳. 내가 길러진 곳. 그리고 내가 떠나온 곳. 편안해. 이 곳에 있으면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느낌이야. 머릿속의 모든 잡념들을 버리고 웃을 수 있는 나의 고향.


 저건 뭐야. 먹구름? 아니, 그것과는 달라. 어둠이 몰려오고 있어. 무한한 우주와 같은 끝없는 어둠. 어둠이 게토를 집어 삼킨다. 안돼, 그만 둬. 나의 고향, 나만의 안식처를 해치지 말아줘. 꺼지란 말이야.



 고향-? 웃기지마.


 누구야? 방금 그 목소리는 누구지?


 이곳은 너의 고향 따위가 아니야. 우리는 널 원하지 않아.


 당신 누구야? 어딨어!?


 나自는 너他. 너는 나. 여기는 나의 마음心, 그리고 너의 마음 속.


 그게 무슨 말이야. 알 수 없는 소린 집어 치워!


 ‘알 수 없다’라. 도대체 너는 무엇을 알려고 하는 거지? 너 자신이 누군지는 알고 있나?


 나는 태하, 김태하.


 그것뿐이야? 그것만 가지고 너 자신을 알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나? 택도 없는 소리지.


 그 외에 뭐가 필요하다는 거지? 나는 김태하야. 그걸로 충분하잖아…?


 그것은 너의 이름. 타인他人들이 너를 지칭하는 하나의 개념槪念. 그것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 타인의 정의定意에 만족할건가? 그 정의 하나만으로 너는 너 자신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


 이 세상에 네 편은 없다. 너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미생물에 불과해. 100억에 가까운 인구 속에서 혼자 있는 외톨이지. 너는 혼자다.


 아니야.


 외톨이. 왕따. 은둔자. 비겁자. 도망자. 너 따윈 죽어버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무능력자. 사기꾼. 겁쟁이. 배신자. 거짓말쟁이. 너 따윈 사라져버려.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나는 너를 알아. 너도 나를 알지. ‘안다識’는 게 뭐지? 그 사람의 이름을 안다는 건가? 아니, 부족해. 이름은 단순한 개념무장槪念武將일 뿐이야. 하지만 분명히 너는 나를 알고 있어.


 내가, 너를 안다고? 무슨 소리야. 얼굴을 보여, 네가 더 비겁하잖아. 네가 더 겁쟁이잖아! 모습을 보이란 말이다!


 큭큭, 모습이라. 그 또한 하나의 형상形象. 그것만으로 나를 알 수 있을까? 네가 알고 있는 나는 그런 게 아니란다, 애송이. 그래, 소원이라면 보여주지. 이게 나다. 이게 나라는 형상이다.



 어둠 속에서 커다란 기둥이 내려온다. 번개가 느릿느릿 내리치는 것처럼 내 앞으로 다가온다.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지켜본다. 기둥이 내 얼굴 가까이로 내려온다. 그리고 기둥의 모습은 변해간다. 얼굴이다. 사람의 얼굴. 눈이 새겨지고, 코가 만들어지고, 입이 생겨난다.



 그 모습, 이 목소리. 그래, 난 당신을 알고 있어. 당신은, 당신은…!




갑자기 태하가 눈을 떴다. 그리고 동시에 바닥으로 꼬꾸라지면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