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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어둠을 먹다.

2008.01.25 18:40

과자 조회 수:596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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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ario 2   Restart




 “후퇴하라! 전군 철수하라!”


 여기저기 찢어진 군복을 입은 사내가 외쳤다. 목소리에서 긴급함이 느껴졌다. 얼굴은 땀으로 절어 상황이 급박함을 알려주었다. 사내의 주위에는 많은 수의 군인들과 에스퍼들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자신이 해야 할 일, 다른 인간을 살해하라는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에 당황한 듯 한 방향으로 죽어라 달려갈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한 무리의 사람들. 그들은 도망가는 군인과 에스퍼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살의가 가득한 얼굴을 한 채 하나의 ‘생명’을 말살시키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죽으면 안 된다. 달려라. 죽여야 된다. 달려라. 달리고 달리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한 명의 존재를 소멸시키려는 지옥의 레이스.


 "Seventh Rainbow!"


 외마디 외침과 함께 도망가는 사람들의 뒤쪽에서 일곱 방향의 염력이 날아들었다. 일곱 개의 염력은 하늘 높이서 갈라지더니 도망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전방위 염력 공격이었다. 한군데로 응축된 염력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다. 팔이 뜯기고, 다리고 뜯기고, 머리가 뭉개졌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고 살려달라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생명이 죽어간다. 이 세계의 주인이라던 인간들이 하나하나 죽어간다.


 “자, 가라!”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많은 수의 에스퍼들이 튀어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임무는 전방위 공격에 살아남은 인간들을 접근전으로 죽이는것. 접근전에 특화된 에스퍼들이었다. 각자의 손에 모든 esp를 집중하고 달렸다. 그리고 사정범위에 들어오자마자 손을 뻗어 한 명씩 차례로 죽여 갔다. 자비는 없다. 용서도 없다. 이유 없이 서로 죽이고, 이유 없이 서로 적대할 뿐. 도망가는 사람 중 생존자는 거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옥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칼에 베이고,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무언가에 눌려 짓이겨지고 팔다리가 찢겨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두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풍경이었다.


 “정부의 시다바리들, 역시나 약하군.”


 수많은 시체더미들 앞에서 한 사내가 말했다. 예의 전방위 기술을 쓴 에스퍼였다. 그는 각기 다른 옷을 입고 있는 일반 에스퍼들과는 달리 제대로된 옷을 갖추어 입고 있었다. 사내는 시체더미를 쭉 훑어보았다. 그 눈에는 어떤 죄책감도, 양심의 가책도 보이지 않았다.


 “보고해라.”


 사내가 옆에 있던 한 에스퍼에게 말했다.


 “옛! 인천 번화가에 대한 공격은 대성공입니다. 정부소속 군인과 에스퍼들을 거의 해치웠으며 현재까지 아군 피해는 사망 2명, 부상 9명으로 극히 적습니다. 번화가 동쪽에는 더 이상 정부의 끄나풀들이 없습니다. 번화가 서쪽은 서울로부터 지원되는 보급물자와 에스퍼들을 얻을 수 없는 고립된 상황입니다. 저희의 승리입니다.”


 전투 결과에 대한 보고였다.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정부의 사람들은 군인 수에 비해 에스퍼의 수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대부분이 에스퍼인 그들의 공격을 견뎌낼 수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알았다. 그 내용 그대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사령부에 보고서를 올려라. 총사령관께서 기다리신다.”


 사내의 말을 들은 에스퍼는 다시 한 번 대답한 후 몸을 돌려 군용 차량으로 돌아갔다. 사내는 그 자리에서 다시 시체더미들을 바라보았다. 아까와 다를 바 없는 지옥과 같은 풍경이었다.


 “너희들은 우리를 막을 수 없어.”


 사내는 나지막이 중얼거린 후 몸을 돌렸다. 그가 입고 있던 옷의 가슴부분에는 빨간색 실로 한자 혼(魂)이 새겨져 있었다.




 서울특별시 게토의 북부 지구. 삼엄한 경계가 펼쳐져 있는 곳의 중심에 혼의 총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절대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방어태세였다. 사령부를 향해 나있는 길을 통과하는 차량을 각 관문을 지나갈 때마다 일일이 조사를 받았다. 몇 년 전 유니에르온 탈취사건 이후 경비가 삼엄해진 탓이었다.


 총사령부 건물의 24층에 위치한 사령관실에서 회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딱 봐도 뛰어난 에스퍼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고 그 앞쪽에는 유 안이 총사령관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엄청난 에스퍼들이 모인 자리인지라 일반인들은 들어올 수도 없을 만큼 공기가 막혔다.


 “…이상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남은 것은 서부지구로 진입하여 나머지 잔챙이들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 작전만 성공한다면 인천시는 모두 저희 손에 들어오게 됩니다. 서울과 가까운 만큼 인천을 점령한다면 앞으로의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매우 유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관으로 보이는 남색 제복을 입은 사내가 총사령관석 옆에서 말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각자 혼자서 자료를 뒤적거리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무리 작전을 설명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용병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작전 브리핑을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저 지형도와 사상자가 나온 표들을 뒤적거릴 뿐이었다.


 “수고했다. 간단히 말하지. 앞으로 인천 서부지구에 대한 공격을 준비한다. 그 전에 정부의 반격을 생각해서 동부지구의 방어태세를 강화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부지구의 경계를 삼엄히 함과 동시에 조금씩 병력을 준비해나가도록. 기간은 3년 이내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의 모든 작전 준비는 찬율, 너에게 맡기겠다.”


 안은 가지고 있던 파일을 부관 찬율에게 건내며 말했다.


 “맡겨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