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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어둠을 먹다.

2008.01.23 22:21

과자 조회 수:559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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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게토 북부 지역의 한복판에는 멀리서도 보이는 높은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북부 지역은 혼의 최고 사령부가 위치한 곳으로서 온통 혼 소속의 에스퍼 뿐이었다. 이곳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일반 게토민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혼이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른바 환경정리를 실시한 탓이었다. 원래 거주하던 게토민들은 모두 다른 도시로 피해가거나, 서울 내의 게토 동, 남, 서부 지역으로 이동해갔다. 북부 지역에는 사령부를 중심으로 하여 원형을 이루며 여러 방어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는 국가의 사령부 못지 않은 삼엄한 경계였다. 유니에르온이 발견되고 esp능력이 계발된 이후로는 미사일과 같은 재래식 무기는 효용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뛰어난 에스퍼라면 이를 조정할 수 있어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니에르온이 장착된 기계로부터 염력을 발생시켜 침입자를 막는 장벽을 만들고 그 주위를 에스퍼들이 정찰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어법이 되었다. 혼의 사령부 역시 이와 같은 방법으로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게토와 번화가가 만나는 지점에서는 특히 경계가 삼엄했다. 정부가 설치한 염력벽과 혼이 설치한 염력벽이 마주보는 상황에서 각 소속의 에스퍼들이 마주보며 서로를 적대시했다. 작은 사건에도 큰 피해가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은 극히 제한되었다.


 “…방금 뭐라고 했나.”


 사령부 건물 중간 층 쯤에 위치한 최고 사령부 안에서 한 사내가 의자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워낙 관할 지역이 넓은지라 거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면 대체 뭐가 중요한 일이라는 거냐!”


 의자에 앉아 있던 사내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위아래 모두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 사내의 얼굴에는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짙은 남색 제복을 입은 한 사내가 유안의 호통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어느새 식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유니에르온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는 뻔히 알고 있지 않나!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유니에르온은 극히 제한되어 있단 말이다. CEM녀석들하고 정부 끄나풀들이 설치고 있는 이 시점에 유니에르온의 손실은 용납할 수 없어!”


 “죄, 죄송합니다.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된 때가 언제냐. 자세히 보고해라.”


 “예, 옛!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확히 일주일 전에 게토 서부지구에서 유니에르온을 운반하던 도중  어느 소속인지 모를 사내들이 차량 내로 침입하여 다량의 유니에르온을 탈취해 간 것으로 보입니다. 손실된 양은 약 11kg으로 확인 됐습니다”


 “하아, 이게 도대체 몇 번째냐 말이냐. 4년 전 정제 과정을 거친 에스퍼 양성에 이용될 유니에르온 소량이  사라진 이후로 이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어.”


 “죄송합니다.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됐다. 물러가봐라. 그리고 유니에르온의 운반차량이 지나가는 지역에 대한 경계를 강화해라. 남아있는 에스퍼들을 사용해도 좋다.”


 “옛! 명심하겠습니다.”


 제복을 입은 남자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 후 사령관실을 급히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고 사령관실에는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다. 방 안은 숨 막힐 듯이 갑갑했다. 블랙홀에 빨려가는 듯한 무거움. 한 남자가 발산하는 esp로 인해 주위의 중력이 강해지고 있었다.




 태하가 눈을 뜬 시간은 이른 새벽이었다. 옆에서는 호준이 등을 돌린 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태하는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스트레칭을 하더니 천막 밖으로 나갔다. 언제부터인지 서울의 하늘에서는 별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게토에서는 더욱 그랬다. 게토 자체의 오염뿐만 아니라 번화가의 오염물질까지 모두 유입된 탓이었다. 움직이는 사람 한 명 없는 새벽의 게토는 적막함을 더했다. 태하는 터벅터벅 길로 걸어 나왔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 온통 판자로 만들어진 집들뿐이었고 생명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태하는 멍하니 앞을 보고 느릿느릿 걸어갔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 같은 무표정.


 -깡


 태하는 화들짝 놀랐다. 놓고 있던 정신이 갑자기 돌아왔다. 바닥을 쳐다보니 태하의 발이 향한 쪽으로 깡통 하나가 굴러가고 있었다.


 “깜짝아….”


 태하는 오른쪽 손을 가슴위에 올리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깡통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태하의 손이 올라갔다. 손은 깡통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깡통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좌우로 조금씩 흔들리던 깡통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조용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염력이었다. 태하의 가슴높이로 떠오른 깡통은 조금씩 태하에게 다가왔다.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태하는 손을 내밀어 깡통을 잡았다. 태하의 얼굴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언제나 숨어서 염력을 사용해야 했던 태하는 염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타다닥


 누군가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태하는 즉시 깡통을 던져버리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뛰어갔다. 하지만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을 뿐이었다. 태하는 걱정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염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들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다만 아버지인 호준이 그렇게 신신당부를 한 것을 보면 중요한 일임이 틀림없었다. 태하는 손톱을 깨물었다. 손톱을 깨무는 건 태하가 불안할 때 보이는 습관이었다. 그리고 발을 돌려 자신의 집, 천막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동쪽 하늘에서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평소와 같은 하루의 시작이었어야 할 일출이었다.




 호준은 평소와 같이 자신의 일을 하러 천막을 나섰다. 자신의 일, 그것은 게토민들로부터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것. 호준은 이 일이 싫었다. 아니 혐오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에스퍼 적합자가 아닌 호준이 용병집단 내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그들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것뿐이었다. 오늘의 작업 지역은 동부 게토의 D-3지구였다. 각 게토들은 용병단의 방침에 따라 알파벳과 숫자로 이루어진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자신의 집에서 멀지 않았기에 호준은 느린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호준의 머리는 어떻게 해야 돈을 순순히 받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차피 욕을 먹을 건 뻔했다.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때문에 호준은 어떻게든 짧은 시간만에 돈을 받아내려고 노력했다. 그 이상 버티는 것은 호준의 마음이 견디질 못했다. 그만큼 호준은 겉보기와는 달리 여린 사내였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목적지인 D-3지구의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쪽 귀퉁이가 썩어 떨어진 낡은 표지판. 그 표지판처럼 게토의 상황도 열악했다. 호준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호준은 동질감을 느꼈지만 자신의 임무를 위해 이러한 느낌을 떨쳐낼 수밖에 없었다. 숨을 깊게 몰아쉰 호준은 D-3지구로 들어섰다.


 오늘은 운이 없었다. 입구부터 게토민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호준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은 호준을 못 본 채하고 자신의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걔 중에는 인상을 찌푸리면 욕설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개새끼, 비인간적인 새끼, 병신. 이런 욕은 일상 다반사였다. 호준은 가슴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을 참으며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갔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천막으로 들어섰다. 들어가는 순간 코를 틀어막는 퀴퀴한 냄새. 여기저기에 곰팡이가 슬어 썩어가고 있었다. 천막 안에는 한 무리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아빠로 보이는 사람은 아픈 듯 바닥에 누워있었고 엄마로 보이는 사람은 가구라고는 하나뿐인 싱크대에 매달려 무언가를 씻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둘의 자식으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비쩍 마른 몸을 겨우겨우 움직이며 놀고 있었다. 언제나 봐오는 처참한 광경. 인기척을 느낀 여자는 고개를 돌려 호준을 노려보더니 이내 수도꼭지를 잠그고 손을 닦았다.


 “…돈 주쇼.”


 호준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냉랭한 목소리였다. 여자는 구석에서 뒹굴던 가방에 손을 넣고 뒤적거리더니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정부에서 실시하는 구제책과 쓰레기 수거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토민들에게는 만원도 상당히 큰 돈이었다. 수 년 전만 해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일용직마저도 번화가의 사람들이 독점한 채 게토민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게토민들은 돈을 벌기가 어려워져 갔다.


 “이게 다에요.”


 “…이번 상납금은 2만원 일 텐데?”


 “그래서 어쩌란 말인데요? 없는 돈을 만들어 줄까요?”


 여자는 죽일듯한 눈빛으로 호준을 노려보았다. 살기가 가득한 표정. 호준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그랬다. 못마땅한, 어서 꺼지라는 눈빛.


 “당신이 알아요?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왜, 용병단에 들어가서 거지들 돈 뜯으면서 사니까 편해? 이 악마 같은 새끼야! 니가 뭘 아냐고!”


 여자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바닥에 누워있던 남편은 몸을 돌려 호준을 쳐다보았다. 힘이라곤 하나도 없는 죽은 얼굴. 생기 없는 표정.


 “…다음에 다시 올 테니까 준비해 두쇼.”


 호준은 짧게 말하고 뒤돌아서 천막을 빠져나왔다. 뒤에서는 여전히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모욕적인 말들. 호준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걸어갔다. 오늘 하루가 끝나려면 이 짓을 몇 번을 반복해야 한다. 그런 생각만이 호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