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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어둠을 먹다.

2008.01.22 04:02

과자 조회 수:569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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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디 낡은 카키색 천막 안. 가구라고는 책장뿐인 볼품없는 ‘집’이었다. 게토에 사는 빈민들은 대부분 이러한 천막이나 나무판자를 이어 엮은 판자집에서 살고 있다.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은 모두 번화가에 위치한 게토 관리국의 공무원들이 횡령하기 일쑤고, 나온다 해도 극히 소량일 뿐 끼니를 잇기도 부족한 양이었다. 이와 같이 더러운 주거환경은 전염병의 확산에 일조했다. 게토에 행해지는 방역작업은 일년에 단 두 번, 헬기를 통해 방역가스를 내뿜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게토에서 횡행하는 역병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게토 내에서는 위생이라는 단어가 애초에 의미가 없었다.


 “태하야!”


 부자들이나 입을법한 레이스 달린 옷를 입은 한 여자아이가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위태로운 걸음으로 뛰어오는 아이의 모습은, 게토의 배경과 모순되어 묘한 위화감을 주었다.


 “야, 김태하!”


 여자아이는 신발을 벗어 내동댕이치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에는 한 사내아이가 중간이 떨어져 나간 책을 들고 엎드려 있었다. 태하라 부린 사내아이는 천막의 배경에 잘 녹아드는 전형적인 빈민촌 아이였다. 책에 열중하고 있던 태하는 여자아이가 들어오자 그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리며 물었다.


 “또 왜?”


 태하는 언제나 그런다는  것처럼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여자아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태하와는 달리 여자아이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태하가 고개를 돌리며 다시 책에 집중하자 여자아이가 가까이 다가와 태하의 옆에 앉았다.


 “태하야, 나랑 놀자!”


“…너랑 놀면 재미없단 말이야.”


 태하는 몸을 돌려 여자아이를 등지고 누워 여전히 책에만 시선을 주었다. 책은 표지가 없었 끝부분만 붙어있어 간신히 지탱되는 페이지도 있었다.


 “씨, 나 신기한거 보여주려고 왔단 말이야!”


 여자아이가 볼을 볼록하게 하며 뾰루퉁한 얼굴로 물었다.


 “뭔데 그래?”


 태하는 누운 채로 고개만 돌려 여자아이를 곁눈질했다. 여자아이는 순식간에 웃는 얼굴로 변했다.


 “잘 봐…”


 말을 마친 여자아이는 태하가 들고 있던 책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초, 책은 태하의 손을 떠나 공중에 뜨기 시작했다. 매우 느린 속도로 움직이던 책은 방향을 틀어 여자아이에로 날아갔고 어느새 그 손위에 들려있었다.


 “봤지, 봤지? 신기하지? 그치?”


 여자아이는 왼손은 허리에 두고, 오른손은 책을 치켜들면서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린이 너, 염력 쓰다가 걸리면 무지 혼나.”


 태하는 관심 없다는 듯 아린이라 불린 여자아이의 손위에 있던 책을 빼앗아 다시 엎드려 읽기 시작했다. 다시 뾰루퉁한 얼굴이 된 아린은 한참을 서 있다가 태하의 등을 향해 로우킥을 시전했다. 퍽 소리가 남과 동시에 태하가 소리를 지르자 아린은 천막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아린이 너!!”


 태하는 신경질을 내며 아린을 따라 천막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린이 게토의 오르막길을 달려가자 태하도 역시 아린을 따라갔다. 번화가에서나 게토에서나, 지구 위에서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 게토의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아이구, 당연합죠!”


 한 사내가 실실 웃으며 1인용 소파에 앉아있는 사내에게 굽신거렸다. 그곳은 서울시 게토의 동부지구에 있는 건물 중 가장 큰 건물이었다. 과거에는 호텔로 이용 되었는 듯, 바닥에는 여기저기 깨진 대리석이 깔려있었고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 엘리베이터가 2대 있었다. 총 23층짜리 건물로, 지금은 에스퍼 용병단 ‘혼’의 동부지구 아지트로 이용되고 있다. ‘혼’은 대한민국 내에서 손꼽아주는 에스퍼 집단이었다. 다만, 그들은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집단이었기 때문에 항상 정부의 감시를 받고 있으며 의뢰가 들어왔을 때에는 들키지 않게 몰래 움직이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다. ‘혼’의 용병들은 대한민국 곳곳에 퍼져있었으며 그 명성은 해외에서도 유명했다. 특히 혼의 총사령관 격인 인물은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몇 안되는 실력파 에스퍼였다. 서울 게토의 북부지구 총사령부를 두고 있는 이들은 특정한 목적 없이 돈만주면 에스퍼 활동을 하는 전형적인 용병들이었다. 그 체계는 정부기관 못지않게 잘 갖추어져 있어 정부에서도 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확실한 거겠지?”


 소파에 앉아있던 사내가 물었다.


 “아 예, 당연한거 아닙니까. 세계 최고의 에스퍼 집단 ‘혼’의 일원으로서, 그 정도는 당연한 겁니다. 아 윗분들이 고생하시는데, 게토에서 사는 거지들 돈 뜯는거야, 식은 죽 먹기죠.”


연신 굽신거리던 사내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표정에는 익숙한 비굴함과 천박함이 배어있었다.


 “김호준이라고 했나? 알았으니까 저리 꺼져. esp능력도 없는 새끼가 말은 잘해.”


 호준은 사내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며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게토의 거리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어두웠다. 5월인 만큼 실제 날씨는 맑겠지만, 게토에서는 오염이 심해 햇빛을 볼 수가 없었다. 게토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뿌연 하늘과 사람들의 시체, 그리고 거의 무너져가는 집들뿐이었다. 동부지구 아지트에서 나온 호준은 시선을 하늘로 향한 채 내리막길을 걸었다.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은 호준의 습관이었다.


 “오늘도 어둡구나….”


 호준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보이는 거라곤 끝없는 천막과 판자집의 행렬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다. 삶의 희망을 잃은 듯한 얼굴로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들에게는 특정한 직업이 없었다. 그저 배가 고파지면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을 자처하고 심한 경우 게토 내에 위치한 쓰레기장을 뒤지기도 했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배고픔과 죽음뿐이었다. 때문에 게토민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는 정부를 증오했다. 에스퍼 용병집단 ‘혼’의 용병들도 게토 출신이었기 때문에 반정부적 성향이 강했다.


 “…응?”


 호준은 멀리서 무언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아린이었다. 유아린. 어릴 때부터 태하와 함께 지낸 둘도 없는 친구. 하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린의 아버지는 아린이 게토로 내려오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곧장 시무룩한 얼굴로 ‘아버지가 빨리 오라고 하셔서….’라고 하며 말끝을 흐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린은 곧잘 게토로 내려오기 일쑤였다. 아린의 뒤에는 호준의 아들인 태하가 뒤쫓아 오고 있었다.


 “어, 아저씨!”


 호준을 발견한 아린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뒤따라오던 호준도 아린의 옆에 멈춰 호준을 쳐다보았다.


 “아빠, 이제 와?”


 “그래, 잘 놀고 있었냐?”


 “응. 아린이랑 놀고 있었어.”


 태호가 아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아린이는, 아버지 허락은 맡고 나왔니?”


 호준이 태호와 아린 앞에서 앉으며 말했다.


 “아니요. 아빠는 제가 나온다 그러면 무조건 안된다고 하신단 말이에요. 화 내시기만 하고….”


 “그래도, 아버지 말씀을 잘 들어야지. 자, 어서 돌아가거라.”


 호준은 시무룩해 있는 아린을 달리며 말했다. 에스퍼 능력자들이 자신들의 자식이 게토에 내려오는 것과 게토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이들끼리는 친구 사이겠지만 정작 게토민과 에스퍼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용병단 내의 에스퍼들은 대부분 성질이 난폭했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힘을 행사하며 상대를 굴복시키려 했다. 게토민들은 그런 용병들이 싫었지만, 일개 주민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esp능력이 없는 게토민들은 그들에게 보호를 받는 꼴이었다. 그리고 호준도 게토민의 일원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라고는 esp능력이 없으면서도 혼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혼의 일원이라고 해서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하는 일이라고는 자신 주변의 게토에서 혼의 이름을 내밀며 빈민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일 뿐이었다. 게토민들은 그런 호준을 미워했지만 한편으로는 태하를 보며 불쌍히 여기기도 했다. 남자 혼자서 남자아이를 키워내려면 돈이 많이 필요했고 번화가의 막노동에 나가는 것보다 게들로부터 돈을 받아내는게 수입이 좋았다. 실제로 게토에는 아이들이 얼마 없었다. 들어오는 수입이 적기 때문에 아이를 기를 만큼 넉넉하지 못했다.


 “자, 너도 집으로 돌아가자. 평소에 하던 걸 해야지.”


 호준은 태하의 손을 잡았다.


 “어, 어, 응.”


 태하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린아, 다음에 놀자.”


 “응…. 어쩔 수 없네. 안녕.”


 아린이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린은 호준과 태하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아린은 대부분의 시간을 동부지구 사령부 근처의 집에서 보내야 했기 때문에 태하가 유일한 친구였다. 아린은 태하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방향을 바꿔 집을 향해 걸어갔다.






 호준과 태하는 천막 안에 들어왔다. 바닥에는 태하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뒹굴고 있었다.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은 호준은 태하와 함께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구석에 있던 야구공 크기의 철공을 앞으로 가져왔다.


 “자, 준비됐냐?”


 “…아빠, 하기 싫은데.”


 “얌마, 이거만 할 줄 알면 너는 인생 펴는거야. 니가 모르는구나?”


 “쳇.”


 태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으로 구 모양을 만들고 어깨너비로 벌린 태하는 눈을 감고 무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자기 철공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염력이었다. 철공은 태하의 가슴 높이에서 멈추어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 상태에서 10여분이 지나자 태하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호준이 말했다. 그리고 얼마안가 태하의 인상이 찌푸려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눈을 떴고 동시에 공중에 떠있던 철공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태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그만큼 esp능력은 사용자로부터 많은 체력과 정신력을 필요로 했다. 도저히 안 되겠던지 태하는 그 자리에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17분이라…, 뭐야, 너 평소에 연습 안 한거냐? 저번이랑 다를 게 없잖아 임마.”


 호준은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라 말했다.


 “그게 그렇게 쉬운줄 알아요? 가뜩이나 힘든데…. 알지도 못하면서.”


 태하는 몸을 돌리며 작게 말했다. 그러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고개만 살짝 들어 호준을 쳐다봤다. 호준는 무표정으로 철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


 “아빠, 삐지셨어요?”


 태하는 호준이 이 말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심코 내뱉은 말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호준은 자신이 esp적합자가 아니라는 것이 일종의 콤플렉스였다. 에스퍼 용병집단‘혼’의 일원이면서도 esp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으로부터만 아니라 같은 용병들로부터도 심한 멸시를 받곤 했다. 그런 호준에게 알지 못한다는 말은 심한 말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반다리를 한 채로 허리를 숙였다. 다른 사람으로부터는 멸시받고 하찮은 사람이라도 태하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였다. 그것도, 친아버지가 아닌 양아버지. 버림받은 자신을 거두어 키워준 목숨의 은인이었다. 그만큼 태하에게 아버지인 호준은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다.


 “됐다. 뭐 틀린 말도 아닌데. 나도 잘못이지 참. 많이 힘드냐?”


 “…조금이요. 누워있으면 괜찮아질 거에요.”


 “그래, 그럼 누워 있어라. 나는 밖에서 볼 일이 있으니까 나갔다오마.”


 그렇게 말한 호준은 천막의 입구를 열고 밖으로 나갔다. 태하는 바닥에 앉은 채로 밖으로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슬픈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깊은 한숨을 내쉰 태하는 그대로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에스퍼 훈련을 몰래 시작한지 4년째. 4년 전에 찾아온 몸의 변화로 인해 태하는 어느 순간부터 esp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부터 어깨 너머로 배운 지식을 가진 아버지로부터 매일 훈련을 받았다. 9살 때부터 시작한 훈련을 통해서 지금은 어느 정도의 수준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인 호준은 어느 누구에게도 esp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 호준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태하는 아버지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오늘은 2047년 7월 28일.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