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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출장물리학자 - 03

2009.08.02 20:56

사인팽 조회 수:571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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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바야흐로 세기말을 향해 질주하는 1990년대, 지구를 대표한다는 그 이름도 거창한 UN본부라고 해서 딱히 뉴욕시의 다른 건물과 비교해 볼 때 큰 장점이나 잘난 점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어떤 면에선 오히려 다른 건물들보다 한참 뒤떨어지는 점이 있는데, 타 건물에 비해 1.5배 정도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 불상사가 일이나는 것이다. 원인은 불분명한데, 본부 내부에는 따르면 사무총장의 발모제 캔 쓰레기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농담이 돌고 있었다.
 그 농담과도 아주 무관하지는 않은 외모를 지닌, 아까는 양로원으로 불시착했던 우주연맹 공식 대사 러프트 셰트러버즈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더미에 우스꽝스런 폼으로 끼어 있었다.
 "$%, *○&#!"
 그는 그가 생각해낼 수 있는 로칸그 어 욕지거리중에서도 가능한 한 걸쭉한 욕지거리를 골라 세차게 뱉어내었다. 우주연맹이라고? 그건 또 뭐라는 개 뼉다구인가? 그리고 외계인이랍시는 이 친구는 어떻게 원어민도 울고 갈 완벽하게 물 흐르는 영어를 구사하는가? 마침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그렇다. 몇몇 사람들의 소박한 희망과는 배치되는 얘기지만 우주에는 지구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수의 지적 생명체들이 있고, 대부분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지구 기술로는 그들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비교적 지구에서 가까운, 우리 은하에 속한  베텔게우스 근처만 하더라도 무슨 일이 있는지 지구에서는 쌩판 몰랐다. 우주 전체에서 가장 번잡한 곳 중에서 하나인데도.
 하여간 이 외계(물론 그들 입장에선 우리가 외계인이지만)의 지성들은 서로 시간 차 걱정 없이 이동이 가능해진 초공간이 발명된 직후로, 결코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는 분쟁(박 터지게 싸웠다는 말이다)을 거쳐 연맹체를 형성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오직 역사만이 알 일이다. 이 연맹체는 는 현재 안드로메다 은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주연맹"의 전신이 된다.
 그 전쟁이란 게 말 그대로 까마득히 먼 옛날 얘기라 연맹도 그만큼 오래 되었는데, 쉽게 얘기하자면 우주연맹의 행성들이 지구와 같은 수준의 문명을 이룩한 것은 거의 딱 맞춰 3억년이라는 역시 천문학적으로 오래 전의 일이고, 우주연맹의 기술 또한 여러 모로 지구보다 그만큼 앞서 있다.
 그래서 어학 능력 주입쯤이야 뭐 일도 아니다.(벌써부터 어학학원들 문 닫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제 아무리 능숙하게(모국어보다도 유창하게) 다른 언어의 어학 능력을 주입해도, 어찌된 일인지 저절로 튀어나오는 욕지거리를 모국어 이외의 언어로 유창하게 하는 법이 거의 없어서 언어학자들을 상당한 곤란에 빠트리고 있다.
 한편 러프트 셰트러버즈는 몸을 이리저리로 구부리며 탈출하려고 노력했다. 결실이 조금이나마 있어 거의 한 층을 메울 만한 높이로 쌓여있는 언덕 위에서 몸을 빼내어 금속제 바닥으로 착지할 수 있었지만, 착지라기보단 추락에 가까웠고 추락한 후에도 열두 바퀴정도 구르고 나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 ₩♂#+! &&#-"
 그가 일어나며 옷에 묻은 더러운 것들을 닦아내며 씨부렁거렸다.
 "&*#& $%₩@? ##! *&□○₩!"
 그가 쓰레기더미를 발로 걷어차며 씨부렁거렸다.
 "#*○$□! %◇&! #$%₩! ▽△! □#○!!"
 그가 이미 찌그러져버린 발모제 캔을 구둣발로 세차게 짓밟으며 씨부렁거렸다. 이미 오랜 세월 전부터 우주 공용어로서 지위를 굳혀 온, 안드로메다 은하와 러프트 셰트러버즈의 모국어인 로칸그 어를 번역해서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내용이 지극히 행성 모독적이고 자문화중심주의적이어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빌어먹을 놈의 행성 같으니."
 간신히 이성을 찾은 셰트러버즈가 계단을 오르며 영어로 말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지상으로 올라온 그는 프런트로 직행했다. 여직원이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 여직원은 인사를 차마 다 마치지 못하고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직도 온 몸에 쓰레기들이 묻어 있었다.
 "아, 좀 사고가 있어서."
 그가 변명했지만, 미심쩍은 눈초리는 변할 줄을 몰랐다.
 "아…네. 무슨 일이시죠?"
 "여기 최고로 높은 사람이 누굽니까? 그 사람 좀 만나러 왔는데 어디로 가면 됩니까?"
 그의 질문은 의도치 않게 전화 교환원 겸 프런트 데스크 직원으로 2년째 일해온 산드라 카퍼필드의 심기를 심각하게 불편케 했는데, 솔직히 그렇잖은가. 생김새도 약간 어딘 지 모르게 이상한데다가 온 몸이 쓰레기 범벅에 난장판인 대머리 남자가 갑자기 와서 UN 사무총장을 만나자고 한다고? 뭐 이런 게 다 있어? 자기 월급을 주는 UN에 대한 충성심 이전에 발끈 올라오는 것이 있어 눈을 한껏 치켜뜨고, 최대한 사무적인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싸움을 걸듯이 되물었다.
 "필요한 서류는 챙겨 오셨나요?" 목소리가 떨린다. 화를 참기 힘든 모양이다.
 "…그런 게 다 필요합니까? 뭐가 그렇게 복잡해?"
 오히려 그 쪽에서 더 당당하게 나오자, 그녀는 상당히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려 이를 악물고 천천히 이야기했다.
 "서류도 없이, 이 지구에서 명목상으로나마 가장 높은 사람을 그렇게 쉽게 만나겠다고요?"
 그가 반색하고 한 번 으쓱 하더니 대답했다.
 "오, 일의 요지를 알고 계시는 아줌씨구만. 그래요. 이 행성에서 가장 높은 사람 만나러 왔지만 서류 같은 건 없수다."
 그녀는 이제 폭발 직전이었다. 여전히 뻔뻔하게 구는데다가, 이제 슬슬 그에 몸에 묻은 쓰레기에서 풍기는 냄새를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직 미혼에 창창한 20대인 그녀를 아줌씨라고 하다니!!!
 그녀는 말 그대로 초인적인 자제심을 발휘해, 부족한 그의 머리카락을 쥐고 흔드는 대신에 경비원을 부르기로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경비실이죠? 여기 이상한 사람 하나 좀 쫓아내세요."
 그녀가 여전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참~내. 진짜 이 행성 여러 가지로 깝깝하네." 그가 뒷머리를 긁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글쎄. 그 근처에 큰 거울 하나만 있었으면 그런 얘기가 나왔을지는 모르겠으나.
 마침 프런트에서 가까웠던 경비실에서 경비 두어 명이 곤봉을 들고 걸어나오더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가시죠."
 러프트는 천장을 바라보고 서류가방을 빌로 맥없이 툭 치더니, 한숨을 크게 한 번 쉬었다.
 "…어쩔 수 없구먼."
 다음 순간, 말 그대로 순식간에 경비 하나는 저 멀리 나동그러지고, 하나는 붕 떴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경비들과 산드라가 도대체 뭔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사이, 러프트는 재빨리 계단이 있는 곳으로, 지구의 현재 100미터 달리기 신기록을 갱신할 수 있는 속도로 달려나갔다. 산드라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저 사람 잡아요!!"
 넘어졌던 경비 외에도 몇 사람이 합세해 그를 쫓아나갔지만, 그 우물쭈물 하는 사이, 그는 거의 맨 꼭대기 층까지 도달해 있었다.
 "…사무 총장이라. 여기군."
 공교롭게도 직속 보디가드가 월급이 적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쓴 직후라서 막 새로 고용된 보디가드가 뉴욕 도심 속 교통난에 발목이 잡혀 있던 터라, 별 제지 없이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크게 외쳤다.
 "잠시 실례합니다!"
 "으어억!"
 반쯤 넥타이를 풀고 거울 앞에 앉아 발모제를 바르던 대머리 남자 하나가 그 소리에 놀라서 뒤로 나자빠졌다.


 "어이쿠,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부하분들이 영 협조를 안 해주셔서 말이죠. 사안이 워낙 중요하다 보니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쳐들어왔는데, 이해해 주시겠지요?"
 그 발모제 바르던 대머리 남자는, 아, 실례. UN 사무총장 각하는 우연히도 상당히 요염한 자세가 되어 몸을 치켜올렸다.
 "다…당신 누구요? 뭐 하는 사람이요? 원하는 게 뭐요?" 그는 다시금 몸을 추스리려 일어나며 머뭇거리며 물었다.(손에는 아직도 발모제 캔을 들고 있었다.)
 "질문이 한 번에 세 개나 되다니, 잠시 주변 정리를 한 뒤에 말씀드리죠."
 그는 들어온 문을 걸어잠그고는 돌아섰다.
 "우선 반갑습니다. 이름 먼저 밝히자면 러프트 셰트러버즈라고 하고, 직책은 우주연맹 대사입니다. 대사 이름 값 하려면, 원하는 건 수교 정도가 되겠지만, 사실은 귀 행성의 연맹 가입 문제로 왔습니다."
 사무총장은 기우뚱하게 서서, 매무새를 다듬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를 멀뚱히 바라다보았다. 그의 몸에 묻은 쓰레기 따위는 신경도 안 쓰이는 모양이었다.
 "당신이 뭐…라고?"
 "대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방금 어느…나라…라고?"
 "나라가 아니라 우주연맹입니다, 우.주.연.맹. 연맹 외에도 세력 집단 몇 개가 있긴 하지만, 연맹 가입 행성 2만여 개에 비하면 택도 없고, 가입하시는 게 여러 모로 귀 행성에 도움이…"
 "잠깐!!" 사무총장이 포효하며 살짝 뒤로 물러섰다.
 "당신, 그러니까 당신이, 외계인, 외계인이라, 이 말이오?" 그가 떨리는 손으로 그를 가리키며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지구인 입장에선 그렇게 되는군요. 맞는 얘깁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군요.  아-제 고향 행성도 참 아름다운 곳이죠. 특히 달 세 개가 한 번에 뜨는 날은 정말…벌써 갔다 온지도 오래 되었군요."
 러프트는 잠시 꿈꾸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당신들 행성에서는 안드로메다라고 하는 은하에 있는데, 뭐 그렇습니다. 천만 광년 밖에서 오느라 이 무거운 것도 써야 되고, 진땀 좀 뺐죠."
 그가 서류가방 모양을 한 것을 살짝 들어 보이며 이야기했다. 사무총장은 이제 온 몸을 덜덜 떨며 허, 허. 하며 짧은 숨을 내뱉었다.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이런 일이…?"
 마침 밖에서 잠긴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각하! 각하! 괜찮으십니까? 수상한 남자가 그 안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아, 마침 제 얘기를 하고 있군요. 괜히 복잡해질 것 같으니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따로 와서 말씀드리기로 하죠."
 그는 양복 모양을 한 옷 윗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명함 크기의 얇은 판 하나를 꺼냈다.
 "이 판 가운데를 누르시면 화면에 제가 나타날 겁니다. 부르시면 곧 가서 뵙죠."
 사무총장은 여전히 떨리는 손, 그러니까 발모제가 들려 있지 않은 손으로 판을 조심스레 받았다.
 "허, 허. 이런 세상에…"
 "각하!" 우지직거리는 문을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럼 전 이만." 그가 아까의 주머니에서 펜 모양을 한 것 하나를 꺼내더니 공중에 글씨를 끄적거렸다.
 "그건…뭐요?" 간신히 진정한 사무총장이 의아한 듯 물었다.
 러프트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아…설명하려면 상당히 기니까 나중에, 나중에."
 그는 계속해서 글씨를 공중에 써내려갔고, 그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뭔가가 매우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으며, 사무총장실에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편, 문 부수기 작업도 막바지에 있는지 경첩이 맞부딪치는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음이 들려왔다.
 "이런, 서둘러야겠군." 그는 글씨 쓰기를 마치더니, 그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바닥에 생긴 원 모양 속으로 들어갔다. 공기가 귀를 찢을 듯이 진동했다.
 "아, 마지막으로!!" 러프트가 소음에 막혀 큰 소리를 질렀다.
 "뭐요?" 역시 사무총장도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좀 있습니다!"
 사무총장은 긴장하였다. 외계인인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이 남자가 지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방법으로 탈출하려는 직전에 하려는 말이면 확실히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이상한 기류에 휩싸인 그에게 가까이 했다.
 "해 보시오! 듣고 있소!" 사무총장이 소리질렀다.
 러프트는 싱긋 웃었다.
 "발모제 별로 효과 없습디다!!" 그가 웃음을 머금고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들기더니, '콰앙'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방 안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직도 문 부수는 소리는 들려왔고, 10분 전과는 판이한 난장판과, 손에 들린 명함같은 판만이 그가 다녀갔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빼면, 사무총장은 뭔가에 놀아나는 기분도 들었다.
 문이 마침내 부서졌고, 여댓명의 권총 든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들었다.
 "각하!"
 "각하! 괜찮으십니까?"
 사무총장은 주머니에 가만히 명함판을 집어넣고, 발모제 통을 바닥에 던져 놓은 뒤한숨을 크게 쉬고 차분하게 말했다.


 


 "상임이사국 대통령들을 소집해주게.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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