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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출장물리학자 - 02

2009.08.02 20:53

사인팽 조회 수:498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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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잠깐만 처절하게 도망치는 방정식에게서 눈을 조금 돌려 보자. 뭐라고? 조금만 돌렸더니 다람쥐 비슷하게 생긴 귀엽고 북슬북슬한 동물이 맑은 눈을 하고 당신을 보고 있다고? 아, 조심하라. 그거 맹수다. 맹수도 아주 사나운 맹수다. 마침 배가 부르기에 망정이지. 이건  학계에서 지정한 공식 명칭이 있을 만큼 이상한 동물이다. 사실, 이게 제프로드 제3행성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분류된 생명체이다. '르버레직' 이라고 불리는데, 한 마리가 자기 몸집의 100배 정도 되는 사냥감을 잡을 수 있는 대단히 사나운 포식자이다. 그 귀여운 겉모습에 속은 오지 관광팀을 전멸시켜버린 사건으로 유명하지만, 그게 벌써 천 년 전이다. 세월 참 빠르지 않나?
 지구에서 천 년 전이라고 하면… 모르겠다. 그렇게 먼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나?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지구 전체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해는,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이라는 것이다.
 
 20년 전. 뉴욕 뒷골목의 한 양로원.
 90년대 초, 소련이 몰락한 직후다. 온 세계가 뒤집어지고 자빠지고 있는 난리 없는 난리를 다 피워 가며 이 빅 뉴스를 주목했지만, 이 양로원에서만은 영 아닌 듯 싶었다. 노인들에게 소련이 붕괴되었다는 소식은  항상 켜져 있는 것만 같은 TV에서 매일같이 흘러나오는 뉴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 노인들 중 특히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노인들은 뉴스나 뉴스 사이에 중간중간 나오는 광고들 보기를 싫어한다. 이제 자신들이 서서히 이 세계에서 이탈해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방 구석에 앉아 엄청나게 느린 하루 하루를 소일하며 살아가는 동안에도 세상은 변함없이, 자신들이 아직 젊고 건강하던 그 시절처럼 영원할 것만 같이 빛을 내며 스쳐 지나간다는 사실이 안 그래도 저린 뼈에 뼈저리게 느껴졌기 때문이라나.
 뭐가 어찌되었건, 그래도 대부분의 노인들에게 뉴스는 좋은 시간 때우기였고, 앞서 말했듯이 항상 켜져 있는 TV는 거의 뉴스를 보내 주고 있었다. 유난히 큰 소리로 틀어져 있는 TV에서 새삼스레 20년 전 발사되었던 보이저 호가 태양계 밖에서 또다시 메시지를 보내 왔다는 뉴스가 들려왔고, 뉴스가 싫어 큰 창문이 난 뒷방에 부드러운 쿠키와 유유를 가지고 소파에 앉은 두 노인에게도 들렸다.
 "젠장할, 그놈에 뉴스는 끄는 법이 없어." 안경을 쓴 노인이 쿠키를 집어들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내버려 둬. 맨날 뉴스만 하겠어?" 다른 노인이 틀니에 낀 쿠키 조각을 빼내며 말했다. 하는 김에 모자도 고쳐서 다시 썼다.
 "보이저 호가 어쩌고 하는데... 자네 예전에 나사에 있었지 않나?" 안경 쓴 노인이 말했다.
 "그래. 보이저 호도 이 손으로 발사시켰지…벌써 옛날 일이야…" 모자 쓴 노인이 우유 컵을 한 손에 쥐고 꿈꾸는 듯이 이야기했다.
 "예순 살 가까이 돼서 용케도 안 잘리고 버텼구먼."
 "모르면 아무 말 말어, 이 사람아. 내가 나사에 청춘을 바쳤어." 말을 마치고 노인은 쿠키를 한 입 크게 베어물고는 우유를 반 컵 가까이 마시다가 목에 걸려 쿨룩거렸다.
 "그래?"
 안경 쓴 노인은 이 말을 마치고 조용히 웃더니. 잠시 창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에는 유난히 구름 모양이 독특했다. 무엇인가에 찢긴 듯 날카로운 모양을 한 작은 구름들이 한 곳을 중심으로 퍼져 있었다. 안경 쓴 노인은 이런 구름을 본 적이 있었다. 이제는 잊혀지려 하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외계인이 있냐 없냐를 두고 그 때로는 말도 안 되게 큰 액수인 100달러짜리 내기를 한 날, 그 친구들과 함께 산 어귀에 숨어 우주선을 기다리며 밤을 새운 다음 날, 아침 햇살을 가리던 그 구름의 모양이었다.
 그들은 잠시동안 침묵했다. 70년 째 친구로 지내며 이미 서로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별로 할 얘기도 없었고, 그래서 침묵한다고 해서 어색할 것도 없었다. 구름 모양이 잠깐 변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때,
 콰아아아아앙!
 엄청나게 큰 폭발음이 들렸다. 두 노인은 깜짝 놀랐다. 안 좋은 귀에 이렇게 크게 들릴 만한 폭발음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과, 더 놀라운 것은 이런 큰 소리를 내는 폭발에 영향을 받은 것은 고작 쿠키 두어 개가 바닥에 떨어진 것과, 온 방에 매우 짙은 연기가 낀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안경 쓴 노인이 벌떡 일어나 세차게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가스가 터졌나?"
 이 때, 연기 속에서 사람 형체가 걸어나왔다.
 "쿨럭! 쿨럭! 아-지독하구만."
 노인은 어정쩡하게 서서, 그 사람 형체를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서류 가방에 처음 보는 머리 모양을 하고 처음 보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피부색에 아주 약간 초록색이 돌기는 했지만, 확실히 인간의 얼굴이었다, 아니. 인간 같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극심한 노안으로도 대머리에 가깝다는 사실을 확실히 볼 수 있었던 것도 판단의 이유가 된다. 노인들은 이제서야 굽힌 허리를 폈다.
 "다…당신 누구요?" 안경 쓴 노인이 말했다.
 "이런. 엉뚱한 데로 와 버린 것 같은데…" 그가 노인의 말을 무시하고는 말했다.
 "누구냐니까!" 모자 쓴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아. 진정해요, 어르신. 당신네들뿐만 아니라 나도 평화를 원하니까." 그가 안경에 손을 대며 말했다.
 "이 난장판을 벌인 게 당신인가?" 안경 쓴 노인이 말했다.
 "뭐…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사람은 지금 1천만 광년 밖에 있지만,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군요.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 아닙니까? 비교적 멀쩡한데요?"
 노인들은 잠시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 젊은 친구가 우릴 놀리나? 천만 광년?
 "광-년? 지금 우리랑 장난하자는 건가?" 모자 쓴 노인이 일부러 길게 늘여 이야기했다.
 "아, 이런. 특급 기밀인데. 뭐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연맹에는 대충 둘러대야겠다."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노인들은 진짜로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하여간 어르신들. 여기서 UN본부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립니까?" 그가 나름대로 활기차게 말했다.
 노인들은 대답하는 것도 잊고 그를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음, 모르시는 모양이군. 그럼 실례했습니다."
 그는 안경을 잠시 들어 인사를 하고는, 펜을 꺼내더니 허공에 뭔가를 끄적거렸다.
 다음 순간.
 콰아아아아앙!
 또다시 그 폭발음이 들리더니, 그는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고, 어찌된 일인지 노인들은 다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쿠키 두 개는 쪼개진 채로 바닥에 뒹굴고 있었지만, 이번엔 먼지 한 점 일지 않았다. 아니, 아까 있던 먼지까지 사라졌다. 고개를 돌려 바깥을 보니, 다른 사람들은 아예 이 작은 소동을 알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두 노인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듯, 눈이 살짝 풀려 있었다.
 그러다가 모자 쓴 노인은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100달러 지폐 하나를 꺼냈고, 잠시 동안 뒷면에 그려져 있는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그는 대단히 애석한 표정을 지으며 그 지폐를 안경 쓴 노인에게 건넸다.
 "자네가 이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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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써 나가면서, 예전 글들의 표현이나 분량이 조금씩 바뀌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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