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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빛의 서사시

2010.02.05 06:46

글쟁이 조회 수: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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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노트


과목:정치


제목:근대 유그리스의 계급
 
 유그리스는 미네르바 연합과 함께 독특한 정치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유그리스는 크게 정복민 피정복민으로 분류되었다.
 
이것을 다시 세분화하면 정복민은 선출 씨족과 협의 씨족 초기 정착민으로 나눌 수 있다. 유그리스는 황위의 세습을 하지않고
 
선출 씨족이라고 하는 5개의 씨족의 사람 중에서 선출하는 선출직이었다. 다만 황위의 임기는 종신으로 하는 종신직이었다.
 
그리고 다시 10개의 협의 씨족이라는 이들의 과반수 동의를 받는다. 만약 이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다시 황위를 선출 해야하는 약간은 복잡한 형태를 취하였다. 이때 이들이 그들의 황제를 부르는 용어가 달라진다.
 
먼저 선출 씨족은 그들의 황제를 자신들이 선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참주 즉 스스로 황위로 오른자라고 라고 불렀다.
 
그리고 선출 씨족의 권리는 강력하여 황제와 거의 동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역이나 심각한 위법 사항이 아닌 경우에는
 
황권으로 이루어 지는 사법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는 한 씨족이 황위를 차지한 이후 벌어질 숙청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황제는 비상시국 이외에는 이들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세금을 징세할 권리가 또한 없었다. 다만 황제는 행정부의 수장이자
 
군 최고 지휘권자였기 때문에 인사권만은 가지고 있었다.


 협의 씨족은 그들의 황제를 맹주라고 하였다. 이들에 대한 세금 징수권은 없었다. 다만 전쟁시 징병권을 국가가 가지고 있었다.
 
이들는 혈세로 말할 수 있는 직접세만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그리스의 세력이 확대됨에 따라서
 
그들에 대한 국가의 징집권은 거의 행사되지 않고 있었다. 또한 행사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초년병이라고 할지라도
 
장교이상의 대우를 보장하였다. 그들의 권한은 황제에 대한 지지였기 때문에 황제는 이들 역시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선출 씨족은 황제를 내려놓을 수 없었지만 협의 씨족은 자신들의 집단의 협의에 의해서 황제를 쫓아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복민들 중에는 초기 정착민은 유그리스의 시민권을 가진이들로 흔히 민권자 라고 불리우는 이들은
-근대 유그리스 역사의 저자 베니타로 나데니티의 말에 따르면-평민 귀족이라고 말해지는 부류였가 있었다.
 
그들을 평민 귀족이라고 하는 이유는 초기에는 거의 경제인 계급이었으나 이후 부를 축적함에 따라서
 
자신들의 피선거권과 부를 이용하여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한 계급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는 피정복민에게는 없는 권리인 중간 관리에 대한 피선거권과 선거권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황제를 단지 통령라고만 불렀다.
 
그리고 피정복민을 분류하자면 이들도 다시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이들은 시민과 민간인으로 이들은 시민권이 없었다.
 
흔히 민권이 없다는 것이 노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질적으로 노예는 중세이후로는 완전히 사라진 개념지만
 
중세 이후에 가장 중요한 권리로 생각되어지는 선거권에 대한 제약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입지는 아주 취약한 것이었다.
 
이들은 피선거권, 선거권-시민는 피선거권만- 이없고 민권으로 대표되는 다른 권리를 제한적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군역을 의무항목으로 행함으로써 얻는 권리였다.


 민간인의 경우 선거권마져도 없었는데 이는 다소 최근에 정복된 부류일뿐더러 숫자가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 선거권을 주었을 경우 벌어질 정치적 불안을 우려해서였다고 한다.
 
문서상으로는 이들은 군역이 의무 사항이 아니라 지원제였지만 역사 기록을 보았을 때 실제적으로는 강제 징집이 행하여졌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크게 의미 없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군에서의 처우 또한 그리고 훈련과 무기 그 밖의 대우도 동등하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전쟁시 포로가 되었을 때
 
협상에서 제외가된는 경우가 많았는데 군부에서 그들의 지위는 정규군이 아니라 단지 민병대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민병대 편입은 강제 징집에 대한 불법 논란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군다나 군공도 인정되기 어려웠다.
 
피정복민만이 유그리스의 최고 지도자를 황제로 불렀다.


 오제국 당시의 피정복민과 정복민간의 비율은 연구자에 의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대략 20:1정도 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민과 민간인의 비율은 약 1:4정도 였다.
 
 


 상대는 그의 예상대로였다. 보어 가문의 장로의 계승 순위가 1위인 자로 프린캡스라고 불리우는 자였다.
 
하지만 그의 출신에 대해서는 구구하게 말이 많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정계에 등장한 것부터 계승 순위를 부여 받으면
 
바로 받는 가부장권을 아직 받지 못한 것 까지 의문스러운 것이 많은 사내였다. 심지어는 사생아이기 때문에 집안에서
 
인정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많은 구설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무 대신이 될 수 있엇던 것은 단순히 가문 배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훨칠한 키에서 나오는 시원한 외모와 한번만 이야기를 나누면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친화력
 
그리고 강력한 추진력등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하지만 그의 강려한 친화력으로도 아직 친하지 않은 상대가 있었는데
 
바로 디비키아크스 하이두이였다.


“보어 내무대신님 국내 업무만을 담당하셔서 아직 군대 업무에 대해서 생소하신 것 같은데 대군을 동원하는 것은
 
내무 대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간단합니다. 피정복민을 징집하면 되니까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아르덴티는 그의 계획이 짐작이 갔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이 나설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이 이전 발언에서 이미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기 때문에 자신은 발을 뺄수 있다는 것이 불행중 다행인 사실이었다.
 
그 징집의 대상이 민간인이라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지만 그의 출신은 기본적으로 피정복민이었기 때문에 이것에
 
디비키아크스에게 꼬리를 잡힐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인의 장막에 몸을 숨겼다.
 
상대는 집요하고 음흉하기로 정평이난 디비키아크스였다.


“하지만 피정복민이라고 하여도 함대를 만들고 훈련을 시키려면 적어도 1년의 시간이 걸리오 이 사안은 아시다시피
 
그렇게 긴 시간이 소요되면 아무 소용이 없잖소 그 정도의 시간이면 저들은 엄청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해서
 
다시 원래의 군사력 수준을 회복할 것이요”


 아르덴티는 그 보어 가문의 1인자의 순진함을 속으로 한탄하였다. 이것은 프린캡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음흉함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우리 대유그리스 제국의 용감한 구국의 용사들인 민병대를 동원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데는 3개월내 진행 가능합니다.”


 프린캡스 역시 그 순간 디비키아크스의 계획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단순 징집과 기본적인 항해 훈련은
 
길어도 한달이면 끝낼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된 전함을 태워서 전쟁터에 보내면 되는 것이다.
 
현재 함대 교체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낧고 오래된 함선들은 충분히 있었을 뿐더러 선단 표준화 법령을 통해
 
전함으로 개조 할 수 있는 함선들 수도 상당하였다.


 “그것은 우리 유그리스 기본적인 원칙을 무시하는 행위요! ”


보어 가문의 1인자는 이 계획에 소모되는 예산의 지출을 거부하면서 이에 맞섰다.
 
그는 내무대신으로 재정과 내정, 치안 담당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세는 디비키아크스에게로 기울여졌다.
 
그에게 아부하는 세력과 그의 권위를 두려워하는 세력 그리고 원정 이후의 사태의 위험성이 예측되지 않는 세력이
 
그 외의 세력보다 많았기 때문이었다.
 
 
 
 출병 결정이후 약 5주후 B.T. 154년 12월 6일 마케데시아


 늘 이담때면 연말에 대한 앞선 흥청거림이 거리를 지배하는 곳이 바로 마케데시아였다.
 
아마도 이들의 기본적인 성향이 놀기 좋아하고 낙천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낙천적이고 흥청거림은
 
올해에는 찾아 볼 수조차 없었다. 단지 공포만이 남아있었다. 이러한 사태가 시작된 것은
 
약 2달전 반월 지역에 대한 공략의 실패에서부터 온 것이었다. 아니 그 후 전해진 유그리스의  마케데시아에 대한 대규모의
 
원정단의 편성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예전 부터 이곳은 대규모의 중개 무역으로 안정적으로 통화가
 
유통되었기 때문에 일정한 수준의 환율이 유지되어 마케데시아의 화페인 페로니는 자산 가치 보존에 있어서는
 
오제후의 화폐보다 더 안정적인 재화로 꼽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유그리스 원정단에 대한 소문 이후로 페로니화는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고 이로서 마케데시아 당국은 통화 거래의 중지를 명령하였다.
 
자유 무역을 표방하는 이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정부의 개입이었다.
 
이 개입을 위해서 평의회는 긴급 권고항을 발의 하여 상거래 관련 국가와 개인의 개약에 관한 항목을 고치기까지 하였다.
 
 원래 이곳이 중계무역을 하게된 계기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원이 빈약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왠만한 생필품은 수입에 의존하였다. 하지만 화페 가치의 폭락으로 생필품 가격은 급상승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몇몇 대상인의 매점매석으로-이들은 상인의 기질이 골수에 묻어있는 민족이었다.-그 상승 속도를 가속하였다.
 
또한 반월 원정을 주장하던 몇몇 거상이 테러를 당한이후 대규모의 사병을 소유하고 있는 거의 모든 대상인이
 
자신의 사병을 자신의 신변 보호에만 사용하였다. 경찰력의 절대적인 수가 부족한 마케데시아에서는
 
사병의 치안 담당력은 절대적이었지만 이런 사태로 치안 마저 엉망이 되었다. 대상인이 소유하고 있지 않은 상점은
 
늘 약탈의 공포로 시달려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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