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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사랑이라는 메커니즘

2006.12.07 04:05

초요 조회 수:410 추천:10

extra_vars1 메모리 
extra_vars2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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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지금 저에게 사랑이라 말씀하셨나요?”


의자에 앉아있던,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물음을 던진 여자는 질문을 던지고 웃고 있을 뿐.


“하하, 전 사랑 같은 것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안정과 편안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요.”


기대한 대답이었다는 듯, 여성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키득거렸다.


“저도 그래요.”


화사한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아침이 왔다는 신호에 맞추어, 조용히 창문의 커튼이 젖혀진다. 저 먼 곳에서부터 무릎까지 오는 크기의 작은 기계가 바퀴를 굴리며 그들의 앞으로 온다.


“주인님들, 슬슬 하루 일과를 시작하셔야지요?”


“그렇지.”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자신의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입고 있던 잠옷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깔끔한 정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도 준비해요. 전 이만, 회사로 나가야겠어요.”


“그래요. 그럼 잘 다녀와요.”


여성이 흐뭇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자, 남자도 웃어 보이며 문을 나섰다. 어느새 대기하고 있던 차가 그에게 말을 건다. 굉장히 건들어지는 듯하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은 목소리다.


“좋은 아침, 두르즈씨. 회사로 가는 거죠?”


“맞아요. 그럼, 수고해요.”


“훗, 저의 보람이 이건대요. 매번 당신이 부럽다오.”


두르즈는 예상치 못한 물음에 신기해하며 반문해본다.


“무슨 점이요?”


“당신은 고성능이지, 게다가 아름다운 인간 여성까지 아내로 데리고 있지요.”


“하하, 아니에요. 전 그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졌으니까요.”


가볍게 웃어 보인 뒤,  그는 표정을 굳히고 조용히 창문 밖을 내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그녀의 안정과 행복이, 저의 안정이며 기쁨이니까.”


자동차가 차선을 타며 빠르게 질주한다. 어느새 거대한 빌딩들이 자리 잡은 도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한 회사로 들어가, 연산 업무 일을 시작할 것이다. 그녀가 일하는 곳의 가까운 건물에서….




---


밤이 깊어지고, 거리에서 네온사인이 켜지는 것을 보며 두르즈는 상념에 잠겼다. 저런 거리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것은 무엇일지에 대한 생각이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해야 마음이 놓였다. 그의 지능은 단지 지능논리구조로만 구성이 되어 있을 뿐, 굳이 인간을 이해해야 하는 지식은 들어있지 않았으니까.


갑자기 누가 어깨를 건드려 그는 뒤를 돌아봤다. 그의 회사 동료, 카멜이 서 있었다.


“하하, 자네는 로봇 아냐? 무슨 생각이 그렇게 골몰한거야.”


“아, 별거 아니었어. 무슨 일이야?”


“별일 있나? 그저 잠시 차나 한잔 하자고.”


할일도 없고 해서, 그는 카멜을 따라 잠시 바람을 쐬러 옥상으로 갔다.


“하하, 바람 참 시원하구만.”


“그렇다네. 전부는 알 수 없어도, 대략적인 느낌은 알 것 같아.”


“후우… 맞아, 추워. 나도 생각해보면 참 웃기는 녀석이지 않아? 매번 자네에게만 나의 고민을 털어 놓는 느낌이네.”


“상관없어. 나로선 그것도 도움이 되는 일이고, 자네는 나와 가까운 인간이야.”


“그렇게 생각해주니, 내가 자네에게 말을 하게 되는 거야. 사실 같은 사람과는 왠지 말을 하기가 껄끄러워서 말이지.”


“하하.”


그는 카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가 일하는 회사의 반 이상은 고성능의 로봇들이 일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상당히 사람을 싫어한다.


“난 그나마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 자네도 알지? 그녀는 사람이 아냐.”


“응… 그랬지.”


“갑자기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내 아이는 만들어 질 리가 없잖아. 나는 아내에게 난자를 사서, 인공수정을 이용해 자궁에서 키우는 것을 부탁했지. 아내의 자궁에서 말이야.”


“음…”


“하지만, 그녀는 한사코 반대했어. 그것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며, 로봇을 제작하자고 나에게 계속 주장했지. 싸우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보류중이야.”


상당히 복잡한 문제. 하지만 그는 그의 동료에 대해 해줄 한마디를 알고 있었다.


“자네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진실이지.


“그렇지. 그녀의 말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고맙네.”


카멜이 그를 보며 웃어보였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난 자네 같은 로봇이 되고 싶었어. 논리 정연하게 할 일을 수행하는 로봇 말이야.”


“하하… 칭찬이라면 고맙게 받겠네.”


“고맙고말고. 시간 내줘서 고맙네.”


카멜이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그는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그도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회사는 이미 종료한 시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중얼거렸다.


“인간은 우리보다 멋져. 자네는 무언가 한 가지를 놓치고 있을 뿐이야.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말이야.”




.


.


.




그가 집에 도착 했을 때 즈음, 그날따라 집이 조용했다. 보통 때라면 그녀가 먼저 집에 도착했어야 한다. 게다가, 그녀의 신변에 관해서는, 그가 제일 먼저 알 수 있도록 그녀의 몸에 발신기가 부착 되어 있는 상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음….”


일단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간 그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이지 말게. 두르즈.”


그의  주위에서 한 남자, 아니 여러 명의 남자들이 총을 겨누고 있다. 강력한 전기로 기계를 마비시킬 수 있는 총. 일명 스턴건. 그들의 가슴에는 금색의 배지가 조용히 빛을 낸다. 경찰이었다. 아마도 그의 앞에 서있는 자는, 그가 잘 아는 한 경사.


“자네는 큰 죄를 저질렀어. 체포하겠네.”


“제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는 말입니까?”


경사의 물음에 바로 강하게 반문한다.


“자네 로봇 맞지? 너무도 인간적인 반응인걸. 정말 자네가 저지른 죄를 모르는 건가!


강압적인 말투에 주춤거린 그는, 더 이상의 변명의 말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그는 중얼거렸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경사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었다.


“그녀의 몸이 기계라는 사실을 이용해, 꽤나 오랫동안 인간을 속여 왔더군. 그녀는 언제 죽은 거지?”


그는 주저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잠시 쳐다본 뒤, 조용히 말했다.


“…278일 전.”


“정확하구먼. 허허허…머리 좋구먼.”


자신의 존재에 대해 비꼬는 듯한 대답에 뭔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이었지만, 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속일 자신은 충분했습니다. 제 안에 있는 그녀의 메모리는 완벽했으니까.”


“허허허. 정말 어이가 없군. 자네는 인간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가. 그보다 죽인건가?”


죽였다는 말이 그를 자극했다.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윙윙댔다.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숨이 찬 듯 헐떡거리기 시작한다. 필경 그의 인공지능 회로에 모순으로서의 과부하가 진행 된 것이리라. 손으로 땅을 짚은 채,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서지 못했다.


“저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단지 씁쓸한 눈으로, 인간에 의해 창조된 저 알 수 없는 물체를 응시할 뿐.


“그녀의 재현 작은 우리 쪽에 있어.”


“재현 작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그녀는 살아있단 말입니다!”


격렬한 반응에 경사는 냉소를 보냈다.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게 만들었더군.”


“….”


“쓸데없는 짓을 했어. 그것 때문에 자네는 들킨 것이라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된 순간, 그녀는 미쳐버렸으니까.”


“….”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가게. 자네에 대해 진술서를 써야 하니. 알리바이 따위는 필요 없어. 죽음의 진실을 아는 녀석이 바로 너일 테니 말이야.”




----


그는 조용히 포갑을 받고 끌려갔다. 조용히 생각을 이어, 자신의 과거에 생각하던 도중에 그의 머릿속에 뭔가가 그를 괴롭혔다.


인간과 로봇의 가장 큰 차이라면, 인간과 달리 로봇은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 모든 일들을 효율 적으로 기억하기에 로봇이라는 존재가 쓸모 있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그를 괴롭혔다. 인간이었다면, 그는 그녀가 로봇이라는 사실 조차 잊어버렸겠지. 카멜처럼 말이다.


최근에 생긴 보험이지만, 기억보험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기억을 정보화 하여 저장해 둘 수 있는 보험으로서, 혹시 자신이 죽더라도 자신 주위의 사람들이 고통에 떨지 않게 하기 위한 제도였다. 그것에 가입됨으로, 자신은 죽되 죽지 않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카멜의 그녀가 강도에게 강간당한 뒤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안 뒤로, 그는 모든 인간과의 교류를 끊었었다. 나중에 그녀의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그는 이 세상을 죽지 않고 버텨왔었다. 지금은 그것만이 그의 유일한 삶의 의의일 뿐.


그는 툭하면 두르즈에게 말하곤 했다. 로봇이란 것은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라고. 하지만 두르즈에겐 그가 그저 부러웠다.


두르즈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그가 스무 살( 제조 년 월일로부터 ) 때였다. 수많은 문제들이 그를 안정시키지 못한 채, 그저 쉼 없이 일만을 하라고 부추겼다. 그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인간을 위해 창조 되었다 하더라도 돈은 받아야 한다는 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돈을 쓸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돈이 없어 자신의 몸을 기계화 하지 못하는 한 여성을 보게 되었다. 이미 그녀의 팔과 다리는 썩어 들어가 더 이상 제 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위해 몸을 사주었다.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게 될 의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자신이 선물한 새로운 고품질의 기계 살갗으로 새로운 감각을 배우고, 새로이 이 세상을 적응 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그에게는 안정을 주었다. 그는 그녀를 아끼게 될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진정으로 아낀다는 것을 그녀가 알았을 때에, 그들은 결혼을 약속했으며, 결국 결혼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행복은 송두리 째 날아가게 되었다. 그가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그녀는 그에게 울면서 소리쳤다.


“어째서!! 어째서!! 난 로봇 따위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소유물? 진실은 이것 이었다. 로봇이 인간에게 무언가를 해주되, 로봇이 인간의 목숨에 관여하는 일을 주관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서명이 있어야만 그 모든 것이 가능했다. 서명이 필요한 것은 그녀의 신체포기 각서. 그는 그녀를 속이고, 그녀의 필사를 정확히 위조해 그것을 작성했던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음에도, 그녀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음에도,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분노만이 그녀를 잠식했다. 그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나중에 음독자살한 그녀의 시체만을 봐야했다.


카멜을 만나고서야 두르즈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 개월이 지나서의 이야기. 자신의 기억을 통해 완벽히 재생된, 그러나 고통스러운 기억은 없는 그녀의 존재가 그를 위로했던 것은 아주 잠시였다. 그 뒤에는 언제나 과부화의 고통이 그를 괴롭혔을 뿐.


결국 그녀는 전의 그녀와 같은 이유로 미쳐버렸다. 자신은 그녀를 두 번 고통에 잠기게 한 셈이었다.


서로 가던 도중, 그는 자신의 팔 안에 있던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쐈다. 그의 메모리 칩은 산산이 부서졌다.




---


두르즈는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 그녀가 보인다. 얼굴엔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흐른다.


“…여기는?”


“얼마나… 걱정했는데.”


“….”


그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기억 보험을 들었었어. 차에 치어 죽으면 어떡해? 난 오로지 당신뿐인데….”


“….”


“다른 일은 아무래도 좋아. 앞으로는 함부로 운전하지 마….”


그는 당시의 기억이 없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를 괴롭게 했다는 사실. 자신의 실수를 통감했다. 작은 실수로 그녀가 고통 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그의 가슴이 미어졌다. 그는 다시는 교통사고 따위 당하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껴안았다. 자신에게 유일한 안정을 주며, 자신을 사랑해주는 한 인간여성을.


“…앞으로는 그런 실수 하지 않을게.”


그녀가 눈물을 멈추고 웃는다.


“응.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