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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팬픽 게도를 기다리며

2006.12.31 08:47

다르칸 조회 수:69 추천:4

extra_vars1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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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거워 보이는 오두막. 썰렁해야 될 것만 같은 오두막 안에는 램프의 불빛이 선명히 살아있다. 램프 주위로 한 사람이 서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다. 문이 삐익 걸리면서 후줄근한 정장의 남자가 들어온다.


 


 "누구요?"


 


 "나야, 나키레마"


 


 후줄근한 정장의 넥타이를 만지작 거리는 네르코를 나키레마가 진심으로 반겼다. 나키레마의 것이 분명한 코트 옆에 창문으로 다가가 입김을 잔뜩 묻힌 그는 중얼거린다.


 


 "무척이나 춥군"


 


 "곧 눈도 내일 것 같아"


 


 그 둘에게는 표정이 별로 없다. 간혹가다 피식 웃거나, 조금 우울해 보이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삐익, 문이 또 열린다. 이번에는 렉피오다. 그는 아주 폼나는 밍크코트와 잔뜩 줄이 잡힌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의 화려한 별무늬 넥타이에는 어떤 흠도 없었다. 먼저 와 있던 두 사람은 그를 그다지 반기질 않았다.


 


 "여기도 춥군 그래"


 


 "네 밍크코트보다는 덜 추워 보이는군"


 


 나키레마가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렉피오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뒤에 밍크코트를 나키레마의 코트 위로 덮어 옷걸이를 반쯤 가려 건다. 곧 그도 램프의 옆으로 불을 쪼일 요량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게도는 왔나?"


 


 사장님처럼 사무적인 말투에 네르코가 도리질을 친다. 그는 약간 화가 난 듯 했다. 곧 말람시도 들어왔다. 그는 오자마자 모두에게 깊게 웃어보이면서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 친구들"


 


 "어제도 만났어"


 


 나키레마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네르코가 유일하게 그를 포옹해줬다. 렉피오는 그에게 아무런 관심도 내비치질 않았다. 말람시는 추운 듯 손을 슥슥 비비면서 램프의 작은 불빛에 손을 데우려고 노력했다. 서로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시간을 떼우거나 말람시의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오두막을 가득채워가기를 기다리기만 했다.


 갑작스럽게 램프의 불빛이 흔들려 기이한 귀신의 그림자를 만들어내자, 그 안에 있던 네 명의 사람들은 작은 쪽문을 바라봤다. 키가 작은 소년, 두꺼운 옷으로 온 몸을 칭칭 감아서 그 속내를 도저히 돌 수 없을 것 같은 소년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엘카림이구나!"


 


 대뜸 램프에 가장 가까이 있던 렉피오씨가 양 팔을 벌리고 가장 기뻐한다. 그러나 소년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무심하게 렉피오를 바라본다.


 


 "엘카림이 아니예요"


 


 "그럼 넌 누구냐"


 


 렉피오는 다시 무심해진다.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무심하고 사무적으로 돌아 온 그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해 보인다. 램프 주위에 있던 이들이 소년 옆으로 몰려든다.


 


 "난 이 아이를 알아! 이 친구는 수피야!"


 


 말람시가 기쁜 듯 외쳤다. 유일하게 그는 웃고 있는 사람이었다. 점점 다가서는 말람시에게 소년은 손을 내저었다.


 


 "저는 수피가 아니예요"


 


 이번에는 말람시가 근심어린 무표정이 되어서 물러났다. 그는 수피 외에는 아무것에도 흥미가 없어 보였다. 차라리 램프의 불빛이 그에게 조금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말람시가 물러나자, 곧장 나키레마가 그를 안고 들뜬 행동을 했다. 그러나 소년은 매몰차게 그에게서 벗어났다.


 


 "너는 분명히 오레힘이었어!"


 


 "저는 수피도 아니고, 엘카림이나 오레핌도 아니예요"


 


 "그럼 넌 누구지"


 


 나키레마는 들뜬 표정에서 곧장 험상궂게 변했다. 마치 그는 소년이 아무것도 아닌 거렁뱅이라면, 소년을 죽여버릴 듯이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러나 소년은 겁먹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여전히 무표정을 하고 섰다.


 


 "엘카림과 오레핌의 동생이고 수피의 형입니다"


 


 "아! 너를 알어"


 


 네르코가 비로소 웃었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후줄근한 정장을 입고서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던 그의 손이 소년의 어깨를 잡았다.


 


 "호페구나! 어젠 네 형이 왔어!"


 


 호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아무런 표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네르코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문 밖으로 나가 눈이 내리기 시작해 새하얗게 물들어버리려고 하는 하늘을 무심하게 쳐다보거나, 길도 없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들어왔다.


 


 "게도씨는 안 오신다냐?"


 


 "예"


 


 "어째서 네가 왔지?"


 


 "엘카림은 바쁘고 수피는 아파요, 오레핌은 멀리 떠났구요"


 


 이번에는 렉피오가 손가락질을 한다.


 


 "네 형! 어제 왔던 네 형은?"


 


 "형도 아파요, 그래서 제가 왔죠"


 


 맙소사, 주위에서는 탄식같은 소리들이 가득했다. 수피를 찾던 말람시는 이제 창문 밖을 하릴없이 쳐다보면서 주문 같은 것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게도씨가 뭘 하고 계시냐?"


 


 나키레마는 게도씨의 안위를 걱정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전부인 것 같았다. 호페는 별 의미없이 '바쁘세요'라고 대답했다. 나키레마는 물러서고 네르코가 나섰다.


 


 "내일은 오신다고 하시냐?"


 


 "내일은 꼭 오신대요"


 


 호페는 오두막을 나가버린다. 뎅그러니 남은 네 명은 다시 램프의 옆으로 모여든다. 렉피오가 가장 먼저 시계를 보면서 옷걸이의 밍크코트를 집어들어 입는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 가야해"


 


 "그렇군, 늦었어"


 


 나키레마도 일어선다. 그는 옷걸이에 처량하게 홀롱 걸린 자신의 코트를 껴입고 네르코와 말람시에게 악수를 청했다. 네르코가 다른 이들에게 넌지시 질문을 했다.


 


 "내일도 또 올 건가?"


 


 "내일은 밧줄이라도 가져와야겠어, 마침 자살하기 좋은 튼튼한 나뭇가지의 너도밤나무가 한 그루 앞에 있잖아"


 


 나키레마가 대답했다. 그는 코트의 단추를 모두 잠그고 문 밖으로 나갔다.


 


 "내일은 게도씨가 오겠지?"


 


 렉피오는 자기에게 한 질문인지, 아니면 말람시나 네르코에게 한 질문인지 뚜렷히 구분되지 않은 말을 던지고 나갔다. 말람시는 램프에서 벗어나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올꺼야"


 


 "오지 않으면?"


 


 네르코가 렉피오의 말을 이어서 말람시에게 물었다. 그는 한숨을 내쉰 뒤에 말했다.


 


 "나키레마와 같이 자살이라도 해야지. 총으로 쏘면 편하게 죽으려나?"


 


 말람시도 한숨을 깊게 내쉬고 나가버린다. 홀로 남은 네르코는 램프의 불을 끄려고 뚜껑을 연다. 뚜껑을 열자마자, 그 작은 바람에도 불꽃이 넘실거렸다. 멈칫했던 그가 창가의 작은 통에 담긴 기름을 램프의 기름통에 다 부어버리고 뚜껑을 닫는다. 가득 든 기름 탓에 조금 환해진 램프의 불빛을 뒤로하고 네르코도 오두막을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