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tra_vars1 이오타 해군 재건 
extra_vars2
extra_vars3 117358-2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무슨 일이야?"

"신임 사령관이래."

리에타 항 내항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이오타 해군 사령부, 대리석으로 지어진 해군력보다는 국력에 비교되게 지어진 오래된 고풍스런 건물 앞에 병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전사한 류에인 제독이 능력은 별로였지만 인망은 꽤 높아서 후임으로 올 사람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그래서 모여 있는 병사들은 모두 그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일까?"

"외국인 이라는데?"

"설마 우리 이오타에 해군 장수가 아무리 없다고 해도 외국인한테 사령관을 주려구…."

"급여나 지급했으면 좋겠는데…."

"쉿! 온다."

병사들이 일제히 부동자세를 취하는 가운데 달려온 마차가 도열한 병사들 사이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열려진 문으로 내린 사람은

"꼬맹이?"

그 소리를 듣고는 꼬맹이, 즉 박창재가 눈쌀을 찌푸렸다.

"군기가 별로군."

그가 생각하기에 사기도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고 패배의 여파로 어딘가 기운도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예상외로 앞으로 여정이 힘들 수도 있겠다고 소년이 생각하는 사이 정문에서 중년기사 한 사람이 부하들을 대동하고 화급히 뛰어와 그의 앞에 멈춰서 헐떡거렸다. 해군이면서도 햇살이나 바닷바람을 전혀 맞지 않은 허연 피부에 뱃살까지 나온 모습을 보면서 나쁜 기분 더욱 잡치고 있는 소년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 헐떡거리고 나자 이번엔 실실거리기 시작했다.

"헤헤 신임 사령관이십니까?"

실실거리는 투가 '어이 신참 조용히 구석에 찌그러져 있지?"로 들린 소년의 입에서 경멸에 가득 찬 비틀린 소리가 그를 향해 튀어나왔다.

"자네가 현재 이오타 해군 최 선임인가?"

"그렇습니다만?"

상당수의 고위 장교가 전사한 지금 저런 월급벌레들이 최 선임이라고 저러고 있었다.

"인수인계 준비는 다 돼있나?"

"벌써 업무를 시작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불만 있나?"

"파티를 준비했으니 여독이라도 푸시고…."

기가 찼다. 비상사태에 이런 소리를 태연히 늘어놓다니, 전라 좌수영에 갖 부임한 충무공의 심정이 이해가 가려고 하는 그였다.

"자네 이름이 뭔가?"

"앙리 루블리제 남작이라고 합니다만."

"지금 상황 파악 안 되나?"

"예?"

어리둥절해 하는 남작의 가슴을 가볍게 한대 툭 치고 사령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뒤따라 종종거리며 인형이 따라 들어가고 남작이 황급히 부하들을 데리고 같이 달려갔다.




"지금 이 서류와 창고에 들어있는 물자의 양이 일치하나?"

"그…그것은."

죽은 전임자가 사용하던 집무실에서 남작이 허둥지둥 마련해온 서류를 훑어보던 박창재가 넌지시 물은 말에 화들짝 놀라며 버벅대는 꼴이 확실히 수상했다. 충무공처럼 다 싸잡아다가 장이라도 쳐야하나? 라고 생각하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그가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서 문을 바라봤다.

"마리에타! 왔구나!"

"마스터!"

뛰어 들어오는 중절모를 쓴 인형을 반갑게 맞으려던 소년이 뒤쪽에서 따라 들어온 청년을 보고 반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상태에서 굳어버렸다. 이자벨이 보낸 감시역이었다.

"드라이넨이라고 합니다."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에 응수하는 소년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쳐있었다.

"이자벨의 떨거지인가?"

"그렇다고 해두죠."

넉살좋은 놈이다. 자기 상관을 비꼬는데도 생글거리는 모습을 쳐 죽일 듯 쳐다보는 그에게 드라이넨이 이자벨의 전언을 전했다.

"긴급 예산 편성이 완료되셨답니다. 그리고 이건 전권 위임장입니다."

그가 꺼낸 서류를 홱 나꿔챈 그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추가로 전할 말은?"

"북 콘스탄트 해군이 일대에 출몰하고 마키시온 해군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재정비를 서두르시라는데요."

그로서야 부하들의 작태를 보고는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인데 일을 빨리 하라니 한동안 일에 치여야 할 거란 생각을 하고는 두통이 밀려왔다. 옆에서 어리둥절해 하는 남작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당장 움직여 발로 뛰는 거 이외에 방법은 없다."




리에타 항은 이탈리아의 주요 군항인 타란토와 유사하게 외항과 내항으로 구성된다. 내항은 군전용이며 주변 부두에 막사와 조병창, 창고가 죽 들어서 있었다. 부두에 정박 중인 군함들은 지금 신임 사령관을 맞이하여 신고식을 치르는 중이었다.

생존한 군함중 가장 대형함인 '제너럴 휘팅겐'호의 선상에 선원들이 도열해 있다. 기사들이 입은 갑주가 태양을 받아 번득이는 가운데 잔교가 사람이 올라오면서 삐걱이는 소리가 몇 번 들리고 검은 머리가 쑥 올라온다. 여자로 착각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장발에 잘생긴 얼굴, 대군을 지휘해 본 자에게서만 풍기는 카리스마가 풍겨 나오는 소년,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함장이 앞으로 나섰다.

"제너럴 휘팅겐 호에 승함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령관님!"

"고맙소."

주의를 한바퀴 둘러보자 불에 그을려 검게 탄 자국이 아직 치우지 못한 혈흔과 함께 군데군데 보였다. 수병들도 붕대를 감은 병사들이 섞여있어 치열했던 해전의 흔적을 볼수 있었고 함장도 한쪽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해전이 끝난 후 보수가 안 이루어졌나?"

부실하게 깨진 부분에 판자만을 덧대놓은 모습을 보고 그가 묻자 함장이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응급수리밖에 받질 못했습니다. 그나마도 시설이 부족해서 소형 함들 중에는 아직 수리를 받지 못한 함들도 있습니다."

"조선소들이 그 정도로 시설이 열악한가?"

"민영조선소를 사용할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소규모의 관영조선소만 할당받은지라…."

비상사태에 민영조선소가 군함소리에 동원되지 않는다? 의문이 든 그가 함장에게 물었다.

"민영조선소를 사용할 수가 없어?"

뒤쪽에 남작의 눈치를 보던 함장이 가까히 다가와 귓가에 대고 진실을 밝혔다.

"남작님이 조선소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무마해 주었다는 뒷말이 있습니다…."

물러나 차려 자세를 취하는 함장에게 고개를 끄덕인 박창재가 뒤돌아 불안해하는 남작에게 허리에 찬 검을 냅다 뽑아서 휘둘렀다. 시퍼런 칼날이 머리를 향해 날아들자 남작이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끄아악!"

두툼한 귀 하나가 나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남작은 공포에 질린 채 고통도 잊고 넘어져 부들부들 떨었다. 바지가 축축한 걸로 봐서 소변도 지린 모양이다. 소년의 입에서 노호성이 터졌다.

"개 같은 놈 조국이 위험한 상황에 뇌물을 받고 조선소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 에라이 쓰레기 같은 놈! 이놈을 작위를 몰수하고 노잡이로 만들어라, 끌고가도록! 꼴도보기 싫다!"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벌레라도 본 듯 쳐다보던 그가 다시 함장을 바라보았다.

"자네 이름이 뭔가?"

"알베르토… 알베르토 헨셀이라고 합니다 각하!"

병사들도 군기가 바짝 올랐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그에게 각하라고 부르는 함장을 안쓰럽다고 생각한 그가 함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네가 군 조선소에 들어가 있지 않은 함들중 심각한 순으로 민영조선소에 접어 넣고 수리시키도록, 거부하거나 뇌물을 건네는 놈이 있으면 나에게 끌고 오게."

"예 각하!"

"그 외에 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도록."

"그…그것이."

"주저 말고 말하게."

잠시 머뭇거린 함장이 입을 열었다.

"병사들의 급료와 사상자들의 연금이 조금 밀려있습니다."

갈수록 가관이다. 기가 막힌 그가 함장을 다그쳤다.

"어느 정도나?"

"연금은 고위 장교들만 조금 지급받았고 급여는 전원이 3달치가 밀려있습니다."

헛바람을 한번 들이키고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은 그가 주머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한 장을 찢어서 끄적거려 함장에게 던졌다.

"행정보급관에게 전하게 긴급편성 예산 중에서 일시불로 전 병력에게 지급하라고 적었네."

"가… 감사합니다 장군!"

"뭐 별로 당연한 거다 아니 지금은 비상사태니 당연한 것도 아니군."

잔교를 타고 내려가는 소년의 등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워 보일수가 없는 이오타 해군 병사들이었다. 경례를 붙이고 있다가 머리에서 손을 뗀 함장이 부하들을 바라보고는 오래간만에 그야말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서 움직여라! 장군님 말씀 못 들었냐?"

"예!"

희망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