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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팬픽 실크로드

2006.02.24 01:59

타마마이등병 조회 수:119 추천:1

extra_vars1 사념이 지배하는 강시 
extra_vars2 외전 
extra_vars3 20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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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은 실크로드라는 온라인 게임의 팬 픽션입니다.
중학교 1학년때였던가 썼었던 것 같은데;; 언젠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하여간 옛날 글.
레반터라는 아이디로 열심히 글 썼는데, 결국 상을 못 탔어요. 역시 전 부족한가 봅니다. OTL
그냥 외전 격으로 썼던 것만 한 편 올려 보겠습니다. OTL




※이것은 팬픽션이므로 사실과 무관합니다.

episode 외전-사념이 지배하는 강시[계속]


나는 존재한다.

그것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이 텅 빈 지하감옥 같은 실험실에서,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공허다. 머리가 텅 빈 것 같다. 이대로 있다가는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
나는 강시가 되기 이전에도 자기 주장이 강한 여자였다.
가난한 영세민의 딸로 태어나 젊은 나이에 절개를 지키다 죽었었다.
그래…… 그랬었지. 나는 사고는 하지 못하지만 기억은 할 수 있다.

그리고, 문이 끼이익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온다.
문 틈 사이로 조금씩 스며들기만 하던 빛이 갑자기 확 하고 펼쳐지며 나를 비춘다.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기억에 없다. 그러므로 나는 행동을 정지시켰다.
들어온 사람은 기억에 없었다. 단지 여자아이였다.
그 여자아이는 나를 어루만지더니 조그마하게 말했다.
"…불쌍해" 라고. 여자아이는 잠시동안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물론 숨도 내쉬지 않고, 고개도 까딱거리지 못하고 허공에 걸려있는 내 초점을 여자아이가 맞춰 준 것이었다. 잠시 후 여자아이는 아까보다 더 조그마하게 말했다.
"도와주고 싶어. 내 말도록 해."
여자아이는 조금 슬픈 눈빛이 되었다.
"나는 오늘밤 죽고 말거야."
여자아이는 머뭇거렸다. 그러나 결심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언니를 강시로 되살려 놓은 건 울 아부지야. 덕라법왕이라고 불리셔. 정말 대단한 분이셔. 하지만…나는 울 아버지보다 더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건 바로……"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한번에 토해내듯 여자아이는 빠르게 말을 지저귀었다.
"'바꿀 수 없는' 내일을 보는거야. 나는 그래서 알 수 있어. 내일이 캄캄한 건 내가 죽기 때문이야."
이 여자아이의 말이 사실인지 허황된 것인지 판단해야 하는가 하고 머릿속에서 물어보는 듯 하다. 하지만 사고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불가능 한 일이다. 나는 여자아이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이기로 결심한다.
"내가 죽으면 울 아버지가 슬퍼하겠지. 울 아부지는 내 영혼을 언니한테 집어 넣을거야. 그렇지만, 언니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울면서 내 시체를 화장시키겠지. 그러니까 언니가 아버지를 설득해야해. 어떻게 하는거냐면, 나를 불태우기 전에 내 시신을 다른 걸로 바꿔서 불태운 후에, 아버지에게 내 몸을 가져다 주면 아버지는 내 정신을 언니 몸 속에다 집어넣을거야. 행운을 빌어."

그리고 밤중에, '덕라법왕'이 울부짖는 소리가 내가 있는 어두컴컴한 지하창고에까지 들려왔다.

다음날 만난 덕라법왕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피곤해 보였다. 그는 내 얼굴을 손으로 부여잡고 통곡했다.
"내……내 딸이 죽었어……너, 너처럼 강시로 만들까 생각도 해봤어. 하지만……"
그는 이번에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쥐며 계속 흐느꼈다.
"너, 너처럼 아무런 말도 행동도, 생각도 제대로 하지 않는 인형이 필요한 게 아니야!"
덕라법왕은 오열하며 몸부림을 쳐댔다. 그는 눈물로 범벅이 된 손으로 나를 껴안아서 공중에 들었다. 눈에서 눈물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미안…정말 미안해……멋대로 이런 인형으로 만들어 버려서……."
기어이 그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앞으로 다시는 강시를 만들지 않겠어. 너의 의견을 묻지 않았던 것을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미안해. 내 사과를 받아 줘. 불쌍한…피조물이여."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우는거지.
나는 전혀 분하지 않다. 화가 나지 않는다. 이용당했다는 생각도 없다. 배신감도 없고, 한 많은 인생을 끝내주고 다른 생을 시작하게 해줬다고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어째서……
어째서 내게 사과를 구하는거지.
이미 늦은거 아닌가? 사과하기에는. 멋대로 이런 괴물의 몸을 가지게 되었지만 나는 전혀 고맙게도 나쁘게도 생각하고 있지 않아. 당신이 잘못했는지 잘못한 것이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그릇이 아니야.
어째서……
어째서 내가 불쌍한거지.
나는 전혀 불쌍하지도 불행하지도 기분좋지도 행복하지도 않은데…?

그는 나를 안아들고 자신의 집을 벗어났다. 그리고 내게 명령을 내렸다.
"네가……내 딸의 몸에 불을 질러라."
……용기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나는 기꺼이 그의 명령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는 나에게 불씨를 건네주고 집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나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주인의 명령과 소녀의 부탁이 어우러져 한바탕 대전을 치루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그러나 사고가 불가능한 나는 전혀 인지할 수가 없다. 결국 내 머리는 주인님의 명령에 따르라는 판단을 내린다. 그 이유는 소녀가 말한 '내 몸 대신 다른 것'이 무엇인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내가 너의 지겨운 감옥살이를 끝내주마."
강시를 죽이는, 아니 퇴치하는 방법은 부적 하나만 있으면 간단할텐데. 덕라법왕은 말만 그렇게 했지 선뜻 품안의 부적을 집아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덕라법왕은 부적에 손가락을 댔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수 차례 번복한 후, 결국 부적을 내려놓았다.
"너마저 잃으면 나는 모든 걸 잃게 된다. 왜 죄 없는 네가 희생당해야 하는 거지…너에게 보상해 줄 수 없다면 내가 처벌을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

괜찮아……

괜찮아요.

나는 괜찮아요.

당신이 나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나를 살려준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에게 깊은 감사나 속죄를 바라지 않아요. 나는 그저 당신이……당신이……
더 이상은 기억으로는 진행할 수 없는 수준이다. 사고의 장벽에 부딪쳐서 나는 더 이상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슬프다'. '슬프다'라는 감정이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왠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연하다. 나는 사고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지금만큼 '원망스러운' 적도 없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이 남자가 '불쌍하다'.

'불쌍'해서……나는 너무 '슬프다' 그리고 이 사실이 지금 너무 '원망스럽다'. 이 감정이 너무 슬프고 '애절'해서 나는 불쑥 손을 움직여 품에서 꺼낸 단도로 스스로를 찌르려고 하는 덕라법왕의 손을 제지한다. 그의 손이…파르르 떨린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소녀의 마음이, 내게 전달되었다, 라고.

주술을 쓰지 않고도…….

이제는 생각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던 사각이 줄어들었다.
나는 이제, 소녀가 말한 '나 대신 무언가'에서 무언가가 짚으로 만든 인형일수도 있고 베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내 사각에 가려져 있었던 감정도 느낄 수 있다.

나는……나는……. 덕라법왕의 눈이 휘둥그래지며 자신의 잡힌 손과 아직은 무표정한 내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다.
"쿡쿡쿡……."
이제는, '웃음'이 뭔지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 맞닿아 있는 덕라법왕님의 손이 '기분좋다'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