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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tra_vars1 큰 엘리와 작은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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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다.


몹시 고요해서 잠시나마 넋을 놓고 있다가는 나까지 그 고요함에 빨려들어갈 것 같다.

우리는 그 고요함을 미워한다.

고요함은 자신만의 생각을 하게 내버려두고, 자신만의 생각은 슬픔에 젖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힘겹게 짖어댄다.

짖어대지 않으면 하루종일 눈보라를 맞아가며 서있는 눈사람처럼 될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 사이에서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라고들 한다.


내가 한참이나마 설원 속을 누비며 촉촉한 코로 킁킁대며 먹거리를 찾고있을 때에,

저만치서 인간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곳 근처에 드루이드의 제단이 있다는게 사실이야?”

“응, 그렇게 알고 있는데... 가도 가도 나오질 않으니 원..”


나는 꽁꽁 얼어버린 나무 뒤에 숨어 인간들의 자태를 바라보았다.

우리 동족들은 인간을 '파괴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난 그런 인간들이 싫지 않다. 숲을 파괴하고 자신들 편한대로 살아가는 인간들인데도,

나는 그런 인간들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볼 때가 종종 있다.

바람의 말대로 나는 우리 동족의 이단아 일까?


“저길봐! 무리에서 벗어난 코요테야! 우릴 보고있네?”


히익 ! 인간들이 눈치챘다. 난 어서 달아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런 조급한 마음탓에 눈속에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저런...춥겠다. 내 로브속으로 들어와”


인간여자가 날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져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따스한 로브로 나를 감쌌다.

그래, 동족의 이단아라고 생각이 든 이유는 다 이것 때문이다.

난 이단아가 아니야 !

나는 내 날카로운 이빨로 인간여자의 부드러운 손을 물었다.


“아얏! 아파...”

인간여자는 재빨리 뒤로 뒷걸음치더니 옆에있던 또 다른 인간에게 자신의 상처를 내밀었다.

새하얀 설원속에서 새하얀 여자 모험가의 새하얀 손가락을 괘씸히 물고 나니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래서였을까? 잿빛색 털들로 가려진 내 묵빛 눈동자에서는 차디 찬 옥구슬이 흘러내렸다.

옥구슬이 흘러내린뒤에 바람이 나를 거세게 차고 지나가자 눈물이 타고내려간 자국이 얼듯이 찼다.

나는 나도모르게 낑낑거리며 짐승의 손따위로 눈 부분을 닦으려 애썼다.

이윽고 피가 지저분하게 묻어있는 여자의 손이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미안해, 내가 너에게 겁을 심어준 모양이구나.”


뭐라고 하는걸까? 나는 호기심이 넘치는 인간꼬마들같은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자는 우리와는 다른 미소를 지으며 나를 쓰다듬어주었다.

인간과의 만남은 이런거구나. 나는 새삼 행복하다고 느꼈다.


“어이 어서 가자고, 드루이드의 제단에 들렸다 가려면 꽤 시간이 오래 걸린다니까.”


저쪽에서 못생긴 인간남자가 성을내듯이 입을 나불거렸다.

멍청한 자식.

나는 이 인간여자가 내 곁을 떠나는게 싫었다. 그래서 이 인간여자를 붙잡으려 애썼다.

짖어보았다. 컹컹 혼신을 다해 짖어보았다.

하지만 인간여자는 화들짝놀래서 아까처럼 또 물리지 않을까 겁이나 뒤로 물러나는듯 했다.

나는 짖는것을 관두고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를 냈다.

끙...끙...앓는 소리를 냈다. 인간여자가 날 떠나가게 된다면 난 또 다시 혹한을 외로이 느껴야 할것이다.

계속해서, 안쓰러울 정도로 나는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인간여자가 나를 다시 쓰다듬었다.

그리고 인간여자는 고개를 저쪽의 멍청한 인간남자에게로 돌리며 뭐라고 말했다.


“미안, 이 코요테 왠지 불쌍해보여. 부모가 없나봐. 먼저가도 좋아.”


인간남자는 답답하다는듯이 고개를 으쓱하며 거세게 발걸음을 옮겼다.

난 내 곁에서 인간여자가 떠나가지 않는것에 만족하여 우리 동족의 규칙을 어겼다.

상대방에게 배를 보이지 않는것. 하지만 나는 그것을 어겼다.

이제 난 내 스스로를 이단아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단아든 뭐든 난 이 인간여자와 같이 있는것이 좋다.

이런 내가 한심스럽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건 다 필요없다.

인간여자는 내 옆에 앉아 나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비록 난 그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인간여자의 따스한 마음만은 나에게 잔잔히 전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인간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음, 너무 오랫동안 있었던것 같다. 좀있으면 해가 지니까 난 그만 가봐야겠어. 잘있어 코요테야.”


인간여자는 나에게 따스한 미소를 내보인 뒤에 캠프파이어를 피어놓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난 인간여자를 계속 주시했다.

인간여자는 뒤를돌아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왠일인지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앞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인간여자는 뭐라고 중얼거렸다.


“여기가...어디지...?”


무슨소린지는 모르겠지만 걱정이 태산같은 목소리였다.


“눈이 너무쌓여서 우리가 왔던 길의 형태가 흐트러졌어...그것도 아주많이...”


인간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았다.

나는 인간여자에게로 총총 다가가 인간여자를 위로하려했다. 하지만 인간여자는 계속해서 울었다.

그 울음은 슬퍼서가 아니라 내가 종종 느끼는 혹한의 공포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잠시후 인간여자가 울음을 그치고 캠프파이어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불이 있으니 괜찮을거야, 여기서 밤을 지샌뒤에 아침이 되면 가야겠다.”


인간여자는 이 한마디를 하고서는 불만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흘러 밤이되었다.

밤이 되자 조금씩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했다.

인간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인간여자는 조금씩 조금씩 로브를 꽈악 붙들어맸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인간여자가 안쓰럽다고 느껴졌을뿐,

왜 난 다른 생각을 하지못했는지에 대해 한탄스럽고, 분하게 생각한다.



“추...추워...왜..내가 왜, 이곳에서...있는지를...모르겠어, 도대체...”


인간여자는 나에게 힘겹게 속삭였다.

그 속삭임은 마치 죽음을 관장하는 신 앞에 어린양의 울음소리와도 같았다.

난 인간여자를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해주기위해 인간여자 옆에 바짝붙었다.

인간여자가 내 등을 쓰다듬었다. 인간여자의 손은 마치 냉기가 서린 얼음의 결정체같았다.


“더...이상은...못버티겠다...”


인간여자의 표정을 보니 내 마음까지 슬퍼졌다. 나는 낑낑대며 인간여자의 볼을 핥아주었다.

아까까지만해도 내가 인간여자의 볼을 핥아주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날 쓰다듬어주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식은땀만 줄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는듯 했다.

난 인간여자가 평온하게 잠들기를 바랬다.

잠을 잘때에는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는 민간요법이 우리 동족들 사이에선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인간여자가 어서 잠에 들기를 바랬다.

인간여자는 나에게 속삭이기를 포기하고서 눈을 감았다. 아마도 잠을 청하려는듯 했다.

인간여자가 잠을 청하고 있을때 나는 눈으로 인간여자의 몸을 덮어주었다.

조금이나마 추위를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우리 동족들은 이런 방법을 자주 쓰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나도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이런 생각들은 평소에도 한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이 생각을 하면서 옆에서 곤히 잠을 자는 인간여자가 떠올랐다.

동시에 두려움까지도 나만의 정서라는 바다에 거대한 파도마냥 밀려들어왔다.

그 두려움이라는 파도가 내 정서를 가득 메웠을때 나는 재빨리 인간여자를 돌아보았다.

곤히 자고있는 형상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나는 인간여자 가까이로 가서 코로 인간여자의 향기를 맡으려 애썼다.

그러나 이미 그 향기는 사라지고, 죽은자의 악취만이 풍겨져 나왔다.

무슨 의미일까? 인간여자에게서 풍겨지던 고유의 향기는 사라지고 지금은 악취만이 남아있다.

그 악취는 다른악취도 아닌 송장에서 풍겨져 나오는 썩은냄새와도 같았다.

그리고 나는 뒤늦게 인간여자는 잠을 잔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한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무행동도 하지못하고 인간여자의 시체를 쳐다보다가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아우우   -  ”





날이 밝았다. 나는 새벽내내 울부짖었다. 낑낑대는 신음소리조차 나오지 않을정도로 목이 쉬었다.

나는 아무소리도 내지 못했다. 다만 인간여자의 시체 주위를 멤돌며 눈물만을 흘릴 뿐이었다.

잠시 후, 저 멀리서 여러 인간들이 웅성거리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보통때라면 난 인간들을 피해 도망쳤을텐데 인간여자의 시체를 버리고 가기 싫었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인간들은 앞을향해 걷다가 내 존재를 눈치채고는 내쪽으로 웅성거리며 걸어왔다.


“앗, 엘리잖아. 엘리? 엘리, 정신차려. 엘리...?”


인간남자들은 인간여자의 시체를 쥐어잡고는 계속해서 뭐라고 떠들었다.

나는 그 만행에 화가나 인간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인간여자를 붙잡고있던 인간남자의 팔뚝을 물었다.


“으앗! 이자식!! 이자식이 엘리를 물어죽인게 분명해!! 고작 코요테자식이 엘리를 죽였다고!”


나에게 팔을 물린 인간은 광분을 일으키며 내 아가리를 발로 걷어찼다.

나는 눈위로 내팽겨쳐졌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을무렵에 또다른 인간이 망치를 들고 나에게 달려왔다.

난 필사적으로 그 공격을 피하려 애썼으나 인간의 망치는 재빠르게 내 등을 향해 내리꽂았다.

무지 아팠지만 난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며 계속해서 도망가야 했다.

하지만 망치에 맞은것때문인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고, 그때를 틈타 여러사람들의 몽둥이가 나를향해 날라왔다.

계속해서 내 몸을 그들의 둔기가 내리쳤고, 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도망가려 애썼다.


“이 똥개자식, 스미스도 니가 죽였지? 엘리와 함께 이곳으로 왔던 스미스도 이녀석이 죽인게 분명해!”


한 인간남자가 성이 난채로 뭐라고 지껄이자 여러인간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때리는 강도 역시 더욱 더 세지는것을 나는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피를 토해내며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렇지만 인간들의 공격은 끊이지않았다.

계속해서 둔기들이 내 배,등 구분하지않고 내리쳤다.

난 더이상 참지 못한채 쓰러졌다. 도망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난 인간여자 옆에 쓰러졌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잠시동안 내가 이단아가 된것에 대해 후회도 했지만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상황은 이렇게까지 됐다. 난 더이상 뒤로 빠질 수 없다.

난 마지막으로 인간여자의 고운 얼굴을 보고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인간여자에게 무슨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목소리가 쉬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고맙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불가능해서 난 죽을듯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죽을듯이 안타까운 감정도 부정적인 측면으로 실현됐다.

어느 늙은 인간이 내 등에 칼을 내리꽂았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외쳤다.


“니따위가...니따위가 내 귀한딸 엘리를죽여? 죽였냐고!”


무슨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인간이 칼을 내리꽂자 다른 인간들이 더이상 나를 때리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마지막으로 인간여자를 볼 수 있어서 기쁘다고 생각했다.

난 내 눈꺼풀이 저절로 감기기 전에 인간여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모든것이 어두컴컴해지며 내 생각조차도 사라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얘, 날 따라온거니? 후훗”


내가 눈을 살며시 뜨자 고운 목소리의 인간여자가 수줍은듯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무슨말인지는 몰랐지만 난 그 인간여자가 내가 죽기전에 보았던 인간여자임에 확신을 했다.

나는 너무나도 좋아 인간여자를 향해 폴짝 뛰어서 안겼다.

인간여자도 기분이 좋은듯 내 이마에 입맞춤을 한 뒤에 내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같이가자, 음...가만있자, 아직까지 난 니 이름을 알지 못하네? 니 이름이 뭐니?”


무슨말인지 못알아들었으나 기묘하게도 “니 이름이 뭐니?”라는 목소리를 내 귀로 들었다.

난 그 처음 알아듣는, 인간여자에게서 처음 듣는 그 말에 답변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짖었다.


“컹컹!”


인간여자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래. 니 이름은 이게 좋을것 같아. .....엘리.”



나는 기분좋게 짖어대며 인간여자를 졸졸 따라갔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환한 빛이 펼쳐졌다. 마치 내 옆에 있는 인간여자의 환한 미소와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