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팬픽 공의경계空の境界 - 잔류사념殘留思念

2008.10.16 09:11

유리l 조회 수:987 추천:1

extra_vars1 136290-1 
extra_vars2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이 글은 일체의 원본과 관계가 없습니다.


 


  팬픽으로 쓰인글이니 본래의 설정과 상당수 다른 부분도 존재합니다.


  원본 설정을 조금 아시는분이 읽으시면, 이해가 쉽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별 상관어 없습니다.


 


  -------------------------------------------------------------------------------------------------


 


  < 잔류사념殘留思念 >


 


 


  정신을 차렸을 때 주위에 남은것은 스스로의 즐거움을 견디다 못한 폐허가 된 풍경.



  —— 그 사람은 아득하게 멀어지는 우중충한 하늘 끝자락을 놓아주지 않고 그 끝에서 나와 마주서 있었습니다.


  —— 하늘 끝자락까지 비틀어 짠 탓인지 하늘로부터 떨어져 내리는 것은, 비.



  그 순간, 죽고 싶지 않다고 소리치던 그 때, 생生이 요동치던 그 감각을 떠올립니다.



  처음 한 발자국 다가올 때 보았던 것은, 비에 젖었어도 숨기지 못하는 그 이질적인 자태. 그리고 다음 한발자국 움직였을 때, 본 것은 내리는 빗물마저 거부 할 것 같던 은색의 나이프에 비추어진 환희.



  다음 마지막 한 발자국은, 그렇게 원하던 상대를 목전에 두고 순식간에 시들어버린 살의. 실망감속에 버려진 은색의 쇠붙이는 얼음보다 차가운 감촉으로, 피부를 가르고 살을 파고 찔러 들어와 상처를 후벼 팝니다.



  아아, 그 모든 순간을 이렇게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도, 지금 어째서 나는 ——— .


 



                                                                                                       \잔류사념殘留思念


 



 


  \1


 



  눈을 떴을 때 시야에 들어온 것은 변함없이 병적으로 새하얀 공간의 천장. 손을 조금씩 움직여 본다. 손가락 사이로 닿아오는 부드러운 시트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것으로 아직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안도하면서 천장을 계속 올려다 본다.



  흰 천장, 흰 벽, 새하얀 침대 시트 까지도 모두 새하얀 방. 어지러울 정도로 흰색일 뿐인 방은 너무 병적이어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어지럽다. 깬 상태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계속 누워있기를 몸이 거부해 몸을 반쯤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어 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따뜻하다. 아마 여느 때와 같은 빛나는 아침. 그러나 언제나 돌아오는 깨끗한 아침은 지금의 나에게는 독이나 다름없다. 그 독은 조금씩, 조금씩 그 순간 이후로 마음속을 침투해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생의 감각을 잃어버린 탓인가, —— 내리쬐는 밝은 빛이 이런 모습의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고 만다.



  시선이 옮겨간 창문 밖의 풍경의 미미한 변화들을 필사적으로 쫓았다. 어째서인지 최근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집중하지 않으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던 중년 남성의 무언가 괴로운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앞으로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지나간다. 또, 조금 멀리서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눈물짓는다. 다양한 표정의 교차. 삶의 요동을 가지고 있기에 지닐 수 있는 다양한 표정들의 세상이다. ——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렇게 한참을 상념에 잠긴채 밖의 풍경을 지켜보다가 지겨워 질 때쯤, 시선을 때고 지겹도록 흰 방안의 풍경으로 시선을 옮겼다. 흰 공간 어디를 둘러봐도 흰색뿐인, 말 그대로 지겹도록 한 가지 색으로 치장된 방. 이런 흰 병실 안에서 느끼는 건 단 하나뿐 이다.



  ㅡ 거짓. 죽은풍경.



  주위에 쌓여 있는 위로라는 말로 포장되어 도착한, 수많은 꽃다발들과 색색의 과일바구니들이 여기저기에 수북히 쌓여 놓여져 있다. 이제 침대 근처에는 더 이상 무언가를 놓을 만한 공간도 없다. 이런 형식적인 선물들이 잔뜩 쌓여버린 어지러운 방안은 더 이상 환자의 병실로 보이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폐기장을 연상 캐 하고있다.



  그래. 이것 정도는 참을 수 있다. 늘 참아야 했으니까. 그러나 내 신경을 가장 긁어대는 사실은 이런병실에 몰아넣은 아버지라는 작자는 가증스럽게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방문조차 하지 않았다 ….



  사실 그 아버지라는 작자 보고 싶지도 않다. 애초에 그 사람은 그럴 생각도 없겠지만.



  그 증거로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를 죽여 달라 의뢰했다는 사실을 몇 일전 한 여자의 방문에 의해 알게 되었다. 안경이 묘하게 인상적이었던, 단정치 못한 몸가짐의 그 여자는 나를 찌른쪽의 지인이라고 했다. 상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이야기 도중에 이불을 뒤집어 썼지만 여자는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 혼자서 구구절절, 사건의 경위를 꽤나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를 무통증으로 만든 이유 ….


 


  충격적이라고 하면 충격적이겠지만 … 왠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신적인 부분마저 무통증이 되어버린 걸까? 아니면 이런 사실을 가슴 한 켠 에서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걸까.


 


  어느쪽이든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정상이 아니니까 그런 사실따위 별로 소용없다고 생각한 탓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렇지만 나를 방문했던 그 여자도 정상은 아니었다. 환자한테 전혀 꾸밈없이, 잘못하면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그런 말들을 거리낌 없이 해댔다. 누가 어떻게 되든 나는 관계없다, 그건 전부 네 책임이다, 라는 어찌 보면 상대방에게 배려라는 전혀 없는 그런 태도. 그러나 그 여자한테는 그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여자가 끝까지 떠들고 돌아갈때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 와중에 그 여자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하필이면 아버지냐고 생각하겠지. 본래 세상은 어느정도의 부조리 속에 있어. 그 중에 너에게 닥친 부조리가 그것일까. 일반인이라면 평생가도 겪기 힘든 부조리일테지. 그러니까, 아마 앞으로는 잘 풀일 일도 었을거야. 그러니까 힘내라고.’



  그런 잔인한말을 내뱉은 주제에 어째서인지 마지막에선 나를 격려하려 들었다. 그렇게 일방적인 대화가 끝나고 그 여자는 왔던 것처럼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돌아가 버렸다.



  그 날 이후로 생각했다.



  그 때 …. 생의 감각이 소용돌이치던 그 때. 비가, 태풍이 오던 그 날. 그 여자를 만났던 그 날. 빗속에서 그렇게 달려들던 그 여자를, 살아있다는 내 증거를 앗아간 그 여자를, 내가 먼저 비틀어버렸으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톡 톡 -.



  갑자기 또 하나의 불청객의 방문을 알리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또 과일바구니나 꽃다발 둘중에 하나겠지. 나는 다시 자리에 누워 이불을 다시 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리고 속으로 소리쳤다. 제발 부탁이니 아무대나 놓고 빨리 사라져 버려!



  문을 열어젖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내 누군가가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났다. 무언가 바닥에 놓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제는 다시 문을 닫는 소리가 날 터였다. 그러나 다음에 들려와야 할 문을 닫는 소리가 없었다.



  대신에 다시 한 번 들려오는 노크 소리.


  톡 톡 -.



  그 사람은 어째서인지 곧장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시늉을 했다. 무시 했다. 무시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갈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그 불청객은 계속해서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결국, 나도 모르게 인상을 확 찡그린 채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자를 쳐다보았다.



  “…….”


  그리고 놀랐다.


 


  젖혀진 병실 문에 눈을 감은채로 느긋하게 기대어 한 손으로 문을 톡톡 두드리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수녀복에 가까운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교복 차림의 한 소녀가 서 있었다. 그것은 익숙한 교복이었다. 다름아닌 내가 다니던 학교의 교복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서있는 그 사람이다.


  친구…. 아아, 나는 아직 친구라는 말을 사용해도 되는 걸까?



  탄식성과 비슷한 목소리로 천천히 내 뱉는다.


  “… 아자카.”



  아자카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고 나를 본다.


  “아직 잊어버리고 있지 않았구나. 후지노.”



  잊을 리가 없다. 타인과 잘 어울리지 않던 나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게끔 계기를 준 사람. 그녀는 문 위에서 등을 때고 몸에 배인 것 같은 자연스런 단아한 동작으로 내 옆에 놓여진 의자 위에 조심스레 앉았다.



  “몸은 괜찮니?”


  “아 …으응 ….”



  아자카의 갑작스런 방문에 뭔가 머리를 강하게 부딪친 것처럼 왠지 멍하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 올 줄은 몰랐어.



  “자, 그럼 최근에 어떻게 지냈는지 동향을 보고 해 볼까.”



  아자카는 내 옆에 앉은 뒤로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새로 생긴 옷 가게에 마음에 꼭 드는 옷이 보여서 사고 싶은데 집에서 주는 용돈으로는 모자라 학생한테 돈이 생길 방법이 없다는 둥,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간혹 고개를 끄덕일 뿐 분명한 대답이나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ㅡ 나에게 이런 말들을 잘도 해주고 있다. 마음 한 켠에서 걸리는 사실 때문에 전처럼 아자카를 마주하며 이야기 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나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은 아자카였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말이 많았다. 아자카는.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르는 걸까? 아니면 다 알고서 모르는 것 처럼 가증스럽게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것일까. 적어도 후자는 아니었으면 좋겠어. 내가 가슴을 펴고 친구라고 부르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니까.



  내가 속으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동안 아자카는 계속해서 말을 꺼냈고, 시간은 금세 흘렀다. 밖에서 간호사가 면회시간이 끝났다며 외치고 있었다.



  “아, 벌써 한 시간이나 흘렀네.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다. 오빠랑 만나기로 했거든. 조만간에 또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노력은 해볼께. 그럼.”



  나는 아자카의 말에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자카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서서 의자를 옆으로 살짝 밀어놓고는 뒤돌아섰다. 시원한 걸음걸이, 때로 그녀는 남자같은 구석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뒤돌아서는 아자카의 모습을 지켜보다, 결심했다. 물어보자. 확인하고 싶어.



  “아자카, 잠깐만.”


  “응? 왜.”



  내 물음에 아자카는 고개만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아자카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갈등이 일었다. 물어봐도 괜찮을 걸까? 라고. 그러나 이내 결심을 굳혔다.



  “아자카 알고 있지? 내가 사람을 ….”


  “듣지 않겠어. 아니, 난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



  아자카는 내 말을 딱 잘랐다.



  “네가 무슨 일을 하던지 내 친구인건 변함없으니까. 네가 꺼내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듣고 싶은 마음은 없어.”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아자카는 … 아자카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를 친구라 말하고 있었다.



  “그럼 난 정말로 가볼께. 그래, 가까운 시일 내에 한 번 더 오도록 할테니까 몸조리 잘해.”


 


  아자카가 내 병실의 문을 닫는 것으로 나는 그제서야 그녀가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조금 얼굴이 따뜻했다. 어째서인가 옛날 어머니가 안아주었던 기억과 같은 마음이 떠올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아자카가 나갔던 문에서 시선을 때지 못하고 있다가 마음을 추스려 잠시간 눈을 감았다. 아자카가 오기 전 처럼, 다시 창 밖의 세상으로 눈을 돌렸다. 푸르른 녹음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밝은 얼굴이 눈에 띈다.



  아, 바라보는 세상은 저렇게나 아름다워 보이는데 ㅡ.


  나에게는 저것을 느낄 수 있는 생명이 남아있지 않다.



  나는 아무도 없는 빈 병실.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때의 아픔을, 요동치던 생의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어.



  그 여자를 만났을 때 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을텐데 지금은 전혀 모르겠다. 간혹 느껴지는 잔류(殘溜) 감각만이 내게 남아 있을 뿐. 이 잔류하는 것들이 모여 가늘게 한줄기 선을 이루어 겨우 생을 연장하고 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내려와 거울앞에 섰다. 비추어 지는 것은 자신. 아, 많이 야위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계속 무언가 마이너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이 병적인 공간에 머물면서 생긴 불순물 같은 것은 무기력함과, 서서히 무언가 잊어가고 있다는 감각과, 그 잊혀져감이 눈물이 되어 흐른다.



  눈을 감는다.



  비가 내리던 그 날을 떠올리면 다시 생각날 것만 같은 그 아프다는 감각. 간신히 손에 넣은 그 생의 감각을 앗아간 그 사람. 나를 낫게 해준것에 대해서는 정말로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를 낫게 하면서 동시에 나를 병들게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생의 감각을 그 사람은 병과 함께 가져가 버렸다.



  생각한다. 지금과 같이 내가 공허한채로 빈 껍대기 뿐이라면 —— 나는 그 순간에 죽는 것이 충실하지 않았냐고. 아자카에게는 너무나 미안하지만 그것이, 그 순간이 지금보다 더 생에 충실한 것이 아니었냐고.



  후회만 계속해서 거듭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되돌릴 수만 있다면 되돌려 보면 어떨까? 조금씩 되돌리다 보면, 분명 다시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 아픔을,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그 소중한 아픔을.


 


  그리고 이번에는 꼭 —— 그것을 가지고 싶다. 아니, 가져야만 한다.



  분명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미미하게 남아 있는 잔류殘留한 이 감각이 완전하게 사라지기 전에 다시 되돌려야 한다. 그리고 되돌려지는 마지막 시점에 위치했을 때 —— 그녀는 분명히 다시 나를 만나러 온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



  천천히 눈을 뜨고 거울위의 자신을 마주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남은 한 조각의 자기애를 버리지 못하고 거울의 자신을 향해 다시 한 번 묻는다.



  —— 나, 아사가미 후지노는 살아 있습니까?


 


  파직, 하는 무언가가 비틀려지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유리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래, 이미 답은 이미 나와 있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