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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연애 영원히

2006.08.28 05:00

최병일 조회 수:116 추천:1

extra_vars1 영원히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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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병실을 3개월동안 같이 사용했을 때다.
"안녕."
그녀가 머무는 병실에 들어온 나는 대뜸 인사하고, 옆에있는 내 전용 침대에 가서 앉았다.
"어디 다녀오냐?"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책을 뚱한 표정을 보고 있는 그 여자는 '루즈' 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치료가 불가능하여 나중에 병원의 명분을 위해 폐쇄처리 하려고 병원측에서 지우준 이름이라 한 것 같다. 그녀의 부모님은 돌아가셧고, 병원비는 어디서 내는지 조차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병원에 있다는 것은 안다.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유일한 것이자, 나의 작은 기억이기도 하다.
"슈퍼가서 음료수좀 사왔어. 마실래?"
난 내가 들고 온 비닐봉지 속에서 녹차베지밀 이라고 써있는 캔을 내밀며 물어보았다. 하지만 루즈는 살짝 고개를 가로지으며, 좀더 인상을 쓰고 있었다.
"무슨 책 읽길레, 인상을 그렇게 쓰냐." 침대에 누우면서 물어보았다.
루즈는 잠시 내 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책을 보며 답해주었다.
"나무라는 유명한 책."
"그래."
"읽어봤어?"
"아니."
"바보."
그리고 대화는 중단 되었다. 언제나 이런식으로 대화는 시작하고 중단된다. 루즈에 말에 마지막은 '바보'로 장식하는 것이 당연할 정도다.
"나무라.. 나도 봐도 될까?"
오늘은 용기를 내어 좀 더 대화를 요청해봤다. 아니, 난 정말 저 책을 보고싶은 것이다. 병원에서 3달째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오해는 말아다오.
"작업거냐?"
하고말았다. 오해를 하고 말아버렸다. 물론 상관은 없다. 정정해주면 그만이니까.
"아니. 심심해서."
"바보."
루즈가 바보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대화는 중단되는 것이다. 어짜피 할 것도 없는 나는 몸을 돌려 잠을 청했다.
"저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왜." 답해주었다.
"보라고."
루즈는 사냥꾼이 사냥감을 놓친 표정을 짓고는 가지고 있던 책을 나에게 내밀었다.
아, 멀다. 가지고좀 와라.
"가지고 가."
나는 힘들게 일어난 후 그녀가 내민 책을 집고, 다시 침대에 앉았다. 그리곤 나무라는 책 표지를 음미하며 책을 펼쳐들었다. 흐음...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지만...
내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자, 루즈는 심심했는지 나에게 수다를 떨었다.
"재밌어? 재밌지? 내가 고른 책중에서 제일 재미있어서 몇번을 봤는지 몰라. 한 100번은 넘었을껄. 아마 너도 보면 끌려서 계속볼지도 몰라. 하지만 줄 수는 없지! 아, 그 대신 팔 수는 있어."
판 돈으로 무엇에 쓸 건데.
"그 책 사면, 다른책들도 가져올건데 다 팔아줄게. 아, 일단 꽤 오랫동안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이니 세일도 해줄게. 십프로 세일해서 주지. 그 책이 팔천팔백원이니까, 깍으면 아마 칠천구백원일거야. 그 눈은 뭐야? 의심하는거야?"
아니, 그러니까 팔아서 어디다 쓸건데.
"아니면 안사겠다는 거야?"
"내가 돈이 어딨냐."
"그래..? 주머니에 돈 나오면 다 내꺼다. 그 음료수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줄때 마시지, 이제와서 쑥스러우니 뺏어먹으려고 하냐."
"무슨 소리! 난 교환법칙으로만 받아먹는다고."
그럼 이 음료수 줄테니 책 줄래? 바겐세일이면 이 정도는 해줘야하지 않겠냐?
"그럼 생각해봐!"
이내 루즈는 잠을 청하려고 헀는지, 고개를 창가쪽으로 틀며 누웠다.
"흐음.."
아무 의미없는 숨을 내쉬며,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잠이 쏟아져 온다.

끼이익.. 퉁.
병실에 문이 닫히자, 눈을 떳다. 그리고 난 제일 먼저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인 것은 그녀의 침대 뿐.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어이, 루즈. 숨었냐?"
되지도 않는 질문을 하고, 곧 문이 닫혔다는 소리에 깼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럼 루즈는 화장실이라도 간 모양이라는 거군. 그리고 그녀가 올때까지 기다렸다. 올 때 무슨 말로 그녀에게 인사를 할지 정하면서 말이다. 또 다시... 잠이온다.

끼이익.. 퉁.
또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에 깻다. 아마도 전생에 문 닫히는소리때문에 일어나는 습관을 가졌었나 보다. 아니 내가 아닌가? 그런 헛생각을 할 때, 간호사 누나가 들어와있었다. 나이스 바디. 몸이 끝내주네, 정말.
"..."
그 간호사누나는 아주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저가 퇴원을 할수 있게 된 것인가요? 그래서 슬퍼하시는건가요? 하지만 그런것이 아닌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나조차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무슨 심각한 일이있는거야. 뭣 때문에 저런 슬퍼하는 눈빛을 지니고 있지? 범인은 누구야! 내가 때려주마.
"저기... 정말 안타까운 소식입니다만..."
숨을 죽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표정만 보면 알아요 누나.
"루즈씨가.. 숨지셧습니다."
!!
마음속 한구석에 뭔가 천둥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죽었다고? 무슨 헛소리야!
"무슨 헛소리야!"
나는 내키지도 않는 말을 누나에게 내뱉었다. 그러자 누나의 눈속에서 물가가 흐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침대를 아주 강하게 쳤지만, 소리는 나지않고 푹신한 감촉만이 느껴졌다. 정말, 진짜야?
난 그녀가 준 책을 바라보며, 한동안 패닉상태에 빠졌다. 곧 책 표지에 물가가 젖어들었다. 눈물인가? 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는 건가보다. 남자는 울면 안된다는데, 아마 난 남자가아니라 여자일수도.
"크윽."
내 신음소리가 귀를 때렸다. 무의식중에 내뱉은 강렬한 말에, 누나도 깜짝놀랐는지 나를 보았다. 그나저나 내가 왜이러지? 그녀가 죽은게 뭐 어때서, 그냥 그녀에 대한 것만 지워진 거잖아. 그게 이렇게 슬픈거였나?
"간호사 누나. 어째서 저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거지요?"
나는 지금 상황에서 아무 쓸데없는 그리고 불필요한 질문을 숙제 내주듯이 누나에게 말하였다.
"그건, 아마도 당신은 루즈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일거에요."
차근차근 말해주는 누나. 누가 그걸 모르냐고! 문제는 내가 그냥 좋아하는 걸로 눈물을 흘리는 거냐? 내가 예전에 좋아하며 가지고 놀던 bb탄 총도 부셔졌을 때, 묵묵히 기억 속에서 지워버릴 정도인데! 어째서! 누나는 더 이상 내 눈물이 보기싫은 것인지, 아니면 내 꼴불견을 지켜볼 자신이 없는 것인지, 병실을 뛰쳐나가버렸다. 아, 쓸쓸하다. 이 기분 정말 느끼기 싫어지네.

-단순히 내가 그녀를 좋아한 것인가?

아니다. 난 그녀를 단순히 좋아한게 아니라 3개월동안 그녀를 보자, 자연적으로 '사랑' 하게 된것이다. 증거가 어딨냐고? 사랑은 증거가 있다면 빨리 깨진다고들 한다. 아마도 그 말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그럼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했지?

어떻게 대하긴, 그냥 내키는대로 말한거야. 그게 무엇이 잘못된거지? 내가 생각하기에도 루즈는 싸가지없고, 쓸데없이 바보소리만 지껄이는 여자애에 불과한데 무엇이 어쩃단거야. 사랑하면 사랑하게 대해야 된다는거야? 그런 위선적인 말을 믿으라고?

-아니 아니, 그 말을 묻는게 아닌것은 너도 잘 알잖아?

그래 알지, 난 지금 그녀가 준 책을 보며 생각하였다. 내 스스로 나에게 질문하고 혼자 답하는 이 상황속에서 그녀가 준 책에 머물고 싶었다. 어떻게 머물수 있느냐고는 물어보지 마라, 난 그냥 이 나무라는 책 속에서 바캉스를 즐기고 싶었던 것 뿐이다. 즉 루즈따윈 알고싶지도 않았어.

-정말?

아니. 정말이 아니다. 난 거짓말쟁이다. 아마도 난 그녀를 처음부터 사랑했어야 할 운명이었던 거다. 그녀가 죽음으로써 나는 좀더 내가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할것인지 운명의 여신이 정해준 것일수도 있다. 귀찮다. 이런 운명. 나는 언제 깍아서 가져왔는지 모를 과일과 같이 놓여져 있는 과도를 내 소매속에 숨겨두었다. 그리고 병실에서 나가, 안내소로 향했다. 루즈의 시체는 어딨냐고 하니까, 아직 수술실에서 이송되고 있다고 한다. 시체보관실에서 썩을 테냐?
그 순간, 저기 이송되고 있는 시체 한구가 발견되었다. 누가보기에도 저 의사와 간호사들의 모습은 죽은 환자를 데려올때의 표정이었다. 루즈라는 것을 확신하고 나는 과도를 꺼내 의사들을 위협했다. 아마 범죄겠지. 상관없어. 그녀와 함께라면.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 모른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시체를 휠체어에 태운다음, 밖으로 나갔다. 같이 갈꺼지? 루즈.
내가 가고싶은 곳으로.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