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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연애 A Tale That Wasn't Right

2007.11.10 09:57

LiTaNia 조회 수:461 추천:3

extra_vars1 11-C. 제멋대로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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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고민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대답은 해야겠지.


"셋 중에서는, 아마 파라파라 파라다이스 2nd가 괜찮을것 같네요."


내가 어렸을 때 '파라파라 퀸'이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었다. 별로 안 이쁜 어떤 탤런트가 불렀던 노래였는데, 그 때 우리나라에서 파라파라라는 것이 어느정도 알려졌었다. 하지만 파라파라 시리즈도 끊기고, 우리나라에는 파라파라 관련 음반이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아서 파라파라는 우리나라에서 별로 뜨지 못했지.


하지만 파라파라를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거기 나오는 노래들만은 마음에 드니까 한번 잘 못하긴 해도 파라파라로 골라볼까. 물론 말 그대로 팔이 아프긴 하겠지만 말이다.


"파라파라 파라다이스 2nd라.. 알았다."


내가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파라파라 파라다이스 2nd가 정말 들어올지는 미지수이지만. 일단 동전교환기에서 돈을 바꾸고 나서 EZ2DJ에 돈을 넣으려고 하니, 펌프팀 Only One 사람인것 같은 어떤 사람이.


"저기요. 혹시, 그때 그 여자분이랑 같이 계셨던 분 아니세요?"
"..네? 여자분이라뇨?"
"그 펠하운드3 하드 하셨던 분.."


희연이 말하는것 맞나보다. 어느새 희연이가 이렇게 유명해진거야. 하긴 그러고보면 그렇게 EZ2DJ 잘하는 여자애라면 유명해지지 않을리가 없지. 다만 희연이는 인터넷에서 활동은 안하니까 사람들이 희연이를 어떻게 부를지 모를뿐.


"네. 맞아요. 얼마전 우리학교에 전학왔어요. 저보다 EZ2DJ 더 잘해요."


희연이의 실력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무서울뿐.


"그분 혹시 활동하는 사이트같은거 있으세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거 물어본 적이 없어서요."


펌프팀 사람들. 실망하고 그냥 다시 펌프를 하러 가버리네.


에이. EZ2DJ나 해야겠다. 원래대로라면 Sunlight를 하려고 했지만, Sunlight 부른 사람이 남자라는 것을 알게되자 웬지 하기가 싫어졌다. 그냥 펠하운드3 노멀 정도나 파야겠다.


그렇게 EZ2DJ가 끝나고 뒤를 돌아보니까, 낯익은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소녀가 아니구나. 어이. 조민서. 정학까지 당하고도 정신을 못차리고 여장을 하고 나타난거냐.


그리고 민서는 나한테 다가와서 말했다.


"호진..이라고 했던가요."
"아니. 제 이름은 어떻게."
"현석이한테서 들었어요."


...어이. 현석이랑 민서랑 아는 사이였던거냐. 하긴 그러니까 현석이가 나한테 민서 이름 얘기를 했던거지.


"저. 어차피 학교는 이제 다니기 틀렸으니까요.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할거예요. 수환이놈도, 도와주기가 싫어요. 연락만 하면 '자지마 독서실'에서 안자고 공부하고있다고 하고."


이봐. 그놈은 지금 희연이를 가지려고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있단 말이다. 그냥 가져가면 될 것이지. 왜 다들 내 생각은 전혀 묻지도 않는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저한테 말 건 용건이?"
"호진씨. 정말 그렇게 희연이라는 짝이 좋으세요?"


호진'씨'라니. 사내자식 주제에 정말 막장까지 가는구나. 그보다 내가 희연이가 좋을리가 없잖아.


"아니요. 걔, 너무 부담스러워요."
"저.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할테니까요. 그 희연이라는 애보다 더 호진씨한테 잘해줄 자신이 있으니까요.."


...이봐. 아무리 요새 '막장'이라는 말이 나돈다고 해도. 너. 너무하지 않았나. 그게 사내자식의 입에서 나올 대사냐. 게다가 너마저 내 생각은 묻지 않고 이렇게 나오는거냐.


"...이봐요. 여장같은거 포기하고 그냥 여자친구 하나 구하세요."
"그러고 싶진 않아요. 저는 제가 왜 남자로 태어났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여자애들. 별로 끌리지 않아요. 저는 고민을 해결해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게 호진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여장에 재미들리면 자기 성 정체성까지 포기하게 되는건가.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진다.


"그리고 미안해서 어쩌나. 아무리 예쁘게 꾸미고 다닌다고 해도 동성애쪽에는 관심이 없는데요. 왜 다들 저한테 마음대로 접근하는지, 모르겠군요."


"별 수 없군요. 호진씨만은 저를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이봐. '호진씨' 소리 그만하라니까. 그리고 '호진씨만은'은 또 뭐냐. 네놈이 언제부터 나를 알았다고 그래.


민서는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펌프에 동전을 걸고 기다리고 있었고, Only One 사람들은 갑자기 '그다음에 그냥 하세요' 이런 식의 말을 하고 있었다.


저 Only One 사람들은 민서가 남자라는 것을 알고 있으려나. 하긴 민서가 저게 여장이 아니라 진짜 여자였다면 소현이 정도는 그냥 눌러버렸겠지.


에이. 갑자기 게임할 기분이 안난다. 그런데 방금 눈에 띈 오락실 노래방기계에서 나온 여자애.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분명히 쟤, 정혜림이다. 쟤한테 뭔가 제대로 말해봐야지. 더이상 수영이를 괴롭히지 말라고.


"이봐, 거기.. 정혜림 맞지?"


혜림이도 내가 부른 것이 의외였는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나서 뒤를 돌아봤는데.


"야, 이호진!!"


뭐야. 혜림이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니. 수영이한테 들었을까. 아니면 다른 애한테?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너.. 또 나보고 수영이 왜 괴롭히냐고 하려고 그랬지?"


혜림이가 이렇게 세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아니, 세게 나오는게 정상이었던가. 그렇다면 나도.


"응. 맞는데. 정말 수영이 왜 괴롭히는거야. 너같은 애 때문에 수영이가 더 마음을 닫는거, 정말 몰라?"


역시 내가 강하게 나오니까, 혜림이도 움찔한 모습이다. 역시 뭔가 찔리는 것이 있는 것일까.


"이호진.. 역시, 이런 애였구나. 너 때문에.. 수영이가 더더욱 싫어져."


뭐야. 이런 반응은. 갑자기 내 얘기가 왜 나와.


"이호진. 너 초등학교 유일초등학교 나온거 맞지?"
"응, 맞아. 그런데 갑자기 그건?"
"중학교는 월곡중학교 나왔고."
"맞아."


그런데 갑자기 혜림이 얘가 그걸 왜 물어보는 것일까.


"나도 거기 나왔단 말야. 호진이가 전학오고 나서, 호진이가 마음에 들어서 멀리서 계속 바라보기만 했어, 하지만 초등학교때 계속 같은반이 안되었고, 중학교 때도 같은 학교 걸려서 좋아했는데 같은 학교는 안 되었고, 호진이 너는 그 한하마인가 뭔가 하는 애만 생각했었어."


...뭐야.
이거 뭔가 무섭다. 알고보니 혜림이가 나랑 같은학교를 계속 나왔다는건 그렇다 치더라도, 얘 하마 얘기는 언제 들었지. 나랑 친한 사람 아니면 모를텐데.


"그리고 고등학교에 왔는데, 그 하마라는 애가 죽었다고 울고불고 한게 엊그제 같았는데, 호진이는 나를 볼 생각도 안하고.. 게다가 같은 반에 있는 수영이가 나보다 훨씬 예뻤던게 미웠어. 그런 애가 마침 낯을 가리기도 했고. 그래서 호진이가 날 바라봐주지 않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쌓인 것을 수영이한테 풀었었던거야. 그런데 웬걸. 호진이네 반에 희연인가 뭔가 하는애가 전학왔네? 게다가 호진이는 수영이 편을 들어? 왜 이렇게 웃기게 돌아가는거야?"


혜림이 얘가 언제 나에 대한 뒷조사는 저렇게 한거야. 그리고 수영이를 괴롭힌 것이 알고보니 나때문이었다니? 물론 혜림이가 한 이 말들도 희연이나 나래가 들었다면 펄쩍 뛸 말들이었겠지.


"난.. 그냥 누구하고도 다 친해지고 싶을 뿐이니까. 수영이가 다른 애들한테 마음을 별로 안 열어서 그런 수영이를 지켜주고도 싶고."
"이호진. 역시 그런 애였구나. 지금까지 쭈욱 너만 바라봤었던 내가 바보였어. 휴우."


그러니까 왜 제멋대로 실망하는 거냐구요, 혜림양. 왜 내 주변에 있는 애들은 다 제멋대로인거야.


"부탁 하나만 할께. 날 어떻게 생각해도 좋으니까, 제발 수영이만은 괴롭히지 말아줘. 그 애는, 다른 애들한테 마음을 잘 안 여는 앤데.. 그런 애를 괴롭히는 애가 있기 때문에 더 마음을 안 연다는 생각을 좀 해봐."
"뭐.. 어쩔 수 없지. 호진이 생각이 그렇다면. 하지만, 나도 지금까지 호진이를 계속 쭈욱 바라봤었다는거,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고 혜림이는 밖으로 나갔다. 뭔가 일이 잘 안된것 같지만, 정말 혜림이가 더 이상 수영이를 괴롭히지 않으려나.


뭐.. 일단 믿어 봐야지. 또 괴롭힌다는 얘기가 들리면 그 때는 내가 정말 혜림이를 가만히 안 둘 테니까.


기분전환으로 바람이나 쐬다가 집으로 가야겠다. 정말 파라파라 파라다이스 2nd가 동네 오락실에 나와주려나.


어제 수영이네 집에서 있었던 일이라던가, 방금 혜림이랑 한 얘기들. 이것들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알고보니 혜림이도 나한테 마음이 있었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아니, 같은 초등학교에 같은 중학교이면서 내가 왜 그런 애의 존재를 여태 몰랐지.


하긴 같은 반이나 같은 특별활동이나 같은 학원에 다니거나.. 그런게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알 리가 없지.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괴롭히는건 나쁜건데.


그리고 아까전 민서녀석의 위험한 말들. 생각해보니 아름이랑 민서, 서로 알고 있으려나. 만약 모르고 있었다면, 그 둘이 서로를 알게 되면 과연 어떤 반응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런데 둘이 만날 기회가 있긴 하려나.


그렇게 생각에 잠겨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호-진-오-빠!"


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래였다.


"왜 혼자있어, 호진오빠? 걱정마. 호진오빠 곁에는 나래가 있잖아."


어이어이. 마음대로 단정짓지 말라고.


"나래야."
"왜, 호진오빠?"
"나래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거야?"


일단 이거 한가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냥 친한 오빠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이성'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응. 호진오빠. 나래는. 호진오빠 말고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호진오빠는 나래한테 백마탄 왕자님으로 보여."


그 때, 또 다른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민애선배다.


"호진군. 여기서 만나네."
"안녕하세요. 민애선배."
"옆에 있는 애는 누구야?"
"제 소꿉친구였던 나래라고 하는데요. 어렸을때 제가 전학와서 헤어졌는데 나래도 이 동네로 전학와서 다시 만났어요."
"호진군 인기 많네~ 나중에도 신청곡 기대하겠어."
"안녕히 가세요, 민애선배."


방금 민애선배를 보고, 나래는 또 말했다.


"저 언니는, 누구야?"
"우리학교 방송실에서 점심방송하고 있는 선배야."


그리고 나래는 아까전에 민애선배때문에 끊겼던 얘기를 또 이었다.


"아.. 그렇구나. 호진오빠, 나래는. 호진오빠가 필요해. 나한테 있어서 백마탄 왕자님이니까."
"미안하지만. 나는 백마같은건 타지 않았고. 왕자는 더더욱 아니야. 단지, 내 곁에 있는 여자애를 지켜주고 싶을 뿐인. 한명의 소년일 뿐이야."
"호진오빠. 그 곁에 있는 여자애라는게, 누구야? 설마, 나래?"
"미안하지만, 아니야."
"..그럼?"


나래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런 모습을 보면, 누구나 동정을 갖지 않게 될 수 없겠지. 하지만. 지금 나는 마음을 잡기로 생각했고.. 나래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수영이야. 그 애가 다른 사람한테 마음을 잘 안 열어서, 내가 수영이의 마음을 열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냥 나래도. 친한 동생으로 있어줬으면 좋겠어."
"호진오빠... 너무해. 나래. 상처 많이받았어. 오랫동안 호진오빠만 지켜봤던 나래였는데. 갑자기 나타난 여자한테 빠져버리고!!"


...그리고 나래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 얘는 아직 많이 어린가보다. 아니. 사춘기에 상처를 받아서 그런건가.


"나래도. 좋은 짝을 만났으면 좋겠어. 그럼 이만."
"호진오빠!!!"


...말하고 나니까 나래한테 뭔가 너무 미안한걸. 집에가서 밥이나 먹자.


집으로 가고 있었던 길에, 마침 전화가 왔다. 써있는 발신번호를 보니까, 희연이였다.


"여보세요?"
"......"


그러나, 희연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지금 통신상태가 안좋아서 아무 말도 없는 것일까.


"여보세요?"
"......"
"전화가 안들리는데."
"......"
"미안. 끊을께. 지금 안들려."
"......"


희연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정말 휴대폰 통신사가 막장인것일까, 아니면 이게 바로 말로만 들었던 '무언전화'인 걸까. 만약 정말 무언전화라면, 뭔가 무서워지는데. 희연이가 이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다.


오늘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거지. 민서녀석은 모든걸 포기하겠다며 나를 호진씨라고 부르고, 혜림이 얘도 나를 지금까지 지켜봤었다고 했고, 나래는 나를 백마탄 왕자님으로 보더니 희연이마저 무언전화라.


진짜 내 주변 사람들 왜 다 이렇게 제멋대로인지 모르겠다. 수영이만 빼고.


집에서 밥을 먹고 나서, 아무리 집에 혼자 있다고 해도 공부는 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그런데 공부라는 거, 아무리 해도 잘 안되네. 하긴 요새 많은 일들이 있으니까 공부가 잘 될리가 없다. 어제 수영이가 실수로 포도주를 마시고 한 행동으로 봐서는, 수영이도 나를 단순한 친구 이상의 '뭔가'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인데..


도대체 애들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 희연이가 전학온 뒤 왜 이런 일들이 생겼냐구. 에이, 그래도 내가 발벗고 수영이의 친구가 되기로 했으니, 그 계기로 수영이가 다른 애들한테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을까.


일단 공부는 이 쯤 해두고, 방금전 혜림이가 한 말중에 자기도 나랑 똑같은 초등학교랑 중학교를 나왔다고 했지. 한번 졸업앨범에서 찾아볼까.


간만에 내 어렸을때 모습 보니까, 뭔가 새롭네. 나도 그 동안 많이 컸다는 것일까. 그런데 현석이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져보이지 않지만.


그런데.


6학년 7반 학생들 중에 떡하니 있는 '정혜림'.


사진만 봐서는 그냥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해보이는 애였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2반이었는데 7반이면 꽤 떨어져있는데.


그리고 중학교 졸업앨범도 뒤져보니까.


역시 정혜림이 있었다. 내가 나왔던 3반하고는 한참 떨어진 10반에서. 이 때는 머리가 길었었네. 그런데 지금은 샤기컷을 했지. 그거 외에는 별로 달라진 모습은 아니었다.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에 나에 대해서 그렇게 꿰고 나만 바라봤었다니. 이거 뭔가 무서운걸. 희연이가 전학오고 나서 모든게 시작된게 아니었나.


아니, 이게 표면으로 드러난게 결국 희연이의 전학 이후니까 결론적으로는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잠깐 TV를 좀 봐야겠다.


TV프로 '유한도전'을 보고 있던 중에, 내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필요 대출 자금 상담을 원하시면.."


뭐 예상은 했지만, 모르는 번호가 찍혀있는 전화는 맨날 이런거다. 그런데. 왜 이런 전화가 미성년자한테도 오는거지. 전화는 끊고, 다시 유한도전이나 봐야겠다.


유한도전이 끝나자마자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모르는 번호는 아니고, 현석이 녀석이다.


"여보세요."
"호진아, 나 현석인데. 혹시 이번 일요일날에도 시간있냐."


...이봐요. 나 시험공부 해야 한다구요. 시험기간 아닐때 같았으면 신나게 놀겠지만.


"시험공부때문에 시간이 없는데. 정말 따지고 싶은게 하나 있다."
"응?"
"도대체, 민서라는 녀석이랑 무슨 관계냐."
"무슨 일 있었어?"


이봐. '무슨 일이 있었'던 정도가 아니잖아. 지금 민서놈이 얼마나 많은 일을 저질렀는데. 일단 현석이놈한테 민서가 저지른 여러가지 일들을 다 말했다. 희연에게 접근했다던가, 오늘 오락실에서 나를 '호진씨'라고 부르며 나밖에 상담할 사람이 없다는 식의 말들을 말이다.


"그러니까.. 저런 자기 성 정체성까지 오락가락하는 녀석을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는거냐."


그 말을 한 지 얼마 지나자, 현석이녀석,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풋. 역시, 너도 놀란거냐."
"당연하지. 저런 상황에서 안놀랄 사람이 어디있어. 그것도 사내자식이 그러니까."
"미안, 장난이 너무 지나쳤군. 요새 호진이 너를 보니까 완전히 미연시스러운 상황이 된 것 같아서.."


이봐. 그거는 현석이 너가 미연시에 너무 빠져 있어서 그런거 아닌가.


"내가 플레이하는 미연시 게임에 나오는 어떤 캐릭터 한명이 있어."
"어떤 캐릭터인데?"
"머리도 길고, 착하고, 예쁘고.. 다 좋은데 한 가지 단점은."
"단점은?"
"남자야.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게임에 나오는 다른 여자애들보다도 인기가 많아."


...그런 게임에서 남자녀석이 인기가 많다니. 이건 뭔가 무서운데.


"그 게임 팬디스크에서는 마법의 지팡이를 이용해서 여자로 몸이 바뀐 뒤 주인공하고 맺어지는 부분도 있어."
"이봐이봐.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구."
"그래서, 혹시나 해서 내 친구중에서 여장을 꽤 즐기는 민서한테 한번 호진이가 넘어가나 하고 연기를 해달라고 한거야. 혹시 그 게임처럼 빠지진 않을까 해서."


...이봐요.
게임은 게임이고, 현실은 현실일뿐. 그리고, 그게 연기였어? 연기치고는 너무 생생했는데.
하긴 남자놈이 그렇게 성정체성을 포기한다는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날 상황이 아니지.


"...현석아. 한마디만 하고싶다."
"응?"
"제발 미연시 좀 그만해애애애!"


현석이녀석, 큰 소리 때문에 잠깐 귀가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뭐. 내가 오늘 아침에 민서때문에 당한 것을 생각하면..


"미안미안. 그럼, 나중에 시험끝난뒤에 놀아야겠군. 그럼. 끊을께."
"응."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정말 그 상황이 연기였다면, 민서녀석. 그대로 연예계에 진출해도 될 만한 수준이다. 이건 연기치고는 너무 생생했는걸. 정상적인 남자라면, 남자가 아무리 여장을 해서 예뻐졌다고 해도, 거기에 빠져들지는 않지.


컴퓨터를 키고, 얼마전에 현석이가 들었던 '니코니코 조곡'이라는 것을 검색해봤다.


이거. 뭔가 대단한걸. 이렇게 여러가지 노래가 자연스럽게 섞이다니. 이 중에 내가 아는 노래는 안보이지만. 그래도 정말 이 동영상 만든 사람 센스. 대단하다.


내일은 수영이랑 같이 영화, 아니, 극장판 만화를 보기로 한 날이지. 생각해보면 효선이한테도 계속 신세진다. 효선이 때문에 수영이랑 더 가까워지는것 같고, 효선이가 이렇게 영화표까지 줬으니. 그런데 그런 효선이가 왜 아름이라는 이상한 애를 친구로 두고 있는 것인가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테리다.


하긴 효선이가 그런 아름이한테 물들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지.


생각해보니까 아름이가 활동하고 있는 사이트가 '요염한 조공명의 별의 뒷쪽 오탄코나스'라고 했지. 한번 검색해볼까.


네버에서 쳐봤더니, 뭔가 좀 길게 나오긴 한데, 일단 그 사람의 블로그인듯한 것이 있다. 이거,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잖아. 동인지인지가 뭔가 가득 쌓여있고, '언제나 평안하십니까' 로 시작되는 각종 장문의 글들. 그런데 그 '언제나 평안하십니까'는 Tomorrow Perfume Radio에서 매번 DJ가 처음 하는 말 아니었나. 그리고 그 장문의 글들이 무슨 로리 얘기라던가 절대영역(주1)이니 뭐니..


현석이녀석마저 여기를 질이 안 좋은 사이트라고 했으니, 여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수준. 알만하다. 그리고 분명히 아름이도 여기서 활동한다고 했지.


이제 조금만 더 공부하고, '주말의 명화'를 보고, 자야겠다. 그런데, 오늘의 주말의 명화.


'긴급조치 20호'?


...어이. 이봐. 아무리 요새 '막장'이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해도 방송국마저 '막장'이 되어버리면 어쩌라구. 저런 한국을 대표하는 망한 영화가 왜 주말의 명화에 나와. 저게 어딜봐서 '명화'라구. 어차피 내일 수영이랑 같이 '시간을 뛰어간 소녀'를 보기로 했으니까.


그런 이유로 오늘은 일찍 잘 수 있게 되었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 다음회에 계속 -


주1. 절대영역 : 만화에서 짧은 치마와 오버니삭스를 입었을 때 맨 살이 드러나는 부분을 말하는 것인데, 이걸 왜 '절대영역'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음.


네. 이번 회는 A분기와 B분기에서 각각 나래랑 희연이가 안습되는 모습을 짜집기한 회죠. 거기다 정혜림양 등장. 그런데 알고보니 얘도 전부터 호진이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호진이의 지금 현실에 실망해버리고, 호진이는 이번에는 파라파라를 고르게 되었죠. 간만에 민서군이 나와줬지만. 호진이의 생각대로 민서랑 아름이가 나중에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해보니 이번회도 수영이는 한번도 안나왔군요. 내일 호진이랑 수영이가 극장에서 영화.. 아니, 만화는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