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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연애 A Tale That Wasn't Right

2007.10.28 05:55

LiTaNia 조회 수:627 추천:2

extra_vars1 6-C. 수영이랑 친해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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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진이의 과거회상을 보실 때 - Rialto의 Monday Morning 5.19라는 노래를 구하신뒤 틀면서 보시는 것이 좋음 *


예전에, 나는 채팅사이트 세이클럽에서 음악방송을 했었다.


"나에겐 친구가 필요없다♪ 아--- I'm a Netizen♬
컴퓨터안에 모든게 있다♪ 아--- I'm a Netizen♬
세기말의 꽃 얼마나 좋은가♪ 이십사시간 통신망은 자유롭다♬
워--- 나만있는 세상♪ 지긋지긋한 대인관계 필요없어♬"


로고송도 나름대로 넣어서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역시 방송국이 아닌 개인방송은, 그것도 남자가 하는 방송은, 듣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던 내 개인방송을 채워준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한하마'. 이름은 조금 이상했던 애지만, 내가 방송을 할때면 항상 들어줬었다. 방송방에 가끔 사람이 있을때도 있었지만, 그녀 혼자만 있을때도 꽤 많았다.


그녀가 좋아하던 노래는 리알토의 'Monday Morning 5.19'였었다. 조금 많이 몽환적인 노래였다. 그녀랑 친해지고 난 뒤 그녀가 올 때마다 그 노래는 빼놓지 않고 틀었었다.


At eight o'clock we said goodbye
일요일 밤 8시에 우리는 헤어졌어요


That's when I left her house for mine
그때가 내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그녀의 집을 떠난 시간이죠


She said that she'd be staying in
그녀는 집에 그냥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Well, she had to be at work by nine
아침 9시까지 출근해야 하니까요


So I get home and have a bath
그래서 난 집에 돌아와 목욕을 하고


And let an hour or two pass
TV를 보면서 한 두 시간을


drifting in front of my TV
그냥 멍하니 흘려보내죠


When a film comes on that she wants to see
마침 그때 그녀가 보고싶어하던 영화가 시작되었죠


It's Monday morning 5:19
지금은 월요일 아침 5시 19분이에요


And I'm still wondering where she's been
이 시간이 되도록 난 그녀가 어디에 가있는지 궁금해하죠


Cos' everytime I try to call
왜냐하면 전화를 걸때마다


I just get her machine
전화 자동응답기만 돌아가거든요


And now it's almost 6 a.m.
이젠 아침 6시가 다 되었군요


And I don't want to try again
이젠 더 전화하기가 싫어요


Cos' if she's still not back
왜냐하면 그녀가 아직도 집에 안 돌아왔다면


Then this must be the end
그럼 이걸로 우리 사인 끝이거든요


얘기를 하면서 서로 친해지다보니, 둘이 동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방송도 듣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새해가 시작되고, 새학기가 시작되고, 우리들은 둘 다 고등학교로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한 바로 그 주에, 내가 세이클럽에 로그인해보니까 하마가 로그인해있었고. 갑자기 비밀방으로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앗. 하마야. 웬일이야? 갑자기 비밀방이라니."
"호진아. 이제 우리도 중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이잖아. 혹시. 이번 주 일요일날 시간 있어?"
"그때.. 왜?"
"호진이랑 나랑. 지금까지 세이클럽에서는 많이 봤지만. 실제로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잖아. 호진이도 나 보고싶지?"
"응.. 하마가 보고싶긴 한데."
"그래서.. 내일 호진이랑 단둘이 시간을 갖고 싶어서 그래. 일요일날 아침 11시까지 혹시 송내역으로 올 수 있어?"


그러고보니 하마는 부천에 산다고 했지. 여기서 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지만.


"물론이지."
"그럼 일요일날 봐~ 혹시 모르면 010-3xxx-4xxx로 전화해."
"응~ 웬지 기대된다."


그것이, 내 일생 최초의 데이트였다. 나는 옷을 안되는 실력에 나름대로 차려 입고 전철을 타고 송내역까지 갔다. 송내역에 도착해서 본 하마의 모습도 아주 예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여자애들에 비해서는. 아니. 내가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나도 지금 환경에 물들어버린건가.


어쨌든, 하마는 어딘가 순진한 면이 많은 애였다.


그때, 정말 부천 중동이라는 곳의 이곳저곳 다 구경했었지. 영상문화단지에 있는 야인시대 세트장이라던가. 아인스월드라던가. 나는 아인스월드에서 세계에 이렇게 많은 건물들이 있는 것을 처음 봤다. 거기서 사진도 많이 찍었었지.


아인스월드를 나선 뒤에, 하마는 나한테 말했다.


"와. 하마야. 덕분에 좋은 것들을 많이 보게 되었어. 이런 곳에도 와보고."
"나도 재미있었어. 호진아. 오늘 일 절대 잊지 못할거야.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호진이한테 말하지 못했던 게 있었어."
"뭔데.. 하마야?"
"나.. 사실 시한부 인생이었어. 두 달 전에, 의사 선생님한테 가보니까, 두 달밖에 못 산다는 얘기를 들었어."
"뭐.. 뭐라고?"


충격이었다. 하마가 시한부 인생이었다니. 게다가 두달 전에 두달밖에 못산다는 얘기를 들었다니.


"지금까지 호진이한테 숨겨서 미안해.. 그래서.. 죽기 전에, 호진이가 보고 싶어서.. 이렇게 말했었던거야. 나.. 오늘 호진이랑 함께한 날.. 죽어도 잊지 못할거야."
"하마야.."


그리고 하마를 꼬옥 안아줬다. 원래 이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감정에 복받쳤다고 해야 하나. 그날 나도 많이 울었었다. 물론 하마도 많이 울었겠지.


"나.. 죽어서도 호진이를 잊지 않을거야. 호진아.. 나 없이도, 힘내.."
"하마야, 하마야!!"


그렇게, 하마는 떠나버렸다. 그 시각이 정확히 오후 8시였다.


내 머릿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으로 나한테 잘 해줬던 소녀 한하마. 그녀가 알고보니 시한부 인생이었고, 죽을 날을 얼마 앞두고 나를 보고싶었다는 것이었다.


그녀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새벽에 잠을 깨버렸다. 그녀한테 전화를 해 봤으나, 받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에 가기 직전에 전화를 해 보니까, 누군가가 받는 것이었다.


"여보세요."


하마 목소리는 아니었다. 목소리 톤을 얼핏 들어보니 어머님은 아닌 것 같고, 아마.. 하마의 언니였던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저는 하마의 채팅친구 이호진이라고 하는데요.. 혹시 하마 지금 있어요?"
"하마.. 걔.. 죽었어요."
"네??"


믿지 못할 소식이었다. 어제 나와 함께 있었던 하마가 지금 이 세상에 없다니.


"5시 19분에, 결국 숨이 끊어졌어요."


나는, 수화기를 손에서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애창곡인 Monday Morning 5.19. 정말 그것대로 5시 19분에 그녀가 죽어버렸던 것이었다.


"호진아, 오늘 안색이 안좋다."


학교에서는 현석이가 내 표정이 안좋은 것을 눈치채고 말했다.


"사실은.. 내 음악방송 자주 듣는 여자애 있잖아."
"응. 한하마였던가 걔."
"걔.. 오늘 새벽에 죽었대."
"저런.. 호진아. 상심하지 마. 언젠가 다른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거야."
"어이.. 너도 지금 없잖어. 그리고 내가 과연 만날 수 있기나 할까."


그래서 그 뒤로 월요일날 모닝콜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서 그녀가 좋아하던, 그리고 그녀의 사망시각이었던 리알토의 Monday Morning 5.19로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세이클럽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음악방송도 끊었고, 유일고등학교가 남녀공학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딱히 여학생들한테 마음을 가지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일은 잊어버렸지만, 습관처럼 월요일 모닝콜만은 이 노래로 계속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왜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거지. 역시 모닝콜인 Monday Morning 5.19 때문에 그런건가.


그리고 오늘도 대충 밥을 먹고 대문을 나서면..


"호진아, 좋은 아침!"


희연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희연이. 얘도 분명히 좋은 애다. 하지만. 하마의 일을 상기한 상태에서 희연이를 보게 되니 기분이 묘해지는건 왜일까.


그런데, 어제 분명히 과일주스집 앞에서 내가 우물쭈물하다가 희연이랑 나래랑 둘 다 삐져버렸던 것 같은데. 기분이 금방 풀린건가.


"희연아.. 어제는, 미안했어."
"괜찮아, 호진아. 호진이가 내가 마음에 들게 만들거니까."


역시. 희연이 이럴 줄 알았다.


"호진아. 오늘 안색이 좀 안좋은데.. 무슨 일 있었어?"
"아.. 오늘 좀 안좋은 꿈을 꿔서."
"걱정마. 호진이 곁에는 내가 있으니까. 호진아, 힘내."


이봐. 그게 아니잖어. 희연이는 왜이렇게 멋대로 단정짓는걸까. 그래도. 희연이가 힘내라고 하니까, 하마는 잊어버려야겠지.


힘내자. 오늘도 하루를 즐겁게 보내자.


"여어. 호진이 오늘도 희연이랑 같이 오냐."
"...이봐."


현석이의 태클은 오늘도 어김없이 이어진다. 이봐. 그건 단순히 방향이 같기 때문이라구.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희연이랑 이렇게 같이 등교하게 될 일은 없으려나.


"호진군. 방향이 같아서 그런것같지만은 않은것 같은데.."
"언제 또 독심술은 익힌거냐."
"호진아. 조그맣게 들렸어."
"...그런거였나."


뭐 현석이녀석이야 그렇다쳐도, 희연이마저 내 마음.. 아니, 독백을 들어버린건가. 이거 뭔가 살짝 난감한데.


학교에 도착한 뒤 수업시간, 이제 시험기간이라서 그런가 각 과목에서는 선생님들이 다 시험범위를 알려주시네. 그러면 뭐하냐.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 중학생때와는 넘어올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는데.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 성적이 나왔을 때. 완전히 좌절이었지. 중학교때는 그냥 쉬엄쉬엄 해도 되었는데. 고등학교 과목들이 이렇게 어려울 줄 누가 알았냐구요. 그런 이유로 공부를 하려고 마음을 잡으려고 하지만 학교에만 오면 여전히 수업들이 수면제일 뿐.


다행히도. 지금 내 곁에는 희연이가 있다. 희연이랑 힘을 합하다보면, 그래도 중간고사때보다는 뭔가 훨씬 나아지겠지.


그리고 쉬는시간. 이번 수업은 정말 유난히 졸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옆에는 희연이마저 쓰러져 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현석이는 내 앞자리로 왔다.


"난 정말 호진이 네녀석이 부럽다. 혹시, 잘 안되면. 나도 좀 소개시켜줘라."
"어이. 이봐. 2차원 세계에 푹 빠져있는 덕후를 누가 좋아하겠냐."
"덕후라니. '매니아' 같은 좋은 표현도 있잖아."


이봐. 최현석군.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네한테는 좋은 표현이 안나와. 그나마 현석이 너때문에 얻는 것도 많긴 하지만.


그런데 그 때, 안경을 쓴 여자애가 내 자리로 왔다. 얘 이름이 아마 '강효선'이었던가. 나랑 친한 애는 아닌데. 내 자리에는 웬일이지.


"그 팔에 하고 있는 팔찌, 수영이한테 받은거, 맞지?"


내가 효선이랑은 별로 얘기를 안했는데다가, 수영이 얘기는 분명히 현석이한테밖에 한 적이 없었는데. 얘는 어떻게 알았지.


"어.. 어떻게 알았어?"
"수영이가 남자애한테 선물을 준 적이 없었는데, 웬일이지.. 아, 너가 혹시 수영이 지갑 찾아줬어?"
"응.. 맞아."
"아하. 어쩐지, 수영이가 모르는 애한테 그런거 줄 애가 아니었는데. 수영이가 그 때 지갑 잃어버리고 많이 슬퍼했었는데."


그 때 지갑에 돈은 별로 들어있지 않았었던것 같은데. 왜 이렇게 수영이가 슬퍼했을까.


"하긴.. 자기 물건 잃어버리면, 슬플수밖에 없겠지."
"그 지갑에 알록달록한 장식같은거 붙어있지 않았어?"
"응. 그랬었어."
"그 장식들.. 수영이가 직접 붙인거야."


뭐야.
직접 만든 자수정 팔찌까지는 그렇다 치고, 그 지갑에 달려있는 그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것들까지 수영이가 직접 붙였다면..


수영이. 겉보기와는 달리 이거 뭔가 점점 무서워진 애네. 나는 효선이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질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굳어있어?"
"아니야. 수영이 손재주.. 참 대단하구나."
"호진이, 맞지? 수영이랑 친해지고 싶어?"


희연이 때문에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친구'가 하나 더 생긴다는건 좋잖아.


"응. 친해지고 싶어."


그런데 내가 효선이한테 말하자마자 마침 수업종이 울렸다.


딩 동 댕 동~♬


"앗. 수업종 쳤다. 나중에 얘기하자."


수업종이 치자마자 효선이랑 현석이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옆에서 졸고 있었던 희연이가 일어났다.


"호진아, 아까전에 무슨 이야기를 했던거야? 지갑.. 이런 얘기가 들린것 같은데."
"아, 내가 전에 지갑 찾아줬던 그 애 얘기 한거였어. 그 지갑에 달린 장식이 그 애가 직접 만든거래."
"착한 일을 하는건 좋은데, 호진이는 내꺼라는거 잊지 말아줘. 호진이가 다른 애한테 가는거, 볼 수 없어."


정말 희연이 얘는 알수없는 애다. 도대체 희연이 얘는 왜 나한테 달라붙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르겠다. 부담이 안되려고 해도 안될 수가 없어.


그리고 점심시간. 오늘도 어김없이 구내식당으로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호진아."
"응?"
"오늘도 구내식당 가는거야?"
"뭐 일상이랄까."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 준비했는데. 물론 호진이것까지."


또 그때와 같은 상황인건가.. 하긴 그때 희연이가 싸온 도시락은 정말 맛있었다. 뭐 급식비도 아끼고 좋긴 하네.


"와.. 희연아. 고마운데.. 굳이 나때문에 내 것까지 이렇게 쌀 필요는 없잖아. 많이 힘들것같은데."
"요새 매일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어. 나도 전학오기 전에는 안이랬었는데, 호진이랑 계속 있다보니까 호진이것까지 싸오고 싶어서..랄까?"


그런 이유로. 오늘도 다른 사람들 눈에 안띄는 옥상으로 고고. 도대체 우리학교는 왜 옥상이 열려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아는 학생들은 왜 얼마 안되는 것일까.


뭐 어찌되었든 좋다. 그 덕분에 다른 학생들의 시선은 피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부담이 되는건 어쩔 수 없잖어. 희연양.


"호진아. 아앙~"
"앙~"


우물우물.


희연이가 싸온 도시락. 맛있는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희연이가 부담스러우니.. 웬지 밥맛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그런데.. 희연아, 도대체 어떻게 어린 나이에 그렇게 요리를 잘 하는거야?"
"부엌에서.. 우리 엄마가 밥하는거 곁다리로 많이 봤어."


요새 여자애들은 가사일을 많이 귀찮아한다는데. 희연이 얘. 확실히 일등 신부감으로 손색이 없어보인다. 이런 애가 지금 나랑 함께 있다는게.. 나는 믿기지 않는다. 게다가 왜 내것을 같이 차려주는걸까.


"희연아, 그런데.. 먼저 있었던 학교에서는 희연이 성적 어땠어?"
"중간고사가.. 한.. 4~5등?"
"헉. 전교 4~5등? 대단하다.."
"아니. 반에서 4~5등."


역시. 전교 4~5등이면 나 정도는 안중에도 없겠지.


"덕분에 오늘도 잘 먹었어. 희연아. 내려가자."
"응.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내려가려고 하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뭔가가 떨어진다.
그렇다.
비가 오는 것이었다. 오늘 우산도 안가지고 왔는데. 이런 걸 보고 '대략 낭패'라고 하는 것이랄까.
그런 이유로 나는 희연이와 함께 교실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는 것이었다.


"모두 헤롤우."


어이. 헤롤우는 도대체 뭐냐. 헬로우겠지. 들어온 녀석은 우리반은 아니었고, 역시 희연이를 노리고 있는 수환이라는 녀석이었다.


"희연아. 도대체 내가 이녀석에 비해서 못한게 뭐야. 공부? 외모?"
"다."


이봐요. 나는 도대체 당신이 왜 희연이한테 집착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는걸요. 하긴. 내가 희연이랑 계속 같이 있다보니까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지만.


"희연아. 정말 내가 싫은거야?"
"응."


이런 저런 말을 해 본 수환이녀석. 결국 또다시 포기하고 자기 반으로 돌아갔다.


"호진아. 신경쓰지 마. 난 저런애는 신경도 안써. 호진이는 내꺼니까."
"고마워."
"에이, 뭘 그런걸 가지고."


그런데, 그 때 마침 누군가가 우리 반 교실로 들어왔다.


"효선아, 나 왔어!"


그런데 방금 들어온 여자애. 분명히 어디서 많이 본 애다. 작은 키에.. 귀여운 외형에.. 결정적으로 저 빨간색 왕리본.


그래. 분명히 어제 나한테 장난친 애였지. 하긴 거기에 넘어간 내가 더 어리석었지만. 방금 들어온 그 여자애도 나를 발견했나보다. 그 여자애도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어, 너.. 혹시 어제 그 애 아냐?"


그런데 문제는 왜 하필 내가 희연이랑 있을 때 우리반에 온거냐구.


"호진아, 얘는 또 누구야?"


하긴 희연이가 어제 일을 알리가 없으니. 나 혼자서 쓸데없이 낚여버렸던 일이지만.


"아.. 어제 집에 가는 길에 누가 장난친거에 바보같이 넘어가서."
"호진이도, 참 순진하네."


그리고 그 때 효선이도 이쪽으로 왔다.


"어, 아름이 왔어?"


이봐. 둘이 아는 사이였단 말야? 둘이 뭔가 극과 극이잖아.


"어제 학교에서 보면 나 알려준다고 말했잖아. 늦었지만 소개할께. 나는 '유아름'이라고 해."


'유아름'이라. 이름은 예쁘네. 아니. 이름'만' 예쁜건가.


아름이가 자기 소개(?)를 하고 나서, 효선이도 아름이한테 말했다.


"아름이 어제는 또 무슨 장난을 친거야?"
"그냥 어제 지나가다가 얘가 여자애 두명하고 말하면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던게 보여서, 살짝 장난기가 생겨서."


뭐야. 그러면 아름이 얘가 어제 내가 희연이랑 나래랑 같이 있었던걸 봤단 말야?


"아름이 요새도 코믹월드에서 BL회지같은거 사서 보는건 아니겠지."
"그렇지않아도 어제도 쫙 긁어왔어. 효선이도 한번 읽어봐. 정말 재미있어."
"미안. 그것만은 별로 보고싶지 않은데."


이봐. 아름양. 방금 '코믹월드'라고 했어? 얘 진짜 위험한 애네. 그리고 도대체 BL물은 또 뭐야?


"다음달에는 나도 하나 출품하기로 했으니까, 효선이도 한번 놀러와!"
"놀러가긴 할건데. 웬지 BL물은 별로 보고싶지가 않아."
"그럼 나 가볼께. 아차, 넌 이름이 뭐야?"


이봐. 아름양. 어차피 교복에 내 이름 새겨져 있잖아. 그래도 일단 말해줘야겠지.


"'이호진'이라고 해."
"호진이한테 나중에 한번 더 장난쳐볼까. 잘있어, 효선아~ 그리고 호진이도."


효선이는 자기자리로 돌아가고, 나랑 희연이는 한동안 또 굳어있었다. 도대체 BL물이라는게 정말 뭐야.


그리고 남은 수업은 이어지고, 수업이 다 끝나고 나서, 종례시간 전에, 아까전에 아름이라는 애가 말했던 그 BL물이라는게 뭔가 현석이한테 물어봐야지. 혹시 알고 있으려나.


"현석아. 도대체 BL물이라는건 뭐냐."


그러더니 현석이도 심하게 정색을 하면서.


"도대체 BL물이라는거 어떻게 알게된거냐."
"아까전 어떤 여자애가 와서 코믹월드에서 BL회지 싹 쓸어갈거라니 다음달 코믹월드때 자기도 BL물을 출품할거라니 이런 얘기 했는데, 뭔 얘긴지 모르겠다. 같이 있었던 애도 BL물은 보고싶지가 않았다고 했었다."
"그 여자애.. 누군지 몰라도 위험해. BL이라는게, Boy's Love라고, 남자들끼리의 동성애물이야. 다른 말로 '야오이'라고도 하지. 몇몇 여자애들이 그런거 좋아하던데, 그런 애들 정말 이해가 안가더라."


뭐야, 현석이 너랑 같은 종류인줄 알았더니, 또 다른 종류란 말인가. 뭔가 더 무섭네. 게다가 남자들끼리의 동성애라. 뭔가 너무 엇나갔잖아!


그 때, 내 휴대폰으로 뭔가 문자가 왔다. 교실 안에는 희연이때문에 문자를 확인하기가 곤란해서 밖에서 문자를 왁인해보니. 수영이한테서 온 문자였다.


'호진아. 그때 오해가 좀 있었던것 같은데, 둘이서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싶어. 답장 부탁할께. - 수영이가'


하긴 그때 공원에서도 그렇고, 깡통모아 생과일주스집에서도 그렇고, 나래때문에 오해가 생겼었지. 이 상황을 만회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혹시 또 나래가 찾아오면 어떻게 되려나. 그리고 이것때문에 희연이랑 시험공부하는 것에 지장이 생길수도 있고.


그래도 답문은 보내주는게 매너겠지. 수영이랑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나 오늘 내 짝이랑 같이 시험공부할건데, 시험공부 끝나고 나서 저녁에 공원에서 만나는거 어떨까?'


내가 문자를 보내자마자, 수영이한테 답장이 왔다.


'응. 그럼 저녁에 공원에서 봐'


수영이한테 온 문자를 확인하고 다시 교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 긴 머리 여자애...가 아닌 민서가 우리반 교실로 왔다. 도대체 얘는 왜 온걸까.


"희연..이라고 했죠. 한번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안될까요."
"이봐요. 나도 당신이 남자라는거 알거든요."
"그래도요.. 희연씨한테 알고싶은게 있어서 그래요."


그런데 이 때 등장한 것은 하필 학년부장 선생님.
당연히 민서는 그 자리에서 굳어있을수밖에 없었고, 학생부로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하긴 학교 안에서 여장을 했다는 것이 정말 용자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그 댓가는 치뤄야겠지. 앞으로 민서를 학교에서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종례가 끝나고 희연이와 함께 나서려고 하는데, 빗줄기는 어느덧 굵어져서 우산을 안 쓰면 정말 안 될 상황이다. 이미 우산을 안가지고 온 몇몇 학생들이 책가방이나 책을 머리에 들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우선 나부터가 큰일이다. 이렇게 비가 올 줄 모르고 우산을 안가져왔으니.


이제부터 일기예보 체크를 제대로 해야지. 아침에 TV틀면 뉴스시간에 날씨는 대충 나오니까.


"큰일이네. 나 우산 안갔고왔는데."
"걱정마. 호진아. 이럴 줄 알고 좀 큰걸로 가져왔어."


희연이 들고 있었던 우산은. 여자애가 들기에는 뭔가 커다란 우산이었다. 희연양, 혹시 이런 상황을 노린거였던가. 희연양.


"희.. 희연아. 고마워. 그런데.. 이 우산. 여자애가 쓰기에는 좀 크지 않아?"
"호진이가 안갖고왔을거 같아서 호진이랑 우산쓰고 가고 싶어서."
"역.. 시 그런거였어?"


그리고 우산을 잡고 희연이를 씌워줬다. 역시 이런 우산은 여자애가 쓰기는 좀 커서 내가 들어줘야지. 시험기간중이니까 당연히 오락실은 스킵이다. 게다가 희연이랑 시험공부도 해야하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한 우산을 둘이 같이 쓰는거, 뭔가 부담이 심하잖아.


이렇게 둘이서 걷다보니 벌써 집에 도착했다. 시간이라는 것, 정말 빨리 가는구나.


- 다음회에 계속 -


17. 유아름 : 17살. 여자. 효선이의 또다른 친구. 일요일날 호진이한테 장난을 친 장본인이기도 하다. 겉보기에 고1로 안보이고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녀. 하지만 그녀가 진짜로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다.


네. B분기 후반에 잠깐 나왔던 효선이가 나왔죠. 이쪽에는 효선이가 수영이랑 친하다는 설정이라. 그런데 문제는 효선이의 또다른 친구인 유아름양이 좀 많이 위험한 애죠. 점점 얽히는 애들이 많아지는 호진이. 과연 수영이랑 친해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