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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연애 A Tale That Wasn't Right

2007.09.27 05:40

LiTaNia 조회 수:545 추천:1

extra_vars1 18-B. 더이상 엇나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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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훗. 바보같은 호진오빠, 이게 나래 목소리로 들려?"
"너.. 명희?"


뭐야. 이 상황은. 명희가 나래의 휴대폰을 뺏아서 나한테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이었나. 이거 장난이 아닌데.


"그래, 나야. 이제야 상황판단을 하네."
"너.. 나래를 어떻게 한 거야!!"
"후훗. 여전히 바보같네. 나래만 찾다니."
"어떻게 한 거냐구!!"
"글쎄. 지금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역시 명희가 나래를 어떻게 한 것임이 틀림없다. 안명희, 결국은..


"너.."
"이 동네에 마침 짓다 만 건물 하나가 있더라. 그 쪽으로 오면, 알려줄께."


그 말을 남기고 명희는 전화를 끊었다. 그래. 분명히 하교길에 짓다 만 건물이 하나 있었지. 상가건물인 것 같긴 한데, 완공이 5월이라고 써있었지만 지금까지도 다 안지어졌고, 지금 공사도 전혀 하고 있지 않는것같은 건물.


명희의 말을 믿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명희의 말대로라면, 나래가 그곳에 있다. 어서 뛰어야지. 시간이 없어.


이런, 마침 비가 오네. 비가 올 줄 모르고 우산은 안가지고 왔는데. 하지만 상관없다. 빨리 뛰어가야지. 나래야. 부디 무사하렴.


죽어라고 뛰어서 명희가 말한 문제의 짓다 만 건물에 도착했을 때, 내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양아치들이 쫙 깔려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쪽수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이거, 완전히 파이널 파이트(주1) 잖아, 아니면 이소룡 게임(주2)인가.


게다가 몇명은 무려 총까지 들고 있어. 진짜 총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꼼짝없이 당해버리겠는데. 그 때,


"어라라. 너가 여긴 웬일이야?"


뒤에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보니까 내 뒤에 있는 인물은 분명히 많이 본 인물이었다.


"소..현이?"


그렇다. 소현이였다. 분명히 연예기획사에 길거리캐스팅이 되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여기는 웬일일까.


"여기는 웬일이야?"
"오늘, 소속사에서 사정이 생겨서 오늘은 트레이닝이 없다고 해서 간만에 집에 들러볼 겸 와봤는데, 얘네들이 언제 유일동까지 왔는지 몰라도, 얘네들이 유일동에 온 건 큰 실수라고 말하고 싶어. 그렇지 않아도 소속사에서 계속 연습만 시켜서 몸을 못풀었는데 말이지. 게다가 우리학교에 다니는 애가 당했으니, 더더욱."


역시, 소현이도 효선이가 당한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나.


"지금 내 여자친구가 저녀석들한테 잡혀있어."
"여자친구라면, 그 희연이라는 전학생?"
"아니. 걔 아냐. 또 다른 애야."
"훗. 호진이, 의외로 능력있는걸. 귀여워."


소현이랑 얘기하고 있는 사이, 각목을 들고 있는 양아치들이 떼지어서 이쪽으로 돌진했다. 잘못하다가는 당한다. 쪽수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해.


"한꺼번에 덤벼라!"
"저놈을 명희한테 데려가야 하니까, 너무 건드리지 마!"


그 때, 나는 소현이라는 애가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각목을 들고 떼를 지어오는 양아치들, 하지만 소현이의 한방한방에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소현이는 힘은 그렇게 세 보이진 않지만, 어디를 때리면 고통이 큰 지 알고 있는듯한 느낌이랄까. 소현이는 그렇게 이쪽으로 다가오는 양아치들 한명한명을 다 쓰러뜨렸다.


"역시.. 보라폭풍."


잠깐. 보라폭풍? 처음 들어본다. 소현이한테 언제 그런 별명이 붙었던거지.


"명희가 분명히 유일동에 오면 보라폭풍 박소현을 조심하라고 했지만, 설마설마 했는데 직접 보고나니까 장난이 아니네. 이거 어떡하지."


역시 명희도 소현이를 알고 있는 것이었나. 이거 뭔가 점점 무서워진다.


"소현아. 혹시 안명희를 알아?"
"강동구랑 송파구에서 겁없이 설쳤던 애잖아. 감히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손 좀 봐 줘야지."
"그런데, '보라폭풍'은 뭐야? 난 처음 들어보는데."
"내가 방학때는, 머리를 보라색으로 물들였어. 학기중에야 학교에서 걸리기 때문에 못하지만. 그 때 정신 못차렸었을 때, 안좋은 애들이랑 놀았던 적이 있었지."


단지 머리색 때문이었던건가. 그리고 그 보라색으로 머리를 물들였을 때에 도대체 뭘 했기에 '보라폭풍'이라는 별명까지 붙어버렸던 것이었나. 이전의 소현이의 모습도 뭔가 정말 궁금해진다. 그리고 소현이랑 명희가 서로 알고 있었다니. 소현이가 우리는 모르고 있었는데 이쪽에서는 유명했던 애였나. 무섭다. 하긴 학교에서도 어떤 의미에서 무서웠던 소현이였지.


뒤에서는 총을 가지고 있는 양아치들이 나랑 소현이를 향해 총을 겨눴다. 그리고 날아오기 시작하는 총알, 역시 진짜 총은 아니고, 예상대로 BB탄이었다. 그러나..


쩌어어억.


양아치들이 쏜 BB탄이 건물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에 맞았는데, 차 유리가 쫙 갈라졌다. 뭔 BB탄총이 이렇게 세. 설마 이게 뉴스에 나왔다는 개조된 BB탄 총인건가.


소현이가 각목을 든 놈들을 상대하는 사이, 뒤에 있는 BB탄총을 든 놈들한테 돌진해야겠다. 저 놈들을 가만히 놔두면 소현이한테도 벅차. 나도 뭔가를 해야지. 차 유리를 갈라지게 했다고 하더라도 설마 BB탄인데 얼마나 세겠어.


윽. 한방 맞았다. 이거 장난이 아니잖아. 옷이 뚫렸어. 게다가, 맞은 자리를 만져보니 움푹 패어있었다. 피도 줄줄 흐르는데. 몸도 아프고.


"이봐. 장난감을 장난이 아닌 용도로 사용하면 어떡하라는거야."


내 경험상으로, 대부분의 게임들에는 법칙이 있다. 원거리무기를 사용하는 직업은 적이 너무 가까이로 오면 오히려 불리한 것, 이게 현실에도 적용이 되려나. BB탄이 날아오든 안날아오든, 한번 돌진해봐야지.


역시, BB탄을 일부러 맞고 얼굴과 온몸에 상처가 생기는 것을 감수하며 내가 가까이 가니까, 당황하는군.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양아치들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너무 강력했고, 나는 그대로 멀리 나가떨어져버렸다. 역시 현실은 다른걸까. 그 양아치들이 BB탄총의 개머리판으로 나를 내려치려고 한다.


"넌 이제 끝이다!"


미안. 그건 너희들의 실수였다. 나는 맞기 직전에, 개머리판을 받아내서 부웅 돌리고 멀리 날려버렸다. 소현이가 처치중인 각목을 든 놈들을 향해서.


그렇게 얻은 총의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은 이미 고장났는지 총알이 나가지 않는다. 할 수 없지. 그냥 총을 때리는 용도로 사용할수밖에. 소현이의 도움도 있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뭔가 들고 있어서 그런지 나머지 놈들은 의외로 쉽게 쓰러져버렸다. 이제 1층은 거의 청소가 된 것인가.


"그런데, 지금 호진이랑 사귀고 있는 애는 누구야?"


소현이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하긴 소현이가 나래를 알 리가 없으니.


"윤나래라고.. 내 소꿉친구였어. 그런데 내가 이곳으로 전학오고 나서 헤어졌는데, 나래도 이쪽으로 전학오게 되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어."


물론 나래는 전학오게 된 지 1년이 지나서야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긴 하지만.


"그 애가, 그렇게 호진이 마음에 들어?"
"응. 어렸을때 나래랑 항상 함께였었고, 내가 여기로 전학오고나서 한동안 헤어져있었다가 최근에 나래도 여기로 전학와서, 다시 항상 같이 있었어. 문제는, 명희는 예전부터 나래를 항상 괴롭혔어쏙, 지금은 결국 나래가 명희한테 잡혀버렸어."
"호오. 그 나래라는 애도 누군지 궁금해지네. 도대체 누구이기에 호진이 마음에 들었을지."


이봐. 소현양. 설마 나래를 소현양의 타겟으로 삼으려는건 아니겠지요. 그러면 사태는 더 악화되는데.


그 때, 뭔가 소리가 들렸다. 소현이가 전화기를 꺼내는 것 보니, 소현이한테서 온 전화인 것인가.


"여보세요? 네. 네. 네? 네. 지금 갈께요."


소현이는 전화를 끊더니 휴대폰을 급히 주머니에 넣었다.


"호진아. 미안, 지금 소속사에서 급히 나 찾아서, 가볼꼐."
"응, 소현아. 고마워."
"다른 사람들한테는, 여기서 나 만난거, 비밀이다."
"물론이지."


소현은 그렇게 떠나가버렸다. 나 혼자라면 꼼짝없이 당했을텐데 소현이 덕분에 그나마 조금 도움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소현이가 연예기획사에서 트레이닝 때문에 바빠보여서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보답을 해야겠군.


2층으로 올라가니 역시 양아치들 몇 명이 더 있었다. 하지만 아까전에 훨씬 많은 놈들을 쓰러뜨렸다구. 이미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야.


"말해! 나래 어디있어?"


하지만 양아치들은 계속해서 나한테 덤벼왔다. 게다가 저놈들은 1층에 있었던 놈들과는 달리 칼까지 들고있다. 잘못하다가는 지금 이 곳에서 내 생명이 위험해진다. 정신을 바짝 차리자.


아까전 1층에서 얻은 그 BB탄총의 개머리판을 양아치들의 머리를 향해 내리치니, 하나하나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세 놈 정도 쓰러졌을 때.


쉬이익.


"윽.."


그렇다. 방심하는 사이 팔뚝이 칼에 찔려버리고 만 것이다. 칼에 찔린 자리에는 피가 심하게 흘렀다. 아프기도 장난아니게 아프다.


하지만 고통을 참고 다시 깡패들을 향해서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 마지막 남은 한 놈한테 한 방을 날렸을 때, BB탄총은 결국 완전히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역시 원래 장난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건가.


팔에 피가 심하게 흐르는 채로 3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많이 아프다. 아픔을 참고 올라가보니, 그 자리에는, 명희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듯 서 있었다. 주변에 다른 놈들은 안보인다. 이제 1대1로 상대해야 하는 것인가. 명희가 들고있는 저 휴대폰. 분명희 나래의 휴대폰인 애니콜 미니스커트였지.


"어서와, 호진오빠. 꼴이 말이 아니네."
"너.. 안명희!"


명희는 나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은 나를 비웃는 것임이 분명하다. 하긴 내가 지금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나래를.. 어떻게 한 거야."
"역시 호진오빠가 이럴 줄 알았어. 내 뒤를 봐."


명희의 뒤를 보니, 온몸이 꽁꽁 묶여서 완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래가 있었다.


"너.. 나래를.."
"나래는 무사해.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상황판단 못하고 둔하기는 마찬가지네, 호진오빠."
"너.. 한가지 묻자. 안암동에서 우리반 애가 당한거, 그것도 너 짓이야?"


내가 말을 하고 나자, 명희는 또다시 기분나쁜 표정으로 깔깔거리며 말했다.


"그 애가 호진오빠네 반이었어? 그렇지 않아도 호진오빠한테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려고 했었던 것인데, 더 잘 됐네."
"이봐. 그 애는 이 일과 아무 관계없는 애란 말야."
"훗. 예나 지금이나 둔한 호진오빠한테 사태의 심각성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는 사소한 희생은 어쩔 수 없는걸."


안명희. 너한테는 이렇게 아무 상관없는 애가 당해버린것이 '사소한' 희생인거냐. 얘 정말 위험한 애다. 내가 도대체 어렸을 적에 어떻게 이런 애랑 알고 지냈지.


"하지만, 이건 절대 '사소한'게 아닌걸. 도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 나래를 납치한거냐."
"훗. 아직도 모르는구나, 호진오빠. 역시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무슨.. 소리야."


명희는 나를 응시하면서 계속 말했다.


"나는 호진오빠가 어렸을 때부터, 호진오빠만을 쭈욱 바라봤었어. 호진오빠랑 같이 놀고 싶었고.. 호진오빠랑 함께 있고 싶었어. 호진오빠가 내 마음에 가득 들었기 때문이야. 호진오빠 같이 내 마음에 드는 남자, 지금까지도 못봤었어. 하지만 호진오빠는 언제나 내가 아닌 나래x과 함께였어. 나래x을 떼어버리려고 하면, 언제나 호진오빠는 나래x 편만 들었지."


이봐. 지금 이것들이 뭔가 처음부터 방법이 너무 엇나간 것 같다고 생각한 건 나뿐인가.


"언제나 나래x 곁에서 생글거리고만 있던 호진오빠. 그리고 언제나 호진오빠 곁에 있었던 나래x. 그러던 어느날, 호진오빠는 전학을 갔지. 이제 나도 호진오빠를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나래x에게 그동안 쌓인 것들이 많아서 분풀이로 나래x을 괴롭혀줄 수밖에 없었지. 호진오빠도 없겠다."


역시 나래의 말이 맞았어. 그렇다고 그걸 본인이 듣고 있는 앞에서 그렇게 적나라하게 말하면 어떡해. 지금 나래는 완전히 하얗게 질려버렸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 중학생이 되었지. 그 때 우리 학교에서 나 혼자만 송파구에 있는 문정중학교로 떨어뜨려놨더라. 참 x같았지. 학교에서도 나를 x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떨어뜨려놓다니. 그렇게 되니까. 세상이 완전히 싫어져버렸더라. 삐뚤어지고 싶었어."


여기에서도 무시당하고 저기에서도 무시당한 기분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쉽게 삐뚤어져버리는건 뭔가 아니잖아. 하긴 명희는 그 전부터 이미 삐뚤어진 애이긴 하지만.


"그 뒤로 같이 삐뚤어진 오빠들이랑 어울리게 되었어. 그 오빠들과 함께 송파구 쪽을 꽉 잡고 있었을 때, 나래x마저 호진오빠가 있는 이곳 유일동으로 전학왔다는 소문을 들었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는 오빠들이 호진오빠랑 나래x이랑 같이 있는 모습을 봤다고 친절하게 말해줬더라? 한숨만 나왔지."


이봐. 나는 지금 안명희 너가 저지른 짓들 때문에 한숨만 나와. 이런 짓들을 어떻게 아직 중3밖에 안된 여자애가 당당히 저지를 수 있는거지. 게다가 그것들을 당당하게 내 앞에서 한마디 한마디 하고 있는 것은 또 뭐냐.


"나는 그 현장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싶었어. 그래서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한강을 건너서 여기까지 왔지. 물론 우리한테 반항하는 새x들을 다 잡아 족쳤고. 한강만 건너니까 애들 수준이 완전히 다르더라."


안명희, 너는 이미 여자애라고 보기에는 너무 위험한 애야. 도대체 나보고 이런 애를 어떻게 감당하라는거냐.


"동대문구쯤에 왔을 때, 나 혼자 여기 와서 혹시 호진오빠나 나래x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로만 들었던 이 유일동에 왔는데, 우연히 호진오빠를 보게 된거야. 호진오빠의 마음은 바보같이 전혀 변하지 않았더라. 그래서 여기까지 오빠들이랑 갑하게 밀고 들어왔지. 나래를 더 이상 가만히 놔두면 안되겠다 싶어서."
"너..!"


그리고 명희는 또다시 나한테 비웃으면서 말했다. 희연이도 집착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희연이는 이정도까지는 아니었어. 집착도 너무 심하면 병이 된다는 것은 이런것이라고 봐야 하나.


"후훗. 호진오빠. 지금 호진오빠 모습이 아주 비참한거, 알아? 여기에 호진오빠를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아직도 나래가 좋아?"
"이봐. 당연한거 아냐?"
"지금, 허튼짓하면 호진오빠만 불리해. 그래도 나래가 좋아?"
"안명희 너가 아무리 그래도, 내 마음, 바뀔리가 없잖아?"


그러더니 명희는 옷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명희가 꺼낸 것은, 반짝반짝하게 날이 선 부엌칼이었다.


"너.. 점점!"
"훗. 나 이런 애였어. 아직도 몰라? 호진오빠가 허튼짓을 하면, 호진오빠 목숨은 없어. 다시 한 번 말해. 그래도 나래가 좋아?"


지금 나는 정말 진정으로 '인생막장'이라는 것을 보고 있다. 도대체 애가 왜 이렇게까지 막장이 된거냐. 민서라는 변태놈이 호진씨 하면서 나한테 접근을 하는것은 내 앞에서 칼을 들고 나를 협박하는 명희에 비해서는 훨씬 정상으로 보인다. 정말 인생의 끝자락이란 이런 것일까. 뒤에서 나래마저 나한테 크게 외쳤다.


"호진오빠. 나래는 괜찮으니까 호진오빠만이라도 살아..!"
"시끄러워!"


명희가 말하자마자, 또다시 나래는 말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희는 부엌칼을 들고 한발짝 한발짝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후훗. 호진오빠. 지금 호진오빠가 하는 행동을 보니까, 어쩔 수 없네. 호진오빠를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죽여버리는게 좋지 않곘어? 호진오빠는 전혀 생각이 바뀌지 않고. 그런 호진오빠의 바보같음은, 저 세상에서 후회해. 그래도 저 나래x이 좋다면 말이지.."


명희의 한발한발은 점점 다가왔고, 나도 그에 맞춰서 뒷걸음질을 한발한발 쳐야만 했다. 이미 나래는 두 눈을 감고 체념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명희가 다가오면서 뭔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듯한 것은, 내가 잘못 본 것일까?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어. 하지만 호진오빠는 끝까지 내가 아닌 나래x이랑 함께였어. 호진오빠가 나래x이 아닌 나랑 있어줬어도.. 지금의 삐뚤어진 나는 없었을거야. 호진오빠의 잘못이 너무 큰 것같지 않아?"


계속 명희를 피해서 뒷걸음질을 치는데, 다리 뒤쪽에 물기가 느껴졌다. 빗방을인 것이다. 밖에는 계속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이제 곧 허공이다. 한 발만 더 뒤로 가면, 나는 이 자리에서 죽는다. 명희는 점점 더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부엌칼을 들고.


"지금이라도 호진오빠가 나래x이랑 떨어진다고 말하면 살려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것같아.."


지금까지 나의 인생은 정말 많이 엇나갔었다. 희연이가 전학오고 나서 이상한 일들의 연속이었지. 물론 희연이랑은 나중에 잘 되었긴 하지만, 그리고 나래랑 어찌어찌 다시 이어지나 했더니, 이제 이 엇나간 인생도 끝이 나는건가. 참 가늘고 짧은 삶이었다.


나래야, 너의 백마탄 왕자가 되어주지 못해서, 그리고 너를 지켜주지 못하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가게 되어서 미안해.
부모님, 죄송합니다. 부모님께 효도 한번 못해보고 부모님 출장중에 외아들이 저세상으로 가게 되어서.
하마야, 행복하지 못하게 죽어서 미안해. 결국 나도 너 따라서 저 세상으로 가는구나.
희연아, 많이 울게 해서 미안해. 이제 나는 이 세상에 없게 되니까..
수영아, 오해를 만들어버린것, 미안해. 나 때문에 효선이도 많이 다쳤고..
소현아, 오늘 도와준 것은 고마웠어. 하지만 도와준 것에 보답을 제대로 못하고 가게 되어서 미안해.
민애선배, 노래 신청을 더 해야 하는데.. 이렇게 죽게 되어서 죄송해요.
현석아, 게임이랑 만화들을 제대로 소개시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민서..는 왜 나와. 이 변태한테는 사과할 일이 없는데.


하느님,
예수님,
성모마리아님,
부처님,
공자님,
옥황상제님,
알라신이시여,
제우스신이시여,
단군할아버지,


누구든 계신다면, 이렇게 엇나간 인생을 살아간 이호진이라는 인간을, 저 세상에서 원하시는 대로 해 주소서.


그리고 이 세상에 다시는 나처럼 엇나간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런데..


"안돼애애앳!!!!!!"


누군가의 절규가 들리고, 나는 동시에 옆에 있는 짓다 만 벽으로 밀려났다. 살아난 건 좋은데, 도대체 너는 왜 여기 있는거야?


- 다음회에 계속 -


주1. 파이널 파이트 : 80년대 후반에 오락실에서 인기를 끌었던 횡스크롤 액션게임. 3명 중에 하나를 골라서 진행하게 되며 '메트로 시티'의 범죄집단을 맨주먹으로 때려잡는 게임이다. 보스전의 얍삽이(앞PP뒤P앞PP뒤P앞PP뒤P...)가 유명.


주2. 이소룡 게임 : 80년대 초반에 나왔던 게임. 원제는 '스파르탄 X'. 이소룡같이 생긴 놈이 주인공으로 나와서 납치된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는 게임.


네. 결국 나래를 구하기 위해서 호진이가 직접 뛰었고, 그 때 마침 소현이를 만나서 같이 양아치들을 쓰러뜨렸죠. 그리고 명희랑 만나서 명희가 지금까지의 일들을 다 털어놓았지만, 오히려 호진이는 그것을 통해서 명희가 완전히 '인생막장'이라는 것만 느끼고, 호진이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죠. 그리고 명희가 삐뚤어진 원인 또한 호진이의 페로몬으로 밝혀진 이 시점에서, 이제 호진이가 죽기 직전.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 과연 호진이를 구해 준 것은 누구인지?


이제 B분기도 막바지로 가고 있습니다. 곧 C분기를 써야 하는데 C분기는 아쉽게도 설문조사는 없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