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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연애 사랑한다는 말

2008.12.09 18:30

애니엘 조회 수: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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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 -


 


금요일 밤 TV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서 연예인들이 이야기를 한다. 웃긴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 사랑 이야기, 어느덧 1시간이 지났다. 시간은 슬슬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내일은 여자 친구와 데이트가 있다. 내일 여자 친구에게 피곤한 모습을 보이긴 싫기 때문에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잠을 자기 위해 내 방으로 갔다.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데 머릿속에서 방금 전에 본 TV프로그램이 생각났다. 한 남자 연예인이 곧 결혼을 하는데 자신의 부인이 될 여자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준 적이 없다고 해서 TV를 통해 여자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데 부끄러운지 결국은 말하지 못하고 좋아한다고만 말한 장면에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현재 내 여자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첫 사랑은 아니다. 하지만 첫 연애다. 군대 제대 후 늦은 연애. 첫 연애가 2년이 넘어가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좋은 여자다. 만약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사귄다면 난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나도 그 여자친구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없다.


‘그래. 내일은 사랑한다는 말을 해줘야지.’


라고 생각을 정리하고 잠을 청하고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잠깐 컴퓨터를 하고 씻는다. 약속시간은 11시. 이제 슬슬 나가야 한다. 부모님께 나간다는 인사를 드리고 집 문을 연다. 집을 나서면서 어제의 생각을 한다. 괜히 웃음이 나고 부끄러워진다. 약속장소에 가는 중에도 머릿속에선 ‘사랑한다’ 라는 말이 떠나지 않는다. 왠지 행복한 기분이다. 오늘은 좋은 날이 될 것 같다. 분명 그럴 것이다.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10시40분. 아직20분의 시간이 남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나가면서 여자 친구를 기다린다. 그러다 커플들이 지나가면 다시 머릿속에서 ‘사랑’ 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다시 미소가 지어진다. 내 자신이 멍청하다고 생각 할 정도로 ‘사랑’ 이라는 단어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보니 11시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상하다. 약속시간을 어긴 적은 없었는데’


기다린다. 내 여자 친구를 기다린다. 원래 난 시간에 대해선 엄격하지만 오늘은 나한테 특별한 날이다. 기다린다. 내 여자 친구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직접 말하기 위해...


11시30분이 넘었다. 아직 내 여자 친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늦으면 전화라도 할 텐데 이상하다. 전화를 걸어 볼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전화를 하면 안절부절 못하고 기다리는 나를 들킬 것 같아서 전화를 참았다.


12시가 넘었다. 이젠 걱정이 든다. 전화를 해봤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설마 나 차이는 건가. 아니다. 데이트 한 번 펑크가 난다고 헤어지다니 내 과대망상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나는 이제 불안과 초조로 1분1초를 기다린다.


12시15분이 지날 때 쯤 전화가 왔다. 휴대폰 액정을 보니 집이다. 전화를 받고 상투적인 말투로 말한다.


“여보세요”


하지만 전화 건너편에선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호연아! 연정이가 교통사고래”


이건 뭔 소리야. 순간 정신이 혼미해 진다. 그리다 갑자기 정신이 또렷해진다. 길 한복판이라는 걸 잊고 휴대폰에 대고 격한 목소리 말한다.


“많이 다쳤데? 병원은 어디야?”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 바로 응급실로 뛰어갔다. 응급실에서 내가 아는 얼굴이 있다. 연정이의 부모님 얼굴. 그 분들을 보고 바로 그 자리 뛰어갔다. 뛰어가면서 보인 것은 울고 계신 연정이의 부모님의 얼굴 그리고 머리까지 덮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침대위의 형체. 부모님이 계신 곳에 가서 침대를 본다. 아닐 것이다.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오늘은 행복한 날이다. 사랑한다고 말하기로 한 날이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슬며시 천을 걷는다. 연정이의 얼굴이다. 창백하고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다. 순간 세상이 무너져 간다. 아니 내 세상이 무너져 간다. 뭐지 여기는 어디지 저 사람들은 얼굴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왜 울고 있지? 어? 이 여자는 누구지? 이 얼굴도 알고 있던 것 같은데 왜 이런 무표정으로 누워 있지? 그리고 뭔가 끊어지는 느낌과 함께 내 의식도 끓어졌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연정이 장례를 하고 조문객을 받고 연정이의 시신을 땅에 묻고 뭘 했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눈물도 나지 않는다. 울지 못 했다. 아니 울지 않았다. 못 울은 건지 안 울은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내 세상이 한번 무너져 내렸다.


그것이 벌써 3년 전 이야기다.


 


-이제야-


 


3년 전 그 일이 있은 후 학교는 휴학을 1년 하고 방안에서 혼자 괴로워했다.


난 연정이를 사랑했을까? 왜 울지 못했지? 난 이제 뭐 하지? 잊을 수 있을까?


1년을 혼자 미친놈처럼 방안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빠지고 혼자 중얼 거리다. 1년쯤 지나니깐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일까? 다시 학교에 복학을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운이 좋은 것 인지 바로 취직을 하고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이제는 문득 떠오를 때하고 굳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연정이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것이 잊은 걸까? 여전히 난 연애를 하지 못 하고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있다.


어느 일요일 오후 혼자서 무심히 길을 걷는다. 2년 전 집을 나온 후부터 생긴 버릇이다. 시간이 있으면 그냥 무심히 길을 걷는다. 왜 생긴 것인지는 모른다. 그냥 걷는다. 지금도 그냥 걷는다.


“이봐 젊은이 점 한번 보고 가봐”


나한테 하는 말인가? 고개를 돌려보니 30대 중반정도의 아저씨가 나를 향해 보고 있다.


“전 점 안 믿어요.”


“연애운이나 사업운 건강운 혹은 만나고 싶은 사람이나 찾고 싶은 사람 없어?”


이 아저씨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말이겠지만 ‘만나고 싶은 사람이나 찾고 싶은 사람없어?’ 이 말이 내 신경을 건드렸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을 수 있나요?”


그래 난 연정이를 만나고 싶다.


“찾을 수는 있지만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지”


“그럼 찾아 주세요. 하지만 엉터리면 복채는 못 드려요”


“마음대로해 나는 진짜 도사니깐”


하고 상업용 미소를 뛰운다. 역겹다.


“자네 이름은?”


“김호연이요”


“찾고 싶은 사람의 이름은?”


“심연정이요”


“만난 적 있는 사람이지?”


“당연하죠”


“네 주위에 심연정이라는 사람은 이 사람 한명 뿐이야?”


“예”


“심연정하고 김호연은 본명이지?”


“예”


“잠시만 기다려라”


아저씨가 눈을 감고 뭔가 중얼거린다.


“에? 그것만 가지고 알 수 있나요?”


“응. 사람은 그냥 스쳐 지나는 사람이라도 인연이 있어야 만나거든 그런데 네 주위에 네가 알고 있는 심연정이 한명이라면 가장 강한 인연을 찾으면 되는 거니깐. 말했잖아 난 진짜 도사라고”


시간이 흐른다. 찾아보시지 찾을 수 있다면


자기를 도사라고 한 아저씨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눈을 뜬다.


“정말 만나고 싶나?”


너무 진지한 물음에 난 당황했지만 애써 숨긴 체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잠깐 따라오게나”


뭐야 설마 이런 식으로 데려가서 납치하려는 건 아니겠지? 뭐 약간이라도 으슥한데를 가면 도망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따라간다. 아저씨가 골목에 들어간다. 난 골목에 들어가지 않고 골목 밖에서 아저씨를 보고 있다. 아저씨가 나를 보며


“여기까지만 와. 다른 사람한테는 별로 보이고 싶지 않으니깐”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골목에 살짝 들어간다. 참 나도 안위한 인간이다.


“잠시만 기다려라”


이 말을 하고 아저씨는 다시 눈을 감는다. 다시 시간이 흐른다. 난 갑자기 불안해 져서 골목 밖을 두리번거린다.


“호연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목소리는 아저씨지만 억양과 말투가 다르다. 고개를 돌려 아저씨를 본다. 아저씨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그리고 생각났다. 아니 저절로 알아차렸다. 이 억양, 말투 연정이다.


“설마? 연정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저씨. 순간 3년 전에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내 눈에서 흘러내린다.


“호연씨. 난 죽었잖아. 그래서 남의 몸이라도 오래는 못 있어. 곧 가야돼. 3년 전에 마지막 인사도 못했잖아 그래서 인사하러 잠시 온거야.”


“사랑해”


“어?”


“그날 널 만나려고 했던 그날 이 말을 하고 싶었어. 이 말을 이제야 할 수 있어. 이 말을 이제야 네가 들을 수 있어”


“고마워. 나도 사랑해. 나 갈게 오래 있으면 미련 때문에 못 갈수도 있거든 그러면 도사님이 강제로 보내거든 잘 있어”


순간 나는 무의식 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때 아저씨의 손이 내 손목을 잡는다.


“이미 갔네.”


진지하고 엄숙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물이 흐른다. 3년 전에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3년간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흐른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눈물만 흐른다.


“흠. 지금 자네에겐 복채를 받을 수 없겠군. 나중에 진정이 되면 오게나 난 항상 이 길거리에 있으니깐”


아저씨가 골목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아무 생각이 안 난다. 그저 눈물만 난다. 3년이라는 시간이 눈물로 나오듯 눈물이 하염없이 나온다.


 


-사랑한다는 말(2)-


 


엉망이 된 얼굴로 집에 들어와 하루 종일 울었다. 부모님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 봤지만 대답할 수 없다. 방에 들어가 그저 울었다.


다음날 그 아저씨를 찾아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다른 점 집에 가서 부탁을 해봤지만 엉터리 뿐 이였다. 그날 그 아저씨를 통해 만났던 것이 정말 마지막이였다.


사랑한다는 말 딱 한 번밖에 못 해줬다. 그것도 죽은 후에 딱 한 번뿐이다. 그때 그 아저씨에게 온 혼이 진짜 연정이 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아저씨가 사기를 친 거 일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 알았다는 것은 사랑했던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나는 후회했고 괴로워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다. 사랑은 무겁고 고귀한 말이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무거운 말을 자신이 짊어지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으로 행복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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