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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우연, 그리고 절실함 - #1. 현우

2008.10.12 05:20

늘보군 조회 수: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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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그리고 절실함 - #1. 현우 (그의 이야기)


 



같은 버스를 탄지도 벌써 반년,
현우는 아직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타기 시작한 버스에서,
그는 한 여자를 만났다.


 


그는 항상 8시 30분쯤 버스를 탔고,
시간이 조금 어긋난 몇 번을 제외하고는,
그녀는 항상 같은 버스에 탔다.


 


늘 청바지 차림에 펑퍼짐한 후드티,
참 편해 보이는 복장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것에,
그다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한 일주일쯤 지났을 때,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그는 늦잠을 자고 말았다.


 


30분에 버스를 타야 수업시간 10분 전인 50분에 도착한다..


그때의 시각은 8시 35분..


 


대충 옷을 걸친 후 그는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저 멀리, 88번 버스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배차간격은 10분.


 


‘아저씨, 제발-’


 


현우는 그렇게 속으로 외치며 더 빨리 달렸다.
버스를 향해 달리는 도중,
오른편 골목에서 누군가가 뛰어나왔다.



그리고 서있는 버스를 발견하고는 깜작 놀라며
현우의 옆쪽으로, 함께 달렸다.


 


“아!!..”


 


씨,, 까지 나올뻔 했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버스는 인정을 베풀어주지 않고, 그대로 출발했다.
그는 정류장표지가 달린 봉을 붙잡은 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골목에서 달려나왔던 그 사람도, 억울한 얼굴로 보도 턱에 걸쳐 앉아있었다.


 


‘저 사람도 많이 급했나보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는
신발로 바닥을 두드리며 짜증을 표했다.



하지만, 턱에 걸터앉은 그 사람은,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더니,, 밝게 미소지었다.


 


‘왜,, 웃는거지..?’


 


현우는 그런 그 사람의 미소에 의아함을 품었다.


 


‘..참나.. 마치, 뭐 이미 가버린걸 어떡해~ 하는 얼굴이네’


 


짜증을 부리고 있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진 탓일까,,
그런 의아함도 잠시, 어느새 현우도 그와 비슷한,
그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버스에 탈때마다, 그런 그녀가 신경쓰였다.


그날의 그 미소가, 지나치게 신경쓰였다.


 


 



매일 같은 시각, 같은 버스,
내리는 곳은 달랐지만, 20분이란 시간동안 같은 공간에 있었다.


 


몇 번이고 눈이 마주쳤다.
아니 어쩌면 현우가 지나치게 바라본 탓에
우연히 마주쳤던 것일지도 모른다.


 


몇 개월이나 마주치게 되자,
마치 그녀와 아는 사이인 듯이, 반가움을 느꼈다.
시간이 안맞아 그녀를 보지 못한 날에는,
무엇인가 허전하게 느껴질정도로.


 


그런 그녀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어떤 작은 기회라도 생겨, ‘아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현우의 첫 번째 작은 바램은, 그녀의 옆자리에 앉는 것.
그래서 무엇인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매번 앞쪽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의 뒤쪽에 앉아, 아무생각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그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는 간혹 돌아보곤 했다.



그럴때마다 그는 창밖을 보는 척,
버스 앞쪽에 달린 시계를 보는 척,
혹은 거울을 보는 척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늘 같이 버스를 타는데,
조금이라도 아는 사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늘 바램으로 끝날 뿐이었다.


 


4개월쯤 지났을 때,
그는 평소보다 10분에서 20분정도 더 일찍
정류장으로 나오는 습관이 생겼다.


 


혹시 시간이 안맞아 만나지 못할까봐,
그는 일찍 나와,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같은 버스에 올라탔다.


 


그는 혹시나 방학 때에도, 같은 시각 그 정류장에 나와 보았다.
그녀는 어김 없이 그 시간에 나타났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나온 방학 첫 날,
그는 88번 버스를 타고 20분이 아닌,
30분을 그녀와 같은 버스에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리는 시내에서 그도 따라 내렸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와보았을 뿐인 그 날,
그는 그 시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그는 방학 동안에도 그렇게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아이 때문에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는건 아니야..’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도, 생각해보지도 못할터인데도,
현우는 스스로 그렇게 속삭였다..


 


 


6개월이 지났다.



아직까지도 그는 그녀와 같이 앉아보지 못했다.


 


8시 40분이 되었는데도,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45분, 그리고 50분이 되어도 오지 않자,
먼저 갔나보다, 하며 체념을 하고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생각과 달리 떨어지지 않는 발 때문에,
아니, 혹시 곧 올지도,, 하는 생각 때문에,
버스 하나를 더 보냈을 때,,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달려나왔던 그 골목에서,
터벅 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평소와 달랐다.


걷는 걸음 걸이나, 품기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평소처럼 후드티에 청바지, 그런 편한 차림이 아닌,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장례식이라도 가나..?’


 


그는 마치 오랜 친구를 걱정하듯,
근심 가득한 얼굴로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느릿 느릿 걸어오던 그녀는 버스정류장 앞에 서있는 그를 보았다.



조금 놀랐는지, 그녀는 잠깐 멈춰서고는, 다시 걸어왔다.


88번 버스가 도착했다.


 


현우는 슬픔에 잠긴 그녀의 얼굴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먼저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버스 중간부분의 두 좌석이 연결되어있는 곳의 바깥쪽에 앉았다.


다른 두 사람이 더 버스에 오르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아..?’


 


그는 그녀를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쳤고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놀란 것은 눈이 마주친 것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평소에 앉던 자리에 앉지 않고 뒤쪽으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가 앉아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의 심장이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반년만에 처음이었다.


분명 앞부분에도 두 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굳이 그가 앉은 곳의 안쪽으로 들어가 앉은 것이다.


그는 허리를 꼿꼿하게 편 상태로, 앞만 바라보았다.



도저히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다음 정류장에서 대여섯명이 버스에 올라타며
버스의 빈자리는 모두 사라졌다.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들이 정신없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녀도 나처럼,, 날 알아볼까..?’


 


‘오늘은 왜 검은 정장 차림일까?.. 왜 이렇게 슬퍼보이지?’


 


‘왜 혼자 앉지 않고 뒤로 왔을까?.. 그것도 내 옆에..’


 


‘말을 걸어볼까?.. 아니야,, 너무 웃기겠지?’


 


툭.


 


그는 잠시동안이지만, 숨을 멈추었다.



억지로 멈춘 것이 아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마치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것처럼..


 


어느새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잠이 들어 있었고,
그녀의 머리는 그의 왼쪽 어깨에 기대있었다.


 


그는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혹시나 그녀가 깰까봐, 혹시나.. 혹시나..
그는 너무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숨을 내쉬었다.


 


6개월..
그 긴 시간동안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처음으로 옆자리에 앉은 것만으로도 그는 들떠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자신의 어깨에 기대있다니..


 


그는 이 날을 기념하리라..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잔혹할 만큼 잠깐에 불과했다.


 


버스는 만원이었다.



빈자리는 없었다.


 


그런 그의 앞에,
한 노인,, 아니 나이가 많은 한 아주머니께서,
괴로운 듯한 얼굴을 하고는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거워 보이지도 않는 짐을,
너무나도 무거운 자세로 든 채,
허리를 만지작거리며, 무엇인가 바라는 눈으로,,
현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되,, 안되요! 왜 하필,, 오늘..!!’


 


..


현우는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 다른 그 어느때라도,
아무리 피곤하고 힘든 날이라도,
그는 잠깐의 고민따위는 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아,, 이놈의 허리가 문제야.. 그냥..”


 


그 아주머니는 이미,
이 자리에 앉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같았다.


 


‘안되요.. 제발.. 오늘 만큼은...’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한 숨을 내쉬었고,
그 바람에 어깨가 들썩였고, 그녀가 살짝 움직였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녀가 깨어났을 수도 있다.



6개월 동안 바래왔던것이지만,,,
그녀가 일어났을 때 본 모습이 고작,,
힘들게 서계신 아주머니를 외면하는,,
그런 이기적인 남자라면...?


 


그는 좌절했다.


 


 


현우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2 - '그녀의 이야기'에서 계속..)


 



그토록 바래던 일에 가까워 졌는데,,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 같은데,,


 


이제야, 드디어, 겨우...


 


그런 절실한 순간을 방해하는 현실이란,,,, 참 얄밉다.


 


By. 나무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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