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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연애 겨울비

2005.05.30 00:07

세이니 조회 수:88 추천:2

extra_vars1 좋은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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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렇게 성가신가요...? "

여전히 일어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소연의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래. 성가셔. "

지후는 낮게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소연은 잠시 입술을 꽉 깨물며 주저앉아 있더니, 이내 벌떡 일어나 성금성큼 걸어 지후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꽉 쥐여 가늘게 떨리고 있는 그녀의 주먹을 본 지후는 자신이 너무 심했나 하는 자책감을 느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지워버리곤 그녀의 손찌검 몇 대 정도는 맞아줄 요량으로 이를 꽉 물었다. 아버지 때문에 별 꼴을 다 당한다고 약간은 억울한 기분도 들었지만, 그래도 저 애를 상처입힌건 사실이니까...

' 그래. 이거면 된 거야. '

마침내 소연이 지후의 바로 코앞에 섰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부드러운 손길이 자신의 다친 팔에 닿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후는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 죄송해요... "

당장이라도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는 듯, 눈을 찡그리며 소연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었다. 팔을 통해 가느다란 떨림이 느껴졌다. 소연은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말을 이었다.

" 그렇게 폐가 되었는지 몰랐습니다. 저... 돌아갈게요. "

소연의 그런 모습에 지후는 순간 심장 한구석이 욱신 아려옴을 느꼈다. 그 고통은, 한참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으로 죄책감 같은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지후는 그 감각을 떨쳐 버리려는 듯 소연을 떨쳐내려 했지만 도무지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 하지만 이 상처만 치료하면 안될까요...? 너무 아파 보여요. "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잊고있었던, 아니 잊어버리려 했던 기억이 떠오르려는 느낌에 지후는 이를 꽉 물며 억지로 자신의 팔을 가볍게 휘둘러 소연을 결국 떨쳐내고 말았다.

" 됐다니까. "

소연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지후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자신의 어린 시절과 겹쳐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였을까, 지후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묘한 혐오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아. 그래, 이제야 알겠군. 이 여자 애에게서 처음부터 느껴졌던 그 불쾌함의 정체를.

이 아이는 나를 닮았다.

사랑 받지 못한 아이야. 나처럼... 그래서 싫었던 걸까. 처음부터 이상하리만큼 싫었던 거다. 그건 사실 아버지의 전화 때문도, 그 무엇 때문도 아니었어. 동족혐오라고... 해야할까.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가볼게요. 신세 많이 졌습니다. "

소연은 마지막 힘을 낸 듯 활짝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곤 뒤를 돌아 앞치마를 풀어 내려놓곤 그대로 현관문을 통해 나가버렸다. 지후는 이제 닫혀버린 현관문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 미안하다... "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이 집을 나간 것에 대하여 안심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그래. 나는 정말 이기적인 놈이다. '

지후는 현관에서 뒤돌아 섰다.



4.
" 김치찌개인가. "

지후는 부엌에 서서 소연이 만들어 놓은 김치찌개를 들여다보았다. 하긴, 집에는 김치밖에 없었을 테니까...라고 중얼거리며 지후는 찌개를 들고 식탁 앞에 앉았다.

" 깨끗하네... "

식탁에 앉아 집안을 쳐다보며 지후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실 혼자서 집을 사용할 때는 딱히 집을 치워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대충 청소도 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소연이 말끔하게 치워놓은 집안은 이상하게도 넓어 보였다.

지후는 그렇게 한참이나 집안을 보고 있었다. 팔의 상처를 치료할 생각도 하지 않고, 밥을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그렇게.

" 나는... "

그렇게 멍하니 있던 지후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 이제 외롭지 않아. "

어째서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누구를 향해서? 그 가느다란 물음은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지후의 검은 눈동자가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 나는 매일같이 싸우고, 바빠. 비스트... 야수라는 별명까지 얻었지. 모두들 날 무서워하고, 그래... 선배들조차도 날 무서워하지. 나는 이제 강하고... "

투둑, 투두두두둑.

지후는 문득 귓가를 울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창밖에서는 그쳤나 싶었던 비가 어느새 다시 내리고 있었다. 지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수저를 들고 반쯤 식어버린 찌개를 한 수저 떴다.

' 죄송해요... 그렇게 폐가 되었는지 몰랐습니다. 저... 돌아갈게요. '

그 순간 소연의 마지막, 그 쓸쓸했던 미소가 떠올랐다. 지후는 고개를 푹 숙이며 수저를 입안에 넣었다. 찌개의 맛이 그의 혀에 와 닿았다.

" 맛있다... "

지후는 고개를 숙인 채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지후는 곧 자리를 박자고 벌떡 일어섰다.

" 제에길!! 맛있다고!!! "

그리곤 그대로 전화기로 걸어가 거칠게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 젠장! 내가 왜이러지?! 쫒아내놓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

지후는 '아버지'에게로 전화를 걸면서도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분명히 그 아이와 함께 살 생각은 없다. 그 모습이 기분 나쁜 것도 여전했다. 그런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애가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겨우 하룻밤 동안 이 집에 있었을 뿐인데도 그 아이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그런 모순된 감정에 지후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어째서일까. 어쩌면 그것을 알기 위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짧은 통화음이 흘렀고, 곧 아버지와의 통화가 연결되었다. 지후는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아버지? 저 지후입니다. 실은 궁금한게 있어서요. 그... 소연이란 애 말입니다. 어디에 살죠? 어디에서 데려온 겁니까? "

통화기 저편에서 나지막한 대답이 들려왔고 지후는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 뭐라고요?! 그럴 리가. 그런... 하지만 그 애는 그런 말은 단 한마디도... "

그리고 다시 돌아온 아버지의 대답에 지후는 그만 전화기를 떨어트릴뻔 했다. 희미하게 떨리고 있는 지후의 눈동자가 그가 받은 충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 그런... 난... 대체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

갑자기 숨이 탁 막혀오는 느낌에 지후는 전화를 끊지도 않고 집밖으로 달려나갔다.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그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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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요즘 하루하루가 바쁘군요.
수능도 180일 정도 남았고...아악!!;;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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