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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연애 MY LITTLE EMERALD

2005.09.13 04:51

Sierra Leon 조회 수: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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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됐다."

진우가 찾아가 보라고 소개시켜 준 가게에서, 윤호는 플로라를 아리엘처럼 충전식으로 바꿀 수 있었다. 건전지를 하루에 하나씩 소모하니, 영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 종일 재워놓을 수도 있었지만, 그럼 이 인형의 가치가 없어지지 않는가. 게다가 진우가 불같이 날뛸 게 뻔하다고 생각해, 차라리 맘 편하게 충전식으로 기종을 바꾸어 보자고 생각한 것이었다.

안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쉽게 수리가 끝났다. 아직 눈을 뜨지 않은 플로라를 데리고, 윤호는 집으로 향했다.



MY LITTLE EMERALD-(3)A LITTLE WORKER
WRITTEN BY.I



"나 아이스크림 사 줘~."
"안 돼."

아침부터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TV 선전에 나온 모 브랜드의 아이스크림이 너무나 먹고 싶었는지, 플로라는 윤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윤호는 지금껏 끝내야 할 레포트도 아직 못 끝내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오전 10시의 일이었다. 윤호는 자꾸만 자신을 가지고 짜증나게 구는 플로라에게 계속 짜증을 털어놓았지만, 플로라는 계속 무시하면서 아이스크림 노래를 불러 댔다. 진우에게 말하면 진우 녀석이 사 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대로 계속 놔 뒀다간 버릇도 없어질까봐 윤호는 그게 걱정이었다.

"안 돼! 정 먹을 거면 네 돈으로 사."

플로라는 그러한 충격적인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밥도 제 때 제 때 못 챙겨주는 주인 주제에, 어떻게 그런 말을!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은 플로라 자신이라는 것을 이 작은 인형은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씨이~! 내 돈으로 살 거야!"

화가 잔뜩 난 플로라는, 진우가 사다 준 얇은 드레스 하나만을 걸친 채, 아파트 문을 힘겹게 열고는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이렇게 싸운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윤호는 모른 척 하고 있었다. 어차피 곧 있으면 들어오겠지 하는 심산이었다.

집 밖으로 나온 플로라는, 어느새 익숙해진 아파트 계단을 따라 내려와서 도심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한 플로라는 가게로 뛰어갔다. 선전에 본 것 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맛있어 보이는 아이스크림이 많은 가게였다.

깨끗한 매장 안에는 은은한 노랫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고, 맛있는 아이스크림 향기가 났다. 플로라는 매장을 누비며 아이스크림을 마구 골랐다. 그리고는 계산대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척, 하고 내밀었다.

매장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계산대에는 아르바이트생만 가게를 보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는지 아르바이트생은 앉아서 TV 쇼 프로그램에 눈과 귀를 집중시키고 있었다. 갸름한 얼굴에 보통 체격의 소녀는 중 3이나 고 1 정도 되어 보일 듯 했다. 검고 긴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왔고, 아이스크림 매장의 하얀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깔끔한 소녀였다. 소녀의 왼쪽 가슴팍의 이름표에는 '윤 지아'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플로라는 아이스크림을 계산해 주기를 기다렸지만, 플로라의 키가 작아서인지 지아는 쉽게 플로라를 눈치채지 못했다. 화가 난 플로라가 발끝을 들어올려서 아이스크림으로 계산대를 톡톡 치자, 지아는 그제서야 플로라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플로라를 바라보는 지아의 눈이 커졌다. 지아는 플로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인형이니?"

플로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나에 대해서 왜 아는 척을 하는 거지? 난 이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어쨌든 윤호가 플로라에게 이름 대신 '꼬마 인형, 꼬마 인형'이라고 부르고 있었으므로, 플로라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는 역시 하는 표정을 지으며, TV 뒤에 숨겨두었던 자신의 인형을 꺼냈다.

인형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듯 눈을 감고 있었고, 역시 충전식으로 보였다. 플로라보다 약간 크고, 아리엘보다 약간 작은 듯한 키였다. 검고 짧은 생머리를 가진 인형은, 하얀 피부와 불그스름한 입술이 잘 어울렸다. 그 눈은 분명 검은색일 터였다. 그리고 스쿨 유니폼같은, 흰색과 빨간색이 조합된 세일러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얘 이름은 메이린. 메이린, 일어나 봐."

그렇게 말하며, 지아는 충전식 코드를 뽑고는 코드를 몸 내부로 잘 정리해 집어 넣었다. 메이린은 충전이 끝나자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 눈은 커다랗고 맑은 순수한 검은색이었다. 성격은 조용하고 과묵해 보였고, 플로라처럼 떠들거나 아리엘처럼 새침떼기인 듯한 타입은 절대 아니었다.

무엇보다 주인인 지아와 무척 스타일이 잘 어울렸다. 플로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메이... 린?"
"그래. 그런데 넌 이름이 뭐니?"

지아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 미소가 기분이 좋아서, 플로라도 방긋 웃으며 답했다.

"플로라."

지아는 '꽃의 요정'이라는 뜻의 '플로라'라는 이름을 듣고는 기분이 좋아져서 미소를 지었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플로라를 웃게 만들었다. 메이린은 계산대 위쪽에서, 플로라를 빤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플로라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아야. 손님 안 받고 뭐 하냐?"

그 때, 문 위에 걸어둔 종 소리가 울리며 점장이 들어왔다. 점장은 까만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했지만 조금 얼굴에 촌티가 나는 상이었다. 이마에는 약간의 주름이 져 있었고, 170이 약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키에 배가 조금 나와 있었다. 그리고는 지아와 플로라, 메이린을 보며 물었다.

"또 인형놀이하냐?"
"아니에요. 얜 제 인형이 아닌걸요. 누가 잃어버렸나 봐요."

그러자 플로라가, 지아의 말에 반발하며 말했다.

"잃어버린 거 아냐. 내가 온 거야."

지아와 점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이 낯익지 않아서인지, 과묵한 메이린도 입을 살짝 벌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든 빨리 돌아가라. 장사 방해돼."

점장은 그렇게 말하며, 플로라가 가져온 아이스크림을 다시 원상태로 가져다 놓았다. 그 모습을 본 플로라는 살짝 열이 받아서 소리쳤다.

"나도 일 할 거야! 그걸로 사 먹을 거야!"



-MY LITTLE EMERALD



"우리 가게에 어서오세요~"

때는 정오였다.

귀여운 두 소녀는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상큼하게 미소를 발하고 있었다. 의외의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두 멈추어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플로라는 처음 해 보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능숙해 보였다. 메이린도 약간 부끄러운 듯 보였지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금발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의 이국적인 귀여운 꼬마 숙녀와, 검고 짧은 커트머리의 심플한 세일러복 아가씨가 손님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인 지아는 불티나게 팔리는 아이스크림을 계산해 주기에 바빴고, 점장은 저 꼬마들이 누구냐는 손님들의 질문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헤에... 이 정도면 많이 벌었겠지?"

플로라가 활짝 웃으며 옆에 서 있던 메이린에게 묻자, 메이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직 아니야, 조금 더 해야 돼."
"그래?"

플로라는 약간 서운했지만, 그래도 더 힘을 내어 소리쳤다.

"아이스크림 사세요!"

점심때가 되어도 안 돌아오는 플로라를 찾기 위해, 시내를 돌아다니던 윤호는 어디선가 들었던 낯익은 목소리를 듣고 귀를 귀울였다. 그리고는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다른 인형과 함께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는 플로라를 발견했다. 윤호는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뛰어갔다.

"야, 너 여기서 뭐해?"

윤호를 본 플로라는,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뾰루퉁하게 대답했다.

"나도 내가 돈 벌어서 아이스크림 먹을 거다, 뭐~."

윤호는 기가 막혔다. 어쨌든 아이스크림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점장에게 더 이상은 안 된다는 항의를 거세게 했다. 하지만 점장은 손을 내저으며 빙긋 웃었다.

"조금만 더 있다 가게 하지? 그럼 아르바이트비를 주지."

'돈' 비슷한 리듬이 들리자, 윤호는 귀를 쫑긋했다.

"얼마...요?"

점장은 한참 고개를 들고 생각하다가, 옆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지아에게 물었다.

"지아야, 얼마면 되겠냐? 네 하루 일급이 얼마더라?"
"3만... 5천원이요."

지아가 대답하자, 점장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말했다.

"얘는 내 조카라서 이렇게 하고 있는 거니까, 저 아가씨한텐... 5만원 주지. 어때?"

윤호는 눈이 번쩍 뜨였다. 자기는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 5만원을 받고, 아이스크림 몇 개를 사들고 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은 돈은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5만원이면 윤호가 좋아하는 우동이 도대체 몇 그릇인가.

"좋아요!"



-MY LITTLE EMERALD



"다음에 또 와라~"
"응~."

점장의 친절한 작별의 말에, 플로라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플로라의 뒷모습을 보고 지아는 빙긋 웃었고, 지아의 품에 안겨있던 메이린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윤호는 플로라의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빙긋이 웃고 있는 플로라에게 물었다.

"그렇게 좋냐?"

그러자 플로라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나 다음에도 또 올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