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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연애 MY LITTLE EMERALD

2005.09.07 05:34

Sierra Leon 조회 수:55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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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난 윤호는 학원 오전 수업을 들었다가, 점심 때가 되어서 집에 들어왔다. 어제 들어온 인형 플로라는 아직 고이 자고 있었다. 윤호는 그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퍼뜩 인형이 건전지로 움직인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역시, 건전지로 움직이기엔 무리가 있었나?'

윤호는 집안 서랍을 구석구석 뒤져 같은 크기의 건전지를 두 개 더 찾아냈고, 플로라의 등 뒤에 있는 건전지 넣는 곳에서 이미 벌써 닳아버린 건전지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새 건전지를 넣었다. 플로라는 처음 본 그 때처럼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이번에는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암~ 좋은 아침이야, 윤호야."
'건전지 값 엄청 나가게 생겼네.'

하루종일 꺼 놓는다면 모를까, 하루에 두 개씩 닳아 없어지는 건전지값은 모두 윤호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전혀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윤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점심을 먹기 위해 냉장고를 뒤졌다. 하지만 냉장고에는 먹을만한 것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윤호는, 식탁 위에 어제 아침 먹다 만 식빵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냉장고에서 잼을 꺼냈다. 플로라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신이 나서 환호성을 질렀다.

"와~ 오늘 아침 토스트야?"

윤호는 혀를 끌끌 차며 대답했다.

"이봐, 지금은 아침이 아니라 낮이야. 그리고 넌 안 줄거야."

그 말에 다소 충격을 받았는지, 플로라의 얼굴에는 잠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그리고는
윤호에게 다가가 윤호의 바지자락을 잡아당겼다.

"왜, 왜? 나도 밥 먹어야지~"

윤호는 귀찮다는 듯, 팔을 뻗어서 플로라의 손을 떼어놓은 다음 대답했다.

"넌 안 먹어도 살 수 있잖아. 건전지 값도 엄청 축내는 주제에. 어제 진우가 무슨 생각으로
사탕을 먹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장 안 난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라. 전자제품이 무슨
음식이야? 귀찮게시리."

그 말에 충격을 받은 플로라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멈춰, 땅바닥으로 고개를 떨궜다. 윤호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부엌 렌지 밑 서랍에서 잼용 나이프를 꺼내고는 잼을 식빵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식빵 한 쪽으로 잼 위를 덮어서 입에 넣었다. 맛있는 잼의 냄새와 함께, 윤호가 우적우적 씹어 먹는 소리가 들리자, 플로라는 다시금 식탁 위로 고개를 들어 윤호를 응시했다.

"... 음, 맛있네."

잼이 좀 오래된 거라 걱정했던 바와는 달리, 잼은 아직 괜찮은 것 같았다. 윤호는 그런 식으로 남은 식빵까지 전부 다 해치운 다음, 이빨을 닦으러 화장실로 향하다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한 인형을 눈치챘다.

플로라는 정말 배고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윤호에게 잔뜩 동정심을 유발하게 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윤호는 전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앞으로 전력낭비나 톡톡히 하게 할 녀석인데, 밥까지 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고 그대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야, 윤호야, 있냐?"

그런데 바깥에서 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MY LITTLE EMERALD-(2)A RESERVED GIRL
WRITTEN BY.I



"나 왔어~."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온 진우가 내밀은 것은, 또 하나의 인형. 윤호는 조금 놀라서 눈을 껌뻑껌뻑 거렸다. 진우의 품에 다소곳이 안겨 있는 인형은, 플로라보다는 아주 조금 커 보이는 키에 조금 더 많아 보이는 나이, 그리고 새침데기처럼 보이는 철부지 공주님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은색으로 예쁘게 빛나는, 흔들흔들 흔들리는 곱슬머리는, 두 개로 나뉘어 반묶음 되어 있었고, - 녀석의 취미를 알만 했다 - 예쁜 파란색의 눈에 속쌍커풀이 져 있었다. 속눈썹이 긴 것이 눈에 띄었고, 플로라와 비교해 본다면 눈 끝이 약간 위로 향한 - 말하자면 찢어진 듯한 - 편이었다. 하지만 눈이 전혀 가늘어 보이지는 않았다.

윤호는 인형을 바라보며, 저딴 인형이 뭐가 좋은지 그저 싱글싱글 웃기만 하는 진우를 바라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새로운 인형을 바라보고, 플로라는 친구가 되고 싶었는지 계속 그 인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뭐냐? 어쨌든 들어와-."

인형을 들고 들어온 진우는, 거실에 들어서서 식빵가루가 떨어져 있는 식탁과 잼통을 보고는 '불쌍한 놈-.'이라는 듯이 윤호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는 인형을 조심스럽게 소파에 내려놓았다. 그 때까지 그 예쁘장한 인형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윤호는 물었다.

"너도 인형을 샀단 말이냐? 그래, 이름이 뭐야?"
"아리엘이야. 내가 지어 줬다구. 어때, 귀엽지?"

'귀엽긴 뭐가-.'라는 표정을 지으며, 윤호는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아리엘은 물끄러미 윤호를 바라보다가, 자신과 그래도 가장 비슷한 외모인 플로라에게로 눈길이 갔다. 플로라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아리엘을 마주 쳐다보고 있었다. 진우는 그 모습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지켜보다가, 윤호에게 말했다.

"이 애는 플로라같은 건전지방식이 아니라, 충전방식이야."
"뭬야? 그럼 코드가 있단 말이냐?"

윤호는 정말 질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진우에게 충격적인 질문을 했고, 진우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에이, 그럼 인형이 아니지. 다만 플러그 크기로 뒤에 구멍이 나 있는데, 거기에 전력을 모으는... 뭐랄까, 철이 있어. 돼지코 모양으로 두 개가 있는데, 그걸 플러그에 꽂으면 그 때부터 충전되는 거지. 밤 9시에 재워 놓으면, 다음날 7시에 깨워서 하룻동안 문제가 없더라구."
'저 녀석도 엄청난 전력 낭비겠군.'

윤호는 '난 어쩔 수 없지만 직접 산 넌 뭐냐-.'라는 표정으로 진우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에 일찍 상가에 가서 사온 모양이었다. 어쨌든 진우의 소녀미학은 윤호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아리엘이 윤호에게 달가워 보일 리가 없었다. 아리엘은 퉁명스러운 듯한 얼굴로 방 이곳 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입을 꼬옥 닫고 있는 아리엘을 보고, 진우는 웃으며 말했다.

"자, 아리엘. 난 윤호랑 놀고 있을테니까, 넌 플로라랑 놀고 있어. 알겠어?"

대답 대신 고개만 살짝 끄덕인 아리엘은 소파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윤호는 골치 아픈 플로라를 저 녀석이 데려가 준다면야 별 불만이 없었으므로,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윤호가 진우를 데리고 서재로 데려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리엘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아리엘을 보고 처음으로 한 마디를 꺼냈다.

"뭘 봐?"

아무래도 주인 이외에는 호의적인 성격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얼굴에 쓰여 있듯이, 아리엘은 분명 다정한 성격은 아니었고, 오히려 친하지 않으면 말수 적고 자기와 같은 인형에게는 라이벌 의식까지 느끼는 아이였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자신을 계속 보고만 있는 플로라를 보고, 아리엘은 입술을 내밀다가, 플로라의 손을 잡았다.

플로라는 손을 잡은 아리엘의 행동에 잠시 당황했고, 가만히 있었다. 아리엘은 플로라의 손을 잡아 끌고는 말했다.

"놀이터 가서 놀아."

그리고는 플로라의 손을 잡고 현관으로 뛰어갔다. 현관 문을 간신히 열고 본 세상은 인형들에겐 너무나 생소하고 멋진 것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아리엘은, 플로라의 손을 이끌고는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려갈 때까지 아무도 그녀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대로 아파트 놀이터의 모래밭으로 뛰어갔다.

플로라로서도 처음 와보는 곳이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너무나 즐겁게 놀 수 있었다. 아리엘은 모래를 쥐었다 폈다 하면서 새로운 촉감에 적응하고 있었고, 플로라는 그네를 타고 있었다. 아리엘은 모래에 대한 적응을 마치자 약간 싫증이 났다. 그리고 그네를 신나게 타고 있는 플로라를 바라보았다.

재밌게 놀고 있는 플로라가 약간 질투가 났는지, 아리엘은 그네를 타고 있는 플로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손으로 그네 한쪽 줄을 잡아 멈추게 하고는 말했다.

"내려."

하지만 플로라는 그네가 더 타고 싶은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귀엽게 "싫어, 나 더 탈거야."라고 말했다. 본래 자신에게 거부를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공주님인 아리엘은, 플로라의 이 말에 화가 났다. 그리고는 등 뒤에서 플로라를 밀어서 모래밭에 넘어지게 만들었다.

원래 피부가 얇아서 플로라의 아픔 신경이 반응을 보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모래가 살에 살짝 박혔고, 플로라는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앙~"
'으, 시끄러워.'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아리엘은 한동안 그네를 열심히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플로라의 울음소리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치질 않았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혼동스러웠던 아리엘은 마침내 그네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플로라의 울음을 그치게 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달래 줘야 하나? 그건 싫어. 하지만 어떻게 그치게 하지?'

아리엘은 한참 고민하다가, 자신처럼 플로라가 쵸콜렛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리엘은 놀고 있던 아이가 떨어뜨리고 간 쵸콜렛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주웠다. 그리고는 플로라에게 다가가서 쵸콜렛을 내밀었다.

"이거 먹어."

하지만 아리엘이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쵸콜렛에는 모래가 묻어 있었다. 게다가 플로라는 캔디는 좋아했지만, 쵸콜렛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플로라는 되려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으아앙~."
'으윽, 되게 시끄럽네. 쵸콜렛을 싫어하나?'

아리엘은 입을 삐죽거리며 쵸콜렛을 원래 있던 대로 가져다 놓았고, 다시 어떻게 플로라의 울음을 그치게 할까 고민했다. 인형의 설정상 아리엘의 정신연령은 8살으로, 정신연령 6살인 플로라보다는 훨씬 어른스러운 편이었고, 보통 8살의 생각보다도 성숙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아리엘이었다.

아리엘은 고민고민하며, 어떻게 플로라를 달랠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재밌게 놀아 주면 플로라가 울음을 그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플로라를 끌고 힘겹게 미끄럼틀 계단 위로 올라갔다.

열심히 올라간 미끄럼틀 위는, 인형들에게 너무나 높았다. 아리엘은 그제서야 겁이 나기 시작했다. 플로라도 더욱 더 열심히 울어댔다. 하지만 재밌게만 한다면 플로라가 울음을 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리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플로라를 자신의 다리 사이에 앉히고, 미끄럼틀의 안전바에서 손을 놓았다. 미끄럼틀은 일명 '달팽이 미끄럼틀'이라고 불리는, 꼬불꼬불해서 재미를 두 배로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재미만 느끼고 끝이었겠지만, 이 조그마한 소녀들에게는 가히 공포심마저 느껴졌다. 돌고 돌고 돌고. 아리엘은 머리가 아파왔고, 플로라는 공포 때문에 울음을 멎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중심을 못 잡은 아리엘이 플로라와 함께 미끄럼틀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다시 반응한 아픔 세포가 플로라를 다시 울게 만들었다. 아리엘도 아픔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좀 더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아픔을 참았다. 그리고는 이제 다시 어떻게 울음을 멈추게 할까 하고 생각했다.

그네를 태워 봐도, 모래성을 쌓으려고 해도 다 허사였다. 아리엘은 점점 지쳐 갔고, 플로라의 정신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멈추지를 않았다. 아리엘은 화가 잔뜩 나서, 플로라를 그냥 두고 놀이터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아파트 입구에 다다를 무렵, 아리엘은 예쁜 장미가 담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붉은 장미를 좋아하는 아리엘은 한참동안 장미의 심문[心紋]을 바라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조심조심, 가시를 피해 장미꽃을 뜯었다.

그리고는 다시 놀이터로 뛰어가, 울고 있는 플로라에게 장미꽃을 내밀었다. 장미의 향긋한 향기에 반응한 플로라는 잠시 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아리엘이 내민 장미꽃을 받아들었다. 두 볼이 홍조로 붉게 물든 플로라가 아리엘에게 기대의 눈빛을 보내자, 아리엘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가져."
"고마워!"

그제서야 플로라는 미소를 짓고는 웃기 시작했다.



-MY LITTLE EMERALD



"이 녀석들, 어디 간 거야?"

서재에 있다가 현관문이 열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 윤호와 진우가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가고, 여기저기를 가 보았지만 플로라와 아리엘을 찾지 못하고 아파트 마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때, 진우가 윤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는 놀이터 미끄럼틀을 가리켰다.

"야, 저기, 저기!"

미끄럼틀 옆에서는, 장미꽃을 쥔 플로라와 아리엘이 사이좋게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윤호는 나름대로 안심했고, 진우도 안정을 느꼈다. 그리고는 플로라의 손에 쥐어져 있는 장미꽃을 바라보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