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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연애 MY LITTLE EMERALD

2005.09.04 18:44

Sierra Leon 조회 수:46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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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정윤호, 20살. 재수생이다.
175cm의 키에 보통 체격이다.
A형의 천칭자리로 사물을 공정히 보려고 노력한다.
좋아하는 것은 만화책, 인터넷 통신, 우동이다.
싫어하는 것은 인형, 어린애, 떼쓰는 것 등이다.



MY LITTLE EMERALD-(1)A PRESENT
WRITTEN BY.I



L.A에 사는 엄마에게서, 오랜만에 편지와 소포가 도착했다. 엄마는 내가 6살 때 아빠와 이혼해서 나와 함께 살다가, L.A로 훌쩍 떠났다. 날 버려두고 간 건 아니었고, 나와 상의해 좀 더 나은 미래를 갈구하겠다는 목적으로 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엄마를 따라 가지 않고 한국에 남았다. 그리고 혼자서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했다.

작년은 나에게 뼈아픈 한 해였다. 원래 내성적이고 운도 별로 없던 나는, 대입에서 낙방해 버렸다. 그 동안 힘들게 계속해온 나의 모래성은 결국 그렇게 쓰러져 버렸다. 엄마는 그 사실을 전화로 듣고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라고 하셨다. 어차피 나도 그럴 생각이었고, 나는 혼자서 외로이 재수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 8월. 뜨거운 여름이 되었다.



'편지라...... 정말 오랜만이네.'

내가 생각해도, 엄마는 편지를 별로 많이 쓰는 성격이 아니었다. 할 말이 있으면 국제전화를 걸어 바로바로 하는 타입이었고, 나도 그런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마 편지를 보낸 이유는 소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편지봉투를 뜯어, 안에 있는 편지지를 꺼냈다.

늘 하던 말이었다. 엄마는 잘 있다며 안부를 보냈고, 나에 대한 공부에 대해서 조금 걱정을 늘어놓으신 다음, 새로운 사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썼다. 그리고는 소포에 대해서도 말을 꺼내셨다.

[이번에는 특별한 거니까, 꼭 풀어보도록 해.]

... 생각해 보지만, 난 특별하지 않은 소포라고 해서 풀어보지 않은 적은 없었다. 나는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거실 가운데에 있는, 직사각형의 원목으로 만든 꽤 튼튼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소포를 바라보았다.

'보나마나 또 원서 같은 거겠지.'

이미 엄마가 보낸 원서들이 내 책상에는 가득 꽂혀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책상에 앉을 때마다 지겹도록 봐 왔었다. 이제 와서 뭐가 부족하다고 또 보냈는지. 나는 바닥에 앉아 있다가 한쪽 팔에 힘을 주고는 일어나 테이블 쪽으로 다가갔다.

소포는 여느 때와는 다르게 좀 컸다. 하지만 나는 것을 그저 양이 좀 많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소포를 살짝 들어서 흔들어 보았다. 뭐랄까,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생각보다 무게도 가벼운 듯 했다. 이렇게 큰 소포 안에 들어갈 원서들이라면, 꽤 무게가 있어야 정상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나는 미간을 찡그리고는, 소포를 풀지 않고 그대로 테이블에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내가 좋아하는 인터넷에 접속하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소포는 그대로, 저녁 8시가 될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저녁을 간단히 빵으로 해결하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위의 소포가 눈에 거슬렸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오랜 스트레스로 푸석해진 내 검은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닿았다.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나는 투덜거리면서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하지만 소포가 커서 TV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없이, 소포를 테이블에서 내려놓고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테이프를 뜯고, 상자를 여니 거기에는 책이 아닌 다른 것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들어서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하나의 소녀.

마치 작은 공주님인 양, 수줍게 닫은 입과 만약 뜰 수 있다면 꽤 동글동글하고 클 것 같은 눈이 맨 처음 내 눈에 들어왔다. 기껏해야 50cm 자로 키를 잴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몸이었지만, 나이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대여섯 살 되어보이는 소녀였다.

아까 들었던 것처럼, 소녀는 무게가 꽤나 가벼웠다. 그리고 하얀 잡티없는 피부에, 간신히 어린애들 속옷만을 걸치고 있었다. 아, 그리고 눈에 띈 것이 바로 빛나는 블론드였다. 내 푸석푸석한 머리와는 다르게 윤기가 나는 가는 머리카락이었다.

'전형적인 유럽 인형이구만.'

마치 인간같은 부드러운 살결과 거의 티가 나지 않는 관절에도 불구하고, 내가 거의 첫눈에 인형이라는 것을 간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소녀의 허리에 붙어 있는 상표 때문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상표를 보았다. 상표에는 고풍스러운 영문 필기체로, 'FLORA'라는 이름이 씌어져 있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이런 생각을 했다.

'플로라? 이름인가?'

그리고는 인형을 뒤로 돌려 보았다. 건전지 넣는 곳이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뜻이었는데, 이 인형을 돌릴 만한 동력이 겨우 큰 건전지 두 개로 된다는 뜻일까? 하고 의문스러워 했다. 하지만 호기심이 생겨, 건전지를 찾아내서 그 곳에 넣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반응을 기다렸다.

인형을 내 쪽으로 돌려 놓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인형은 조심스럽게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귀엽고 예쁜 눈꺼풀이 말려 올라가자, 거기에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녹색, 아니 에메랄드의 눈동자가 있었다. 그런데도 왠지 그 얼굴이 익어 보였다.

에메랄드는 나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무슨 알에서 깨어난 오리가 어미를 발견하고 뇌리에 새기듯이 말이다. 조금 웃긴 표현이었지만, 정말로 그 애는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민망할 정도로.

"너......"

그리고 '플로라'의 입술이 열렸다. 나를 응시하다가 그 꼬마 녀석이 처음으로 꺼냈던 말은,

"윤호구나아-!"

그리곤 나에게 달려들어 내 가슴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일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 인형, 이런 것도 설정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뭔가가 내 뇌리 속에 번개처럼 꽂혔다. 플로라를 봤을 때, 왠지 모르게 누구와 닮은 것 같다는, 얼굴이 익은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든 이유를 알았다. 그 녀석은, 그 애와 닮아 있었다.



민 예나.
나와 동갑으로, 아마도 지금 대학생일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예나의 어머니와 우리 엄마는 옛날부터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우리도 당연히 서로 친한 친구 사이였었다. 아마 내 기억엔 유치원 때부터 같이 있다가, 언젠가부터 그 존재감이 뿌옇게 점점 사라진 것 같았다. 그 애와 닮아 있었다, 플로라는. 플로라 쪽이 좀 더 통통했지만, 큰 눈과 붉은 입술 형태, 그리고 약간 홍조를 띈 볼 등이, 옛날의 예나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녀석을 짝사랑했었다. 우유부단하고 옛날부터 소극적이었던 나의 손을 붙잡고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놀아 주었었다. 언제나 '윤호야-!'하고 부르면서. 지금 생각해 보니 목소리도 꽤 비슷한 것 같았다.

어쨌든 나로서는 그 인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예나와 닮은 것을 감지했을 때부터, 나는 화가 불같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여하튼 이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플로라건 뭐건, 그저 다 나가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왜 남의 가슴을 이 녀석이 이렇게 찌른단 말인가. 무슨 권리로.

"너... 나가."

아직도 내 품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녀석에게, 내가 중얼거렸다. 화가 나서 중얼거렸다. 플로라라는 조그마한 인형은,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듯 내 품에 안겨 내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당장 나가-!"



-MY LITTLE EMERALD



"으아아아아앙-."

아파트에서 어린 소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는 그리 들을 만한 것이 못 된다. 한 갈색 머리의 20살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는, 슈퍼에서 장을 보고 아파트 복도로 들어섰다가 여자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소녀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윤호의 집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을 목격했다.

'아니, 도대체 쟨 누구지? 윤호 친척인가?'

플로라가 인형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는 플로라에게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사랑스러워 보이는 외모는 이미 눈물로 일그러져 있었다. 진우는 그 모습을 보고는 말을 걸었다.

"어... 너 누구니? 윤호 친척이야?"
"웅......"

긍정도 부정도 아닌 듯한 대답을 하며, 플로라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런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일단 데이터 처리를 했다. 갈색 머리에 윤호보다 조금 더 큰 키, 그리고 그리 살찌지 않은, 윤호와 비슷한 체형의 남자였다. 눈은 컬러 렌즈를 꼈는지 검은 색이 아닌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머리도 탈색을 한 것 같았다.

그는 윤호와 같은 나이의 대학생인 이 진우였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윤호보다 조금 수준 낮은 대학교에 지원해 붙어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집이 같은 아파트에 있어, 평소에도 자주 만나서 노는 편이었다. 진우가 플로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울면 안 되지. 오빠랑 같이 윤호한테 가자, 응?"

그리고 귀여운 것을 좋아했다. 플로라는 한참 진우의 얼굴을 두려운 듯 바라보다가, 결국엔 또 목청 좋게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앙-."
"아니, 넌 도대체 누구야? 왜 또 우는 거야? 정말 미치겠네-."



진우는 지금 플로라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플로라는 맛있게 생긴 딸기맛 막대사탕을 짭짭거리면서 핥고 있었다. 진우는 플로라의 손을 이끌어서 아파트 쪽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윤호 친척이 맞긴 한 건가? 내가 괜히 사탕 사준 거 아냐?'

어쨌든 울고 있는 아이를 두고 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진우는 쓸데없는 영웅심을 발휘해서 다시 아파트 계단을 올라갔다. 아파트는 그다지 크지 않은 5층 건물로, 윤호와 진우는 모두 3층에 머물고 있었다. 3층까지 올라가서, 복도 정 중앙에 위치한 윤호의 아파트 문을 진우가
두드렸다.

"야, 정윤호! 나와 봐!"
"무슨 일이야."

윤호는 약간 귀찮은 기색을 보이며 낡은 아파트 문을 열었다. 진우와 플로라가 사이좋게 서있는 것을 보자, 윤호는 얼굴색이 확 바뀌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 때, 진우가 타고난 운동신경을 이용해서 재빨리 한 쪽 어깨를 문 사이에 끼워 넣었다.

"빨~리~ 열~어~."
"윽, 알았다, 알았어."

결국 진우에게 진 윤호는 아파트 문을 열었다. 플로라는 눈을 빛내면서 윤호를 응시했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윤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소파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진우는 윤호를 따라 플로라를 소파에 앉혔다.

"이 녀석, 너랑 아는 사이 맞지? 아까 니네 집 앞에서 울고 있던데? 왜 내쫓은 거냐?"

진우의 귀찮은 질문에, 윤호는 짜증섞인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

"아, 몰라. 그리고 그 녀석, 모르는 모양인데 인형이라구."
"에에~?"

진우는 전혀 몰랐다는 듯 윤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플로라를 자세히 응시했다. 과연 팔과 다리 마디마디 마다 관절이 살짝 보였다. 놀라서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 진우를 바라보고, 윤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름도 있어, 플로라래. 이 녀석, 놀랍게도 건전지만으로 움직이고 있다구."

건전지만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에 진우는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평소 인형 쪽에 아주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던 그는, 이 인형 안에 무언가 장치가 있는 걸까 하고 곰곰히 생각했지만, 과학도도 아니고 그냥 일개 음악도일 뿐인 그가 그런 것을 알 수는 없었다. 그냥 성능 좋은 인형이라고 생각한 진우는, 다시 윤호에게 물었다.

"근데 왜 쫓아낸 거야? 너 이거... 엄마한테 받은 거 아냐?"

진우의 눈동자는 아까 푸른 소포에 닿아 있었다. 소포 상자에는 보낸이의 출처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친한 친구였기에 어머니의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윤호의 가정 사정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윤호가 말했다.

"짜증나. 이 녀석, 짜증난다구. 보자마자 달려들지 않나...... 게다가 짜증나게 생겼어."

윤호의 말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짜증나게 생긴 얼굴은 아니었고, 오히려 사랑스러웠다. 게다가 인형인데도 인형 티가 거의 나지 않았다. 아직 속옷만 입고 있어서 그렇지, 인형 전용 옷을 사 준다면 거의 어린애 같을 것이다. 물론 키가 좀 작았지만.

"야, 선물인데 버릴 참이었어? 게다가... 불쌍하잖아."

진우의 사정에 윤호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이 녀석은 전혀 데리고 있을 마음이 안 든다. 왠지 모르겠지만, 과거 때문인 것도 같다. 하지만 그런 것에 얽매이는 자신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윤호는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돼, 이건 성격이나 외모상의 문제가 아냐."

플로라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 보다가, 왠지 분위기가 좋아지지 않자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윤호가 자신을 또 쫓아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만사 제치고 그를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또 다시 윤호에게로 달려들어, 그의 팔을 두 손으로 꼬옥 잡았다.

"나... 여기서 살래."

윤호와 진우는 깜짝 놀라, 울상을 짓는 플로라를 바라보았다. 그 어린 소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윤호는 여자의 눈물에 강한 타입은 절대로 아니었다, 절대로.

"그러니까, 내가 도와줄게. 여기서 살게 해 주면, 어떤 일이든지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야. 윤호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거야. 별로 힘들지 않을 거야, 날 데리고 있는 건. 그냥 가끔씩 산책 나가고 사탕을 사주고 하면 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날 좀 데리고 있어 줘."

그 조그만 소녀의 목소리는 한 마디, 한 마디씩 떨려와 점점 마음을 저리게 했다. 원채 이런 것에 약했던 윤호였다. 진우는 그를 바라보며 한 마디 했다.

"어때? 이래도 안 데리고 있을래?"

윤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투명한 유리컵에 부었다. 그리고 쟁반에 우유가 든 컵을 가져오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식객이 늘었잖아, 인형 주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