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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연애 군주의 귀환

2005.08.31 11:10

리듬을타고 조회 수: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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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꼬신 여자 수? 100명 째부터 세기 귀찮아서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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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 이런 이야기를 너에게 하는지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그냥 들어줘.

긴 이야기가 될 거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어디보자. 그래.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겠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달리 백수였어.

막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일러 조립 일을 조금 하다가 때려치웠었거든.

때려치운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외적으로 밝힌 건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였어.

솔직히 그렇잖아. 보일러 조립이라는 게.

그 분야에서 신이 되지 않는 이상은 평생 기름때나 벗기면서 살 것 같더라고.

그런 고만고만한 인생을 사는 건 내 자존심과 젊은 객기가 용납하지 않더라.

그래서 나는 세 달 만에 사표를 내고 그동안 번 월급으로 입시학원에 등록을 했어.

입시학원은 우리 집에서 조금 먼 곳이었는데... 자전거 타면 40분 정도 됐지.

구태여 왜 그렇게 먼 곳을 선택했냐고?

이유야 심플해. 거기에 내 고등학교 동창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었거든.

조금 힘들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놀면서 공부하면 효율도 오르고 재밌을 것 같더라.

그 녀석들도 대부분 취업했다가 적성에 안 맞아서 나처럼 공부하려고 들어온 녀석들이었거든.

동병상련이라고... 서로 다독거리면서 공부라는 거 한 번 빡쎄게 해 볼 생각이었지.

그런데 그건 내 판단미스였어.

당장 학원 수업을 받던 첫 날에 외박을 해버렸거든.

친구들끼리 술 한 잔 하고 들어간다는 게 풀코스로 놀아버린 거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난 게임방에서 신나게 프로토스 부대를 지휘하고 있더라.

그때의 심정은...뭐랄까. ‘그래, 내가 다 그렇지 뭐. 놀 때 확 놀아버리자!’

그런데 그게 하루가 아니라 이틀, 사흘, 나흘, 한 달이 되더라. 친구들도 잘 노는 놈이고, 나 역시 잘 노는

놈이라 세월 가는 건 일사천리였지.

당연히 벌어 논 월급은 바닥이 나서 다음 달 학원비를 내야하는데 내 통장 잔고를 보니 1020원이 있더라.

그래도 학원 등록한답시고 부모님한테 손 벌리기는 미안했어. 어차피 돈 내고 등록해봤자 또 놀 건데...

그래서 나는 학원을 그만두고 독학을 시작했어.

독학을 시작했을 때가 슬슬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였지. 환절기 감기에 걸려서 많이 아팠던 기억이 나
네.

하여간...작심삼일이라고 했나? 누가 만든 속담인지 걸작이야.

내 경우가 딱 삼일이었거든. 독학 시작한지 삼일 만에 ‘보일러 조립은 내 길이 아니지만 공부 역시 내 길은
아니다.’라고 내 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가 샤우팅 창법으로 외치더라.

그래도 그렇게 확실하게 깨달은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은근하게 놀게 되었어.

이를테면...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백수는 아니었단 말이지.

모든 백수가 그렇겠지만... 자기가 백수라고 생각하는 백수는 없다고 생각해.

백수도 자기 나름대로는 무언가를 항상 열심히 하고 살기 마련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