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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게임 The Flower

2006.05.10 10:45

Weeds 조회 수: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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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니, 그부분은 좀 더 길게!"

"이, 이렇게?"

"아니라니까! 조금만 더! 이러니까 만년 F랭크로 있는거지!"


나는 클라드. 현재 음유시인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지금 내 옆에서 자꾸 쓴소리를 하고있는 이 여자는 플로렌스.
1주일 전에 나무에서 떨어지며 나와 만난 그녀는 내 음악을 지도해주고있다.
그녀가 나를 가르치게 된 연유는, 그 날 센마이 평원에서 곰에게 습격당한 그녀를
구해주었던 것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물론, 그것은 내 탓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녀의 상처는 지금 거의 다 아물었다고 한다.

"휴우, 갈길이 머네. 이래서야 즉흥 연주를 하는것도 힘들겠어."

"...내 손이 죽일놈이지. 미안해-"

"사과할 기운이 있으면 좀 더 연습을 하라구! 그럼 그럴 필요도 없을테니까!"

...아마도 내 기억으론 그녀는 조금 더 낯가림을 했을텐데 말이다.
나도 여자앞에선 마찬가지였지만, 왠지 둘이서 있으면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의외로 철저한 그녀의 지도는 내 실력을 빠르게 성장시켜 주었다.
(아, 보통은 더딘건가.) 물론 아직까지 맑은 정신으로는 들을 수 없지만 말이다.
이대로라면 며칠 안으로 쉬운 곡 하나쯤은 제대로 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연주를 하며 그림자를 슬쩍 보았다. 아마 2시쯤은 된 것 같았다.

"자아, 슬슬 밥먹을 시간이네. 오늘은 양파 스프를 가져왔어."

플로렌스는 자신의 조그만 가방 속에서 천으로 쌓인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녀가 천을 조심스럽게 풀자, 뚜껑이 덮인 2개의 아담한 그릇이 있었다.
그녀는 풀은 천을 바닥에 살며시 깔고, 내게 앉으라면서 그릇 하나를 건내었다.

"으- 양파하고는 별로 친하지 않은데."

"투정부리지 마-. 이건 솜씨에 좋은거라구. 남기면 다시는 안 가져올거야!"

그녀는 따갑게 말하고는 천천히 스프를 마셨다.
나도 내키지는 않지만 별 도리가 없었기에 조금 들이켰다.
확실히 맛은 좋았다. 과거 요리사를 희망했던 사람 답게 말이다.

그녀는 아직 나보다 1살 위인 19살이다. 원래는 누나라고 불러야 맞을테지만,
내게 그런식으로 불리는건 조금 어색하다면서 사양했다.
하지만, 만약 누나라고 부른다 해도, 그것은 이내 의미가 없어질 테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밀레시안이고, 플로렌스는 이곳 에린의 주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악기연주를 매우 잘 하고, 요리실력도 수준급이다.
아마 그녀 정도의 연주실력과 요리실력을 갖추려면, 어느정도의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그 긴 시간이라는 건 우리 밀레시안의 기준에 맞춘 것이다.
이곳 에린의 주민들은, 나이를 굉장히 늦게 먹는다.
보통 우리가 4~5살을 먹는동안 그들은 전혀 변해있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만 차이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성장조차 우리의 배는 느렸던 것이다.
때문에, 어쩌면 플로렌스는 나보다 훨씬 오래 살았음에 틀림없었다.

-그르르르......

스프를 거의 비웠을 무렵, 저 멀리서 곰 두마리가 어슬렁 어슬렁 기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음식의 냄새를 맡고 온 모양이었다.
나는 빈 그릇과 류트를 그녀에게 맡기고, 글라디우스를 뽑아들며 일어섰다.

"이런, 또 왔구나. 어서 나무위로 올라가 있어."

"으... 또야, 알았어.... 하지만, 몸 조심해!"

"또 그소리... 괜찮다니까. 나는 밀레시안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어딘가에서 쓰러지더라도,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피닉스의 깃털'이라는 것으로
구해주기도 했고, 정신을 차릴즈음에 마을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나조차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위 말하는 '죽음'과는 거리가 있는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항상 곰만 나타나면 내게 조심하라고 일러둔다. 참... 누누이 괜찮다는데도.

갈색곰 한마리가 먼저 공격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두 앞발을 기지개펴듯 양쪽으로 쫘악 벌렸다.
나는 그 틈으로 녀석을 두 번 베고, 윈드밀로 쳐내었다. 그 곰이 땅에 다운되는 순간,
붉은 그리즐리 베어가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놈의 공격을 막고, 다시 두 번 베어 쓰러뜨렸다.
그 때, 옆에 쓰러져있던 갈색곰이 왼쪽 앞발로 나를 후려쳤다.

오른쪽 얼굴이 불에 달군것처럼 뜨거웠다. 아직 피는 나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다시 일어나서 달려오는 그리즐리 베어의 공격을 살짝 피하고 검으로 쳐내었다.
그리고 옆에있던 갈색곰을 내리쳤다. 땅을 약간 울리며 쓰러지더니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자세를 다시 잡으려는 찰나, 어느새 일어난 그리즐리 베어가 두 앞발을 양쪽으로 벌리고 있었다.
읍... 이건 위험한데...!

"에에이잇-!!"


파악-.

하얀 류트가 곰을 강타하고는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플로렌스는 어느틈에 나무에서 내려와 곰을 가격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나는 정신을 차리고, 검을 그리즐리 베어의 배에 꽂고 힘껏 차버렸다.
그리고 녀석이 일어나려 할 때, 머리통을 힘껏 쳐내었다.

"후우, 끝났다... 아차, 왜 나무에서 내려왔어? 네게는 녀석들이 너무 위험하잖아."

"무슨 소리야! 네가 훨씬 더 위험했으면서. 아무리 밀레시안이라도 조심하라고 했잖아?"

그녀가 가방에서 붕대를 꺼내며 말했다. 꾀 크게 소리지르고 있었지만, 상당히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붕대 하나를 천천히 감아주었다.

"이정도는 괜찮아... 포션을 조금 마시면 대단한 상처는 아니니까."

"그러면 안돼. 내가 항상 조심하라고 하는 건, 심하게 다치지 말라는 뜻이었어.
너는 죽지 않아서 부상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보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 달란말이야.
눈앞에서 소중한 사람이 다치는 걸 봐도, 너는 아무렇지도 않을거라고 생각해?"

"...네, 네. 명심하도록 하지요."

"또 그소리...... 미운소리 못하게 붕대로 막아버린다?"

그녀가 붕대를 꽉 조여버리는 바람에 나는 한번만 봐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서로 잠시동안 웃고서, 나는 바르게 앉아 그녀에게 응급치료를 받았다.
붕대가 감기면서 그녀의 따스함이 몸속에 스며들어왔다.
왠지, 기분이 굉장히 좋아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뭐라고 하더라......

"됐다! 치료 끝! 그런데, 이런 상태론 음악은 안되겠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연습하자!"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 내일 봐. 아까 구해줬던거 고마워!"

나는 로브의 먼지를 툭툭 털며 일어서서 티르코네일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내일 봐-! 그런데, 이렇게 보니 키가 많이 컸네......
처음 봤을땐 나랑 비슷한 정도였는데.... 후후, 오빠라고 불러야할까?"

"사양할게... 하긴, 나는 밀레시안이니까. 그럼 다음에!"

우리는 서로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이때까지,'밀레시안'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졌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티르코네일을 향해 달려갔다.


7.

툭-

주홍색 장미 한송이를 제단에 던졌다. 이제 남은 꽃은 한 송이 뿐.
클라드는 마지막 한송이를 집게 손가락으로 들고, 빙글빙글 돌리며 던전을 내려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천천히 자신의 나이를 되새겨보았다. 21세 였다.
그 자신도 최근에 글라디우스가 빨리 손에 익는걸 느끼고는 있었다.

'...그녀는 아직까지 19살이겠지.'

클라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시선을 위로 향한 체 터벅터벅 걸어갔다.

1주일 전까지의 나날들이, 얼마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는지 그는 뼈저리게 알고있었다.
아마도, 수련과 전투외엔 별 관심도 없었던 그의 생애에서, 가장 의미있던 날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플로렌스의 훌륭한 지도 덕에 그는 많은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그녀를 통해 사람과 나누는 정, 웃음... 그리고 사랑하는것들을 알게 되었다.
아마 플로렌스도, 클라드가 그녀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녀도 클라드를 사랑했으며, 그랬기에...
5일 전, 네 송이의 장미와 함께 보냈던 그의 고백이 적혀있던 편지를,
그렇게 깨끗하게 거절할 수 있었을것이다.

한참을 생각하며 걷던 그에게, 저 멀리 커다란 보스룸의 입구가 보였다.
오래 회상을 하며 걸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저번과는 달리 모든 문이 열려있었기에
훨씬 빨리 왔는지도 모르겠다.

서큐버스는 눈을 감고, 보스룸 중앙에서 작은 해골늑대의 머리에 손을 얹어놓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클라드가 온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해골늑대는 그녀의 품에서 가만히 자고 있었는데, 무언가에 의해 깨어난듯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스룸 입구를 바라보았다. 검은 로브에 붉은 띠와, 붉은머리를 한 남자가 서있었다.
새끼는 '캐갱!'거리며 서큐버스의 품에서 벗어나 그를 향해 달려갔다.
클라드는 해골늑대가 뭘 원하는지 알아채고, 가방을 뒤져서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꺼내었다.
그가 발밑에 내려놓자, 새끼는 컹컹대며 고기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 때, 서큐버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자신의 품에 아무것도 없는것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보스룸 입구쪽에서 고기를 먹고있는 해골늑대를 쓰다듬는 클라드를 발견했다.
그녀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넘쳐흘렀다.

"와아! 어서와요-!"

서큐버스는 클라드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를 넘어뜨릴 기세로 힘껏 안았다.
얼굴이 머리색 만큼이나 빨게진 그는, 바로 그녀를 떼어내고 뒤로 물러섰다.

"뭐, 뭐하는거야!"

"쿡, 반가워서 그런거니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실은 안오실줄 알고 무척 걱정했거든요."

"안오실줄 알았다니... 내가 그렇게 못믿게 생겼던가?"

"하하! 아니요. 확실히 말하면, 밀레시안들을 못믿었던 거죠.
그들은 뭐랄까,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기보단, 자연스럽게 한다고 해야할까요?
항상 그들 사이에 말이 오갈때면 서로 갈등하고, 굉장히 많이 오해한다고 들었어요.
말과 행동이 따로따로인 사람도 있다더라구요.

당신도, 아니 클라드씨도 저와 같은 마족을, 굳이 다시 만나러 올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말로만 다시 오신다고 한 걸로 잠시 의심했어요. 미안해요!"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클라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해골늑대를 다시한번 쓰다듬고 보스룸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분명 지하일텐데, 양쪽 벽에 수많이 뚫려있는 구멍에서 찬란한 빛이 새어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해골늑대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아참, 그러고보니 저 녀석은 해골이잖아? 그런데 고기를 먹다니, 어떻게 된거지?"

분명 처음 봤을때부터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서큐버스도 해골늑대를 다시 돌아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후후, 클라드씨. 이 세상에는 알아도 되는것이 있고, 안되는것이 있는 법이에요.
밀레시안들이 죽지 않는 이유라거나? 그런것 말이에요."

..왠지모를 신변의 위협을 느낀 클라드는 더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그는 서큐버스와 함께 아무것도 없는 보스룸을 천천히 걸어다녔다.
그녀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정말 쓸데없이 넓죠?"

"그래...."

"우리는 항상... 이 텅빈 방에서 살아요.
정말로 아무것도 없고, 바깥과 단절된 공간.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건, 홀로 노래하고... 춤추며,
우릴 사냥하러 오는 당신들을 기다리는 것 뿐이에요.
즉, 우리 서큐버스가 처음 만나는 사람은, 우리를 죽일 인간인거죠.
바깥의 소식이나 정보는 항상 사념파로 전해져 올 뿐....

그래서! 나는, 당신이 이곳에 와준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이렇게 말해줘도, 당신은 짐작이 잘 안갈테지만요."

서큐버스는 손을 모으고 활짝 웃으며 클라드에게 말했다.
그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그런걸까...'하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뭔가 떠오른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너희들 '서큐버스'는 '몽마'라는 뜻이잖아?
서큐버스가 꿈속에서 자신을 괴롭힌다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어.
'몽마'와 너희들은 무슨 관계지?"

"후후, 그건 인간들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물론 저희가 꿈속에 직접 들어간다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아마 당신도 아실테지만, 우리 서큐버스는 '어떤 남자들'에게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타나죠.

그들은 우리를 처음에 보고는 상당히 놀란다고 해요.
그리고, 이내 '눈앞에 있는 건 그녀가 아니라 마족이다' 라는걸 깨닫고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를 유혹해서 해치려는구나.'

그렇게 '그 인간들'은 우리를 죽이게 되지만...
아무리 가짜라고는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해친 그들의 꿈에는
우리가 항상 나타나게 되고, 그런 우리를 죽이는 꿈을 반복해서 꾼다고 해요.
그래서 '검은장미' 였던 저희에게 '몽마'라는 뜻의 이름을 지었다고 하더군요."

그녀가 중간중간에 '그 인간들'이니, '어떤 남자들'이니 하는 것이
조금 어색하게 들렸지만, 클라드는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붙여진 '몽마'라...... 결국엔 죄책감 같은것에 시달리는건가?"

"그런 거죠. 정말 제멋대로이지 않나요? 후후.
자, 저도 얘기를 들려주었으니, 이번엔 당신 차례네요!"

"응?"

"발뺌하려하지 마세요! 어제 말해준다고 하셨잖아요?
이곳에 온 이유 말이에요."

클라드는 '아- 그랬지...'라고 하고는, 잠시 무언가를 회상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꺼냈다.

"처음엔... 그냥 아무생각 없이 던전 입구까지 갔었어.
지금 돌이켜봐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게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제단위에 서있었지.
그리고... 어찌됐든 여기까지 왔으니, 사냥이나 하기로 했어.

나는, 며칠 전에 실연을 당한 상태였지.
그녀가 나를 왜 거부했는지 짐작도 하지 못했었고, 그 덕분에...
나는 이틀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제대로 먹지도 않았지.
정신적 공황 상태였다고 보면 될거야.
그녀와 항상 만나던 곳을 매일 가봐도, 그곳엔 아무도 없었어.
그렇게 나는 반쯤 폐인이 된 상태로 나날을 보냈지.

그래서... 라비던전에 들어섰을 때, 나는 무언가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어.
실연과, 그녀를 잃은 충격에서 잠시나마 헤어나고 싶었어.
거기다가 이 던전 끝에있는 보스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기에,
한번 만나볼까- 하는 심정으로, 네게 주었던 장미 한송이를 넣고 이곳에 들어온거야."

서큐버스는 그가 얘기하는 도중, 어느부분에서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잘못들었겠지'하고 생각하고는 그에게 물었다.

"음...-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 장미를 넣고 들어온건가요?"

"...그건 아까전에 말했던 그 사람에게 주려고 꺾은 장미였어.
그녀에게 편지와 함께 네송이를 집으로 보냈지만, 거절한다는 편지와 함께 되돌아왔지.
이 꼴보기 싫은 꽃을 버리지는 못하겠고, 파는것은 내키지 않아서 제물로 바친거야."

"그래요.... 당신같은 사람을 차버리다니!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글쎄, 어떤 사람이라... 자세히는 말해주지 못하겠고...."

클라드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듯 하더니, 서큐버스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너와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야."



이 말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8.


"그런가요......"

서큐버스는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렸다.
내가 그녀의 얼굴을 슬쩍 들여다보니, 얼굴빛이 꾀 어두웠다.
갑자기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해선 안될말을 한 것도 아닐텐데...?
혹시 그녀의 존재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는걸까 했지만, 지나친 망상이었다.
잠시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도 불행한 사람이었군요.... 괜한걸 물어봐서 죄송해요."

불행한 사람이라니, 무슨 난데없는 소리인가 했다.
아... 실연당한걸 말하는 걸까. 그걸 사과하기엔 타이밍이 좀 안맞는것 같지만.

"아니, 괜찮아.... 벌써 지나간일이고, 그걸로 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

"그렇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고민하는듯 했다.
왜 그렇게 미안해하는 거지.... 아직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의 치맛자락을 조금 찣고는
그녀의 주홍색 머리카락을 묶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의 머리는 아이돌 스타일이 되어있었다.
자신이 그걸 알고 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얼굴과 상당히 잘 어울렸다.

"자아... 어때요?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어울려! 정말 잘 어울리는데. 이렇게 조화가 잘 되는건 너밖에 없을거야."

"와아, 그래요? 그럼, 이제 그사람과 꽤 달라보이죠?"

...?
물론, 원래부터 머리색 자체가 달랐기에, 스타일까지 바꾸니 차이가 확연했다.
그런데,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생각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잘됐다는듯 조그맣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다행이네요. 이젠 저를 볼때마다 그녀를 떠올리시지 않아도 될거에요.
여태껏 심란하게 만들어서 죄송해요."

"...그래, 고마워......"

지나치게 착해서 그랬던 걸까... 정말 이럴것까진 없는데 말이다.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서로 아무말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오래 서있었더니 다리가 아파왔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녀도 다소곳하게 앉았다.
나는 불편해서 등에 메고있던 흰색 류트를 옆에 내려놓았다.
그것을 본 서큐버스는 가만히 류트를 보고있다가, 손뼉을 탁 치며 말했다.

"참! 그러고보니, 아직 약속이 하나 더 남아있었네요!"

"어? 아아, 음악을 들려준다고 했었지."

"네! 지금 연주해주실수 있나요?"

"물론이지. 잠깐 기다려..."

나는 류트를 내게 기대어 세워놓고, 악보를 꺼내기위해 가방을 뒤적거렸다.
빈악보가 여러개 들어있어서, 나는 하나하나 전부 들추어 보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 전설'을 꺼내었다.
아직까지 가장 잘치는 곡이고, 플로렌스에게 가장 먼저 배운 곡이었다.

나는 일어서서 한발자욱 물러선 다음, 줄을 두세번 튕기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서큐버스는 몹시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부담이 되긴 했지만, 내게 도리어 힘을 내게 해주었다.


-음악은 고요하게 보스룸 안에서 울려퍼졌다.
굉장히 오랜만에 켜는 류트지만, 실수를 하지는 않았다.
내가 연주를 하는 동안, 서큐버스는 눈을 감고 조용히 음악을 감상했다.
보스룸의 벽에 나있는 구멍의 빛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아아, 나는 언젠가 꾸었던 모리안 여신의 꿈이 생각났다.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그녀는 여신의 그것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아마도, 처음에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이 서큐버스를 만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내 연주가 끝나자, 그녀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리고 눈을 감은 체로 노래했다.


라라... 라라...
돌아올 때는 그 칼을 던져버려요.
당신께 다가갈 때
그 칼에 비치는 내 모습이
내 가슴을 안타깝게 한답니다.

리리... 라라...
그대가 내 침실에 처음 들어온 날에
사실 전 놀라지 않았답니다.
제 가슴 속에는 이미
당신의 사랑이 살고 있었거든요.

라라... 라라...
눈을 감지 마세요.
그 눈빛 속에 나를 가두어 주세요.
당신은 나의 주인님
당신은 나의 주인님

검은 장미의 영원한 주인...



노래가 끝났다.
나는 잠시동안 그녀의 목소리에 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고, 조금 부끄러운듯 시선을 내리고 말했다.

"저, 괜찮았나요..., 클라드씨?"

"...굉장했었어. 아마 서큐버스들 중에서도 가장 잘 부를지도 몰라."

"후후, 과찬이세요. 아참, 클라드씨도 이 노래를 알고있죠?"

"그래. 과거에 서큐버스였던 크리스텔 사제님이 만든 노래였었지."

"맞아요. 그녀가 어떤 드루이드를 사랑해서 만든 노래였죠.
하지만, 아직도 우리들은 그 노래를 부르고 있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 모두가 크리스텔, 그녀를 부러워하기 때문이지요."

"크리스텔을 부러워해...?"

"정확히는, 그녀의 사랑을 부러워했죠.
아까 말해드렸듯이, 우리들 서큐버스가 만나게 되는 사람은...
우리를 죽이게 될 사람들 뿐이에요. 그렇기에, 우리에게 사랑이란 건
절대로 느껴보지 못할 감정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그녀는 우리중에 가장 먼저 그것을 한 동료였어요.
비록 짝사랑이긴 했지만, 우리들에겐 그것조차 허용되질 않았죠.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어떤 방법으로 인간이 되어, 바깥세상으로 떠났어요.
마족들은 배신이다 뭐다 하면서 그녀를 붙잡으려고 애썼지만,
우리는 알고있었어요.
그녀는 사랑을 찾아 떠나갔다는걸 말이에요.

우리 서큐버스들은, 그런 그녀를 동경하며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답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그런 사랑이 오기를 바라면서......"



서큐버스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했다.

"...왜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는 갑자기 초조해 하는것 같았다.
그리고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는 문득, 구멍에서 들어오던 빛이 조금 어두워진 것을 느꼈다.

"...이봐, 정말 괜찮은 거야?"

"네, 전 괜찮아요! 그런데...."

그녀는 보스룸 입구쪽을 보았다.
해골늑대가 그녀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녀의 품에 안기더니, 뭐라고 짖어대기 시작했다.

"이 애가 벌써 고기를 다먹었다네요! 후후, 하나 더 얻을 수 있을까요?"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굉장히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해골늑대도, 그녀에게 고기를 더 달라는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 증거로, 녀석의 뒷다리가 조금씩 떨리고있었다.

"휴우... 녀석, 많이도 먹는군."

나는 일부러 자연스럽게 말을 꺼내며 고기를 던져주었다.
새끼는 땅에 떨어진 고기는 거들떠도 안보고, 그녀에게 자꾸 짖어댔다.
그녀는 눈을 잠시 감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했다.

"괜찮아......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뭐?"

그녀는 해골늑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녀석은 '끼깅-...' 하더니, 그녀의 품에서 스르르 내려와 힘없이 고기를 물었다.
서큐버스는 쿡쿡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저더러 크리스텔처럼 떠나버리면 안된다네요! 얘도... 내가 너를 두고 어딜 가겠니..."

그리고 그녀는 쪼그려앉아 해골늑대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쳤다.
나는 확실히,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그에 대해선 아무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금은, 더이상 캐물어도 그녀는 대답을 회피할테니 말이다.

"...이런, 밖이 어두워진것 같네요.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너무 늦으시면 안될테니..."

"그래? 그럼 슬슬 가볼까-"

나는 류트를 등에 매고, 아까 파헤쳤던 가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런 나의 모습을 그녀는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기는걸까. 내일 물어보면 대답해줄까......

"...저기, 클라드씨."

"어?"

"저는요,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어요."

나는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어떤 각오를 한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말없이 그녀에게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저는 정말,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왔어요.
아니, 저희 서큐버스들은 이라고 해야할까요?
아무것도 없고, 완벽하게 바깥과 단절된 이 공간에서 말이에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저는 인간을 동경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짐작도 못할만큼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찬란한 빛과, 많은 인간을 접하면서 살아가는 그들을.......

저희에게 남겨진 건, 이 공허한 방과 날카로운 검...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전해저오는 노래.
저에겐 이 조그만 아이라도 있었지만, 보통 이 세가지외에는 전혀 없었지요.

그렇게 너무나도 오랫동안 고독하게 살아온 우리는,
결국엔 사랑을 꿈꾸기 시작했어요.
한순간이라도 아름답게, 불꽃처럼 타오를수 있게.
너무도 긴 고독속에서 달아날수 있게요...
물론, 이곳에 오는 인간이라고는 우리를 죽이러 오는 사람뿐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싸우는 그 순간까지도, 마지막까지 바라고...
또 바라고... 바랬어요......
이렇게.......



'우리를 사랑해주세요.'"

그녀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눈을 감았다.

"클라드 씨.
그래서, 우리는 사랑밖에 원하지 않아요.
누구라도 좋으니 우리를 사랑하길 원해요.
이런 곳에서 홀로 남아있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아요.
내가 보지는 못했지만, 이 세상에는 분명 많은 것들이 존재할테죠.
당신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사랑만을 추구해야하는 우리들과는 달리, 다양한 것을 당신은 추구할수 있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 중에는 사랑으로 얻을 수 없는것도 많겠죠.

그러니까, 당신은 사랑에 목숨을 걸어서는 안되요.
언젠가처럼... 실연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어서는 안된다구요.
그런 당신을, 분명 누군가가... 걱정하고있을지도 몰라요.

이젠 더이상, 그런 과거를 뒤돌아보지는 말아주세요.

그렇게......



당신은, 앞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나요?"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서큐버스는 만족한다는듯 싱긋 웃었다.

"긴 얘기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실은, 언젠가 인간을 만나게 되면 꼭 해보고싶은 말이었어요!"

"...그래.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왠지 유언처럼 들리잖아?"

"후후, 그런가...
이런, 또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네요.
어서 돌아가세요! 굉장히 늦은것 같아요."

"그래. 그럼-"

나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보스룸을 나섰다.
그리고 붉은 구슬의 방을 지나려는데,
해골늑대가 아까 던져준 고기조각을 물고 나를 막아섰다.
그리고는 내 다리를 툭툭 쳤다.

"왜그래, 고기를 너무 조금 줬나?"

녀석은 고개를 흔들고 나를 낑낑대며 바라보았다.
굉장히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괜찮아. 내일은 많이 가져올테니까.
일찍 올테니, 다음에 보자."

내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제서야 천천히 보스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다시 한 번 뒤돌아보고, 라비 던전을 되돌아갔다.





클라드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서큐버스는 자신의 팔을 감싸안았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며 고기를 먹고있는 해골늑대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제... 곧 찾아오겠지. 하지만, 더이상 미련은 남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