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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2008.12.03 09:49

LiTaNia 조회 수:525

extra_vars1 어린 여고생의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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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오빠.. 맞죠?"


잠깐. 방금 뭐라고 했냐.


내가 지금 1학년이라서 학교 안에서는 나보고 형 또는 오빠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지금 새롬이 얘가 키가 작고, 얼굴도 어려보이고, 머리도 그냥 긴머리에 헤어밴드를 초딩들이 할 만한 것들을 한, 생김새가 영락없는 '초딩'이라고 하지만, 고1들 중에서도 그런 고1들이 없다고는 볼 수 없잖아. 그리고 얘가 키가 작아도 아름선배랑은 거의 비슷한 수준인 것 같고. 그런데.. 나보고 '오빠'라고?


게다가, 난 지금 얘 처음 보는건데.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았지.


"맞는데..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찬오빠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어요."


자칭기자 박찬녀석. 언제 내 얘기는 얘한테 한 거냐.


"전에 닥터피쉬 노래 신청한 윤민오빠 맞죠?"
"..."


헉.
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정말 그때 학교에서 다들 깔깔댔지.


"맞는데.. 그 얘기는 하지 말아줄래."
"제가 개콘에서 닥터피쉬 오빠들 엄~~청 좋아해서요."


아주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한마디 한마디 하고 있는 모습. 정말 영락없는 '초딩'이다.


"그런데.. 왜 나보고 '오빠'라고 하는거야."
"어, 모르셨어요? 저.. 아직 열두 살밖에 안됐어요."


뭐?


열두살?!


열두살이면 원래대로라면 생일이 빠르지 않다면 초등학교 5학년이어야 할 나이잖아. 그런데 지금 그 나이에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정말이야? 그럼.. 어떻게 지금 고등학교에?"
"집에서 저보고 신동이라고.. 머리가 좋다고 검정고시 봐서 학교 일찍 다니는게 좋지 않냐고 해서 검정고시 한번 봤는데, 정말로 붙어서 다니게 된 거예요."


이 세상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열두살 밖에 안 되는 나이에 고입 검정고시에 붙어서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 여자애가 지금 내 앞에 있다니.


"도대체 어디까지 하길래 열두살에 고입 검정고시를.."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던가, 싸인 코싸인 이런거 정도는 할 줄 알아요."


내가 중학교때 거의 막바지에서 어려워했던 그 삼각비 부분인가. 하긴, 내 주변에는 마녀까지 있으니까 이 정도는 놀라운 상황도 아니려나.


"얘기가 길었는데.. 박찬녀석이 그러는데, 컴퓨터에 대해서 잘 안다며?"
"네. 맞아요. 지금 프로그래밍 공부도 하고 있는걸요. C++이라던가.."


12살에 프로그래밍이라. 대단하긴 하지만 인문계 고교에 다니면서 프로그래밍 공부를 할 시간이 있을까.


"내가 컴퓨터가 얼마전에 고장난 상태인데, 요새 어떤 컴퓨터를 맞춰야 할 지 몰라서.."


라고 말하자마자 바로 수업종이 쳤다. 역시 쉬는 시간은 너무 짧아.


"미안. 종 쳐서 나 내려가봐야겠다. 다음에 보자."
"다음 시간에 윤민오빠네 반으로 제가 갈께요."
"응. 좀있다 봐."


12살이라는 나이에 고입 검정고시에 붙어서 고등학교 1학년인데다가 프로그래밍 공부까지 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뭔가 장난이 아닌 앤데. 도대체 왜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평범과는 거리가 먼 애들하고만 어울리고 있는 걸까.


게다가 개그콘서트는 분명 15세 이하 시청불가라고 알고 있는데, 새롬이 쟨 어떻게 본 거지.


"이봐. 박찬. 그 안새롬이가 열두살이라는거 왜 안 가르쳐줬어."
"몰랐구나. 올해 입학생 중에서 검정고시로 들어온 어린 애가 있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역시 이 학교는 뭔가 평범하지 않은 것들을 모이게 하는 힘이 있는건가. 내가 이런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일상이 평범과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나이는 어려도 컴퓨터에 대해서는 잘 아니까, 도움은 분명히 될꺼다. 앗. 선생님 오신다. 그럼."


수업종은 이미 쳤고, 수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뭐 수업은 평소같이 이어지고, 또다시 쉬는시간이 되었다.


"여기.. 윤민오빠 있어요?"
"누군데.. 윤민이를?"
"윤민오빠 컴퓨터 때문에 얘기할 게 있어서.."


이런. 하필이면 유정이랑 새롬이가 만나냐. 유정이 역시 분명 같은 유일고 교복을 입은 여자애가 나보고 '윤민오빠' 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유정아. 내가 불렀어. 우리집 컴퓨터때문에 얘기할 게 있어서."
"그래.."


유정이한테는 새롬이 얘기를 한 적이 없으니 일단 내가 나서야지. 그런데 유정이 표정이 왜 저렇게 시무룩한 걸까.


"안녕하세요, 찬오빠!"
"어, 새롬이 왔구나. 윤민이 좀 잘 도와줘."
"네!"


새롬이가 저 자칭기자 타칭스토커놈한테 이상한 걸 배우지 말아야 하는데.


"컴퓨터.. 어느정도로 맞추고 싶은거예요, 윤민오빠?"
"딴 건 몰라도, 인터넷이라던가 '건전 앤 파이터'만 잘 되면 돼."
"제가.. 안 쓰는 컴퓨터 본체 있는데, 그거라도 드릴까요? 펜티엄D 805라는게 붙어있는데."


펜티엄D 805. 요새 나온 CPU보다는 한 물 갔다고 해도, 적어도 내가 쓰고 있던 셀러론 CPU보다는 훨씬 나아.


"나한테.. 주는거야? 빌려주는게 아니고?"
"네. 집에선 코어2쿼드인가 하는 걸 쓰고 있어서요. 그거로 바꿀 때 전에 본체는 혹시 몰라서 아직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야 새 주인을 찾았으니 다행이예요."


그럼 그렇지. 뭐 내가 쓰던거는 펜티엄D 805보다도 후진거니까. 그런데 지금도 웬만한거 다 돌아가는 거를 나한테 준다니, 이건 좀 짱이잖아. 건전 앤 파이터도 그걸로 잘만 될텐데.


"저.. 정말 고마워!"
"대신, 학교 끝나고 윤민오빠가 저랑 같이 저희 집으로 가셔야 해요."
"뭐.. 그런 것 쯤이야."
"그럼 좀있다 학교 끝난뒤 여기 올께요. 안녕히 계세요!"


새롬이는 다시 자기 반 교실로 돌아가버린 것 같다. 정말 자기가 쓰던 컴퓨터 본체를 나한테 주는건가. 이제 다시 인터넷도 하고, '건전 앤 파이터'도 할 수 있는건가.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유정이가 나를 불렀다.


"윤민아."
"응?"
"아까 그 애.. 윤민이보고 왜 '오빠'라고 하는거야?"


나도 오늘 안새롬이라는 애에 대해서 처음 알았는데, 그 애가 아무리 입학할 때 유명했다고 해도 유정이는 다른 학교에서 전학왔으니까 더더욱 알 리가 없겠지.


"나도 몰랐는데 걔가 머리가 좋아서 검정고시 봐서 고등학교 입학했다나봐."
"그런데.. 윤민이를 어떻게 알고 있는걸까."
"자칭기자녀석이 걔한테 내 얘기 했나봐."


하지만 여전히 유정이는 새롬이를 미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 주변에 평범하지 않은 애들이 몰린다고 해도, 유정이한테 그렇게 걱정이 될 일은 아닐 것 같은데. 그냥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오전 수업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어느덧 점심시간. 오늘도 어김없이 나랑 서연이, 그리고 혜인이 이렇게 셋이 식당으로 향했다.


학교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은 오늘도 변함이 없이 그저 그런 것들이 나왔다.


"민군, 나.. 정말 민군이 그렇게 될 줄 몰랐어. 실종되더니 돌아왔을 때 하녀복을 입고 여장했었다니."
"하녀복?"


서연아. 왜 그 얘기를 지금 하는거야. 서연이가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잖아.


"응. 정말이야. 토요일날, 윤화가 울고불고 하는게 보여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미니가 이상한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다고 해서 그 날 동네를 한참 뒤졌는데.. 민군은 돌아왔는데, 모습이.."
"정말이야.. 윤민아?"


혜인이까지 이런거 알게되면 솔직히 좀 많이 그런데. 어차피 혜인이는 내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 허튼 소리는 하면 곤란하다. 말해야지.


"응. 싫은 일이지만.. 정말이야."
"윤민이.. 어떻게 그렇게 된 거야?"
"아름선배인가 하는 선배가.. 미니 코믹월드로 데려갔다나봐. 가려면 그냥 곱게 보내지, 왜 여장같은건 시켜서.."
"상상이.. 안가. 윤민이가 여장한거."


혜인아. 그 상황은 정말 보면 안 되는 거야. 세상에는 알면 안되는 것이 정말 많아. 그 중 하나가 내가 여장한 모습.


"뒤를 돌아보지 마요 돌아보기는 이른거죠 넘어지면 또 어때요 피가 나도 괜찮아요 다시 또 새살이 돋아나 아무렇지도 않을 거예요 이 음악이 멈추어도 당신들은 춤을 춰요♪.."


점심방송에 정말 타이밍 좋게 이런 노래가 나오는구나. '뜨거운 감자'라고, 요새 TV에서 자주 보이는 김C가 있는 밴드가 부른 그룹인 '좌절금지'라는데, 요새 내가 처한 상황을 보면 좌절을 안 할 수가 있나.


"나같은 애가.. 윤민이한테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내 힘 닿는데까지, 윤민이를 도와주고 싶어."


말만이라도 고마워, 혜인아. 아니. 혜인이라면 말로 끝날 애가 아니다. 좀 불안하기는 하지만.


"윤민아. 나.. 못믿는거야?"
"그럴리가 없잖아."


아차. 혜인이 앞에서는 이상한 생각을 하면 안되지.


얼마 뒤 점심식사가 끝났는데, 전혀 반갑지 않은 어떤 사람을 만났다.


"어.. 민쨩이다!"


하필이면 아름선배를 여기서 만나냐.


"혜인아. 이 사람이 미니가 싫다고 했는데 막 여장시키고 코믹월드 데려간 그 선배야."
"..."


혜인이가 보기에도 아름선배는 아무래도 좋게 보이지 않겠지. 아니. 아름선배같은 사람을 좋게 보는게 이상하지.


"아름선배. 그 옷.. 돌려드려야 하는데. 오늘 못갖고와서 죄송해요."
"아냐, 민쨩. 안줘도 괜찮아."
"네?"


뭐야. 그 옷 아름선배꺼 아니었어? 그런데 안줘도 괜찮다니.


"그 메이드복. 아는 사람이 나 입으라고 준건데, 내가 키가 작잖어. 그래서 다른사람 입는거 보고 싶었구, 나랑 잘 놀아주는 민쨩한테 입혀본 거였어. 민쨩한테 여동생 있었지? 걔한테 입히면 딱이겠다."


아름선배. 그렇지 않아도 윤화도 그거 입고 좋아라 했어요. 집에서 윤화가 엄청 좋아라 하겠구나.


"네.. 고마워요."
"가볼께, 민쨩. 나중에 봐!"
"네.."


아름선배는 정말 유일고 대표 비호감이다. 아무리 외모가 귀여우면 뭐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비호감인걸.


"윤민아. 방금 그 선배.. 있잖아."
"응?"


아름선배가 가버린 뒤에, 혜인이가 말문을 열었다. 혜인이는 아름선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하네.


"그 선배가.. 윤민이한테 계속 다가오는거. 윤민이가 좋아서 그런거같아."
"솔직히.. 아름선배같은 사람이 나 좋아하는거 별로 반기지가 않지만."
"그 선배도.. 평소에 놀아주는 사람이 없는데 윤민이가 같이 놀아주니까.. 반가워서 저러는거같아."


그게 아니라 난 그 키 작은 사람이 선배인줄, 그것도 악명 높은 아름선배인줄 정말 몰랐다니까. 그거 하나 때문에 아름선배가 나를 자기랑 놀아주는 줄 착각하고 있다면.. 이건 착각 치고는 뭔가 좀 심하잖아.


"하지만.. 그래도 그 선배가 윤민이한테 해가 되는 걸 보고만 있지는 않을거야. 윤민이는.. 좋은 애니까."
"말만이라도.. 고마워."


혜인이라면 말만 할 애는 아니지만. 그 뒤 혜인이는 자기 교실로 돌아갔고, 나도 서연이랑 함께 교실에 도착.


"민군..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어. 민군이 맞았어."
"내가.. 맞다니?"
"혜인이 그 애.. 단지 사람을 사귀는데 서투를 뿐,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아. 왜 민군이 혜인이한테 친구가 필요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아."
"다행이네."


휴. 그나마 서연이는 혜인이에 대한 편견을 지운걸까. 거봐. 혜인이 나쁜 애 아니라고 했잖아. 유정이는 어디에 갔는지 몰라도, 지금 자리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유정이도 이제야 막 교실에 들어왔다.


"어디 갔다온거야, 유정아?"
"응.. 잠깐 몸이 안 좋아서, 화장실에. 내가 없는 사이, 누가 윤민이 건드린거 아니지?"
"그럴리가 없잖아."
"혹시 누가 윤민이한테 손 대기만 하면.. 내가 가만히 안 둘거야."


어쩌면 정말 무서운 건 아름선배도 혜인이도 아닌 유정이가 아닐까.


에이. 신경쓰지 말고 남은 시간이나 보내자. 내 주변에 그렇지 않아도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괜히 이상한거 신경쓰다가는 정신건강에 안 좋아.


수업이 다 끝나고 종례까지 끝난 뒤 밖에 나가보니, 새롬이가 어느샌가 기다리고 있었다.


"윤민오빠! 저 왔어요. 같이가요."


맞아. 새롬이가 컴퓨터 본체 나한테 준다고 해서 새롬이네 같이 가기로 헀지.


"민군. 저 애는.. 또 누구야?"
"아.. 자칭기자가 소개시켜준 앤데, 안쓰는 컴퓨터 본체 나한테 준다고 해서."
"조심해. 쟤가 민군한테 이상한 짓 하지 않나.."
"걱정마."


엊그제 아름선배가 나를 여장시키고 코믹월드로 데려간 것 때문에 서연이가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 에이. 새롬이 얘는 설마 아름선배같은 막장은 아니겠지.


"새롬이는, 고등학교 들어오고 나서 낯선 언니오빠들하고 지내느라 힘들지 않아?"
"아뇨. 괜찮아요. 모두 저한테 잘해주시는걸요. 특히 찬오빠가요."


이봐. 그녀석은 가까이하면 안 되는 녀석이야. 특히 새롬이같이 어린 애는 더더욱.


"박찬이 걔.. 조심하는게 좋아."
"왜요? 그 오빠가 저랑 특히 많이 놀아줘서 좋은데."
"걔 앞으로 기자가 될 거라는 얘기 안했어?"
"네. 했어요."
"걔.. 하는 짓을 보면, 완전 스토커야. 여자애들 정보는 도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나한테 막 가르주고 그래."
"에이, 설마요. 찬오빠가 스토커겠어요."


안믿네. 하지만 박찬 그녀석은 누가 봐도 스토커가 맞다니까. 완전히 박찬녀석한테 빠졌구나. 뭐 너도 좀 큰 뒤에 다 알게 될거다. 박찬같은 녀석은 위험하다는 것을.
"다 왔어요."


걷다보니 어느덧 도착한 곳은 다세대 주택. 유일동에는 이런 다세대 주택이 꽤 많다. 새롬이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도착.


"여기가 저희 집이예요. 집 안을 보여드릴수는 없고, 제가 컴퓨터 본체 가지고 올게요."


새롬이 쟤. 아무리 그 나이에 검정고시 봐서 고등학생이 된 신동이라고 해도, 역시 나이는 속일 수가 없나보다. 생긴거라던가 사고방식을 보면 완전히 애야.


얼마 뒤, 새롬이는 낑낑거리면서 컴퓨터 본체를 들고 왔다. 뭐야 이거. 슬림케이스잖아. 이런건 업그레이드하기 힘든데. 하긴 이런 애한테는 이것도 무겁지.


"이거..예요."
"고마워. 새롬아. 이거 집에서 설치하면 되는거지?"
"네. 원래 폐품 재활용하는데 버릴까 했는데, 새 주인 찾아서 다행이예요. 나중에 봐요, 윤민오빠!"


박찬녀석이 자칭기자 타칭스토커라고 하지만, 가끔 박찬녀석도 이렇게 도움이 될 때가 있네. 덕분에 새롬이라는 애를 알게 되고. 그런데 펜티엄D 805면 지금도 충분히 쓰기 괜찮은 사양인데 왜 이런걸 나한테 넘겨준걸까.


다행히도 슬림케이스라서 그런가 본체는 가벼운 편이었다. 집으로 무사히 도착했고, 윤화는 집에 없다. 윤화가 없는 사이 내가 원래 쓰던 하드디스크 떼다가 달아야 하는데.. 역시 슬림에다가 부품 추가하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겨우겨우 다 설치하고 전원 연결하고 컴퓨터를 켰는데..


...


역시 누가 여자애 쓰던거 아니랄까봐, 바탕화면이 웬 헬x키티냐. 그리고, 내문서 폴더에 보니까 얘가 숙제하던거 안 지우고 그냥 나한테 줬네. 뭐 덕분에 내가 숙제할 때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어서 내 계정이랑 윤화 계정 나눠야지. 윤화는 FT 팬이라서 계정 안나누면 바탕화면 같은게 제대로 지못미가 되니까.


"오빠. 나 왔어."


때마침 윤화가 돌아왔네. 옷도 안 갈아입고 딴데 들렀다 온거냐.


"윤화야. 드디어 컴퓨터가 돌아왔다."
"우와!"


윤화도 그동안 컴퓨터를 못쳤으니, 금단증상이 생길 만도 하겠지.


"어떻게 컴퓨터 다시 살린거야, 오빠?"
"학교 친구가 자기가 안 쓰는 구식 본체라고 나 줬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사실 윤화보다도 어린 앤데.


"잠깐 기다려. 본체 옛날꺼 폐품 내놓는 곳에 내놓고 올 테니까. 그 동안에 컴퓨터 맘껏 쳐도 돼."
"응! 와, 컴퓨터다컴퓨터다컴퓨터다!"


저런 모습을 보고, 물만난 고기같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원래 본체는 역시 무겁다. 지금은 쓸데도 없으니 폐품 처리하는 곳에 넣고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어, 윤민이형, 안녕하세요."


저 권밝힘녀석. 어째 요새 자주 만나네.


"윤민이형. 그렇지 않아도 형 만나면 물어보려고 했던게 있어요."
"뭔데."
"그 요새 인터넷에 자주 보이는.. 코믹에서 메이드복 입고 여장했다는 사진.. 윤민이형하고 엄청 닮았는데. 그거 형 맞아요?"
"그런 x팔린 짓을 내가 왜 하냐."
"그냥 형하고 엄청 닮아보여서요. 안녕히 계세요."


사실 그게 난데. 도대체 내 사진이 인터넷에 얼마나 퍼진거냐. 끔찍하다. 집에서 인터넷을 해 보면 그 사진이 얼마나 퍼졌나 한번 봐야지.


집으로 돌아오니, 윤화는 간만에 FT 팬카페를 보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굳어있는거지.


"윤화야. 왜 그래."
"오빠.. 저.. 저게.. 왜 여기 있어."


큰일났다.


내가 메이드복 입고 찍은 사진. 왜 FT팬들이 팬카페에서 서로 돌려보는거야? FT팬이면 FT나 좋아하면 되는건데..


"차마.. 저게 우리 오빠라고 말 할 수는 없었어."
"잘했어."


그리고 엔젤헤일로 쪽으로도 가보니, 이쪽도 폭풍이 휘몰아쳤구나. 다행히도 나랑 유정이랑 키스한 사진은 없고, 내 사진이랑 유정이 사진이 잔뜩 떠있네. 물론 그게 나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이거 사태가 점점 심각해져가는데. 나 정말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지. 하긴 아무리 여장을 그럴듯하게 해도 남자는 남자일 뿐. 우리학교의 민서선배같은 경우는 정말 지극히 심한 예외인거고.


그런데?


"이번 토요일, 통쾌한 게임리뷰로 유명한 AGRN(Angry Game Review Nerd) 내한."


뭐?


그 육두문자 섞어서 게임을 리뷰하는, 리뷰할때마다 F나 S로 시작하는 단어를 꼭 쓰면서 얘기하는 그 AGRN이 내한한다고?


도대체 이번엔 어떤 게임이 씹히려나. 한국에는 씹어먹을 게임이 좀 많긴 하지.


그런데 지금 AGRN 내한이 문제가 아니잖아. 인터넷에 이런 식으로 사진이 퍼진거, 어떡할거야. 아름선배가 이런 문제에 책임질 분은 절대 아니고.


"그러니까 그 마녀가 오빠를 자꾸 이상하게 만들고 있다니까."
"혜인이랑은 상관없는 문제잖아."
"마녀가 한 짓이 아니더라도, 마녀때문에 오빠가 자꾸 부정타."


그러니까 혜인이는 이 일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니까.


"아. 맞다. 이게 좋은 소식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메이드복 있잖아."
"응. 오빠."
"그 선배가 자기한테는 안 맞는다고, 그거 그냥 우리 가지래."
"어차피 그거 압수하려고 했는데, 잘 됐네. 심심하면 입어야지."


아무리 옷이 날개라고 해도 입어야 할 사람이 있고 입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거란다. 그런데 솔직히 윤화가 입었을 때는 정말 잘 어울리긴 했다.


그 뒤에 오늘 하루는 윤화가 하루종일 컴퓨터를 잡느라, 나는 컴퓨터 할 시간이 없었다. 역시 나는 독서나 하고 있어야 하는걸까.


날이 또다시 바뀌고, 다행히도 요새는 윤화가 나를 이상하게 깨우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늘도 서연이랑 함께 어김없이 등교.


"민군. 어제 집에 무사히 잘 들어갔어?"
"응. 그 뒤로 컴퓨터도 잘 돌아가서 윤화가 하루종일 컴퓨터 치느라 난 칠 시간도 없었어."
"민군. 컴퓨터는 줄이고, 공부해야지."


하지만 오랜만에 집에서 컴퓨터 치는거니까 나도 컴퓨터 많이 만지고 싶다고.


학교로 등교하면서 낯설지 않은 여자애 하나가 보인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쟤 분명히 다솜이인데.


"어.. 윤민아. 요새.. 건전 앤 파이터 안들어와서 엄청 심심해. 혼자 하니까 재미도 없고.."


역시, 다솜이가 맞았다. 그 때 코믹에서 하필 다솜이한테 여장한 모습을 들킬게 뭐람.


"요새 좀 많이 바빠서 그래. 미안."
"이번 토요일날.. 건전 앤 파이터 페스티벌이 있다고 하는데, 윤민이도 같이 갈래?"


- 다음 회에 계속 -


네. 이번회는 신 등장인물 안새롬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리 검정고시 보고 고등학교에 들어왔다고 해도 결국 애는 애라는 것을 증명한 회(?) 서연이가 혜인이를 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고, 그 뒤 새롬이가 쓰던 컴퓨터 본체를 업어온 윤민군. 하지만 자기의 여장사진이 인터넷에 쫙 퍼져서 좌절하고. 그 뒤에 AGRN 내한 소식과 건전 앤 파이터 페스티벌. 과연 윤민한테 이것들이 어떤 관계가 있을지. 등장인물이 추가될수록 스토리는 계속 꼬입니다(?)


물론 윤민이는 새롬이같은 어린 애랑은 이상한 짓(?)은 안할겁니다. 그런거 쓰다가 이 글 짤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