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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2009.03.21 02:51

LiTaNia 조회 수: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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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나.. 너 누군지 알것같아. 유일고 다니는 주윤민.. 맞지?"


뭐야. 전혀 처음 보는 여자애가 어떻게 나를 알고 있는거지.


"맞는데.. 날 어떻게 알았어?"
"몰랐구나, 윤민이 우리학교에서도 유명해.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다고."


무슨 학교인지는 몰라도, 도대체 왜 내가 그 학교에서도 유명한지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미남도 아니고, 왜 인기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런가.."
"그 윤민이한테.. 도움받을 줄은 몰랐어. 쟤들.. 수시로 나를 괴롭히던 애들인데."
"그런데.. 이걸 캠코더로까지 찍다니. 도대체 뭘 하려고.."
"내가 얻어맞는걸 동영상으로 찍어서 약점을 잡으려고 했나봐."
"나쁜.."


인터넷이랑 뉴스를 보면 요새 학원폭력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무리 세상이 막장이 되어간다고 하지만, 그 모습을 내 눈으로 실제로 보게 되다니.


뭐, 죽다 살아나기까지 했으니 이제 그 어떤 일이 내 눈 앞에 일어나도 그냥 무덤덤하기만 할 뿐.


"아.. 난, 임빛나라고 해. 윤민이 너보다는 한살 많아."


뭐.. 그러면 여태 내가 누나한테 반말한거야?


"죄.. 죄송해요."
"별로. 학년은 윤민이랑 같은 고1이니까. 편하게 말해."
"..."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데 나랑 학년이 같다면.. 유급? 아니면 복학?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우리 학교의 민서선배야 출석일수가 모자라 유급했지만, 이 누나는.. 왜?


"윤민이한테.. 사례라도 하고 싶은데."
"아뇨. 저 지금 집에 급히 가봐야 해서.. 안녕히 계세요."


지금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집에 빨리 돌아가야 한다. 빛나누나, 언젠가 인연이 되면 볼 수 있겠지. 그나저나 요새 아무리 UCC가 인터넷에 많이 뜨고 있지만 이런 UCC는 뭔가 아니잖아. 내 주변 여자애들은 이런 일을 겪지 않아서 정말 천만다행이다.


혜인이네 집, 우리집하고 은근히 한참 떨어져있네. 좀만 더 가면 우리집이긴 한데.. 휴. 겨우 도착했다.


집 열쇠는 있으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야지. 거실에는 TV가 켜져있네. '우리 결혼할까요?' 라는 거. 요새 인기가 많은 TV프로인 것 같은데 그게 그만큼 재미있는지 모르겠지만. 윤화는 한참 그 프로에 몰두해 있는 것 같다.


"오.. 오빠?"


윤화도 문이 열린 걸 보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오빠.. 어떻게 된 거야. 오빠 없는동안.. 계속 울었단 말야.."


쪼르르 달려오는 윤화. 매번 얼굴을 마주하는 내 동생이지만, 한참동안 안 보다가 보니까 이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그런데.. 윤화가 나한테 매달리고 난 뒤 뭔가 이상한 게 느껴진다. 머리가 아프다. 띵하다. 혜인이가 말했던 '마력을 방해하는 힘'이라는게 이런건가. 전에는 분명히 윤화가 나한테 달라붙어도 이런 느낌은 없었는데.


"오빠.. 괜찮아?"
"응.. 괜찮아. 걱정마."
"서연언니한테서 들었어. 오빠가.. 조공명한테서 서연언니랑 유정언니 구한거.."


역시 서연이가 윤화한테 얘기를 잘 해줬구나. 다행이다.


"하지만.. 오빠.. 안 돌아오니까.. 무슨 일 생긴게 아닌가.. 걱정했단말야.. 흐흑.."


나도 거의 죽을 뻔 했을때 윤화한테 잘 해주지 못한 걸 많이 후회했으니, 이제부터라도 윤화한테 잘 해줘야지. 윤화가 내 친동생은 아니라도, 난 윤화의 오빠니까.


"나도.. 윤화 다시 봐서 다행이야."
"오빠가.. 죽으면.. 나.. 정말.. 어떡해.. 나.. 오빠 없인.. 못 산단.. 말야.."


혜인이가 말한 대로, 윤화가 곁에 있으니까 내 몸의 힘이 풀리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혜인이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 윤화가 정말로 펄펄 뛰겠지. 혜인이랑 윤화. 둘 다 좋은 애들이니까, 난 그 둘이 싸우는 걸 원하지 않는다.


"오빠.. 나만의.. 오빠가 되어야 해. 그 누구도 아닌.. 나 윤화만의.."


하지만.. 내 몸이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는걸. 이 이상은.. 도저히 버틸 수 없어.


털썩.


"오빠!!"


또다시 쓰러졌다. 윤화한테 잘해줘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못난 오빠로서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는걸까.


"미안. 아직.. 회복이 덜 됐나봐."
"오빠.. 내가 곁에서 보살펴줄테니까. 얼마만에 다시 만났는데.. 나.. 오빠 절대 못잃어버려."
 
윤화는 자기한테 마력을 방해하는 힘이 있는 걸 모른다. 그리고 내가 몸의 힘이 풀려 쓰러진게 그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말로 윤화가 혜인이 말대로 퇴마사의 동생이 맞는걸까. 설마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윤화는 그걸 모르는 것 같지만.


"나.. 윤화한테 오빠 역할을 제대로 못한 거, 미안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윤화한테 잘해줄거니까."
"오빠. 정말이지?"
"응. 윤화한테 내가 지금까지 너무 상처만 준 것 같아서.. 미안."
"오빠.. 고마워, 그리고.."


도대체 무슨 말을 덧붙이려는거야. 뭔가 좀 불길한데.


"내일부터 학교 끝나면 오빠 데리러 간 뒤 오빠랑 계속 같이 있을거야. 오빠를 한번도 아니고 세번씩이나 잃어버렸으니까.. 꼭 그 마녀가 아니라도, 학교에서 오빠 친구들이라는 언니들도.. 오빠한테 이상한 짓을 하게 놔 두지 않을거야."


아무리 내가 윤화한테 잘 해줘야겠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오해 치고는 너무 심하다.


"이상한 애들이 아닌데. 혜인이는 그렇다 쳐도 다른 애들까지 그런 편견을 갖고 보는건.. 좀 그래. 다 좋은 애들인데."
"그래도 걱정되잖아.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이상한 언니한테 오빠가 납치당한것도 있고."


맞아. 이건 누가 봐도 아름선배한테 문제가 있으니까. 싫어하는 사람한테 여자옷, 그것도 하녀복 입히고 코믹월드 데려가는 플레이는 정말 뭐래. 지금도 그 사진이 돌고 있던데, 그게 나라는 걸 사람들이 모르길 바랄 뿐이다.


"그런 이상한 선배도 있긴 하지만.."
"그러니까 안심이 안 된다는거야. 오빠는.. 문제가 뭔지 알아?"
"애들한테 내가 둔하다는 얘기는 많이 듣긴 했는데.."
"맞아. 그리고 오빠는 너무 바보같이 착해. 그.. 조공명한테서 언니들 구해준건 좋은데.. 그거 때문에.. 오빠.. 더 이상 못 볼 뻔 했잖아."


그때 정말 죽을 뻔 했으니, 아니, 죽다 살아났으니. 조공명보다는 그 뒤에 나타난 도플갱어 정초혜쪽이 더 문제였지만.. 정말로 혜인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저 세상에 있었을테니까.


"암튼 오빠.. 배고프지. 내가 식사 준비했으니까, 밥먹어."


윤화가 한 요리야 여전히 뻔하겠지. 하지만 어쩌겠어. 윤화한테 잘해주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윤화한테 남자친구가 생기면 나한테 따지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한 걸음 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댄 영원히 내 모습 볼 수 없나요.. 나를 바라보며 내게 손짓하며 언제나 사랑할텐데.. 사람들은 내게 말했었죠 왜 그토록 한곳만 보는지.. 난 알 수 없었죠 내 마음을.. 작은 인형처럼 그대만을 향해있는 나..♪"


윤화가 상 차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들린다. 윤화가 이렇게 노래를 잘 불렀나. 그런데 갑자기 이런 노래를 왜 부르는거지.


"웬 노래야?"
"그냥.. 오빠 없는 동안에, 오빠 생각하면서 불렀던 노래였는데.. 습관이 돼서 오빠가 돌아왔는데도 이 노래가 나왔네.."


뭐야. 노래는 좋긴 한데, 이거 자기 연인을 생각하면서 부르는 노래 아냐?


뭐 윤화의 요리실력이야 언제나 그렇듯이 절대 기대하면 안되었다. 언젠가 윤화도 자기가 뭐가 문제인지를 알아차렸으면 할 따름이다. 특히 남자친구라도 생기면 지금 이 상태로는 정말 난감하다.


누군가 말했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4월이 되니까 왜 이렇게 이상한 일들이 늘어나는거냐. 내일 학교도 가야 하니까 오늘은 딴짓거리 하지 말고 그냥 일찍 자야지. 몸도, 마음도 지쳤으니까.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오빠.."


윤화 쟨 또 내 방에 왜 왔대.


"응?"
"나랑 같이 자. 아무래도 안심이 안 돼. 또 그 마녀가 오빠한테 이상한 짓 할까봐."


뭐 이제 더 이상 설득은 포기했다. 혜인이도 윤화가 자기를 안 좋게 보고 있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냥 둘이 만나서 서로 싸우지만 않길 바랄뿐.


그런데.. 윤화가 옆에 있으니까, 또 다시 몸의 힘이 풀린다. 그나마 지금 침대에 누워 있어서 다행이다. 이거는 누구를 탓해야 할까. 내가 위급한 상태라서 혜인이의 마력으로 살아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지만. 그리고 윤화는 자기한테 마력을 방해하는 힘이 있는 걸 모르고 있지만.


"오빠.. 키스.. 해도 돼?"
"키스는 남자친구 생기면 남자친구한테.."
"치, 잘해준다며. 내일 오빠한테 어떻게 하나 두고봐."
"...알았어."


뭐 윤화한테 잘 해준다고 했으니 다른 얘기는 하지 않겠지만, 오빠한테 이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아니라구. 이봐. 윤화야. 입술만 대면 됐지. 혀는 내 입에 왜 집어넣는건데. 그리고 휘젓네? 매너좀..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혜인이는 이제 내가 이전같은 일상을 보내기 어렵다고 했지만, 설마 학교 생활 중에 마력을 일부러 쓸 일이 있을까.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지내면 되는거지.


밖으로 나가니까, 언제나와 다름없이 서연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민군.. 다행이야! 나도 미니 죽는게 아닐까 걱정 많이 했단말야.."


그래. 이게 서연이야. 지난주에 서연이로 위장한 도플갱어는 너무 어색했어. 나도 죽다 살아났으니까, 항상 보는 서연이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그런데.. 민군. 뭔가 묘하게 귀여워진 것 같아."
"귀여워졌다니?"
"항상 보던 미니랑.. 뭔가 달라. 뭐 미니가 원래 귀엽긴 하지만, 전보다 더 귀여워. 깜찍하다고 해야 하나?"


'귀엽다'라는 말을 들을만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내가 죽다 살아나면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난 민군이 나 구해주러 올 줄 알았어. 민군한테 말 할 틈도 없이 잡히긴 했는데.. 그래도.. 민군이니까. 민군을 믿고 있었으니까.."
"도플갱어인가 뭔가가 각각 서연이랑 유정이로 변하긴 했지만.. 이상하다는 건 금방 알았어.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알았고."
"민군.. 둔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그럴때는 눈치가 빨라서 다행이야."
"그런가?"


휴. 내가 눈치가 빠르다는 얘기를 들을 때도 있구나. 하도 둔하다는 얘기만 듣다가 이런 얘기를 들으니 묘하게 기분이 좋은데.


교실에 도착하고 나니까, 자칭기자 박찬 녀석이 또 다시 내 자리로 달려오는군. 간만에 이런 모습을 보니까 반가운데.


"윤민군. 드디어 무사히 귀환했군."
"시끄러."
"내가 기자로서 윤민군을 바로 봤어. 조공명을 잡는 활약을 하다니."
"시끄럽다니까."


그러니까 박찬 너는 기자가 된다고 해도 찌라시밖에 못 쓰는 기자가 될 게 뻔하다구.


"내가 '한국인 채널'이라는 사이트를 가 봤는데, 거기서 윤민군 얘기인 것 같아보이는게 있어서 프린터로 뽑아왔지. 인터넷에서도 유명인이 되다니, 놀라운걸."


난 왜 이렇게 인터넷에서 내 얘기가 오가는가 전혀 이해가 안 된다. 일단 무슨 얘기인지는 한번 읽어 봐야지.


'유일고등학교에 대한 스레드'


뭐야. 그냥 우리학교 얘기잖아. 이런 얘기야 흔히 있을 수 있는걸, 뭘 이걸갖고 설레발이야.


'게이들아 혹시 서울에 있는 유일고등학교라고 알아?'
'거기 얼마전까지 한챈에서 놀던 루미가 다니던 데잖아. 미자라서 쫓아버렸지만.'
'나게이는 루미 걔 미자라고 해도 무서웠어. 어떻게 우리가 쓰는 용어들 다 쓰고 수위 높은 얘기까지 다 하고.'


뭐야. 여기 게이들만 노는 사이트였나. 그리고 루미라면 혹시 아름선배 얘긴가. 정말 이럴때면 내가 아름선배를 안다고 말하기가 무섭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유일고 망신은 아름선배가 시키는구나. 그리고 미자라는건 또 뭐야.


'너게이도 유일고를 아는구나. 거기 후로게이 조민서가 다니는데잖아.'
'맞아. 조민서. 남자인데도 여자처럼 하고 싶다고 시위하다가 결국 여자교복 입고 학교다니는 걸 허락받았다는 그 조민서.'
'그런데 사진 보니까 여자들하고 별로 안달라. 그 학교에서 팬클럽도 있는 모양이야.'
'기분나빠.'


아름선배 뿐 아니라 민서선배도 학교 밖에서도 유명하구나. 도대체 왜 이렇게 다들 학교 이미지를 이상하게 만들고 있는거야.


'나게이가 아는 동생이 유일고 다니는데 거기 하렘메이커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최사실?'
'최사실. 그거 때문에 조공명이 유일동으로 자취방 옮긴 뒤에 떡실신 당했잖아.'
'그 조공명을 떡실신시킨게 그 하렘메이커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장난이 아니야. 소꿉친구에 이쁜 전학생에 왕따 여자애에, 게다가 월반으로 고등학교 다니는 초딩까지.'
'너게이가 들은 얘기가 사실이면, 이건 무슨 실제로 미연시를 구현한거냐.'
'요새 미자들 정말 막장이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안그랬는데.'
'신이라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틀림없어. 만약 신이 있다면 왜 저런 천벌을 받을 것들만 도와주는거야. 오오 신이시여, 만약 존재한다면 저 하렘메이커한테 천벌을!'


뭐야. 이거 정말 기분나쁘네. 아무리 인터넷이라는 곳이 소문이 많이 와전되는 곳이라고 해도, 날 멋대로 하렘메이커로 단정짓고 천벌이니 뭐니 하는건 매너가 아니다. 그리고 미자 미자 그러는데 도대체 미자가 뭔지도 알고싶고.


"도대체 미자라는 건 뭐냐."
"이 한챈에서 미성년자들을 미자라고 하더라. 성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사이트라면서 미성년자 엄청 싫어해."


박찬 너도 미성년자면서 거기는 왜 들어갔어. 그리고 이 한챈이라는 사이트 사람들. 다들 나이 먹을만큼 먹은 분들이 왜 이렇게 사람을 몰아세우는건지. 정말 어딜가나 나이값을 못하는 사람들은 꼭 보인다. 나는 커서 절대로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아, 그리고 요새 버스광고에 많이 붙는 강남 민뷰티샵의 민수희 있잖아. 얼마전 죽은 줄 알았던 구윤재 아줌마래."
"...난 그런거 관심 없거든."


그러니까 그런 카더라 통신은 누가 들어도 안 믿는다니까.


수업이 시작되고, 첫번째 시간은 HR이니까 그렇다 쳐도, 두번째 시간까지 수업을 무사히 들었는데, 셋째 시간이 되자 문제의 영어시간. 영어선생님 들어오시고 난 뒤에 윤화한테서 느꼈던 그 이상한 느낌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물론 거리가 떨어져있기 때문에 윤화한테 받았을 때처럼 적나라하게 받지는 못하지만. 정말 윤화랑 영어선생님 둘이 친자매인걸까.


지금 이 상태로라면 수업을 듣기는 힘든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털썩.


결국, 또다시 몸에 힘이 풀려서 책상 위로 엎어져버렸다. 큰일났네.


"윤민아.. 왜 그래. 무슨일이야. 괜찮아?"
"응.. 나 괜찮으니까, 걱정마."


수업이 끝나고 영어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나가신 뒤에, 그제서야 다시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상태로는 학교를 다니기가 힘들어. 혜인이한테 가서 얘기해봐야겠어.


혜인이네 반으로 가고 있는데..


"민쨩!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전혀 반갑지 않은 아름선배가 보인다. 아니, 이제는 하도 많이 보니까 정들어버렸지.


"안녕하세요, 선배."
"민쨩이.. 조공명 쫓아내고.. 여자애들도 구해준 얘기 들었어. 나. 민쨩한테 반해도 되지?"
"별로요."


하지만 가까이 하기 힘든 사람은 다 이유가 있다. 철 좀 드세요, 아름선배.


"아, 선배 혹시 전에 '한국인 채널'이라는 데서 놀았던 적 있어요?"
"응. 거기 사람들 정말 나빠. 그냥 좀 놀았을 뿐인데 미자라면서 쫓아내."
"거기 미성년자가 못 들어가는 사이트라잖아요."
"민쨩도 미성년자가 못 보는 야구동영상 같은거 P2P에서 찾아서 보잖아."


윽. 제대로 정곡을 찔렸다. 도대체 아름선배는 어떻게 이런걸 다 알고 있는거지.


"마찬가지야. 사람들은 하지 말라고 해도 어차피 할 거 다 하잖아. 그렇다고 해도 나랑 얘기들도 잘 통했으면서 갑자기 나보고 미자라고 쫓아내니까."
"누가 봐도 선배한테 문제가 있는 거예요. 저 급히 가봐야 하니까, 나중에 얘기해요."
"민쨩.."


저런 사람하고 시간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 가던 길이나 계속 가야지.


다행히도 혜인이는 교실에 있었다. 혜인이를 일단 불러봤는데..


"무슨.. 일이야, 윤민아?"
"혜인이가 말한대로.. 윤화라던가, 영어선생님만 보면 몸에 힘이 쫙 풀려. 집에서는 맨날 윤화랑 같이 있고, 학교에서 영어시간 있는 날이 많은데.. 이러다가 나 학교 못 다니는거 아닌가 모르겠어."
"미안, 윤민아. 항마력에 저항하는 약이 있긴 한데.. 오늘 이런 일이 생길 줄 모르고 안 가지고 왔어. 그 약 먹으면 괜찮아질텐데.. 내일까지는 윤민이가 참아야 할 것 같아."


역시.. 있었군. 그런데 내일까지 참아야 한다는 건 좀 많이 그렇잖아.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아냐.. 괜찮아. 내일 꼭 갔다줘."
"내가.. 그 약을 만들 수 있긴 하니까. 나도.. 지금까지 학교 잘 다니고 있으니까. 좀 있다 점심시간에 봐."
"응.. 좀있다 봐."


내일 혜인이가 말한 그 약을 먹으면 그나마 괜찮아지려나. 일단 오늘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지. 영어시간도 끝났겠다.


그리고 시간은 좀 더 지나고 점심시간. 이제 다시 원래의 멤버가 전부 모였다. 서연이, 혜인이, 그리고 새롬이.


그런데 새롬이를 가만히 보니까 전과 뭔가 다른 위화감이 느껴진다. 윤화나 영어선생님이랑 가까이 있었을 때같은 느낌은 아니고, 마치 사과를 한 입 문 뒤에 남은 사과에서 벌레 반 마리를 발견했을 때랑 비슷한 위화감이다.


"윤민오빠.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거예요. 무서워요."
"미안. 그냥.."
"윤민오빠. 저한테 관심있으시면 말로 하면 되잖아요."
"그런거 아냐."


괜히 이상한 오해가 생기면 곤란하니까 어서 식당에나 가야지.


식당에 가서 새롬이가 밥 먹는 것을 보고 있으니까 의심이 더 든다. 새롬이는 다른 애들에 비해서 피부가 유난히 창백해. 그리고.. 결정적으로, 눈이 빨개. 사진 찍을때 플래쉬 잘못 터져서 빨간것처럼.


정말.. 혜인이가 말한 대로 새롬이가 호문클루스인건가. 그런데 박찬녀석은 어떻게 이런 애를 나한테 소개시켜준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혜인언니.. 오랜만이예요."
"응.."


물론 혜인이랑 새롬이 둘이 서로 여전히 어색한 것은 마찬가지다. 혜인이는 진작부터 새롬이가 호문클루스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으니.


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끝난 뒤에, 혜인이가 먼저 자기 반 교실로 돌아가고 난 뒤에, 새롬이가 조그만 목소리로 나한테 말했다.


"윤민오빠. 오늘.. 무서워요."
"내가.. 무섭다니?"
"전엔 안그랬는데.. 오늘따라.. 혜인언니랑 비슷해요. 윤민오빠가요."
"기분탓.. 이겠지."


역시 새롬이도 뭔가 눈치챈건가. 혜인이가 마력으로 날 살렸다는 게 알려지면 곤란하니까 일단 최대한 시치미를 떼야지.


"윤민오빠랑, 그 언니랑.. 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새롬이는.. 둘이 닮아가는게.. 무서워요."


혜인이랑 새롬이 둘은 어쩔 수 없는 상극이라는걸까.


"미안. 혜인이도 좋은 애라서.. 그럴 수는 없어."
"치. 윤민오빠 나빠요. 오빠랑 안 놀거예요."


새롬이는 쪼르르 뛰어서 가던 길을 갔다. 도대체 새롬이 쟤는 또 무슨 일로 저러는거지.


"민군. 새롬이 쟤 오늘따라 왜 저래?"
"사춘기가 일찍 온 거겠지."


정말 차라리 사춘기가 일찍 온 것이었으면 좋겠다. 새롬이가 지금의 나를 눈치챈 것이 아니라.


서연이랑 나만 남은 지금 상태에서,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을 만났다. 누구였더라.. 아. 아름선배랑 친한 선배라는 효선선배. 그런데 둘이 정말 극과 극이야.


"안녕하세요.. 효선선배."
"어, 윤민이네. 오랜만이야."
"아름선배에 대해서 알고 싶은게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
"이게..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되는 얘기라서, 학교 끝나고 여쭤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응. 집에 가는 길에 얘기해줄께. 끝나고 윤민이네 반으로 내려오면 되는거지?"
"네."
"그래. 그럼 좀있다 봐, 윤민아."


정말 아름선배가 효선선배 절반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다. 서로 친하다는데 둘이 왜 저렇게 다른거야.


남은 수업이 끝난 뒤에, 효선선배가 이 쪽으로 내려와서 같이 교문을 나섰는데 문제는..


"오빠. 옆에 언니.. 누구야?"


윤화가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윤화한테는 효선선배 얘기 안했지.


"아.. 학교 선배야. 뭔가 알고 싶은게 있어서.. 여쭤보려고."
"나도 들으면 안돼? 오빠한테 또 무슨 일 생기면 안되잖아."
"뭐.. 상관없어."
"윤민아. 얘 누구야?"
"제 동생이예요. 저보다 한 살 어린데.. 아직 철이 덜 들었어요."
"오빠가 걱정되서 그런건데.. 힝. 오빠. 너무해."
"남매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싸우면 안좋아."
"네.."


분명히 윤화한테 잘해준다고 했는데, 또 왜이러지. 남아일언 중천금이 되어야 하는데 풍선껌이 되어가는 현실이 슬프다.


"아름선배가.. '아영이'라는 이름을 듣고 크게 놀란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윤민이가.. 어떻게 아영이를 알아?"


역시 그 '아영이'라는 이름에 뭔가가 있구나.


"그냥.. 새롬이라는 애가 만우절 장난을 쳤답시고 한 얘기였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
"얘기하자면 긴데.. 얘기해줄께. 아름이도.. 불쌍한 애야. 어렸을 때.."


효선선배한테 들은 얘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원래 아름선배도 그냥 평범한 여자애였고, 동생인 '아영이'가 있었는데 어느날 아름선배랑 아영이 둘이 어떤 괴한에게 말로 하기 힘든 잔인한 짓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충격으로 아영이는 한참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었다고 하고, 아름선배도 그 뒤로 사람을 믿지 못하고 성격이 삐딱해진 것이라고 한다. '재미'만을 찾아다닌 것도 그때부터.


"그래서.. 그런 아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다 못해서, 내가 아름이랑 친해지기 시작한거야. 아름이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아름이가 많이 아파했던 걸 보면 아무것도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 괴한.. 잡혔어요?"
"아니. 그 뒤로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안잡혔어. 아름이 키가 그 때랑 지금이랑 비슷한데.. 아마 그 때 충격받아서 더 이상 안 자란것 같아."


한 순간의 충격은 정말 사람을 심하게 망가뜨릴 정도가 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것.


"그래서.. 아름이가 윤민이한테 관심을 많이 가지는 걸 보고, 놀랐어."


이건 관심이 아니라 제가 당하고 있는 거라구요. 선배.


"효선선배는.. 정말 친절하신 분 같아요."
"얘기 들어보니까.. 윤민이 너가 조공명을 처리했다면서. 수영이도.. 그 얘기를 들으면.. 아마 좋아할거야."
"수영이라는 분은.. 또 누구예요?"
"응.. 지금은 전학간 내 친군데."


그리고 효선선배가 한 얘기는 또다시 충격을 나한테 줬다. 그 수영이라는 분 역시 원래는 밝았다는데 인터넷 정모에서 조공명과 만나고 난 뒤 조공명의 첫 피해자가 되어서 그 뒤로 도피성으로 이곳 유일동으로 왔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다시 전학을 갔고..


"그러면.. 그 '크레센티아'가.. 지금은 딴데로 전학간 그 수영이라는 분이예요?"
"응. 맞아."


만약 크레센티아가 그대로 유일동에 있었다면, 조공명을 다시 만났을 때 정말 어떻게 되었을 지 생각하기도 싫었겠지. 지금이야 조공명은 이 세상에 없지만.


"아.. 나 여기서 버스타야 해. 혹시 어려운 일 있으면 말해, 윤민아."
"네, 안녕히 가세요, 선배."


옆에 윤화도 있었는데 윤화 앞에서 너무 위험한 얘기를 들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


"오빠. 나.. 그렇게 안 되게, 지켜줄거지?"


그나저나 윤화가 옆에 계속 있으니까 걷기가 심하게 힘드네. 혜인이가 내일 약을 빨리 가져다 줘야 하는데.


"걱정마. 나.. 윤화가 당하는 모습은 눈 뜨고 절대 못 지켜봐."
"어.. 윤민이, 또 만났네."


뭐야. 이번엔 또 누가 나 부르는거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인데.


고개를 돌려보니까, 어제 내가 구해준 분인 빛나누나다. 그런데 저 누나.. 새림여고 다니고 있었어? 그리고.. 나래랑 같이 있네?


- 다음회에 계속 -


29. 임빛나 : 18세. 새림여고 1학년. 본래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야 할 나이지만 어떤 이유인지 아직 1학년으로 남아있다. 윤민이가 집에 가는 길에, 폭력을 당하고 있는 빛나를 구해줬는데..


이번 회에는 죽다 살아난 윤민이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힘든 과정을 담은(?) 회였습니다. 빛나라는 소녀를 구해줬는데 윤민이보다 한 살 많지만 학년은 같은 1학년. 그리고 윤화 때문에 몸의 힘이 빠지는 윤민이. 윤화 뿐 아니라 학교에서 영어시간에도 비슷하게 힘이 빠졌고, 새롬이 역시 윤민이가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챈데다가, 효선에게 아름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버리는데. 과연 윤민이가 일상으로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