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2008.09.28 10:39

LiTaNia 조회 수:629

extra_vars1 사람을 울려버린 윤민 
extra_vars2 14 
extra_vars3 127490-2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이 나래라는 애. 생각해보니 자칭기자 박찬녀석이 전에 한 말이 있지. 작년 유일고 축제때 다솜이가 엄청 귀여운 여자애랑 같이 놀러왔었다고 하는데, 그 여자애 이름이 기억 안나는데.. 얘, 그 녀석이 말한대로 정말 인형같이 귀엽다.


"다솜아, 옆에 있는 남자애는 누구야?"
"윤민이라고.. 내가 하는 게임을 나랑 같이 하던 앤데.. 우연히 고등학교에서 만났어."
"다솜이는 좋겠네. 호진오빠랑 같은 학교에, 남자친구까지 사귀었으니까."
"남자친구까지는.. 아니야."


만약 다솜이가 내 여자친구라고 한다면, 당장에 내 주변에 펄쩍 뛸 사람이 몇 명 있지. 딱히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다솜아. 누구야?"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나래야."
"반가워. 주윤민이라고 해."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많은 애들을 새로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처음 보는 사람이랑 말하는 것은 어색하다. 특히 이렇게 귀여운 애랑 말이지.


"나래가 알던 애랑 이름이 비슷해."


설마 윤화 말하는건가. 그런데 얘도 혹시 윤화네 학교 나온건가. 다솜이는 이 나래라는 애를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반가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래는.. 아직도 호진오빠 보고싶어?"
"응. 나래가 왜 여기로 이사온건데. 호진오빠.. 나래를 버리지 않았을거야."


나래 얘. 이상하게 자기 이름을 직접 말하면서 자기를 가리키네. 그런데 '호진오빠'라.. 우리학교의 그 호진선배 말하는건가. 하긴 나도 내가 지금 다니는 이 유일고등학교에서 입학하기 전부터 호진선배랑 희연선배가 전설적인 커플인 것은 알고 있지. 그 희연선배의 동생인 희정이가 내 동생 윤화의 친구고.


"그런데.. '호진오빠'라면, 우리학교의 그 호진선배 말하는거야? 희연선배랑 사귀는.."
"잠깐!"


다솜이가 갑자기 소리쳐서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솜이랑 있으면서 다솜이가 저렇게 크게 소리지른 것은 처음 봤다. 내가 뭐 말 잘못한건가. 하지만 나는 왜 다솜이가 저렇게 소리쳤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흐흐흐흑.. 아니야.. 호진오빠는.. 나래껀데.. 흑.."
"늦었네.. 윤민이한테 빨리 말했어야 했는데."


내 눈 앞에서 나래가 울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자애 하나를 울려버렸다. 그것도 오늘 처음 보는 애를. 나. 도대체 뭔 짓 한거지. 절대로 이런 생각으로 말한건 아니었는데. 내가 한 실수라서 수습은 해야 하겠는데.. 사과부터 해야지.


"미안해.. 나래야.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라서.."
"됐어! 호진오빠.. 나빠. 나래를 놔두고.. 그런 요물과.. 으아앙.."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내가 정말 왜 이랬을까. 도대체 호진선배랑 희연선배. 그리고 지금 이렇게 울고 있는 나래는 무슨 관계인 것일까.


"윤민이한테.. 빨리 말했어야 하는데. 나래 앞에서 희연선배 얘기.. 하면 안되는거였어."
"도대체.. 왜 그런거야?"
"얘기하자면 기니까.. 과일주스라도 먹으면서 얘기하자. 내가 사줄께."
"으흐흑.. 호진오빠가.. 나래를 버릴리가 없는데.. 호진오빠는.. 요물에 홀린거야.. 나래한테 돌아올거야.."


나래 쟤는 왜 계속 호진선배 얘기만 하고 있을까. 설마 희연선배가 알고보니 혜인이처럼 마녀였고 호진선배를 홀리고 있다는 건 아니겠지. 아냐. 내가 도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자꾸 윤화가 나보고 마녀한테 홀린다는 얘기를 하니까 나도 물들었잖아.


다솜이랑 나래를 따라 도착한 곳은, 생과일주스점 '깡통모아'라는 곳이다. 다솜이가 중학교에 다녔을 때 나래랑 같이 자주 왔다고 한다. 뭐 다솜이 덕분에 생과일주스 마시러 이런데도 와보네. 내가 이런 곳에 올 일은 별로 없지. 고마워, 다솜아.


"얘기하자면 긴데, 작년에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내가 다니던 학교에 나래가 전학왔어."


박찬녀석 말로는 다솜이가 유일여중 출신이라고 하지. 지금 내 동생 윤화가 다니고 있는 학교. 나래는 내 옆에서 아직도 울고 있다. 과일주스라도 나오면 울음을 그치려나.


"나래는.. '호진오빠'를 따라서 여기로 전학왔다는거야. 어렸을 적에 '호진오빠', 그러니까 호진선배랑 거의 친남매나 다름없이 가깝게 지냈는데.. 그 호진선배가 이곳 유일동으로 전학와서 헤어지게 되었어. 그런데.. 나래가 호진선배를 다시 만나고 나서.. '전혀 엉뚱한 뭔가'가 호진선배랑 붙어있었다는거야."
"그게 혹시 희연선배?"
"맞아. 호진선배는 그 희연선배한테 빠져서, 나래랑 만났을 때 나래한테 실망만 줬다는거야. 그것 때문에 나래가 한동안 상심했었는데.. 그러던 어느날이었어."
"어느날이라.."


도대체 호진선배, 희연선배, 그리고 아직도 울고있는 나래. 이 세명한테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그 날도.. 나래가 공원에 있었는데, 호진선배..로 보이는 같은 사람이 뭔가 상자를 하나 들고 있었나봐. 그게 뭔가 하고 멀리서 물끄러미 봤는데.. 그 날이 희연선배 생일이었어. 호진선배는.. 희연선배 생일 축하해주려고 케익을 가져간 거였고.. 그 때.. 나래가 뭔가 못 볼 걸 봤나봐."
"못 볼 걸 봤다니, 그게 무슨 얘기야?"
"그거 말했다가.. 나래.. 그렇지 않아도 지금 울고 있는데, 나.. 어떻게 될지 몰라."


호진선배랑 희연선배가 나래 앞에서 뭔가 제대로 염장이라도 지른 거였나.


"그 뒤로.. 나래는 학교에서 웃음을 완전히 잃어버렸어. 몸도 안 좋아보였고.. 얼굴에는 다크서클이 크게 보이고. 그 날 받은 충격이 정말 심했나봐.. 계속 '호진오빠' 얘기만 하고.. 전학 온 직후에는 그래도 활짝 웃었던 나래였는데.."


다솜이가 한 말이 맞다면, 호진선배만 바라봤던 나래가, 호진선배랑 희연선배 둘이 맺어지는 것은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겠지. 하지만 이미 그 둘은 우리학교의 전설적인 커플로 남아있는걸.


"다솜이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그야.. 나래가 호진선배에 대해 나한테 많이 얘기해줬으니까. 그래서.. 나래한테 남자친구 만들어주려고 몇몇 애들이 시도를 했는데.. 나래는, 다들 '호진오빠'보다 못하다면서.. 거절한거야. 그리고.. 결국 호진선배랑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고."


나래가 호진선배 얘기를 다솜이한테 얼마나 많이 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 정도면, 잊지 못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이미 '집착' 수준이 아닐까. 나래가 현실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앞으로 나래랑 맞을만한, 호진선배보다 더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물론 나는 그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래.. 맞지?"
"응.. 흐흑."
"나래한테도 인연이 나타날거야. 나래랑 맞는 누군가가."
"아냐.. 나래한테, 호진오빠를 대신할 사람은.. 없어. 호진오빠 곁엔.. 그 요물이 아니라.. 나래가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갔다는 것이 그렇게 싫은 것일까. 하지만 '요물'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너무 심하잖아.


"주문하신 생과일주스 나왔습니다."


말하고 있는 사이에 생과일주스가 나왔네.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흘러가버린건가. 나왔으니까 마셔야지.


"다솜아, 고마워. 잘 먹을께."


나래는 여전히 얼굴에 눈물이 고여 있지만, 말없이 빨대를 입에다 대고 주스를 잘 먹고 있다. 역시 우는 아이한테 먹을 것을 주면 울음이 그치는건가.


뭐라고 말하고 싶긴 하지만 나래가 겨우 울음을 그쳤는데 여기서 잘못 말했다가는 정말로 내가 애를 울려버린 꼴이 되기 때문에 말을 하고 싶어도 참아야지.


그런데 저 쪽이 왜 이렇게 시끄럽냐.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미란이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누가 오늘 생일인가보다. 옆에 애들이 쫙 모여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네. 난 저런 식으로 생일을 보낸 적은 없는데 말이지. 내 생일은 아직 멀었는데.


그런데.. 내 옆이 지금 불안하다. 나래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화약고같은 느낌이랄까.


"나래 어렸을 때.. 호진오빠랑 나래랑.. 생일파티 같이 했는데.. 나래.. 지금은.. 생일이.. 외로워."


예상대로다. 나래를 겨우 달래놓았더니 옆에서 생일파티 하는 것 때문에 제대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큰일이다.


"아.. 윤민이한테 이거 안 말해줬구나."
"어떤 거?"
"나래랑 호진선배.. 생일이 하루 차이야. 나래는 11월 19일, 호진선배는 11월 20일."


친한 사람끼리 이렇게 생일이 가까운 것을 보기는 쉽지 않은데. 나래가 생일날에 외로움을 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구나.


"나래는.. 호진선배가 왜 그렇게 좋은거야?"
"어렸을 때.. 호진오빠가 여기 전학오기 전에.. 호진오빠는 나래 곁에 언제나 같이 있었어. 떨어진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어. 하지만 호진오빠가 여기로 전학오고나서.. 나래도 호진오빠를 따라서 왔는데.. 그 요물 때문에.."


나래가 희연선배를 요물이라고 하는 것은, 윤화가 혜인이를 보고 자꾸 마녀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걸까. 윤화한테 아무리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더라도 이 정도까지 집착을 보이게 만들고 싶지 않다.


"화제를 돌려야겠어. 나래도.. '건전 앤 파이터' 혹시 해볼 생각 있어?"
"아니.. 나래는 손이 느려서 그런거 못해."


다솜이도, 뭔가 지금 화제가 이상한 것 같았는지, 화제를 돌리려고 시도하는 것 같다. 난 오늘 이 나래라는 애를 처음 봤지만, 다솜이랑은 중학교 동창이었으니 다솜이가 나보다 나래에 대해서 더 잘 알고있는 것은 당연하겠지.


"미안해, 윤민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윤민이를 당황하게 해서."
"아냐. 내가 모르고 말한 것 때문에 그런걸."
"윤민이는 잘못 없어. 나도 오늘 나래 만날 줄 몰랐고.."


다솜이 얘도 가만히 보면 착한 애다. 얌전하기도 하고. 하지만 '건전 앤 파이터'만 잡으면 얌전한 모습은 어딜 가고 게임에 완전히 집중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애가 다솜이다. 게임도 좋지만.. 자기를 가꿔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내가 할 소리는 절대 아니지만.


생과일주스를 먹다 보니, 겨우 진정이 되었는지 나래도 이제 더이상 울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래가 어떤 여자애인지는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할까.


"저기.. 윤민이라고 했지?"


나래가 나를 왜 부르는거지.


"응."
"나래가.. 윤민이한테 하나 말해도 될까?"


얘도 아마 정신을 차려보니 호진선배에 대한 기억만 떠올리느라 내가 있는 것은 전혀 생각을 못 한 것을 이제야 알아차린 것 같다. 도대체 뭘 말하려는걸까.


"뭔데?"
"윤민이는.. 호진오빠랑 뭔가 닮았어. 여자애들을 반하게 하는 뭔가가 있어."


에이, 설마. 그럴리가 없잖아. 난 잘생기지도 않고, 키가 크지도 않고, 공부도 잘하는게 아니고, 그렇다고 싸움같은것도 못하고. 나같은 애가 어딜 봐서 여자애들을 반하게 안다는거야.


"나래, 마음을 윤민이한테 돌린거야?"
"아니, 호진오빠가 나래의 백마탄 왕자님이라면, 윤민이는 어딘가의 다른 공주님이랑 이어질 왕자님."


역시 나래 얘는 호진선배 말고 다른 애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나보다. 물론 나는 호진선배같은 분보다 훨씬 못하지만.


"윤민이는, 지금 여자친구 누구 있어?"
"여자친구는 없고.. 친한 여자애는 좀 있어. 얘기하자면 길어."
"역시.. 나래가 보기에 윤민이도 여자친구 아니면 친한 여자애가 있어보여."
"그걸 어떻게 알아?"
"여자의 감이라고 말하면 될까? 나래도 여자애니까."


그러니까 도대체 그 '여자의 감'이라는 것이 뭔지, 난 남자라서 이해를 못하겠다. 그리고 나랑 친한 여자애들 얘기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하자면 정말 길지.


"윤민이는.. 그 애한테 잘해줬으면 좋겠어. 다른 여자애 만나지 말고. 안 그러면 그 여자애도 지금 나래같이 마음이 아플거야."


문제는 그게 한명이 아니라는 건데. 하긴 내 상황을 지금 여기에서 말하면 얘기가 더 꼬이니까 웬만하면 얘기를 하지 않는게 좋겠어.


어느덧 생과일주스는 다 먹었고, 나래도 울음을 그쳤으니 이제 슬슬 나가봐야지. 지금까지 우리가 먹은 것은 다솜이가 계산을 다 했다.


"다솜아, 고마워. 그런데 우리 먹을거 다 계산해도 괜찮아?"
"어차피 지금 시간 늦어서.. PC방에 못가니까."
"다솜아. 나래도 잘먹었어!"


나가면서, 나래한테 궁금한 점이 하나 더 생겼다. 또다시 물어볼까.


"나래야. 물어볼 게 또 하나 있어."
"어떤거야?"
"나래는, 왜 자기 말할때 나래 이름을 직접 말해?"


나래를 오늘 처음 봐서인가, 나래의 말투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도 개성이라지만 그래도 나래가 왜 이렇게 말하는가 궁금하다. 나래 얘 잠시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결국 말하네.


"나래도.. 모르겠어. 언제부턴지 몰라도, 나래 입버릇으로 붙었어."


뭐 이것도 애 개성이니 언젠가는 익숙해지겠지. 그런데..


"오빠, 뭐하다가 아직도 집에 안.. 어.. 나래언니?"


돌아가는 길에 윤화를 만났다. 그러고보니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네. 벌써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어. 그런데..


"어, 윤화야.. 오랜만이야."


둘이 아는사이였어? 어쩐지, 나래가 아까전에 내 이름을 듣고 자기가 알던 애랑 이름이 비슷하다고 한 게, 윤화 얘기인건가.


"윤민이가 윤화 오빠였어? 어쩐지.. 나래한테 좀 낯익더라."
"윤화야, 이 나래라는 애랑 아는 사이였어?"
"응. 작년에 우리 학교에 전학온 언니인데.. 같은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엄청 귀여운 언니라서 막 부러웠어. 그런데 나래언니가 전에 사귀었던 호진오빠인가? 그 오빠한테 차였나봐. 그래서.. 언니들 몇명이 나래언니한테 남자친구 소개시켜준다고 했어."
"아.. 맞다. 내가 윤민이한테 그거 얘기 안해줬네."


나래가 중학생 때 유명인은 유명인이었나보다. 하긴 박찬녀석도 '인형같은 애'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 녀석이 알고 있는 여자애는 '어떤 의미로든' 유명한 애들이니까. 문제는 혜인이같이 오해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서 나도, 내가 아는 남자애 한명을 나래언니한테 소개시켜 줬어."
"걔가 누군데."
"권밝음이."
"뭐?"


아니. 나래한테 소개시켜줄 게 없어서 그 권밝힘녀석을 소개시켜줬단 말인가.


"학원에서 걔가 나보고 여자애 좀 소개시켜달라고 했는데, 마침 나래언니 상황이 겹쳐서 나래언니랑 서로 소개시켜줬는데, 얼마 안 가서 나한테 막 화내더라. 그 뒤로 밝음이랑 얘기 별로 안해봤어."


권밝음. 윤화랑 같은 학원에 다니는 남자애였지. 내 기억으로 키는 엄청 작고. 아름선배랑 비슷한 수준이려나. 에이. 그녀석 못본지도 꽤 돼서 기억이 안난다. 부모님이 자기보고 세상을 밝게 살아가라는 뜻으로 권밝음이라고 이름을 지어놨더니 정작 자라고나니 여자애를 엄청 밝혀서 완전히 '권밝힘'이라고 낙인찍힌 녀석.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애를 나래한테 소개시켜줬단 말인가. 이미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제대로 큰 일 하나 저질렀겠구나. 나래 얘는 호진선배한테 완전히 빠져버렸는데 말이지.


"나래언니.. 전에 밝음이 소개시켜드린거, 정말 죄송해요."
"나래한테는.. 다른 남자애는 필요없어. 호진오빠만 다시 곁에 있어주면 나래는 그걸로 좋아."
"윤화야. 그럼 그 뒤로 권밝힘이랑 멀어진 게, 나래때문이었어?"
"응. 그 뒤였어."


하긴 권밝힘녀석 하는 짓을 보면 여자애들하고 가까이 하면 절대 안 되는 녀석이다. 아니. 하나 가까이 할 만한 사람 있긴 하네. 아름선배. 그선배라면 권밝힘녀석도 재미있다면서 덥석 받아줄지도 몰라. 내 주변에 이런 4차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지만.


"권밝힘?"
"몰랐구나. 걔 엄청 밝히는 애라서."


윤화의 말이 맞다면, 나래는 그 때 권밝힘 녀석을 처음 만나고 얼마 못 가서 깨졌으니 그 녀석을 제대로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호진선배한테 콩깍지가 제대로 씌인 나래니까.


"아차. 방향이 다르네. 우린 그럼 들어가볼께."
"잘가, 윤민아."
"언젠가 나래랑 다시 볼 수 있길 바래."


가는 길에 방향이 달라서 나랑 윤화는 다솜이, 나래 둘이랑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래는 나랑 다른 고등학교라서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혹시 모르니까, 윤화한테 물어봐야지.


"윤화야."
"응?"
"윤화는, 좋아하는 남자애 있어?"
"응.. 있어. 하지만, 오빠한테는 비밀이야."
"왜 비밀인데?"
"여자애한테는 숨기고 싶은 게 있는 법이야."
"윤화야. 오빠랑 약속 하나 하자."
"무슨 약속? 또 이상한거 아니지?"


그동안 나랑 윤화랑 하도 티격태격하다보니까 뭔가 약속만 했다 하면 이상한 약속이 되어서 윤화도 그걸 불안해하나보다.


"윤화는, 혹시 좋아하는 사람 생기더라도, 그 사람한테 너무 집착하지 마."
"내가 그 정도까지 누구를 좋아할리가 없잖아. 오빠는 걱정이 너무 커."
"집착하다가.. 정말 병돼."
"치. 걱정말아, 오빠."


농담이 아니다. 아까 나래는 정말 호진선배를 못 잊는걸로도 모자라서 '집착' 수준이고, 그 집착을 심하게 하다가 결국 병에 걸리지 않을까 불안하다.


윤화랑 집으로 돌아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현재로서 나래가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은 호진선배랑 이어주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호진선배가 희연선배랑 떨어지고 나래랑 붙는다면, 그때는 희연선배가 슬퍼하겠지. 그리고 희정이도 영향을 받을거고. 그러고보니 요새 희정이 못본지도 꽤 됐네. 정말 윤화꺼 카스테라 먹고 컴플렉스 생긴건가.


나래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다. 어차피 희연선배와 나래 한 쪽은 호진선배랑 맺어지고 다른 한 쪽은 호진선배랑 헤어질 수 밖에 없는것. 나래가 호진선배를 그렇게 못잊어하는 이유는 알겠지만, 지금의 호진선배는 이미 희연선배랑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이기에.


에이. 너무 복잡한 것을 생각하다가는 곤란하다. 이번 주는 내가 주번이라 내일도 일찍 가야 되니까 잠자리에는 일찍 들어야지. 하지만 자기 전에, 숙제는 미리 해 놔야지. 부랴부랴 자습시간에 하다가 다 말아먹으니까.


"오빠."
"응?"
"나래언니.. 정말 많이 야위었어. 그 호진오빠라는 사람이 그렇게 좋은건지.. 불쌍해."


그러니까 걔는 호진선배한테 '집착'을 하는거라니까.


"집착이 왜 병이 되는지 알겠지?"
"응. 나래언니를 보면 알 것 같아. 나래언니도 좀 현실을 보고, 다른 멋진 남자친구 하나 사귀면 좋을텐데."
"그러게."


그리고 나는 오늘도 잠자리에 누웠다. 혜인이가 오지 못하게 윤화가 잔뜩 붙여놓은 부적을 보면서 말이지.


또다시 날은 바뀌고, 오늘도 일찍 가방 챙기고 옷을 입고 학교로 등교. 다행히도 오늘은 윤화가 이상하게 깨우지는 않았다.


내가 주번이라서 일찍 일어나야 하고, 일찍 서둘러서 학교에 등교를 하려고 문을 나서니 당연스럽게도 서연이는 오늘도 바깥에 없었다.


학교에 도착한 뒤, 주번 담당구역 청소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와보니..


"윤민아."
"응?"


어느새 내 옆자리에는 유정이가 앉아 있었다. 아침 주번활동 다 끝날 시간에 웬만한 애들은 다 학교에 등교해있지.


"오늘.. 다른 약속 잡힌 거 있어?"
"아니, 없는데."
"그럼, 오늘 우리 집으로 같이 가. 윤민이를 초대하고 싶어."


- 다음회에 계속 -


네. 이번에는 어쩌다보니 나래 스페셜이 되었군요. 다솜이가 하도 비중이 없어서 다솜이를 위한 회를 만든다고는 했는데 정작 드러난 것은 나래의 호진이에 대한 집착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나래가 원래 나이에 비해서 정신연령이 많이 어려서 더 그렇게 되었죠. 나래는 윤민이한테도 친한 여자애가 있어보인다는 정곡(?)을 찌르고. 윤화가 전에 나래한테 '권밝음'이라는 애를 소개시켜줬다고 했는데 그것이 또한 실수였죠. 그리고 그 다음날에 윤민을 자기 집에 초대하는 유정.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이번 회는 나래가 '호진이를 못잊어한다'라는 느낌으로 적어본건데(전작에서 희연이랑 맺어져서) 이 정도로 호진이한테 집착(?)하는 건 좀 심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