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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Project CYAN - (5.2)

2007.06.07 07:09

배추 조회 수:627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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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뭡니까? 자기 정체를 뒤늦게야 밝히는가 하면 이런 이상한 별명 같은 걸로 명함을 찍어서 돌리는 겁니까? 장난치는 것도 유분수지."

 진호는 지금까지 현의 진지한 부위기와 설득력 있는 말에 완전히 그녀의 손 안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걸 이제야 깨닫고 나니 분통이 터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저 아래로 뛰어내리려고 한 나에게 접근해서 '목숨을 팔지 않을래'라는 둥 괴상한 말로 꼬드기려 했나본데 전 그런 것에 안속습니다. 애초에 사람 목숨을 사고 뭐고 한다는게 말이 안되죠. 세상엔 아직 법이란게 있는데. 살사 샀다고 해도 어디에 썩먹으려고 합니까? 마루타라도 필요하세요?"


 진호가 계속 독설을 퍼붓는 동안에도 혀은 미소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진호의 말이 끝나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아이네. 마루타라... 틀린 말은 아냐."


 "뭐요?"


 "어차피 버릴 목숨이었잖아? 아깝게 사라지게 두느니 이런 곳에서라도 써먹는게 가치있는 일인걸."


 "실험 대상이 돼서 비참하게 죽는건 내 자존심이 용납 못해요."


 "자존심이 있는 사람은 자살 같이 비참한 짓은 안한답니다."


 진호는 할 말을 잃었다. 어쨌거나 자신은 죽음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뭐고 간에 다 팽개쳐둔 상태이다. 따지고 자시고 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기나 했던가?


 현은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는 진호의 시선을 살짝 흘리며 말을 계속 했다.


 "계약서에 사인한 이상 다른 선택지는 없어졌어. 그런건 진작에 생각해봤어야 되는거 아냐? 우린 널 이 자리에서 바로 포박해 꼼짝못하게 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짓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아. 네 의사를 되도록이면 존중해 주고 싶으니까."


 배려해 주는 척 하기는! 어차피 내 의사는 고려하지도 않았으면서. 말만하면 끝나는가.


 보기 싫다.


 짜증난다.


 저 여자를 때려 눕히고 싶다! 때려 눕혀라! 없애버려라!


 온 몸의 세포들이 만장일치로 외친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괴성을 지르며 돌진하는 진호를 한심하다는 듯이 보며 현은 손을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그물이 진호를 덮치더니 그의 몸을 사정없이 옭아 맨다. 살에 파고 드는 고통에 못이겨 소리를 질러대는 진호에게 현은 귀싸대기 한 방을 선사해 주었다.


 "웃...!"


 숨을 몰아쉬며 뺨에서 오는 따끔함과 그물이 죄는 고통을 느낀다. 여자를 죽이라던 세포들의 외침은 금새 온데 간데 없어졌다. 단지 신경을 통해 전달되는 자극 신호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 덕분일까. 차분해지며 진정되는 느낌이 든다.


 "욱하는 성질이 있구나, 너..."


 현은 진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런 감정의 급격한 변화는... 뭐... 이런 상황까지 몰렸으니 당연한 것일라나. 인간이란 마지막에선 다 똑같은 것이군."


 현은 대체 진호의 행동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단순히 직업이 가져오는 상투적인 감상이었을가. 그렇지만도 않을지 모른다. 그녀 역시 겪어본 일이기에.


 "선배님~"


 그때 현을 선배라 부르며 여자 하나가 더 나타났다. 


"민아."


 새로 나타난 여자의 이름은 '민' 인것 같았다. 현보다 키도 상당히 작고, 몸집도 작으며 엄청난 동안... 아니 아예 어린애다. 고작해봐야 14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진호는 트윈테일로머리를 묶고 나타난 여자애를 쳐다보았다.


 한 패가 있었군. 저 녀석이 그물을 쏜 건가.


 "계약도 끝났겠다 뒷마무리만 하고 저 녀석을 싣고 가면 될 것 같아. 조금만 수고해줘."


 "네 선배님. 준비는 다 끝내놨어요."


 민은 그 한마디를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져 보렸다. 계단으로 내려간 것도 아니고, 건물 아래로 뛰어 내린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홀연히' 어느샌가 갑자기 진호의 시야에서 없어진 것이다. 처음엔 가는 걸 못봤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몇 분 후 심장이 멎고, 림프액이 얼어 붙을 정도로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민이 갑자기, 이번에도 홀연히 어디선가 나타난 것이다. 진호의 얼굴엔 놀라움을 넘어 공포가 가득했다. 현이 이걸 놓치지 않았다.


 "후후. 꽤 놀란 모양이네. 우리 민이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났으니 말이야. 인간이란 누구든 처음 접하는 것에 대해 강한 공포를 가지고 있지. 그렇기에 새로운걸 부정하는 거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어. 금방 익숙 해질테니."


 민이 놀라며 물었다.


 "어머, 제가 갔다온걸 본거예요?"


 "응. 뭐 상관 없겠지. 이미 계약을 한 상태니까 더 이상 외부인도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만..."


 "자자, 그런건 신경쓰지 말고 일하자 일. 너도 이제 그만 이러서라구."


 현이 진호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건물 아래쪽을 보여주는데...


 "저거 보이니? 저기 엎어져 있는 사람."


 진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부터는 저게 너야. 너는 이 사회에서는 죽은 사람이 된거야. 살아있으면서 죽은, 한마디로 유령이 된거지."


 건물 아래에는 사람 하나가 엎어져 있었는데 자세히보니 그것은 시체였다. 시체 주위엔 피가 흠뻑 고여 있고, 피는 시체의 옷을 적시고 있었는데, 그 옷은 현재 진호가 입고 있는 복장과 똑같았다. 완벽하게.


 "미안한 말이지만 네 신분증 좀 슬쩍했어. 민이가 벌써 저기에 갖다 놨을거야."


 어느새! 진호는 신분증을 겉옷 주머니에 지갑 속에 놓어 보관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빼갔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까 저 여자가 사라진건 저 시체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나.


 "선배님 만약 제가 신분증을 못찾았다면 어떻게 하실 거였어요?"


 "더 쉬웠겠지. 위조 신분증을 갖다 놓으면 되니까."


구역질이 나온다. 이들의 말이 사실인가. 정말로 내 목숨을 사가고 사회의 나를 죽여버린 건가. 누군가 저석을 발견함과 동시에 내 존재는 사라진다. 그래, 난 유령이 된 것이다.


 진호는 이제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고 끌려가는 도중에 물어보았다.


 "날 사가는 대가는 뭐죠? 아까는 숙식 제공 뭐 이런 얘기를 하더만..."


 현은,


 "흠..."


 라고 하면서 잠시동안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새로운 인생. 넌 잃어버린 삶의 목적과 지표를 얻게 될거야."


 "..."


 시로운 인생이라. 과연...


 현재의 진호에겐 아무런 비전도 희망도 없다 오로지 깊은 절만 뿐이다.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자살이란 도피행각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한 진호에게 싦의 이유를 준다는 것은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사가는 모양이군. 그것이 조건이라면 누구라도 찬성할 수 밖에...


 "뭐, 그것도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거지만 말이야. 어쩌면 완전 쪽박차고 지금보다 훨씬 안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어. 그땐 정말로 자살이 최선의 방책 일지도 모르겠네. 음. 자살 아닌 자살인가."


 이 여자,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가. 자기 인생 아니라고.


 "민이야. 가자. 준비해."


 "네."


 민은 기게 같은걸 주섬주섬 주워서 건드렸다. 그 순간 진호는 주변 상황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장소가 바뀐 것이다. 마치 가상현실 속에서 배경이 맘대로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뭐, 뭐야...어떻게 갑자기 이런 곳으로..."


 "그건 말야."


 민이 대답한다.


 "이 기계 덕분이야."


 그녀는 어린애가 장난감을 맘껏 자랑하는 환한 표정으로 하얀색 기곗덩이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근거리를 단숨에 이동시켜 주는 순간이동 장치지. 아주 편리하다구.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진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다. 이미 머리의 허용치를 넘은지 오래다 두뇌의 극심한 피로. 불과 몇 시간 새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이것들을 정맇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진호의 뇌는 강제적인 휴식의 명령을 내렸고, 그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뭐야~!! 이제부터 소개였는데 뻗어버리면 어떡해!!"


 지하주차장의 퀴퀴한 냄새와 지저분한 천장, 민의 빽빽거리는 시끄러운 목소리가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