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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마녀의 심장, 정령의 목소리

2008.11.12 05:19

misfect 조회 수:667

extra_vars1 사랑하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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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 한 편, 마녀가 추억을 재현하는 자리에 들어선 '사랑하는 딸'은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이런 추억이 어디 있담.
 우중충한 하늘 아래,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빽빽이 지면을 뒤덮었다. 하얀 살을 드러내고 서로 엉켜 있으면서도 편안히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 그 기묘한 세계 한가운데, 마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 없이 눈물 쏟았다.


 "이게 당신의 상처인가요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추억을 가리켜 '사랑하는 딸'이 묻자, 마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말을 토해냈다.


 "여기선 무엇이든 영원히 안식에 들어. 운 좋게 나도 여기 태어나, 어떤 현자라도 부러워할 평온을 애초부터 자연스레 누려왔어. 감사한 줄도, 행복한 줄도 전혀 모르면서 말야. 그런데, 왠 목소리가 그걸 몽땅 망쳐버렸어. 안식에서 깨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내가 태어나 자란 세계를 보았어. 모든 게 평화로웠고, 앞으로도 영원히 안식에 들어 있을 사람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날 봐, 강제로 안식을 박탈당해 혼자 깨어 있는 걸.
 이봐, 사랑한단 아가씨. 얘기해봐. 난 대체 뭘 위해 깨어난 거야? 다른 세계선 모두 안식에 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던데, 난 대체 얼마나 대단한 목적으로 안식하지 못할 세계에서 눈뜬 거지?"
 "어둠 속에서, 상처 따위 잊고 지낸다면 분명 당신이 살아갈 이유도 찾을 거예요오."


 자신감을 잃은 네눈박이 아가씨의 말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마녀가 조소 띤 얼굴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더 살아보라고? 하하, 아가씨. 여태껏 살며 지루하지 않은 적 단 한 번 없던 사람이야. 깨어나기 전 안식만한 세계는 어디서도 못 봤거든. 대체 얼마나 더 지루해해야, 세상을 조롱해야, 그보다 완전한 세계를 찾을 수 있지? 이봐, 실은 너도 알고 있잖아. 그딴 건 어디에도 없다고."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고, '사랑하는 딸'은 마녀를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세상 모든 것, 심지어 세상 그 자체마저 비웃으며 모든 피조물의 자존심에 흠집 내는 여자, '마녀'란 호칭이 그야말로 잘 어울리는 그녀를 무슨 수로 만족시키겠는가.


 "네겐 가장 까다로운 상대겠지, 만족할 수 없는 난."
 "예, 상대로선 최악이네요, '마녀' 아가씨이."
 "말에 가시가 있어. 아주 좋아. 아무리 어금니 뒤에 깊이 감춰도 인간이 송곳니를 가진 맹수란 건 부인할 수 없거든."


 인간은 어차피 서로 상처 입힐 수밖에 없어. 마녀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알면서, '사랑하는 딸'은 아무 대꾸하지 못했다. 마녀는 쉴 새 없이 말로 '사랑하는 딸'을 몰아세웠다.


 "상처 입히지 않는 게 사랑이라고? 웃기지 마, 어리광쟁이 아가씨야. 그럼 인간은 영영 사랑하지 못한단 거야? 잘 봐. 물고 매달리는 어금니로 선량함을 위장한 짐승이 깊숙이 숨겨둔 송곳니를 꺼낸 지금 이 시간이야말로, 인간이 서로를 상처 입히는 시간이다."


 마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닥에 엎드린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사랑하는 딸'에게 덤벼들었다. 깜짝 놀라 '사랑하는 딸'이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어디선가 허연 물체가 나타나 그녀 주위를 휩쓸며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그걸 본 마녀가 미처 생각 못했단 듯,


 "충직한 개를 데리고 있었지."


 인간들 사이 둘러싸인 '사랑하는 딸'을, 보호하듯 가로막고 선 청삽살개를 바라보았다. '적막'이란 이름의 커다란 덩치의 개는 으르렁대며 마녀와 인간들을 경계했다.
 그 뒤에서 '사랑하는 딸'은 온몸을 감싼 채 주저앉아 벌벌 떨었다. 마녀가 연출한 게 분명한, 자신의 기억에 대한 재현 탓이다. 의지할 곳 없는 눈 먼 소녀를 비난하고, 상처주고, 영원히 어둠으로 내몬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방금 전 덤벼든 사람들로 인해 갑자기 떠올라버렸다.


 퀴르르.


 오래 묵어 잊힌 상처가 곪아 터지는 냄새를 맡고 흥분한 적막이, '사랑하는 딸'을 힐끗 돌아보았다. 네눈박이 여자에겐 그마저 사랑스러워보였다. 비록 침침해진 눈으로 본 흐릿한 모습이긴 했지만.


 "괜찮아,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해묵은 상처 같은 기억까지 전부 떨어져나가길 바랐다. 태어나서부터 세상을 보지 못해, 단 한 번 행복하지 못한 어린애는 이제 없다. 지금 그녀는, 어둠 속 주민들이 '사랑하는 딸'이다.


 "더 상처 입을 생각은 없어요오. 차라리, 상처 주는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없앨 거예요오."


 상처주는 빛과 소음을 집어삼키는 적막의 주인은 마녀를 향해 선언했다. 이 어둠, 아름다운 세계를 어지럽히는 소음덩어리 마녀 따위,


 "먹어버려, 적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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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짧을지도요. 어찌됐건 11화를 올립니다.(오늘이 11월 11일이라서 황급히 올리는 건 아니고요;;)


 


 창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툭 하면 차단이 되는데, 여긴 그런 일이 없거든요(군대라 제약이;;)


 어쨌거나 블로그를 개통해놓고 아직 올린 글이 없어 소개를 못드리고 있습니다만, 차후에 형태가 갖춰지면 초대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고, 수능보시는 분들. 꼭 승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