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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2008.11.26 00:44

LiTaNia 조회 수:965

extra_vars1 코믹하지 않은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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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티센터 안으로 들어가보니 분위기가 더 낯설다.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안쪽에서는 더 많이 보인다. 정말로 '마경'에 들어온듯한 느낌이다.


"민쨩, 코믹 처음왔나봐. 많이 놀란 것 같아."
"네. 처음 왔어요."


아름선배가 저 이런데 안 데려왔으면 살다가 이런데 올 일도 없잖아요.


"민쨩이랑 재밌게 놀고 싶어서 민쨩 데려온건데.."
"선배한테는 재미있어도 저는 별로.."


회장 내의 팬시를 파는 곳에 들어가보니, '뒹굴레이 맨' '작게 휘두르며' '과외교사 히트맨' '금혼' 등의 만화들의 팬시와 동인지를 팔고 있었다. 물론 '마비놀이'와 '건전 앤 파이터'같은 온라인 게임 팬시도 보인다.


"얘네들 이번에도 왔네? 나도 작년에 코믹에 회지 내본 적 있었는데."
"무슨 내용이예요?"
"유한도전 BL회지."
"..."


아름선배한테 뭘 물어본게 잘못이다.


"그래도 여자애들 많이 사갔어. 폭발적인 반응이었는걸."


어휴. 유한도전에 나온 그 연예인들을 가지고 어떻게 BL물로 만든단 말인가. 상상이 안 가. 하긴 아름선배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다.


'건전 앤 파이터' 마법사 휴대폰줄 엄청 귀여운게 있네. 한번 사볼까.


"얼마예요?"
"처.. 천원이요!"


하긴 지금 내가 가발쓰고 메이드복 입고 있는데 목소리는 남자라서 저쪽에서도 놀랐겠지. 아니. 놀라야 정상이지.


그 외에 별로 볼 거 없는 회장을 아름선배랑 지유선배 따라 한 바퀴 둘러본 뒤, 밖으로 나왔다.


"민쨩. 우리 뭐 사람들한테 보여줄 거 없을까?"
"어떤거요.."
"우마우마를 한번 추는거야! 민쨩도, 우마우마 어떻게 추는지 알지?"


네?!


지금 이 모습으로, 웃웃우마우마를 춘다구요?


"그런데.. 노래는 어떻게 하죠?"
"내가 가져왔어. 아름이랑 윤민이를 위해서."


지유선배. 아름선배 생각해주시는 건 좋은데 저를 생각하시는 걸로는 전혀 안보이는데요..


회장 바깥에 나와서 다리를 건너자 있는 시민공원. 여기도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꽤 보이는데, 설마 여기에서?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지유선배는 준비한 CD플레이어를 꺼내서 노래를 틀었다.


"웃웃 우마우마♬"


두 선배, 완전히 신났구만. 난 여자옷을, 그것도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메이드복을 입고 있어서 걷는 것부터도 일인데 그런 나한테 우마우마춤을 이렇게 시키면 어떻게. 개그콘서트 마빡이에 나왔던 개그맨들이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알겠다. 게다가 왜 이렇게 카메라를 가져온 사람들이 많아. 휴대폰 카메라랑 그냥 디카가 수두룩하게 보이고.. 저 커다란 카메라는 설마 DSLR인가 뭔가 하는거 아니겠지?


"와. 우마우마다."
"쟤네 '귀뚜라미 울 적에' 코스프레 한 거야?"
"그럼 가운데 저 메이드복은 벌게임으로 여장당한 남자?"
"불쌍해.."


에휴. 다들 내가 여장이라는 걸 알아보는구나. 그럼 그렇지. 이럴 때는 아무말도 안 하는게 좋아.


"민쨩. 우리 한바퀴 돌고 올께. 누가 사진 찍으면 여기서 가만히 포즈잡고 있어."
"네..."


아름선배는 가방에서 '프리허그 해드릴께요' 라고 써있는 종이를 들고 공원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벌써 남자 하나가 아름선배한테 낚였구나. 사람을 낚는 아름선배나, 저렇게 낚이는 사람이나, 에라이.


"SALHAE! SALHAE하라! SALHAE! SALHAE하라!"


저 괴상한 가면을 쓰는 남자는 도대체 왜 저렇게 노래도 괴상한 걸 부르는걸까. 정말 알 수 없는 코스프레로 가득한 코믹월드다.


"와, 이쁘다! 사진 한번 찍어도 될까요."
"..."


뭐 일단 고개 끄덕거리고 포즈를 잡긴 하는데, 포즈 잡는 것도 힘들다. 게다가 DSLR?!


찰칵.


"고마워요."


도대체 왜 이렇게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많은거야. 그런데?!


"너.. 혹시, 윤민이?!"


도대체 누가 날 알아보는거지.. 라고 생각했는데, 다솜이?!


"왜 여장을.. 그것도 그런 옷 입고."


지금 크게 말을 하기는 좀 곤란한데, 다솜이의 귀에다 대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 선배한테 끌려나와서.. 지금 이런 옷 입을수밖에 없는거야. 다솜이는.. 웬일이야?'
"내 친구가 건전 앤 파이터 코스프레를 한다고 해서 보러 왔는데.. 윤민이를 볼 줄이야. 잘있어."


다솜이도 황급히 자리를 떴다. 하긴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상황에서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겠지. 정말 아름선배가 밉다. 왜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놓은거야.


그런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말로 마법사 코스프레를 누군가 했다. 저거 2차 레어아바타인데. 하긴 3차는 날개 때문에 하기가 좀 힘들겠지. 저게 바로 다솜이가 말한 그 친구인걸까. 무지 귀엽다. 나중에 다솜이한테 물어봐야지.


열심히 각종 오타쿠들의 카메라에 찍히다보니, 다른 한쪽에서 카메라를 든 사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카메라에 찍히고 있는 사람을 자세히 보니, 저건 캐릭터 코스프레같지는 않다. 가디건에다 리본. 저런 걸 스쿨룩이라고 하는걸까.


지금 내가 이 모양 이 꼴만 아니었어도 저 셔터 대열에 한번 꼈을텐데.


잠깐.


저 여자. 뭔가 낯이 익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 도대체 어디서 봤을까. 내가 저런 옷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저쪽에서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니까, 누군지 알았다. 내가 아는 애 중에서 저런 '미녀' 급은 한명밖에 없어.


안유정.


평소와는 달리 머리 양 갈래를 작은 리본으로 묶긴 했어도, 분명히 내가 아는 유정이야.


코믹에는 도대체 왜 온걸까. 내가 이 모습을 하고 있는 걸 유정이가 알게 되면, 개망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


"잠깐.. 이봐."


큰일났다. 유정이가 이쪽을 봤어.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이 나라는 건 아직 모르지 않을까.


"윤민이.. 맞지?"


하지만 당황스런 상황에는 침착하게 대처해야 하는 법. 최대한 내 목소리가 아닌 척 하이톤으로 한번 말해야지.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네.. 죄송해요."


유정이는 여전히 각종 카메라들에 둘러쌓인 채로 이 자리를 빠져나갔다. 하도 알 수 없는 코스프레가 많은 코믹월드라서 유정이의 저런 모습도 코스프레로 오해하고 있는 걸까. 유정이는 뭘 입어도 예쁘긴 하지만.


휴. 여튼 한 숨 돌렸다. 유정이한테는 내가 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안 들켰어. 그런데 때마침 아름선배랑 지유선배도 한 바퀴 돌고 왔네.


"민쨩. 사진 많이 찍었어?"
"와. 윤민이 정말 인기 많구나. 아름이가 코디 제대로 했는걸."


어휴. 말도 마세요.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지. 지금 이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되요. 하긴 지금 제가 이 메이드복을 입은 것 자체가 적응이 안 되죠.


"민쨩 데려오길 잘했어. 이번에는 누나들이랑 같이 돌자. 민쨩도 프리허그 해볼래?"
"아니요.. 전혀요."


메이드복 입은 것도 거추장스러운데 이런걸로 프리허그를 하는 건 더 싫어.


"아름선배. 윤민이한테 사람 속이는 법은 언제 가르쳐 준 거예요."
"?!"


잠깐. 이 목소리.. 설마, 유정이?


뒤를 돌아보니, 어느샌가 유정이가 다시 이쪽으로 온 것이 보였다. 결국 아름선배 때문에 내가 이 꼴 난 것이 유정이한테 들켜버린 것인가.


"너.. 어떻게 여기에?"
"얘 누구야, 아름아?"
"윤민이랑 같은 반인.. 무서운 애 있어요."


지유선배는 유정이 처음 보는거였나. 이상하게 아름선배는 유정이만 보면 평소에 하이텐션이다가도 풀이 팍 죽어버린다.


"오기 싫다는 애한테 억지로 이런 옷까지 입히고 데려오는 거, 예의가 아니잖아요. 선배."


맞아. 난 정말로 아름선배만 아니었어도 이런 곳에 이런 옷을 입고 올 일이 없다구. 그런데 유정이한테서 왜 이렇게 불길한 느낌이 드는거지.


"그리고, 윤민이는 제가 상회입찰을 했는데, 왜 아름선배가 윤민이를 맘대로 하는거예요."


아무리 아름선배가 하이텐션이고, 옆에 지유선배도 있다지만, 이런 상태의 유정이를 도대체 누가 말려. 이미 주변의 시선은 이 쪽으로 쏠리고 있다. 사람 많은 코믹월드에서 정말 무슨 꼴이야.


두 선배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름선배야 그렇다 쳐도, 지유선배마저 유정이한테 압도당한 것인가.


"윤민이는, 압수예요"


도대체 왜 내가 압수를 당하냐구. 유정이는 그 말을 하자마자 내 팔을 잡았다.


"유정아. 지금 여기.. 자리를 피해야 하지 않을까."
"응. 저쪽으로 가자."


굳어진 두 선배를 놔두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미안했지만, 선배들이 자초한 것이예요 이 상황. 하지만 문제는 이 사람많은 코믹월드에서 사람이 적은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겨우겨우 인적이 뜸한 곳으로 도착했다.


"휴.. 여기라면 그나마 숨 돌리네."
"윤민아."
"응?"


유정이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다. 도대체 이번엔 또 뭘 하려는걸까.


"윤민이, 귀.여.워♡"


윽. 이거 설마 부비부비라는 건 아니겠지. 간지러워. 그리고 민망해. 이런 옷을 입고 이런 꼴을 당하니.


"유정이는 여기 어떻게 오게 된 거야?"


유정이는 만화같은거 좋아할 만한 애는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유정이가 어떻게 코믹월드에 오게 되었는지를 물어봐야지.


"그 선배가 교실에 와서 윤민이한테 하는 얘기를 들었어. 코믹월드 같이 가자는 얘기를. 아침에 잠깐 참고서 사러 가는 길에 윤화 만났는데, 윤화가 오빠가 없어졌다고 오빠 좀 찾아달라고 울고 있는거야. 그래서.. 코믹월드라는게 어디서 열리는 건지 찾아보고, 여기까지 온 거야."


역시 나를 찾으러 온 거였구나. 이럴땐 오빠로서 윤화한테 정말 미안하다. 오빠 노릇은 못 하고 동생을 걱정하게 해서.


"고마워, 유정아."
"한눈팔면 안 돼, 윤민아. 이상한 사람한테 끌려가잖아."


일단 인적이 뜸한 곳으로 피했으니, 나도 유정이한테 뭔가 해야 할텐데, 뭘 하는 것이 좋을까.


그래. 그거다.


"유정아."
"응?"


나는 즉시 자세를 바꿔서, 유정이를 안은 뒤에 유정이의 입에 살짝 입술을 갔다댔다. 여자애한테 내가 먼저 키스를 시도하는 것은 처음이다. 유정이는 키스를 순순히 받아주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내가 여장한 상태에서 유정이한테 이러고 있는 것을 누가 보면, 영락없이 '백합'으로 오해를 하겠지.


에이. 지금 이 상황을 누가 안 보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좀 많은게 아닌 코믹월드라서 분명 누군가 보긴 봤을거고.


입술을 떼고 유정이의 표정을 보니, 유정이 얼굴이 빨개지긴 했어도 기뻐보이는 모습이다. 이제 상황도 수습해야 하니 집으로 가야 하는데.


"옷을 갈아입고 싶어도..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여기 온거라 어쩔 수가 없네."
"그 선배들. 정말 나빠. 윤민이같이 순진한 애한테 이런 걸 입히니까."


뭐 어쩔 수 있겠나. 그냥 이대로 가야지. 아름선배, 지유선배, 말도 없이 돌아가서 미안해요. 하지만 제 동생이 지금 걱정하고 있다고 하니까 빨리 안 갈수가 없어요.


"어, 민쨩! 어디가는거야!"
"집에서 동생이 저 찾고 있어서.."
"민쨔아아아아앙!!"


오늘같이 아름선배가 불쌍해보인 적은 없었다. 저런 사람한테 '불쌍하다'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마을버스를 타고 양재역에 간 뒤에 양재역에서 교통카드를 찍고 구파발행 열차를 탔다. 다행히도 자리가 많이 남아서 나랑 유정이랑 앉을 수 있다. 어느샌가 유정이는 내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나를 다른 사람한테 뺏길 수 없다는 것일까.


"나도 이런 옷 한번 입어보고 싶어."
"아.. 아냐. 유정이는 안 그래도 예뻐."


순간, 상상해버렸다. 유정이가 메이드복 입은 모습을. 정말 유럽의 어느 고풍스러운 집안의 하녀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어.


그만큼 유정이는 미인이다. 자신을 잘 가꾸기도 하고.


전철은 금방 약수역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6호선으로 갈아타는 환승통로가 왜 이렇게 길어보이는 것일까.


"윤민아."
"응?"


환승통로로 가는 과정에, 유정이는 또다시 날 불렀다. 이번엔 뭐라고 말하려는 것일까.


"윤민이는.. 단점이 뭔지 알아?"
"단점..이라니?"


굳이 내 단점이라면, 알 수 없는 각종 이상한 상황에 너무 자주 둘러싸이는 것? 그거 말고 뭐가 있을까.


"윤민이는.. 착해."
"내가 착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단점이 아닌것 같은데."


사람이 착한 것은 '장점'이라고 분류하는 거 아냐?


"하지만, 윤민이는 모두한테 착해.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그러니까 이상한 선배한테 막 납치도 당하잖아."


생각해보니까 그렇다. 어느새부턴가, 나는 여자애들한테 '휘둘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지금 나랑 같이 있는 유정이한테도.


"윤민이가.. 나한테만 착했으면 좋겠어. 윤민이는.. 내 꺼니까. 내가 지켜주기로 했으니까."


결론은 그거였나. 하지만 이걸 받아들이면 서연이가 또 삐질텐데. 내 주변에서 정말 무서운 건, 아름선배가 아니라 유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 뿐일까. 도대체 이런 미인이 왜 나같은 놈을 좋아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나도 유정이가 싫지는 않고, 유정이가 날 도와주는 것 때문에 유정이한테 고마움도 많이 느끼고 있지만, 이상하게 유정이를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다. 유정이를 보면, 뭔가 나랑은 다른 애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느덧 전철은 도착했고, 유정이는 피곤했는지 내 어깨에 기대어서 전철 안에서 잠이 들었다. 유정이는 학교에서 자는 모습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이런 유정이의 모습도 괜찮다.


유정이가 자는 중에 은근슬쩍 유정이의 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도 괜찮은 느낌이다.


"으으음.."


아까 3호선 뿐 아니라 코스프레를 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지금 이 6호선에서도 어째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려있는 게 무지 신경쓰인다. 집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기 전까지는 이런 시선을 피할 수 없겠지.


도대체 상월곡까지는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거냐. 이 신경쓰이는 시선, 어서 피하고 싶어. 아까 동묘앞역에서 쳐다보던 사람들 다 내리더니 거기서 타는 사람들이 또 다 쳐다봐. 이건 어쩌라구.


"...윤민이...내꺼...나...윤민이...못뺏겨..."


유정이 얘는 잠꼬대마저 이런건가. 전철이 어서 상월곡역에 도착해야 하는데.


"이번 역은 상월곡,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역입니다. 내일 문은 오른쪽입니다."


휴. 길었다. 이제야 다 왔네. 정확히는 여기서 마을버스 타고 좀 가야 유일동이긴 하지만, 전철 안에서의 시선은 드디어 피할 수 있어.


"유정아. 일어나. 다 왔어."
"으으음.. 벌써 다 온거야?"


유정이도 많이 피곤했나보다. 잠에서 깨긴 했는데 아직도 졸린 모습이야. 학교에서 많이 피곤했었나. 아니면 집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니 그런건가.


뭐 역에서 내린뒤 마을버스까지 타고 동네에 도착을 해 보니..


"?!"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전혀 의외의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동생 윤화는 물론이고, 서연이, 희정이.. 게다가, 희연선배?!


게다가 지금 전원이 굳어있잖아. 역시 내가 이런 모습이라서 그런건가. 윤화는 그 동안 많이 울었는지, 눈 주변이 부어있는 모습이 보이고.


얼마나 지났을까. 윤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는내가얼마나걱정했는지알기나해일어나보니까오빠가없어졌고오빠핸드폰은방안에덩그러니있고오빠방에남겨진쪽지를보고오빠가어디있나동네구석구석을뒤졌다가그래도안나와서서연언니랑희정이랑같이찾아봐도없었는데유정언니가오빠가코믹월드라는데에갔다고했는데코믹월드가어디서열렸는지모르겠고아무리오빠라도동생을이렇게걱정하게하는건정말로아니라고봐!"


날 이렇게 만들고 끌고간 건 아름선배이긴 했지만, 그래도 윤화를 걱정하게 만든 게 나니까, 오빠로서 반성해야지.


"미안해.. 윤화야. 하지만, 돌아오긴 돌아왔잖아."
"유정언니.. 오빠 찾아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오빠가 코믹월드라는데 간 거..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정말 윤화로서도 일어나보니 내가 사라져서, 게다가 내가 남긴 쪽지 내용 때문에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맨날 윤민이 괴롭히는 그 아름선배가.. 윤민이 코믹월드에 데려간다고 해서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윤민이가 이런 옷을 입고 있을 줄은 몰랐어."
"그 아름이라는 언니.. 취향 정말 특이하네요. 남자한테 이런거 입히고."
"그래도 미니가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우리, 정말 걱정했다고. 민군한테 무슨 일 생긴거 아닐까 했어."


그런데 희정이는 윤화랑 친해서 같이 왔다고 해도, 희연선배는 웬일이지.


"지유언니.. 호진이도 모자라서, 윤민이까지.."
"그 선배가 호진선배한테 뭘 했길래.."
"전학오자마자 우리 반에서 나보고 '어머, 호진이 언제 여친 사귄거야?' 라는 식으로 말하질 않나.. 기분나빠. 자꾸 호진이랑 나 사이에 끼어들어."


하긴, 그 지유선배를 보니까 호진선배랑 희연선배가 얼마나 당했을까 안봐도 DVD다.


여자애들은 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희정이랑 희연선배 역시. 그리고 나랑 윤화도 집에 도착했다.


"유정언니,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오빠를 이렇게 찾아오고.."
"그런가."
"그 마녀보다는 훨씬 낫잖아. 마녀는 오빠한테 해만 끼치는데."
"그만해."


집에 도착한 건 좋은데, 이 메이드복이라는 거. 왜 이렇게 벗는 것도 불편한거야. 그동안 답답해서 혼났는데, 벗고 나니 이제야 살 것 같다.


"오빠."
"왜."
"아까 오빠가 입었던 옷.. 나도 입어보면 안돼?"
"맘대로 해."


그 옷은 원래 여자가 입어야 할 옷이니까. 아까 벗어놓은 메이드복이라던가 스타킹이라던가 가터벨트라던가 윤화한테 주고, 난 침대에 누워서 쉬어야지. 후. 이제야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놀토때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이게 뭐야. 게다가 내가 여장한 모습을 유정이랑 윤화 뿐 아니라 서연이, 희정이, 심지어 희연선배까지 봤으니.


"오빠. 여기 한번 봐봐."


그새 메이드복을 다 입은거냐, 주윤화.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 있는게, 정말 내 동생 윤화가 맞는거냐. 애가 완전히 달라졌어. 역시 옷이 날개라는건가.


"오빠는 나의 주인님."
"그건 좀 아니지만."
"그걸 정말 믿는건 아니지?"
"말을 말자."
"사진 몇장 좀 찍어줘."


결국 윤화의 부탁으로 윤화가 메이드복 입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야 했다. 내가 아까전 코믹월드에서 저짓거리를 했었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사진이 어떤 식으로 나왔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 옷.. 아름선배껀데, 그 선배한테 옷 돌려줘야 하는데."
"그언니 전에 봤을때. 이 옷 전~혀 안맞아보여. 그냥 나 입으면 안될까, 오빠?"
"아름선배한테 일단은 얘기해보고."
"그리고 그언니가 오빠를 맘대로 납치했으니까, 그 벌로 이건 압수하면 되잖아."


아름선배가 얼마나 하이텐션인지 윤화도 한번 봤을텐데. 언제쯤 평범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날은 지나고.


일어나보니 해가 벌써 중천으로 떴네. 윤화는 희정이네 집으로 놀러갔다. 지난번 빌린 '드래곤과 용사'는 돌려주고, 좀 그럴듯한 책을 빌려봐야지.


오호. 책대여점에 가보니 뭔가 좀 끌려보이는 게 있네. 드래곤과 용사같은 지뢰는 아니길 바래야지.


'재로 - 완벽한 차원. 임삭구 지음'


임삭구라면, 인터넷에서 장난아니게 까이는 작가 중 하나인데. 너무 금기적인 소재를 건드린다고. 도대체 왜 까이는지도 궁금한데, 한번 빌려서 읽어나 볼까.


...


후. 이거 드래곤과 용사랑은 좀 다른 의미로 난감한데. 그거는 내용이 너무 뻔했고, 이거는 내용이 너무 위험하잖아.


난 도대체 왜 이렇게 지뢰밖에 안 잡는거냐. 에라이. 오늘도 '개그 콘서트'가 끝나면 어김없는 새로운 한 주가 찾아오겠구나. 컴퓨터가 고장났으니 책 보는거랑 TV 보는거 말고는 정말 할 게 없다. 컴퓨터가 있었으면 윤화 몰래 '건전 앤 파이터'라도 했겠지만.


그리고 또 다시 날은 지나고, 간만에 서연이랑 같이 학교에 등교를 했는데..


"주윤민. 너 언제 이렇게 스타가 된거냐."


교실에 도착한 나를 맞아준 것은 자칭기자 박찬이었다. 도대체 내가 뭔 스타가 되었다는 거지.


"내가 스타라니?"
"코믹월드에서 여장하고 메이드복 입은 남자. 아무리 봐도 윤민이 너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제발 좀 밝히지는 마라."
"문제는 그게 조공명의 사이트에 들어갔다는 거지. 여자애 한명이랑 키스하는 사진이."


잠깐.


뭐라구요?


인적을 피해서 유정이한테 키스했던 바로 그 때, 그걸 찍은 사진이 하필이면 다른 것도 아닌 조공명 사이트에 들어갔다구?


"그래도 그 사람들은 윤민이를 모르니까, 다행이군."


다행이긴 한데, 인터넷에서 제대로 x팔린 이거 어떡할거야. 아름선배. 사람 이렇게 망쳐도 되는건가.


"컴퓨터가 없으니 인터넷에 못 들어가서, 이런거 확인이 불가능하다."
"아. 내가 아는 애 중에 컴퓨터 잘 아는 애 한 명 있는데. 10반의 안새롬이라고."


정말 저 자칭기자 타칭스토커. 여자에 대한 정보를 얻는 능력 하나는 대단하다. 문제는 그게 여자 입장으로 보면 '스토킹'으로 보일 것 같은데.


"아차, 그리고 유정이를 노리는 변광성. 원래 어제 퇴원해서 오늘 다시 학교를 다니기로 했는데, 병세가 악화되어서 좀 더 입원을 해야 하나봐."


그런 녀석은 그냥 신경쓸 거 없고.


일단 수업종이 쳐서 1교시는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고, 1교시가 끝나고 10반 교실로 한번 가봐야지.


어느덧 쉬는 시간이 되고, 10반 교실에 가서 안새롬이라는 애를 찾으라고 했지.


"저기.. 혹시 이 반에 안새롬이라고 있어?"
"아, 그 초딩? 방금 화장실 갔는데."


초딩이라니. 여긴 고등학교인데. 동안이라는걸까, 아니면 하는 짓이 초딩같다는 걸까. 그 때..


"새롬아. 누가 너 찾는다."


뒤를 돌아보니, 내 등 뒤에는 정말로 우리학교 교복을 입은 '초딩' 한 명이 있다. 얘, 정말 고등학생 맞아?


"윤민오빠.. 맞죠?"


- 다음회에 계속 -


20. 안새롬 : ??살. 여자. 유일고 1학년. 본래 초등학생 나이인데 고입 검정고시를 쳐서 고등학생이 된 것이다. 자칭기자 박찬의 말에 따르면 컴퓨터에 대해 잘 안다는데, 과연?


네. 저질러버렸습니다. '백합으로 오해할 상황'을요. 실제 코믹월드에서 저런거 했다가는 정말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겠죠. 어쨌든 난입한 유정이 때문에 윤민이는 무사귀환. 그리고 아름선배는 또다시 물먹습니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나고, 이미 인터넷 상에 윤민이 메이드복 입은 사진이 쫙 퍼져버렸고, 컴퓨터가 고장났다고 말하는 윤민은 '안새롬'이라는 소녀를 소개받는데, 이번엔 또 웬 초딩인걸까요. 캐릭터는 늘어나고, 얘기는 엇나가고..


유정이의 소유욕은 여전히 장난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