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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2008.11.20 10:35

LiTaNia 조회 수:938 추천:1

extra_vars1 에이티센터까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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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가 왜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나 궁금하긴 하지만, 서연이는 나래를 모르니까, 내가 나래한테 말을 걸게 되면 서연이가 또 오해할 것 같으니까, 그냥 지나가야겠다.


하지만..


"어, 윤민이 맞지?"


문제는 나래 쪽에서 나한테 말을 걸었다. 나래가 어떤 애인지는 얼마전 다솜이한테서 들었으니까, 잘못 말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응.. 나래, 안녕.. 거기서 뭐해?"
"민군. 이 여자애랑.. 아는 사이야?"
'나중에 얘기해줄께. 지금은 좀 얘기하기 그래'


나래가 안듣게 서연이 귀에 대고 속삭였는데, 서연이가 또다시 표정이 안 좋다. 사정은 나중에 얘기해야야지.


"나래.. 지금 호진오빠 기다리고 있어."


역시 호진선배인가. 호진선배가 희연선배랑 뭔가 틀어진건가. 나래가 학교 앞에서 호진선배를 기다리고 있는거 보면. 그런데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이 목소리.. 설마?


"나래.. 정말로 왔을까?"
"그래도 나래가 아직도 호진이를 못잊어하고 있다니."
"희연아. 저기 나래.."


내가 잘못 듣지 않았다면, 지금 호진선배랑 희연선배가 여기로 오고 있다. 나래가 어떤 앤지 알았으니까,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위험해. 어서 서연이랑 같이 가야겠다.


"그럼, 나 가볼께. 나중에 봐."


나래가 뭐라고 했는지, 그리고 그 뒤에 호진선배와 희연선배가 나래랑 만나서 어떻게 했는지를 상관할 틈이 없이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한참을 걷고 나서, 이제 이만큼 왔으니 서연이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해도 되겠지.


"서연아. 아까 그 애가 호진선배랑 어렸을 때 친했다는 나래라는 애야."
"호진선배랑.. 어렸을 때 친했다니?"
"그게.. 다름이 아니라."


나는 다솜이한테서 들은 호진선배랑 희연선배, 그리고 나래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나래가 전학온 뒤에 오랜만에 만난 호진선배, 하지만 이미 희연선배한테 붙어버렸다던가.. 그 뒤에 나래가 아직도 호진선배를 못잊어하며 집착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이미 호진선배랑 희연선배는 서로 좋아하는 커플이니 그 둘을 떼어버린다면 희연선배가 또 슬퍼할 것이고..


그런데.. 왜 이렇게 서연이가 표정이 안 좋은거지. 뭔가 분위기가 또다시 어색해졌다.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서연이가 입을 열었다.


"몰랐는데.. 호진선배랑 희연선배, 정말 나빠. 알고 보니까, 희연선배가 가만히 있었던 호진선배를 꼬신거잖아. 그리고 호진선배도 나래였나? 걔를 버리고 희연선배한테 넘어가고."


하지만 호진선배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호진선배가 희연선배를 알게 된 뒤 나래랑 다시 재회하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나래라는 애..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 같아. 난 미니를 믿어. 미니가 다른 여자애들한테 넘어가지 않길 바래. 미니가 안 그러면.. 나도 그 나래라는 애처럼,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서연이랑 나래. 둘 다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와 친하다는 공통점이 있어. 서연이는 나랑, 그리고 나래는 호진선배랑. 하지만 나래는 서연이랑은 달리 어렸을 때 호진선배랑 헤어지게 되었고, 호진선배를 못잊어해서 전학을 왔지만 호진선배는 그 사이에 희연선배랑 맺어져서 나래가 그렇게 된 것이지.


그리고 서연이가 요새 민감해진 이유 또한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에 알게 된 다른 여자애들하고 친해지고 서연이한테 잘해주지 못해서였다.


그래. 이제 이해가 된다. 서연이가 나래의 편을 들고 있는 이유를. 초록은 동색이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걱정마, 서연아. 나.. 서연이가 실망할 만한 짓은 안할께."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는데, 그래도.. 누구도 아닌 미니니까. 믿어볼께."


서연이를 나래같이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행동을 잘 해야지.


이렇게 서연이랑 팔짱을 끼고 걷다보니 어느새 집.


"그럼, 월요일날 봐, 민군!"
"응. 이제 나 주번 아니니까. 학교에 다시 같이 갈 수 있을거야."


요새 겪은 일들 때문에 확실히 알게 된 점이 있다. '있을 때 잘해'. 어제 서연이가 제대로 삐져서 풀어주느라 고생했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다가는 정말 서연이가 나래같이 무서워지지지 않으려나.


에이. 오늘은 집에서 좀 쉬어야지. 내일은 놀토다. 컴퓨터가 고장났으니 그냥 판타지소설 하나 빌려볼까.


책대여점에 가서 '드래곤과 용사'라는 제목의 책을 골라잡았다. 뭔가 뻔히 보이긴 하는데. 그래도 혹시 의외로 재미있을 지 모르니까 돈주고 빌려오긴 했다. 판타지소설은 잘 골라읽지 않으면 정말 말 그대로 '지뢰'를 밟는 것이 가능하니까. 그런데 책 빌림방에서 나오면서 누군가 날 보고 있는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그냥 착각일까.


도대체 언제쯤 컴퓨터를 고치려나. 집에 도착해서 침대에 누워서 판타지소설을 독서(?)하고 있는데,


"오빠."


윤화 얘는 언제 온거야.


"요새 이거 알아?"
"어떤건데."
"나랑 이름이 비슷한 사람들이 요새 많이 뜨는것 같아. 가수 윤하라던가, 소녀세대의 멤버 윤아라던가, 그리고 그 오빠가 자주 가는 디씨인사이드인가? 거기에 거꾸로 해도 나유나라는 기자가 있고."


윤화 얘 딴 사람들은 몰라도 거꾸로 해도 나유나는 어떻게 알았대.


"나유나는 도대체 어떻게 알았냐."
"오빠가 자주 들어가니까, 나도 가끔 어딘가 해서 디씨인사이드 들어가보니까."


이봐. 디씨인사이드에서 잘못 놀다가 이상하게 물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구. 전에는 엔젤헤일로 위키를 들여다보질 않나. 이번엔 디씨인사이드?


"너가 그 사람들하고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도.. 뜰 일이 있을리가 없잖아."
"치. 나 무시하지 말라구. 유정언니 보고나서 몸매관리 잘 하고 있으니까."


하긴 요새 윤화가 그 쪽으로 신경을 많이 쓰긴 하다. 아직 윤화는 중3이고, 성장판이 안 닫혔으니 윤화도 잘 가꾸면 이뻐질 수는 있겠지.


하지만 윤화가 아무리 이뻐졌다고 해도 요리실력이 지금같이 꽝이면, 남자친구가 생겨봐야 좌절할 것은 또 뻔하겠고.


"오빠는.. 마녀한테 홀려있는거, 알아?"
"다시 말하지만, 마녀라고 해서 다 나쁘지는 않다니까."
"아냐. 마녀는 다 나빠. 겉으로는 착해보인다고 해도, 그건 오빠를 홀리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까."


도대체 윤화 얘가 혜인이에 대해서 오해를 그만 할 날이 오긴 할까.


에이. 신경쓰지 말고, 책이나 읽자. 그런데.. 이거 제대로 지뢰를 밟았구나. 누가 양판소 아니랄까봐 그냥 짱센 주인공이 검을 휘두르고 드래곤 잡으러 가는 얘기밖에 안나오잖아. 에이. 이런거는 베개로 써야지.


그렇게 오늘 하루도 가버렸다. 내일은 도대체 뭘 해야 하나. 컴퓨터도 고장났고, 판타지 소설 하나 골라잡은건 지뢰고.


그리고 또다시 하루가 시작된 것 같은...데.


딩동.


도대체 이 꼭두새벽부터 웬 벨소리야. 오늘 놀토인데, 잠 좀 자자.


딩동딩동.


도대체 누구냐니까. 에이. 일단 나가봐야지. 문을 열기 전에 확인 좀 하고.


"누구세요."
"여기 주윤민씨 댁 맞아요?"


내가 모르는 목소리다. 도대체 이런 청순가련해보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냐. 일단 문을 열어야지.


그런데..


"윤민쨩~! 아니, 민쨩! 미안해. 놀라게 해서."


내 눈 앞에는, 전혀 반갑지 않은 사람 한 명이, 우리 학교 교복이 아닌 이상한 교복을 입고 머리에 주황색 가발을 쓴 채로 찾아왔다.


"아...름 선배. 도대체 어떻게 저희 집은 아셨어요."
"어제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중에 민쨩이 책대여점에서 나오는 게 보여서 몰~래 살금살금 따라와봤어."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랑 알고 지낸게 큰 실수였다니까. 내가 도대체 입학하자마자 정말 왜 이랬을까.


"그리구. 민쨩이랑 어제 같이 있었던 여자애. 누구야? 민쨩이 나 싫다고 한 애."


설마 서연이 얘기인건가. 그런데 그건 또 왜 신경쓰는거야.


"그걸 선배가 왜 알아야 하는데요."
"둘이서 심각~한 얘기 하는것 같았어. 뭔가 심상치 않은 사이같아."
"그냥 '친구'라고 보기엔, 그 여자애가 민쨩한테 심상치 않은 얘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에이. 말을 말자. 이 사람한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잘못이야.


"그나저나, 아름선배. 왜 오셨어요. 그리고 민쨩은 뭐예요."
"민쨩이랑 코믹월드 가려구 왔는데. 민쨩은 내가 지은 애칭이야. 그렇게 부르는게 싫으면.. 민군이라고 할까?"


아름선배한테 민군이라고 불리는 건.. 으악. 상상만 해도 싫다. 날 민군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건 더 싫어요. 차라리 민쨩이 나아요."
"아. 민쨩한테 입혀줄 옷을 가져왔는데. 쨘~"


아름선배는 가져온 가방에서 뭔가 옷을 꺼냈는데, 이거.. 여자옷이잖아. 이 검은 옷에다.. 머리장식에.. 앞치마. 설마 이게 그 메이드복이라는 건가. 게다가 이 가터벨트에, 긴머리 가발에, 뽕브라에, 스타킹까지.. 도대체 아름선배. 뭔 생각으로 이런 걸 가져온거야.


"선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자가 이런거 어떻게 입어요."
"민쨩이 입으면 귀여위보일 것 같아."
"싫어요. 저 이런 옷 못 입어요."


이럴땐 딱 잘라서 거절하자. 아무리 우리학교에 유명한 여장남자 민서선배가 있다고 하지만, 여장은 사내로서 수치야.


"그래, 민쨩? 그럼 내가 입혀줄까나? 까나?"


아름선배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는데..


헉. 이거 뭐야.


날이 번쩍 든 손도끼라니. 나. 정말 지금 여기서 죽는건가. 유아름이라는 살인자를 만나서.. 할 수 없다.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옷을 입는게 나아.


그래서 방에 들어가서 옷을 입었는데, 내가 여자옷을 입어봤어야지. 일단 대충 걸치고 아름선배의 도움을 받은 뒤 겨우겨우 입었다.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닌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도대체 왜 이렇게 여자옷에는 거추장스러운 게 많아. 아직 윤화가 자고 있다는게 불행인걸까 다행인걸까.


"하웅~ 민쨩. 귀여워. 가져갈래!"


그리고 아름선배는 도대체 왜 이러는거야. 아름선배가 나한테 준 건, 손거울?! 그리고 이걸 보니.


...으아아아아아악?!


완전히 인터넷에서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본, 메이드인가 뭔가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아름선배의 손도끼가 무서워서 입었다지만, 이거 정말 아니잖아. 민서선배 욕할게 아닌데 지금. 그분은 여장한 모습이 오히려 이쁘기라도 하지. 지금 난 도대체 뭐야.


"민쨩 오늘 완전 주목받을거야! 오늘 코믹월드에서 스포트라이트는 민쨩한테."
"그런식으로 스포트라이트 받는건 싫어요, 아름선배."
"자, 갑시다, 코믹월드로!"
"..."


저렇게 하이텐션인 아름선배를 정말 누가 말려. 학교에선 유정이라도 있지만, 지금 여긴 집이라구. 에이. 모르겠다. 메모 하나 남기고 가야지.


'윤화야. 오빠 지금 학교 선배한테 끌려가는 중이다. 무사히 돌아오고 싶어.'


하지만 메모를 남긴다고 윤화가 코믹월드가 어디 있는지 알리가 없잖아. 어쩔 수 없이 가야지.


일단 아름선배 말로는, 코믹월드가 열리는 에이티센터인가 에이티필드인가에 가려면 전철타고 약수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탄 뒤에 양재역까지 가야 한다는데.


"아름선배.. 그 도끼.. 진짜.. 도끼예요?"
"진짜 도끼는 흉기잖아, 민쨩. 이건 그냥 플라스틱으로 만든 코스프레용 소품이야. 내가 코스프레한 캐릭터가 도끼를 쓰는 캐릭터라서."
"그게 흉기라는 거 알긴 아시네요.."


도대체 어떤 캐릭터가 교복입고 도끼를 쓴다는거냐. 정말 알 수 없는 캐릭터가 많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다. 알았다가는 이 사람한테 물들어. 정말 진짜 도끼가 아니라는 게 다행인거냐. 아니. 흉기를 들지 않아도 무서운 사람이 아름선배니까.


그리고 전철역에 가던 길에 만난 것은, 어제 분명 아름선배랑 같이 왔던 그분이지. 저분도 뭔가 코스프레를 했네. 저 넥타이 있는 교복은 또 뭐야. 게다가 초록색 포니테일 가발은 또 뭐고.


"지유언니! 나 왔어. 민쨩 데리고."
"어머. 윤민이 정말 귀여워졌구나. 아름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어."
"..."


두 명의 위험한 선배한테 둘러싸인 나는, 정말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내가 왜 이 사람들 사이에 낀거야. 게다가 사람들이 다 이쪽을 쳐다보고 있어.


"호진이가 기분이 안 좋아보여서 호진이는 못 데리고 왔는데, 윤민이 얘도 호진이 못지않게 귀엽네."
"호진이 걔가 왜 나 싫어하는지 모르겠어, 언니."


아름선배. 왜 사람들이 아름선배 싫어하는지 정말 모르시는건가요. 나같이 멀쩡한 남자한테 이렇게 여장시키고 여자옷입히고..


일단 상월곡역에 도착하긴 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는거 타야 코믹월드엔가 뭔가에 간다는 걸까.


교통카드를 찍고 두 막장선배를 따라서 응암행 정거장으로 가는데, 정말 여자들은 이런 옷을 어떻게 입는걸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는게 정말 부담스러워. 도대체 남자한테 이 메이드복을 왜 입혔냐구요.


얼마 뒤에 안내방송이 들리고, 전철이 오기 시작했다.


"지금 응암순환, 응암순환 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이 아직 아침이라 그런가, 전철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이 타지는 않았다. 윤화는 지금쯤 잠에서 깼으려나. 아름선배의 코스프레 소품을 진짜 흉기로 착각하고 메모를 적어버렸는데. 미안하다, 윤화야. 못난 오빠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겠구나.


"지유언니. 재열이인가? 걔 요새 잘 지내요?"
"재열이 걔도 고등학생 되고나서 많이 바빠진 것 같은데, 전에는 재열이랑도 코믹월드 같이 가고 그랬어. 아. 윤민이가 재열이랑 동갑이네."


도대체 재열이는 또 누구야. 누군지 몰라도 이런 분들한테 걸린 이상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아름선배. 재열이는 또 누구예요."
"아, 걔는 지유언니 사촌동생이야. 나도 가끔 코믹에서 지유언니 봤을 때 같이 있었던거 봤어. 지유언니보다는 키가 많이 작더라."


이봐요. 그 재열이라는 애가 키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도, 아름선배 키에 남의 키 얘기 하는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철은 어느순간 약수역에 도착했고, 묵묵히 아름선배랑 지유선배 둘을 따라서 내린 뒤 3호선을 갈아타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그리고 어느덧 도착한 수서행 전철.


뭐야.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니잖아.


전철 중간중간에 만화나 게임에 나온 캐릭터처럼 자기를 꾸민 사람들이 보인다. 이 사람들도 다 '코믹월드'인가 뭔가에 가는건가. 무섭다.


전철에서 자리가 난 곳에 앉고나서, 아름선배가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민쨩. 한가지 조심해야 될 게 있는데.."
"네?"
"누가 사진 찍어달라고 말 걸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고개를 그냥 끄덕거리고 사진촬영에 응하면 되는거야. 민쨩이 할 일은 그걸로 끝이야."
"네..."


아름선배가 열심히 '여장'을 나한테 시켰는데, 말을 하게 되어서 이 복장에 남자라는 것이 드러나면 정말 누가 봐도 난감...보다, 일단 내가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가발쓰고 메이드복입고 있다는 점이 난감하다. 아름선배. 정말 뭐냐구요 이게.


"어제 호진이가, 여자친구인 희연이였나? 걔랑 함께 나래 만나서 뭔가 했나봐. 그런데.. 왜 호진이도 그렇고, 나래도 그렇고.. 둘 다 기분이 안 좋아졌는지 모르겠어."


호진선배쪽 일에는 끼어들지 않는게 좋겠.. 는데, 잠깐. 이 지유라는 분. 나래를 알고 있어?!


"지유선배.. 나래를 아세요?"
"응. 전학오기 전 동네에 살던 친한 동생이었어. 어렸을 때 호진이랑 나래랑 정말 잘 어울렸는데.. 그 사이에 희연이라는 애가 껴서 호진이 여자친구가 되고 나니까. 안타까워."


잠깐. 그렇다면 이거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먼저 호진선배가 유일동으로 전학오게 되었고. 그 뒤 희연선배를 만나서 둘이 커플이 되었고, 그 뒤 호진선배랑 친했던 나래도 전학오게 되었지만 호진선배랑은 사이가 틀어졌고.. 그 뒤에 그 둘이랑 친했던, 지금 내 옆에 있는 지유선배가 하필이면 또 유일고로 전학왔다... 라는 것인가.


이거 뭔가 운명의 장난치고는 너무 심하잖아. 어쩌면, 정말로 희연선배가 유일고로 오지 않았어도 모두 웃을 수 있던 거였을까.


에이. 모르겠다. 나랑 전혀 상관없는 호진선배 일을 내가 왜 생각하고 있지.


"어렸을 적에 호진이도 나래도 자주 안아주고 그랬는데, 둘 다 못 본 사이 훌쩍 커버렸어. 하지만, 커도 여전히 귀엽긴 마찬가지인걸."


그냥 말을 말자. 내가 이런 사람들한테 물들지 말아야 하는데.. 어쩌면 나래가 그렇게 된 것도 지유선배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환경이라는 것은 정말 무서운 거다.


"이번 역은 양재, 서초구청 역입니다. 내릴 문은 오른쪽입니다."
"다왔어! 민쨩. 어서 내려야지."


어느샌가 전철은 목적지인 양재역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은 여기서 다 내리는구나. 역시 목적지는 다들 코믹월드인건가.


양재역을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니, 같은 서울이라도 우리동네랑 여기는 뭔가 확 다르다. 여긴 완전 고층건물 투성이야. 그런데 그 에이티센터인가 에이티필드인가 하는 데는 어디 있지.


"민쨩, 뭐해?"
"에이티센터인지 뭔지.. 그거 어디에 있는 거예요?"
"아, 맞아. 민쨩 여기 처음 오는거지. 저~기에서 코믹월드 가는 버스 타야해."


과연 아름선배가 말하자마자, 앞에 '코믹월드'라고 써있는 마을버스 한 대가 왔다. 저걸 타야하나. 발 디딜곳이 없이 사람들이 꽉 찼네. 다들 그 에이티센터로 가는 거겠지. 나도 가고 있으니까.


그런데 코스프레하고 있는 사람들마저 이쪽을 쳐다보면 또 어떡해.


"아하하. 민쨩이 귀여워서 민쨩한테 시선집중하는걸까나? 까나?"
"그러게. 윤민이 정말 귀여워."
"아름선배, 지유선배.. 자꾸 그러면 화낼거예요. 저."
"아하하하, 미안미안."


어휴. 이 사람들 앞에서는 그냥 말을 하지 않는게 좋겠다.


사람들이 많이 내리네. 여기가 코믹월드가 열리는 에이티센터인건가.


"뭐해, 민쨩! 다 왔어. 내려야지."


내리고 보니까, 이거 장난이 아니잖아. 다들 어디에 나오는 지 알 수 없는 캐릭터들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어. 물론 코스프레를 안 한 사람들도 꽤 보이지만, 코스프레를 안 했더라도 다들 각종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가방이라던가 들고 있네.


여기. 내가 올 곳이 아니야. 정말로. 물론 오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지만.


"그런데.. 저기 줄이 쫙 서있는데, 언제 들어가요, 선배."
"내 이럴 줄 알고 3명분의 티켓을 예매했지!"
"..."


이사람. 정말 처음부터 나를 여기 데리고 오려고 했구나. 정말 내가 왜 아름선배라는 사람을 알게 되어서 이모양 이꼴이 되었을까.


에이. 그냥 말을 말자. 여기 주최측이 남자가 가발쓰고 메이드복 입은 이런 꼴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름선배를 따라서 에이티센터 안으로 들어가야지.


"그냥 아무말도 하지 말고 사진찍을 때 고개만 끄덕이고 포즈 잡으면 돼. 알겠지?"
"..."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릴 수 밖에 없었다. 하긴 지금 내가 말했다가는 여장했다는 것이 다 드러나서 시선이 더 집중되니까. 그런데 메이드복 때문인지 이쪽에 시선이 집중되는 건 마찬가지야.


- 다음회에 계속 -


오랜만입니다. 어째 내용이 생각이 안 난데다가 학업이 상당히 바빠서 이번 회의 연재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사실 14회부터 지금까지가 각 히로인별 스페셜(?)이었습니다. 14회는 정다솜, 15회는 안유정, 16회는 변혜인, 17회는 문서연, 그리고 이번회는 하이텐션 막장녀 유아름의 회였습니다. (하지만 14회는 정작 실제 메인은 다른 등장인물이 차지하고 있죠) 이번 회에서 아름과 지유가 한 코스프레는 손가락이 4개밖에 없는 어떤 무서운 동인게임의 캐릭터들을 코스프레한 것입니다. 그리고 윤민은 여장당했고.. 이들이 코믹월드에서 어떤 파란을 몰고올 것인가.


학업이 너무 바빠진 나머지 소드마스터 야마토식 날림 조기완결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번 회에서 지유누님이 언급한 재열은 전작 A Tale That Wasn't Right의 B분기에서 나래랑 놀았던 그 재열이 맞습니다.


참고로 오늘 11월 20일은 설정상 전작 주인공인 호진의 생일입니다. 이 날을 굳이 호진의 생일로 한 이유는 코나미의 리듬게임 비트매니아에 나오는 곡 제목 중 20, November라는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