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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2008.11.02 04:10

LiTaNia 조회 수:996

extra_vars1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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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날은 벌로 윤화가 만든 특제 요리를 가득 먹을수밖에 없었다. 혹시 윤화도 자기 요리가 '벌'이 되는 것을 알고 요리 실력을 일부러 안 키우고 있지 않을까. 만약 정말 그렇게 되면, 앞으로 윤화 남편이 누가 될 지 몰라도, 정말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하루는 시작되었다. 언제쯤 조용한 하루가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다행히도 오늘은 윤화가 이상하게 깨우는 일은 없었다.


"마녀를 막을 수 있는 데까지는 막을거야. 마녀가 오빠를 건드리는 건, 내 눈으로 지켜볼 수 없어."
"윤화야. 오해야. 혜인이가 마녀이긴 해도, 나쁜 애는 아냐."
"나쁜 짓은 이미 하고 있잖아. 지난주에는 오빠 방에서 오빠한테 (검열삭제)를 했다던가, 어제는 집 컴퓨터를 부쉈다던가.."
"..."


하긴 이런 얘기를 들으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윤화가 본 혜인이의 모습은 혜인이를 나쁜 애로 오해하기에 충분하니까. 왜 이렇게 시간이 서로 안 맞는 걸까.


학교로 등교한 뒤, 주번활동은 정말 귀찮다. 아침에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담당구역을 청소하다 보면 정말 별의별 게 다 나오지. 도대체 저 출장마사지 찌라시들이 왜 이렇게 청소하다가 많이 나오는거야. 그리고 이걸 학교 앞에다 뿌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야.


설마 오늘도 그 변광성인가 뭔가가 유정이를 찾는다며 울고불고하려 우리 반 교실로 찾아온 건 아니겠지.


"긴급뉴스, 긴급뉴스!"


자칭기자 박찬 저녀석은 왜 저렇게 호들갑일까.


"도대체 뭔 긴급뉴스야."
"어제 유정이 찾으러 우리반으로 온 그 변광성. 오늘 결석했다!"
"뭐?"


그녀석이 결석이라. 귀찮은 일은 덜겠군. 그런데 무슨 이유로 결석하게 된 걸까.


"어제 하교하면서 땅이 꺼졌다던가, 바나나 껍질을 밟았다던가, 그래서 몸이 크게 다쳐서 지금 병원에 입원중인데, 이로서 윤민이랑 유정이의 애정전선에는 이상이 없겠군."
"애정전선같은게 있을리가 없잖아. 기자면 기자답게 객관적인 사실이나 취재해. 망상 같은걸 섞으니까 찌라시가 되는거야."


그 변광성이라는 녀석. 어제는 유정이를 자기 손에 넣겠다고 의기양양했는데 도대체 오늘은 왜 결석한 것일까.


맞다. 생각해보니 어제 혜인이가 뭔가 손을 썼다고 했지. 그렇다면 설마 그 녀석도 나처럼 혜인이한테 운을 조작당한건가. 그런데 그게 병원으로 입원할 만큼 치명적이었나. 하긴 나도 그날 무지 아프긴 했지만.


에이. 마른 가지에 바람 잘 날 없다지만, 나도 좀 조용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컴퓨터가 망가져서 이제 컴퓨터 새로 살 때까지 한동안 심심하겠지만.


"윤민아.. 내가.. 싫은거야? 나, 윤민이한테 잘못한 거 있는거야?"
"그냥.. 요새 조용히 있고 싶어서 그런거야. 유정이가 싫은건 아니야."
"다행이야.. 난 윤민이 집에 부른뒤로 윤민이가 혹시 나 싫어진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나는 지금 내 짝으로 있는 유정이가 싫지는 않다. 다만 그 때 미약을 먹인 것 때문에 유정이가 또다시 나한테 이상한 것을 하는 게 아닐까 두려울 뿐이다. 뭐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좋긴 하지만.


"주윤민. 그러니까 굴러 들어온 복을 차면 안되는거란다."
"도대체 너는 기자인거냐, 아니면 연애 상담원인거냐."
"직업은 기자고, 연애 상담원은 부업."
"한가지만 해. 그리고 너나 나나 아직 고등학생이잖아."


낄 곳과 안 낄 곳을 구분 못하고있는 자칭기자 박찬놈도 여전하다. 저 놈은 기자 지망생이면 좀 가치있는 정보를 취재해 줘. 그리고 신문의 사설같은건 기자가 쓰는게 아니라 신문 사설위원이 쓰는거야.


"치.. 민군. 오늘도.."


서연이는 또 왜 저럴까. 뭐라고 말은 해야 하겠지만, 이미 수업종이 치고 선생님이 들어오신 다음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수업이 끝난 다음 얘기해야지.


그러니까 오늘도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리가 있나. 도대체 언제쯤 학교를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을까. 마음이 무거우니 수업 내용이 전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아.


수업은 끝나고 쉬는 시간. 서연이가 요새 민감해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제 점심시간이라던가 서연이의 소희월드 미니홈피라던가 봐서 서연이가 나한테 많이 실망한 것을 제대로 느꼈다. 서연이의 기분을 어떻게 풀어줘야 하지.


"서연아.."
"그래. 그런거야. 민군은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다른 여자애들한테 빠진거야. 지금까지 미니랑 같이 놀아주고 같이 숙제도 하고 같이 할 줄 모르는 게임도 한 게 누군데.."


서연이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조금만 잘못하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서연아.."
"미니가 그네 전혀 못 탔을 때, 뒤에서 밀어줘서 미니 그네 타는거 연습하게 만들어준 게 누군데.. 흑."


초등학생 때. 난 다른건 몰라도 그네는 정말 못 탔지. 그리고 서연이가 그런 나를 위해서 뒤에서 그네를 자주 밀어줬고. 그 영향이었을까, 결국 그네를 스스로 탈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그네 탈 나이는 지났지만.


"서연아.."
"학교에서 미니가 뭐 잃어버렸을 때, 미니랑 같이 그거 찾아준 게 누군데.. 흐흑."


맞아. 중학교 1학년때였나. 체육시간 되기 직전 분명 체육복을 갖고 왔는데 체육복이 없어져서 서연이랑 나랑 체육복 찾느라 심하게 헤맸지. 결국 체육시간 시작되기 1분 전에야 내 가방 구석에 박혀있던 걸 알았지만. 그거 때문에 나랑 서연이랑 둘 다 늦게 운동장에 나갔다는 이유로 벌받았고.


"서연아.."
"미니가 '건전 앤 파이터' 게임에 빠졌을 때도,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미니가 길드인가 뭔가에 같이 들 때까지 게임을 같이 한 게 누군데.. 흐흐흑."


맞아. 지금은 다솜이랑 자주 같이 하지만, 다솜이 알게 되기 전, 정확히 말하면 내가 속해있는 길드에 속하기 전에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서연이랑 같이 했지. 서연이는 그 때 소환사로 했는데, 렉이 걸리는 것은 그렇다 쳐도 서연이가 손이 느려서 그런가 게임을 잘 못해서 레벨 29인가까지만 키우고 나는 지금 내가 있는 길드에 가입해서 접었지.


"서연아.."
"요리 못하는 여동생 대신에 미니를 위해서 요리를 맛있게 하려고 노력한 게 누군데.. 흑."


그래. 윤화는 부정하고 있지만, 서연이가 만든 요리는 윤화가 만든 요리보다는 정말 맛있지. 집에서 윤화랑 서연이랑 누가 부엌을 차지할 까 다툰 적도 수두룩했지. 나는 누구 편이라는 말은 못했지만.. 속으로는 부엌에 윤화가 아닌 서연이가 있기를 바라고 있지.


며칠 전에 얼떨결에 나래를 알게 되었을 때도, 겨우 나래를 진정시키고 나니까 '다른 여자애 만나지 말고 그 애한테 잘해주지 않으면 지금 나래같이 마음이 아플거야' 라는 식의 말을 했지. 이제야 그 얘기가 무엇인지 실감이 간다. 그동안 서연이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를..


"서연아..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그러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미니는.. 그걸 몰라주고.. 다른 여자애들이랑 놀고. 민군.. 이렇게 나쁜 앤 줄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정말 몰랐어."
"오늘은 서연이가 해달라는 거, 다 할께. 뭐든지."
"정말..이야?"


그제서야 서연이는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다. 이런 얘기 하다가 서연이가 나한테 혹시 이상한 거 시키지 않을까 걱정되긴 하지만, 내가 아는 서연이는 그럴만한 애는 아니다.


"응. 내가 서연이한테 요새 잘 못해준 것을.. 나도 알고 있으니까."
"정말이지. 딴 애들이 뭐라고 해도, 내 말만 들을거지, 민군?"
"정말입니다. 명령만 내려주세요, 문서연 공주님. 저 주윤민은 공주님의 집사로서 뭐든지 시키는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나도 지금까지 서연이한테 이렇게 말할 것은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서연이가 지금까지 얼마나 기분이 안 좋았는가를 생각하면, 오늘은 정말 서연이가 해 달라는 거 다 해줘야지.


"고마워, 민군. 오늘 하루동안 내 말 얼마나 잘 듣나 지켜볼거야!"


아까전에 울고 있던 서연이가 맞나 할 정도로 서연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연이가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본 것이 얼마만이었던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 아름선배라던가, 다솜이라던가, 유정이라던가, 혜인이같은 애들을 너무 빨리 알게 되고, 그 애들이랑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동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서연이하고는 그 동안 어울리지 못했지. 그래서 서연이가 민감해졌고. 따지고 보면 모든 게 나 때문이니까, 이제부터라도 서연이가 또 다시 실망하지 않게 서연이한테 잘 해줘야지.


"서연이.. 미안해서 어떡해. 오랫동안 윤민이랑 친했는데.. 하지만, 윤민이는 내 껀데. 윤민이는 내가 뺏었는데. 윤민이의 몸을 차지한 건 나니까.. 곧 마음도.."


겨우 서연이 기분을 풀어주고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유정이가 자리에서 뭐라고 말한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들은걸까. 뭔가 상당히 위험한 말을 한 것 같은데.


"유정아, 뭐라고 했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에이. 기분탓이겠지. 신경쓰지 말자. 오늘은 서연이 말만 듣기로 했으니까.


수업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리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밖에서 오늘도 혜인이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늘 혜인이가 끼기는 좀 그렇지.


"혜인아, 미안. 오늘은 서연이가 기분이 안 좋으니까, 서연이한테 맞춰주고 싶어."
"윤민이가 그렇다면.. 내가 비켜줄께."


다행히도 혜인이는 그냥 돌아갔다. 어제 서연이 미니홈피의 글을 혜인이도 봤고, 그것 때문인지 혜인이가 서연이의 마음을 쉽게 눈치챈 것 같다. 그러니까 혜인이가 마녀라고 혜인이를 나쁜 애로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혜인이가 마녀라는 것은 학교에서는 나 혼자밖에 모르는 것 같지만.


박찬놈 역시 혜인이를 싫어해서 그런가 더이상 나랑 같이 밥먹는데는 안 낀 지 오래고, 오늘은 서연이랑 단둘이서 있게 되었다. 물론 식당엔 다른 애들도 많이 있긴 하지만. 그리고 중학교때까지만 해도 이게 자연스러웠는데 도대체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왜 이렇게 꼬인걸까.


"민군. 이런 얘기를 들었어.. 사람들은 무엇이든 잃고 난 후에야 그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미리 대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나도 미니랑 같이 하루하루를 지내는 게 소중한 걸 몰랐는데, 미니가 내가 아닌 다른 애들이랑만 어울리는 동안에.. 그때서야 미니가 얼마나 나한테 소중했는가를.. 알았어. 그리고 그걸 몰라주는 미니가 너무 미웠고."
"나도, 잘 생각해보고 나니까 내가 서연이한테 잘못했다는 걸 알았으니까."


서연이랑 잘 풀리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내가 저지른 실수는, 내가 만회를 해야지.


"오늘, 미니네 집에 놀러가도 될까?"
"안될건 없잖아. 그런데 나 이번주 주번이라서 기다려야 할텐데.."
"상관없어."
"컴퓨터도 고장났고."
"뭐?"


주번이라서 기다려야 한다는 거에는 별 얘기 없다가, 컴퓨터가 고장났다니 왜 저렇게 놀라는걸까.


"어제 혜인이 컴퓨터 가르쳐주다가 뭔가 잘못 건드려서 컴퓨터가 고장났어."
"나도 컴퓨터는 잘 다루지는 못하지만, 컴퓨터 가르치는 것이 쉬운게 아닌가봐. 미니처럼 컴퓨터가 고장나기도 하니까."


사실 혜인이가 게임하다가 실제로 마력을 쓴 게 컴퓨터가 고장난 이유지만, 이런 사실은 말해봐야 전혀 좋지 않으니 숨길 건 숨겨야지.


교실에 돌아온 뒤, 다행히도 남은 수업들은 큰 일이 없이 흘러갔다. 굳이 있다면, 이번에는 유정이쪽에서 미묘해진 것 같다. 뭔가 표정이 평소랑 비교해서 완전히 무표정이야.. 하지만 오늘 서연이의 집사가 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니 유정이쪽은 지금 해결할 수 없다.


수업이 끝나고, 주번활동 때문에 또 다시 집으로 늦게 가게 되는구나. 오늘과 내일만 하면 이 짓거리도 끝이지만. 유정이는 먼저 집으로 가버렸고, 서연이는 복도에서 지금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유정이가 집으로 갈 때..


"지금은 양보하지만, 나중에 윤민이 곁에 있을 사람이.. 누굴까."


이렇게 말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나랑 서연이는 그런 관계는 아니라구. 다만 요새 내가 서연이한테 잘해주지 못해서 서연이가 쌓인 것이 많았을 뿐.


서연이랑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오랜만이다. 사실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만 해도 이것이 일상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더 이상 서연이랑 같이 다니지 않게 되어버렸지. 그리고 그 동안 서연이가 얼마나 슬퍼했을 지를 모르고 있던 내가 정말 못난 놈이고.


"내가 잘못 생각했어. 미니는.. 내가 알고 있는 미니가 맞아. 내 곁에 이렇게 같이 있잖아."
"고마워, 서연아. 내가 지금까지 잘못했으니까."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집에는 윤화랑 희정이랑 같이 학교 숙제를 하고 있나보다.


"어, 서연언니도 온거야?"
"응. 오늘은 미니가 내 집사가 되준다고 해서 내 말만 듣기로 했어. 옆에 있는 애는 누구야?"
"희정이라고, 학교 친구야."
"안녕하세요.."
"그리고, 오빠. 아무리 서연언니라고 해도, 이 동생이 모르는 사이에, 누구 집사가 된다는게, 말이 돼?"
"서연이한테 그동안 잘 해주지 못해서 어쩔 수 없었어."
"그러니까, 그 마녀가 오빠 너무 망쳤다니까."
"마녀?"


이봐이봐. 주윤화. 너 방금 뭐라고 한거냐. 마녀라니. 혜인이가 마녀라는 것을 아무한테 이렇게 말하면 곤란하잖아.


"맞아.. 학교에서 마녀같은 애가 전학오고 나서, 미니를 완전히 잡아먹을 듯이 차지하고 있어. 짝도 뺏겼고.."
"마녀같은 애가 아니라.."


서연이는 유정이 얘기하는것 같은데, 둘이 그나마 좀 가까워진 것 같아도 여전히 서로 안 좋게 보는구나. 이럴 때는 어서 화제를 돌려야지. 혜인이가 마녀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하면 안돼.


"컴퓨터도 고장났는데, 다른 거 뭐 할 거 있을까."
"맞아. 사람도 모였는데, 부루마불 오랜만에 같이 해보자. 윤화 친구도 왔겠다. 재미있을 것 같아."
"그래. 내 방에 가서 부루마불 게임판 가져올께. 희정이도 같이 할래?"
"네.. 고마워요."
"내가 말하는데 막지좀 말아줘, 오빠.."


방에 들어가서 2천원짜리 부루마불 판을 가지고 왔다. 이것도 안 꺼낸지 오래 되어서 먼지가 잔뜩 묻어있네.


"희정이는, 부루마불 해봤어?"
"해본적은 없고, 본 적은 있어요."
"그러면, 희정이는 은행장 되어서 돈관리하고, 여기서 제일 먼저 지는 사람이 음료수 사기. 어때?"
"좋아!"
"나도 오빠랑 서연언니 한번 이겨보고싶어. 맨날 둘 중 하나만 이겨."


게임은 시작되고, 서연이가 파리 로마 등의 비싼 동네만 먹고 있어서 절망했는데 내가 딱 서울을 차지해서 모두한테서 보란듯이 웃을 수 있었다. 그 뒤에 윤화가 딱 서울에 걸렸는데, 문제는 그 다음 차례. 주사위 두개를 굴려서 나온 황금열쇠에는..


'반액대매출 - 당신이 가진 땅 중에서 가장 비싼 곳을 반값에 파시오'


뭐냐. 겨우 서울 먹었다고 좋아했는데. 게다가 서울 말고는 별로 비싼 곳이 없다구. 결국 이 게임은 내가 완벽하게 졌고, 서연이가 이겨서 어쩔 수 없이 음료수를 사러 갈 수밖에 없었다. 슈퍼에서 쿨피스나 대충 하나 사야지.


슈퍼에서 쿨피스를 골라잡으면서 나오는 길에, 어디서 많이 본 녀석을 발견했다.


"어, 권밝힘. 또 만났네."
"권밝힘 아니라니까요!"


권밝음이라는 이름이 저 모양 저 꼴로 전락하게 된 것에는 자기 책임도 크다고. 제발 여자 좀 그만 밝혀.


그런데 권밝음녀석이 돌아가고 나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에이. 집에 들어가자.


쿨피스를 들고 문을 여는데, 서연이랑 윤화, 그리고 희정이 셋이 뭔가 얘기하고 있었다.


"정말.. 이야? 희정이가, 그 희연선배 동생?"
"네.. 맞아요. 저도 언니랑 호진오빠가.. 왜 그렇게 학교에서 유명한지, 모르겠어요."


생각해보니 서연이는 희정이를 오늘 처음 봤고, 희정이가 희연선배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서연이도 적지 않게 놀랐겠지. 호진선배랑 희연선배는 교내에서 유명한 커플이고, 희연선배랑 얘기해 봤을때도 좋은 분 같아 보였으니까.


방 안에는 TV가 켜져 있고, TV에서는 저녁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뉴스입니다. 오늘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한 건물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주차장에 있던 차량이 모두 전소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현장에 주차된 차량은.. 내 차, 내 차!!"


저 아나운서 왜 저래. 자기 차가 불 났다고 지금 방송중인 것도 잊어버린건가. 하긴 저런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차는 엄청 비싼 차일 것이 뻔하니까 그게 홀라당 타버리니 저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겠지.


"저는 집에서 다들 기다리니까, 가볼께요. 안녕히 계세요. 윤화야 내일 학교에서 봐"
"잘가, 희정아"


희정이는 지금 시간이 늦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집에는 나랑 서연이, 그리고 윤화 이렇게 셋이 남았다.


"간만에.. 내가 여기서 저녁식사 만들어볼까? 미니를 위해서."
"와! 정말이야?"
"서연언니. 왜 남의 집의 부엌을 쓰려고 하는거예요."
"윤화야. 이럴 때는 가만히 있어줘."
"칫.. 오빠도, 서연언니도, 둘 다 너무해!"


그 날은 간만에 윤화가 아닌 서연이의 요리로 저녁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서연이도 아직 고1이라서 많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윤화보다는 서연이쪽이 훨씬 낫지.


식사를 하고 난 뒤로 서연이도 집으로 돌아갔고, 간만에 모든 것이 잘 풀린 하루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 하루뿐인 것을 난 왜 몰랐을까.


어느덧 날은 바뀌고, 오늘도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시계를 끄려고 하니까..


"아얏!"


그동안 없었던 '압정'이 알람시계 스위치에 버젓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에서 피가 줄줄 난다.


"주윤화. 알람시계에 또 뭐한거야!"
"오빠는 왜 맨날 서연언니 요리만 좋아하고 내 요리는 싫어하는거야."


도대체 윤화 쟤는 자기 요리가 그 모양인 걸 알고 그러는건지 모르고 그러는건지. 에이. 모르겠다. 오늘도 학교에 가야지. 서연이의 집사가 되겠다는 얘기는 어제로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도 서연이한테도 신경써줘야지.


오늘로서 이번주 주번활동도 끝이다. 희망에 부풀어서 주번활동을 하고 나니 교실에서는..


"꺄호~ 윤민군! 오랜만이야! 누나가 그동안 윤민군 보고싶어서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알아?"


전혀 반갑지 않은 아름선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선배. 감기몸살이셨다면서요."
"응. 맞아. 집에서 무~지 심심해서 혼났어. 밀린 애니를 다 보긴 했지만.."


감기몸살로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 밀린 애니메이션을 다 볼 생각을 하다니. 아름선배는 역시 가까이 하기에는 안 좋은 사람이다.


"아차. 오늘 왜 내가 윤민이를 보러 왔냐하면, 누가 윤민이 보고싶다고 해서 같이 오게 된거야. 지유언니. 얘가 윤민이야."


잠깐. '지유언니'? 설마. 그 때 희연선배 교실 근처에서 봤던, 뭔가 텐션이 아름선배 이상인 그분 말하는건가?


"어머. 너가 윤민이야? 아름이한테 얘기는 많~이 들었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편이라고 하더니, 역시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구나. 그런데, 아름선배랑은 완전히 대조적이야 이분. 나보다도 키가 커. 이분한테 잘못 걸리면 완전히 압도당할 것 같아. 무서워.


"아름선배.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한 거예요."
"학교에서 나랑 놀아주는 애가 윤민이밖에 없다는 얘기라던가, 엄~청 사소한 얘기들을 했어."
"엄~청 사소한 얘기라는게 도대체 뭐길래.."


서연이쪽 얘기는 겨우 해결을 했더니 아름선배라는 복병이 숨어있을 게 뭐람. 내 하루하루는 도대체 왜 계속 이렇게 엇나가는거야.


"그리고, 윤민이랑 내일 어디 같이 가보려고 하는데, 괜찮겠어?"
"어딘데요."
"코믹월드라고, 내일이랑 모레 이틀동안 양재역 aT센터에서 열리는데, 윤민이랑 같이 가보고 싶었어!"


잠깐. 코믹월드라면 전국의 오타쿠들이 모여서 동인지도 팔고 코스프레도 하는 그 코믹월드?! 에휴. 내가 그런데 가봐야 재미있게 볼 리가 없잖아.


"아름선배.. 코믹월드는, 저같은 사람이 갈 만한 곳이 아니예요."
"그래도~ 윤민이도 가면 재미있을거야."
"맞아. 아름이랑 같이 놀아주는 애라기에, 귀엽게 코스프레 한번 시켜주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코.. 스프레를 저한테 시킨다구요? 안돼요! 그리고 그 때 마침 교실에 들어온 서연이가 아름선배한테 얘기했다.


"선배. 민군이 싫다고 하잖아요. 민군 좀 그만 괴롭혀요."
"괴롭히는거 아닌데.."
"선배가 보기에는 아닐 지 몰라도, 미니 표정 안 좋은거, 선배 눈에는 안 보여요?"


때마침 예비종도 쳤겠다, 아름선배랑 그 '지유언니'는 바로 교실로 돌아갔다. 내가 저 두분한테 코믹월드 끌려간다는게,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유정이쪽에서도 별다른 말은 없었고, 오늘도 보기 드물게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갔다. 혜인이가 점심식사에 다시 끼긴 했지만, 서연이랑 혜인이는 다행히도 오늘은 별다른 충돌이 없었다. 서연이도 혜인이가 나쁜 애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시작한 것일까.


그리고 수업이 모두 끝난 뒤에, 이번 주의 마지막 주번활동을 끝마치고 서연이랑 하교를 하는데, 교문에서 어디서 많이 본 여자애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잘못본 게 아니라면 얘. 분명히 그 때 다솜이랑 같이 있었던 나래인데. 나래 얘는 여기서 왜 기다리고 있는 걸까.


- 다음회에 계속 -


네. 이번 회는 결국 서연이의 집사(?)로 전락해버리는 윤민이의 얘기였습니다. 윤민이가 서연이한테 그 동안 신경쓰지 못해서 서연이가 삐져있었고, 윤민이는 서연이한테 사과한 뒤에 둘이 다시 잘 되어가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겨우 서연이 쪽을 해결했더니 감기몸살이 다 나아서 아름이 재등장. 게다가 호진이가 아는 누나였던 '지유누나'까지 같이 합세. 이 둘한테 코믹월드에 끌려갈 위기에 처한 윤민군. 다음회에는 과연?


참고로 뉴스 관련은 개그콘서트에서 얼마전 끝난 코너 '뜬금뉴스'에서 형식을 빌렸습니다. 제가 개그콘서트를 좀 많이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