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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2008.09.21 03:06

LiTaNia 조회 수:939

extra_vars1 Sunday Isn't 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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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는데, 뭔가 얼굴에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뭐지. 눈을 살짝 떠 보니..


"오빠.. 깨어난거야? 지금 깨어나면.. 안되는데."


역시 윤화였다. 그런데 이번엔 얘가 내 방에서 뭔 짓을 하려는거야. 그리고, 살짝 뜬 눈으로 윤화를 보니까 뭔가를 들고 있다.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이건 매직펜인데.


"너.. 손에 들고 있는거, 뭔 매직펜이야."
"에이.. 들켰네. 오빠한테 벌을 줘야 하는데."


분명히 이 매직펜을 갔다 뭔가 했구나.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봐야겠다.


...


뭐야.


'오빠를 홀리는 마녀 무ㄹㅓㄱㅏㄹ'


내 얼굴에다가 신나게 쓰다가 내가 눈뜨니까 멈췄구나. 이런거 씻기도 무지 힘든데. 다 씻어내도 피부가 엄청 안좋아지고. 주윤화. 있다가 씻은 뒤에 보자.


얼굴을 다 씻어내고 내 방에 들어가보니까, 도대체 뭔 이상한 종이들이 내 방에 잔뜩 붙어있는거야.


"주윤화."
"오빠.."


그렇게 가련한 얼굴로 날 봐도 소용없어. 도대체 나한테 뭔 짓을 한거냐구, 주윤화.


"윤화 너. 내 얼굴에 뭐 한거야. 그리고 내 방에 뭘 이렇게 붙여놓은거야."
"오빠.. 잘못했어.. 때리지 마.."
"내가 뭘 때린다고 그래. 도대체 이것들 뭐냐구."


내 방에 이상한 종이들을 왜 붙였냐구.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윤화야.


"오빠가.. 마녀한테 홀려있으니까.. 마녀한테서.. 오빠를 구해주고 싶어서.. 부적을 붙인 거였어.. 흑흑."


답이 안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 대 쥐어박아줘야 한다.


에잇. 딱.


"아야. 나 안때린다며.. 나빴어. 오빠."
"아주 매를 벌어요. 부적은 그렇다 쳐. 그럼 내 얼굴에 낙서되어있는건 뭔데."
"그거.. 오빠가 어제 나 없는 틈에 치킨 시켜먹었으니까.. 벌주려고."
"그러니까 도대체 왜 그런거에 쓸데없이 민감하냐구."
"칫.. 몰라. 나쁜 오빠야!"


여자애들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도대체 왜 저런거 가지고 삐지냐. 에이. 아까전에 씻었으니 컴퓨터나 쳐야겠다.


그런데. 컴퓨터 처음 켤 때 나오는 시작음이 왜 이래.


"오빠는 풍각쟁이야~♬ 오빠는 심술쟁이야~♬"


주윤화. 또 뭔가 만졌구만. 이거 도대체 어떻게 바꾸는거였더라. 인터넷에서 찾아봐야지. 그런데?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쟤 인터넷 연결은 또 언제 끊은거야. 이 요상한 시작음을 바꿔야 하는데.


"주윤화."
"칫. 나쁜오빠. 지가 잘못해놓고서.."
"컴퓨터에 무슨 짓 해 놓은거야."
"오빠가 맨날 나랑은 안 놀아주고, 컴퓨터만 치고 있으니까, 어제 나 몰래 닭 시켜먹은것도 그렇고. 벌이야. 반성해!"


윤화 쟤는 삐지기만 하면 맨날 저러니, 정말 저런 애를 동생으로 두고 있는 내 현실이 슬프다.


"도대체 나랑 뭐 하고 놀고 싶은건데."
"같이 밖으로 나가자."
"밖에서 뭐 하려구."
"그냥 산책이라도 한다던가."


결국 화창한 주말에 오늘도 이렇게 윤화랑 놀아줘야 하는구나. 남들 신나게 놀러다니는 일요일날 이게 뭔 꼴이야. 윤화는 어느샌가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는데, 나도 옷을 좀 괜찮게 입어야 하려나.


"윤화야. 도대체 어디로 가고 싶은거냐."
"그냥 오빠 맘대로. 어디든 좋으니까."


문제는, 나도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걸 모른다는 것인데. 정말 가수 이승기가 내 옆에서 '그래서 어쩌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뭘~ 나보고 어쩌라고~♬ 이렇게 가는걸~ 그냥 두라고~♬"


하필이면 가게에서 틀어주는 노래가 이 노래냐. 정말 타이밍 하나는 죽여주는구나. 그런데 그 때, 낯익은 애가 한명 보이네.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어, 다솜아! 안녕."
"윤민이구나. 옆에는.. 누구?"
"내 동생이야. 나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아직 철이 없어."


다솜이를 본 곳은 학교랑 PC방밖에 없었으니까, 윤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겠군.


"누가 철이 없다고 그래! 그쪽은.. 오빠 학교친구인가봐요?"
"윤민이는, 귀여운 동생 있어서 좋겠다. 나.. 오늘도 PC방 가는 중이야."


일요일날에도 결국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는건가. 하긴 나도 윤화만 아니었으면 집에서 신나게 컴퓨터를 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오늘도 '건전 앤 파이터' 하려구?"
"응.. 집에서는 못하니까. 요새 윤민이가 잘 안 보여서 심심해."
"요새 나한테 일어나는 일이 많아서.. 그럼 내일 봐."
"응.. 윤민이도.. 내일 봐."


다솜이는 PC방 쪽으로 향하며 나랑 헤어졌다. 다솜이가 가자마자, 윤화는 다솜이가 궁금한 듯 나한테 물어보기 시작했다.


"저 언니가.. 오빠랑 '건전 앤 파이터' 같이 한다는 그 다솜언니야?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응. 맞아. 나도 같은 학교에서 만날 줄은 몰랐어."
"오빠가 자꾸 게임만 하니까 몸의 면역력이 약해져서 마녀한테 홀리는거야."


도대체 왜 윤화는 자꾸 나보고 마녀한테 홀린다고 할까. 혜인이는 윤화가 생각하는 것같은 나쁜 애는 아니라니까.


"전혀 상관없잖아. 그리고 나 게임만 하는 게 아니라 인터넷도 자주 들어가."
"오빠. 컴퓨터 뒤져 보니까 incoming 폴더가 용량이 너무 많이 나가서 뭔가 했더니.. 쓸데없는 것만 많아서 지웠는데."


잠깐.


뭐라고?


incoming 폴더?


내가 몇년간 모은 야구동영상들이 가득 담겨있는 그 폴더?


거기에 숨김속성을 거는 걸 잊어버린건 내 불찰이다. 덕분에 하드디스크 남은 용량이 한 50기가바이트 정도는 더 늘었겠구나. 하지만.. 이것들을 언제 다 받으라는거야.


"으으.. 주.윤.화.! 자꾸 그러면, 컴퓨터에 깔린 FT사진들 다 지워버린다."
"그것만은 안돼, 오빠.."
"앞으로 뭐 지울 때는 좀 확인하고 지워."
"미안해, 오빠.."


윤화는 꼭 자기한테 뭔가 불리한 게 있으면 저렇게 애교를 부리더라. 뭐 괜히 윤화랑 싸워봐야 도움이 안 되니까 이럴 때는 그냥 져 줘야지.


"그래도 아까 그 다솜언니. 나쁜 사람같지는 않아."
"다행이네."
"요새 유정언니라던가, 마녀라던가.. 다들 오빠한테 위험해보여서."


뭐, 게임 중독이 막장에까지 이르면 어떤 만화에서 본 것같이 해가 바뀌는 도중에도 게임에 한참 빠져 있어서 '서부 몰락지대 등대에서 바라보는 새해 첫해란..'(주1) 을 경험하는 상황까지 가지. 물론 나는 그렇게까지 게임에 빠져있을 자신은 없다. 내가 만약 빠진다고 해도 윤화때문에 안되겠지.


잠깐. 그런데 저 반대쪽에 계시는 분은.. 설마 영어선생님? 예의바른 학생이 되려면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머, 윤민이구나. 옆에는 여자친구야? 둘이 잘 어울리네."


윤화가 내 여자친구로 보인건가. 하긴 지금 윤화랑 산책가는 중이라고는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는 데이트로 보이겠지. 그런데, 윤화는 이럴 때 왜 웃고 있는거지.


"아뇨. 제 동생이예요. 저랑은 별로 안 닮았는데.. 윤화야. 이분이 우리학교 영어선생님이셔."
"안녕하세요."


윤화도 선생님한테 인사드리고는 있는데, 인사드리고 나서 표정이 아까랑 달리 금새 무표정하게 바뀌었네. 표정이 바뀌는 게 왜 이리 빠른거지.


"너희도 교회 다니는거야?"
"아뇨. 저희 그냥 산책나온거예요."
"윤민이도 주님 믿어야 천국가는데."


천국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들보고도 주님을 믿으라고 하는걸까.


"맞아, 오빠. 교회에 다녀야 마.. 읍!"


주윤화. 왜 하필 이럴때 끼어드는거냐. 교회에 다니는 분 앞에서 '마녀'얘기가 나오면 날 어떤 눈으로 볼 지 모르는거냐. 그래서 급히 손으로 윤화 입을 막았다.


"교회 다니면 마귀가 가까이 하지 못한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저는 생각 없어요."


일단 급히 둘러대긴 했지만.. 아야. 내 손을 꼬집으면 어떡해. 윤화한테는 미안하지만, 내가 마녀랑 알고 지낸다는 사실을,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녀'가 우리 학교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선생님이, 그것도 교회에 다니시는 분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필리핀에 유학간 내 친구를 하나님께서 보살피셔야 할텐데. 그 친구 라디오방송도 했어."


잠깐. 라디오방송을 했는데 필리핀으로 유학간 사람이라면.. 설마, Tomorrow Perfume Radio 얘기인건가?


"혹시.. 그 친구가 리타니아인가 하는 사람이예요?"
"맞아. 걔 내 중학교 동창이야. 가끔 필리핀에서 연락이 오긴 하는데.."


리타니아는 필리핀에 있으면서, Tomorrow Perfume Radio가 이미 박소현한테 넘어가다시피 한 사실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청취자들이 만약 리타니아가 돌아온다고 하면 다들 분노하면서 박소현을 돌려내라고 하겠지. 박소현도 연예계에 진출한 짧은 시간동안 이미 이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섭다.


"아직도 여자친구가 없대. 돌아오면 사람 하나 구해주는 셈 치고 한번 누구 소개시켜줄까 생각중인데."


하긴 유명인이 되면 누군가랑 사귄다는 소식이 들리면 바로 스캔들의 대상이 되지. 그리고 즉시 그 '팬'들의 공격을 상당히 받고.


"동생 답답하겠다."


그러고보니 여태 내가 윤화 입을 막고 있었구나. 나 왜이러지. 윤화는 여전히 내 팔을 꼬집고 있고. 이쯤에서 놔줘야지.


"후아."
"그럼, 학교에서 봐. 주님이 윤민이를 보살피도록 기도할께."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선생님은 교회로 가던 길을 다시 가셨다. 선생님이 가자마자 옆에서는..


"입 막으면 어떡해!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잖아! 치, 오빠 미워! 으아앙.."


윤화가 삐져서 울고 있다. 입을 오랫동안 막고 있었던 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 앞에서 마녀 얘기는 나올 게 아니었다고.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울고 있는 윤화한테 솜사탕이나 사 줘야지.


"솜사탕이라도 먹을래?"
"응! 먹고싶어. 솜사탕."


마침 공원 입구에 솜사탕을 파는 리어카가 있네. 옛날 어린애들은 곶감을 주면 울음을 그치고, 요새 어린애들은 솜사탕을 주면 울음을 그치는건가. 윤화는 이제 어린애라고 보기에는 나이를 꽤 먹긴 했지만.


"오빠. 내가 솜사탕 좋아한다고, 나를 어린애로 보지는 말아줘. 솜사탕은 그냥 내 취향일 뿐이라고."
"걱정마."
"나도 키가 이렇게 컸고, 나올 곳은 나왔고, 들어갈 곳은.. 아직 들어가려면 멀었구나. 마법에도 걸린다구."
"그게 여자애가 남자한테 할 소리냐."
"어차피 우리 오빠잖아. 못할게 뭐가 있어."


생각을 다시 해봐야겠다. 윤화는 아직 어린애가 맞네. 나중에 남자친구라도 사귀게 되면 철이 좀 들려나.


"그런데, 오빠. 아까 오빠 영어선생님이라는 분 있잖아."
"선생님은 왜?"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친근한 느낌이 들어."
"내가 보기에도 좋은 분 같아. 별로 무서워보이지도 않고.."
"그 선생님이 오빠가 구해줬다는 그 분이야?"
"맞아."


생각해보니 그랬지. 그 뒤에도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선생님을 구해드린 것을 깜빡 잊어버릴 뻔 했구나.


"오빠는, 누가 말하든 말을 너무 잘 듣는것 같아. 그래서 오빠 곁에 이상한 사람들이 붙어서 오빠한테 이상한 짓을 할까.. 무서워."
"걱정마. 이상한 짓을 당할 정도는 아니니까."
"이미 이상한 짓을 당했잖아. 마녀한테."
"마녀 얘기는 그만했으면 좋겠어."


말이 씨가 된다고, 내 눈 앞에는 '마녀복'같이 보이는 옷을 입은 누군가가 보였다. 윤화는 그걸 보자마자 비명을 크게 질렀다.


"꺄악, 마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윤화는 그새 부들부들 떨면서 나한테 안기네. 자세히 보니 학교에서 엄청나게 많이 본 사람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지.


"아름선배. 이상한 옷 입고 공원에서 뭐하시는거예요."
"앗, 윤민이구나! 그동안 윤민이 못 봐서 이 누나가 많이 심심했는데."
"전 선배 못 봐도 별로 안심심해요. 그건 그렇다 치고, 그 옷 도대체 뭐예요."
"동방프로젝트라는 게임에 나오는 '키리사메 마리사'라는 캐릭터를 코스프레해봤어."


그럼 그렇지. 코스프레였나. 아름선배를 처음 본 것도 '웃웃우마우마'를 코스프레하면서 춤췄다는 동영상에서였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공공장소에서 이런 코스프레는 확실히 민폐다.


"선배, 사람들 많이 보는 공공장소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예요."
"사람들이 좀 보면 어때, 다 재미로 하는건데."


아름선배가 '재미'라고 생각하는 것, 내가 보기에는 다 위험해보여. 분명히 아름선배가 전에 '요염한 조공명'하고 같이 놀았지만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더이상 조공명하고는 안 놀고, 내가 '재미있다'는 이유로 나한테 계속 말을 걸고 있지. 무서워.


"오빠 학교 선배라구? 전혀 그렇게 안 보여. 나랑 나이가 비슷해보이는데."


생각해보니 윤화는 아름선배를 처음 봤지. 나도 처음에 아름선배를 봤을 때는 선배인줄 모르고 착각했다가 그 뒤로 아름선배한테 제대로 찍혀서 내 학교생활이 엉망이 된 거잖아. 도대체 저 자그마한 외모도 그렇고 하는 짓도 그렇고 전혀 선배같지가 않아.


"생긴거라던가 하는 짓은 저래도, 저분이 내 학교 선배라는 것 때문에 울고싶어."


윤화는 아름선배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하긴 내가 봐도 아름선배를 보면 볼 수록 알 수 없는데, 아름선배를 처음 보는 윤화가 보기에는 더더욱 그렇겠지.


"당신이.. 오빠를 괴롭힌다는 그 아름선배라는 분인가요?"
"나 윤민이 괴롭힌 적 없는데. 윤민이가 재미있어서 같이 논 것 뿐인데.. 이쪽은 누구야?"
"제 동생이예요. 동생이 저랑 같이 놀아달래서 지금 산책나온거예요."
"안녕하세요. 윤민오빠의 여동생, 주윤화라고 해요."
"어머나."


윤화를 보고 있는 아름선배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딱 봐도 뭔가 불길해.


"너, 무지 귀엽잖아! 윤민이도 귀여운데, 동생도 오빠 닯아서 귀엽네."


아름선배. 희생자는 저로 충분하다고요. 윤화까지 망치지 말아주세요. 부탁이예요.


"언니, 부탁 하나 드릴게 있어요."
"응?"
"우리 오빠가 언니 때문에 학교에 다니기 무섭대요. 학교에서 착한 우리 오빠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윤화가 한 말이 맞는 말이긴 하지만, 아름선배가 과연 그 말을 들으려나.


"내가.. 그렇게 심한 짓을 한 거야? 그냥 윤민이랑 같이 놀기만 했을 뿐인데.


아름선배는 학교에서 애들이 자기를 피하는 이유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우리 오빠..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맨날 언니때문에 울다 지쳐요. 그런 오빠를 보면 제 마음이 아파요.. 매일매일 우리 오빠를 달래주는 것도 힘들어요.. 흐흐흑."


윤화 얘 눈물까지 흘리고 있잖아. 이거 연기인건가, 정말 윤화가 그렇게 생각하는건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집에 도착해서 울다 지친 적이 한번도 없는데. 집에서 울고 싶은 것은 주로 윤화가 만든 요리가 너무 맛없어서 그런거고.


"흐흑.. 착한 우리 오빠를 더 이상 괴롭히면, 저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거예요, 언니."


윤화가 이렇게 눈물까지 쏟아냈는데, 아름선배 이 사람 도대체 어떻게 나오려나.


"윤민아, 미안해. 귀여운 동생이 이렇게 부탁하니까.. 안 들어줄 수 없잖아. 혹시 윤민이랑 윤화 점심 먹었어?"
"아뇨."
"아니요.. 아직."
"윤민이를 만나서 반갑기도 하니까, 이 누나가 사줄께!"
"와! 고마워요."


윤화 얘 아까전에 울다가 지금은 신나서 방방 뛰네. 울다가 웃으면 뒤에 뭐 나는데. 그래도 윤화가 이럴 땐 정말 고맙다. 도저히 답이 없는 아름선배를 이렇게까지 설득할 수 있다니. 어쩌면 둘이 통하는 것일까.


아름선배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김밥천당. 원래 1000원 하던 김밥이 1500원으로 올랐다는게 안타깝지만, 어차피 내 돈으로 사먹는게 아닌 아름선배가 사주는 거니까 그나마 다행이랄까.


"맛있게 먹어!"
"잘 먹을께요, 선배."


어째 전부 이쪽으로 시선이 집중되어있다. 휴대폰 카메라로 이쪽을 찍는 사람도 은근슬쩍 보이네. 그러기에 코스프레는 왜 하신거예요, 아름선배.


"내가 도시락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봐. 처음 보는 언니한테 괜히 미안하게.."
"윤화야. 제발 참아."


아름선배라면 윤화가 만든 요리라도 맛있게 먹을 것 같은 분이지만 말이지.


"맞다. 윤화야. 어제 FT 팬카페 임원진 투표했다고 했잖아. 그거 어떻게 됐어?"
"아, 그거.."


윤화의 표정이 별로 좋지가 않다.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기존 임원들이 그대로 다시 임원이 됐어. 그 임원들. FT오빠들이 욕먹을 때는 제대로 지켜주지도 못했으면서 안티만 늘리고 그러면서 팬미팅만 있으면 FT오빠들한테 제일 먼저 가고.. 정말 팬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임원들."
"다른 사람들이 낙선을 안 시켰어?"
"아니. 투표가 무조건 찬성과 반대한테 손들라고 했어. 그 임원들은 자기한테 반대하는 것을 알게 되면 막 콘서트나 팬미팅같은거 안껴주려고 해. FT오빠들.. 불쌍해. 팬카페 임원들 잘못 만나서."


정말 어딜 가나 윗사람들이 썩는 게 문제구나.


"윤민군 동생은, FT를 좋아하나봐?"
"네. FT오빠들. 완소예요. 멋있고, 노래도 잘 부르고, 악기연주도 잘 하고.."


솔직히 걔네들이 미남이긴 하지만 노래를 잘 부르는것과 악기연주 잘 하는 것은 동의하지 못하겠다. 인터넷에서 FT가 락밴드 후바스탱크의 Out of Control을 부르는 것을 보고 웃겨서 뒤집어진 적이 있었지. 물론 윤화 있을 때 그런거 보면 컴퓨터가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윤화가 없을 때 봤지만.


"나도 작년에 걔네들 좋아했는데."
"정말이예요, 언니?"
"응. 멤버들이 꽃미남들이니까, BL커플링 만드는게 재미있어서."


그럼 그렇지. 아름선배한테 정상적인 것을 바라면 절대 안되지. 연예인 BL이라니.


"BL이 뭐야, 오빠?"
"착한 어린이는 알면 안 되는 거야."


윤화가 BL에 대해 물어봤지만, 차마 내가 그걸 대답해주긴 곤란하다.


"귀여운 동생한테 내가 알려줄께. BL이란.."


그런데 그 뒤에 아름선배가 친절하게 윤화한테 BL에 대해서 가르쳐줬다. 윤화의 얼굴이 빨개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름선배의 말에 뭔가 주의깊게 경청하는 것 같아 보인다. 도대체 공이 뭐고 수가 뭐며 총수가 뭐냐구.


"우리반에도 그런 거 좋아하는 애.. 있어요. 남자랑 남자 짝짓기.. 좀 이해가 안돼요."
"미남을 좋아하는 것은 여자들의 본성이니까."
"아름선배는 그런거 그만 두셔야 남자친구가 생길 것 같아요."
"흐음.."


뭐야. 아름선배도 남자친구를 고민하고 있었던 거였나.


"윤민군이랑 노는게 재미있는데 남자친구를 또 새로 사귈 필요 없잖아."
"선배.."


그럼 그렇지. 아름선배는 역시 가까이하면 너무 위험한 인물이다. 필히 거리를 둬야 한다.


김밥을 다 먹고 나서, 우리 셋은 밖으로 나왔다.


"다시 공원으로 가볼께. 윤민군, 학교에서 봐! 동생은 윤화라고 했나?"
"안녕히 가세요."


다행히도 아름선배는 공원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한 숨 돌렸다.


"오빠. 아까 그 언니 있잖아."
"아름선배가 왜?"
"오빠는 그 언니랑 가까이 하면 위험해. 여동생의 감이야."
"아름선배 때문에 내 학교생활이 위험하니까."
"코스프레라는 거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난생 처음 봤어. 그 언니가 한 것도 귀엽긴 한데.. 좋은 사람은 아니야. 내가 보기엔."


문제는 학교에서 맨날 마주치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랄까. 휴. 이제 집으로 돌아가볼까.


오늘 밤에도 어김없이 나오는 개그콘서트. 그런데 닥터피쉬 지난주까진 관객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번엔 그냥 관객들하고 같이 찍었네? 쟤네들도 어느샌가 출세했구나.


개그콘서트가 끝나고 자려고 하는데, 윤화가 나를 불렀다.


"오빠."
"왜?"
"오늘.. 나랑 같이 자. 오빠 혼자 재우면 안심이 안 돼."
"열여섯이나 먹은 다 큰 처녀가 뭘 오빠랑 같이 자겠다는거야."
"내가 없으면, 또 그 마녀가 올 지 모르잖아."


역시 혜인이 때문이었나. 윤화는 이상하게 혜인이한테 상당히 민감하다. 학교에서 서연이가 유정이한테 민감한 것 만큼이나. 하긴 그 수호천사인가랑 (검열삭제)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본 윤화였으니까.


결국 오늘은 아침부터 잠잘때까지 쭈욱 윤화랑 있게 되는구나. 같이 한 집에서 얼굴을 맞대고 사는 남매라고 해도, 이런 일은 최근엔 얼마 없었는데.


"오빠."
"또 왜?"
"안아줘. 추워."
"추우면 이불 두꺼운 거 덮고 자면 되잖아."
"아니, 몸이 아니라.. 마음이."


윤화가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이러다가 괜히 얘기만 길어진다. 그냥 윤화를 안고 자야지.


"따뜻해.. 오빠."


이렇게 잠든 지 얼마만이었을까. 날은 또 다시 밝아지면서 오늘부터 조금 일찍 울린 알람시계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주엔 주번이니까 일찍 일어나야지. 윤화 얘는 아직도 잘 자고 있네.


"윤화야, 일어나."
"벌써.. 일어날 시간이야?"
"응. 오늘부터 나 주번이잖아."
"아, 그렇지!"


그 말을 듣자마자 윤화는 벌떡 일어나서 순식간에 식사준비를 했다. 나도 씻고 식사하고 가방챙기고 옷 갈아입고 문을 여니 아직 서연이는 도착하지 않았다. 내가 주번이라서 시간차가 좀 있는 것이겠지.


"나 오늘 주번이니까, 서연이 오면 먼저 갔다고 전해줘."
"걱정마, 오빠."


혼자서 학교에 가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다. 역시 서연이가 없으니까 허전해. 그런데 내 옆에 낯익은 여자애가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쟤도 주번인가?


"윤민이..구나."


혜인이였다. 쟤도 학교를 일찍 가는 거려나.


"안녕. 혜인이 학교 일찍 가네?"
"나.. 이번주 주번이니까."
"나도 주번인데."


혜인이도 이번주에 주번이었구나. 그러면 혜인이도 이번 한 주 동안은 나랑 같은 시간대에 학교로 등교하게 되는건가.


주번 담당구역을 청소한 뒤에 교실에서 보니까 서연이도 유정이도 이미 반에 도착해있었다. 정말 저 둘은 언제쯤 사이가 좋아질까.


수업은 시작되고, 우리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인데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전산시간이 있다. 원래 컴퓨터를 배우는 시간이지만, 꼭 이럴 때 게임하겠다는 사람이 있지. 그런데 내가 앉은 자리가 고장나있다. 왜 그런거지.


"선생님, 이 자리 고장났어요."
"아.. 지난주에 4반 수업할 때 고장난 거, 아직 안 고쳤네."


뭐 오늘은 컴퓨터가 고장난 것 이외에는 정말 아무 일 도 없는 '평범한 하루'가 되었다. 아름선배가 내려오지도 않고 서연이랑 유정이가 싸우지도 않고.. 정말 이게 얼마만에 찾아오는 평범한 일상인가.


마지막으로 마무리까지 하고 조금 늦게 하교. 서연이랑 유정이는 먼저 집에 갔다. 나는 PC방이나 들러볼까. 그런데 PC방에 가는 길에 낯익은 소녀 하나를 또다시 봤다. 이렇게 얌전해 보이는 여자애 중에서 PC방으로 향할만한 애는 내가 알기로 하나밖에 없지.


"어, 다솜이도 지금 PC방 가는거야?"
"응.. 학교에서 지갑을 두고 와서, 학교까지 갔다 오니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같이 갈까?"
"응.."


뭐 다솜이랑 PC방에서 하게 되는건 뻔하게도 '건전 앤 파이터' 게임이지. 이렇게 다솜이랑 PC방으로 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솜이를 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다솜아! 오랜만이야."
"어.. 나래구나. 오랜만에 만나네."


뒤쪽에는, 다솜이를 부른 '나래'라는 여자애가 있었다. 얘도 엄청 귀엽네. 정말 나랑 같은 고1이 맞는건가. 옆동네 새림여고 교복으로 봐서는 분명 나랑 동갑이 맞는 것 같지만.


- 다음회에 계속 -


주1. 서부 몰락지대 등대에서 바라보는 새해 첫해란.. : 마x블루스 웹툰에 나오는 '홍합양'이 WOW의 중독자로, 해가 바뀌는 그 순간에도 WOW를 하면서 밤을 지샌 모습.


17. 윤나래 : 17살. 여자. 새림여고 1학년에 재학중. 전작의 B분기 히로인. 나이에 비해서 상당한 동안. 자칭기자 박찬의 표현에 따르면 '완전 인형같이 귀여운' 소녀. 이쪽에서는 아직도 좋아하는 오빠인 호진을 못잊어하고 있다.


이번회는 하루종일 윤화한테 끌려다니며 윤화랑 산책을 가장한 데이트를 한 윤민군이었습니다. 정말 여동생이 오빠한테 이래도 되는건지 제가 쓰면서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주에는 주번이 된 윤민. 학교 등교 시간은 빨라지고 하교 시간은 늦어지는데 PC방으로 향하던 도중 다솜을 만나고, 그 다솜은 '나래'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과연?